하늘이 파래서 흰색을 골랐습니다 - 나라 소년형무소 시집
료 미치코 엮음, 박진희 옮김 / 호메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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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형무소(우리로 치면 보호관찰소, 소년원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소년원이 더 적절해보인다) 사회성 함양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57편의 시로 구성되었다. 나라 형무소는 1908년 완성된 벽돌로 지은 건물인데, 메이지 5대 감옥이라고 불린다.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언젠가 교도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처음 가보는 교도소가 긴장되기도 하며,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까란 두려움을 가지며 운전을 하여 교도소에 도착했다. 신분증 확인과 휴대폰을 제출하고 3개의 철문을 지나니 재소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보안상의 이유 때문인지 소장실, 사무실에서 인사만 나누고, 대기실에서 한참을 대기했다. 그리고 1차 강의를 진행한 후 점심 때부터는 가족들과의 만남까지 준비가 되어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야말로 눈물이 있는 사람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렇다고 그들의 죄를 아름답게 미화할 생각 또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만났을 때, 내가 느낀 생각은 "왜 그랬을까?"였다.

소개된 여러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내몰렸을까. 무엇 때문에 그들이 저렇게 되었을까.

2.

중학교 때 만났던 국어 선생님이 문득 떠오른다. 본인의 시를 "시 같지 않은 시"라고 부르셨던 분이다. 첫 발령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수업 시간에 종종 자신이 지은 시를 들려주던 했다.

이 책을 펼쳤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장을 넘길 수록 내가 알고 있는 시와 유사한 시도 많았고, 심금을 울리는 내용도 많았다. 사랑에 대한 그리움,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고, 어린 나이에 그들이 바라봤던 세상의 모습은 그들에겐 영 아름답지 못 했던 거 같다.

강함의 의미를 잘못 알았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니깐. 그 속에서 나를 빗나간 길로 갈 때마다 바로 잡아준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어서 오렴 이란 따뜻한 세상이 펼쳐진다면,. 지금 같은 상황이 좀 더 줄어들까? 자신만의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을 언제쯤 해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3.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유치원 교사가 아동을 폭행하는 기사가 나온다. 영상을 보니 밥을 다 씹을 때까지 발목을 밟는 등의 행위를 한다. 관련 기관의 CCTV 설치를 의무화하였음에도 오히려 줄지 않는 건 무엇일까?

나는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명감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싫으면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이 싫고, 상대의 힘든 이야기를 듣기 싫으면 상담사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니, 억지로 일을 해야 하니 직업에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저버리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분들은 자신의 일이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지에 대한 부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래는 책에서 나오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시를 적어두었다. 더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그렇게 소개를 하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의미가 없을 듯 하여 몇 몇 시만 소개를 해본다. 저자의 시에 대한 소개가 필요한 부분도 작성해두었고, 내가 시를 읽다 긁적인 부분도 있음을 전한다.

1) 꿈과 희망과 좌절

살아가기 위해서 꿈을 꾼다

아무리 작아도

꿈은 희망을 준다

다만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은

꿈이 크면 클수록

이루지 못했을 때

크게 좌절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희망도 좌절도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사는 의미

그것이야말로 나의 스타트 라인

2) 파란 배지

오늘의 하늘은 곱디고운 파랑

이 하늘을 보고 모두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까

오늘의 하늘과 같이

내 배지의 색은 파랑

언제까지고 파랑 배지로 있다면

내 기분은 파란 하늘

-> 검정, 빨강, 파랑, 노랑, 하양의 배지가 있다고 한다. 생활 태도에 따라 격이 올라가고 형무소 내에서 자유가 많아진다고 하니 그 기쁨을 표현한 시다.

3) 살아가는 것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의 부모

지금까지의 선조

여러 사람들의 생명이

없었따면 나라고 하는 인간은 없었다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다

4)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생명을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기나긴 인생 살아가다 보면

괴로운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요

목숨 끊는 것은 간단하지만

가장 비겁한 일

아무리 힘들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지켜봐 주세요 멀리 하늘에서

반드시 꼭 새사람이 되어 보일 테니까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나는 당신들의 아이니까요

-> 부모님께서 사고로 떠나고 고아로 남겨져 여러 생각을 했던 시라고 한다.

5) 수치의 말로

나는 풍선 인간

지금 현재 기체를 주입 받고 부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체는 수소라서, 좋은 게 아니라

우울, 권태, 염세관, 르상티망(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질투, 증오, 열등감이 뒤섞인 감정.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관심 있는 개념) 같은

유해물질을 많이 포함한 것입니다

주입이 끝나면 결국에는 하늘로 날아올라

검은 까마귀의 부리든 뭐든가에 쪼여 터져 버리겠지요

풍선 인간이 처치 곤란한 건

터져 버린 후에도 주위의 공기를 계속 오염시켜

그 존재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6) 지금 느끼는 것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위험한 약에 손을 뻗치거나

천편일률적인 클럽의 천편일률적인 소리에

머리를 흔들어대며 춤추고

이탈하거나 무모하게 여자를 뒤쫓고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나 게임에 미치고

위험한 누트로픽(인지능력, 기억력,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이나 약에는 손을 내밀면서도

정작 세계를 혼자 여행하지도 못하는 마약중독자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대화, 같은 언동의 그저 마약중독자

이대로는 위험하다

이 좁은 나라의 좁은 형무소에서 좁은 독방 공실에 있으며

마음이 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나날

하지만

그런 나날 속에서도 행복은 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있는 행복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고 하찮은 잡담에 웃고

아침의 햇빛, 가족의 다정함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행복

지금이 내가 나아갈 때

비관적이고 허황된 생활에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진짜

내추럴하이(마약이나 각성제를 사용하지 않고, 합법적 혹은 자연스러운 환각 증상을 체험하는 일)로 느끼는 순간 속의 영원

-> 같은 학생이 쓴 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연한 일이라는 시에서는 당연한 것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약을 이용해 거짓 행복을 찾았던 나는 이제 겨우 깨닫게 되었다 / 당연한 것의 행복 당연한 것이 행복 이라고.

약물 의존 경험이 있는 청소년에게 과연 그들만의 책임이라고 물을 수 있을까.. 그런 사회를 만들어 버린 어른들은 책임이 없을까..

약물과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서 특히 좋아했던 캐릭터가 해롱이란 인물이었다. 아마도 유명한 드라마였기에 결과는 알 거라고 생각한다. 의지를 결연히 다지는 것은 당사자지만, 그 당사자를 주위에서 흔들어버리는 환경이 안타깝다.

7) 생일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손을 잡아 끌어 주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손을 거부하고 피해 왔다

"누가 낳아 달라고 했어!"

열이 뻗친 나머지 그렇게 말했을 때 울다 쓰러진 어머니

오늘은 내 생일

그것은 당신이 엄마로 태어난 날

누가 낳아 달라고 했어

내 스스로

당신을 엄마로 골라 태어난 거겠지요

어머니, 낳아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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