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 외로움은 삶을 무너뜨리는 질병
비벡 H. 머시 지음, 이주영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전 미국 공중보건위생국장이 쓴 외로움에 대한 책이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들어왔다. 저자는 외로움을 공중보건 문제로 보고 세계에 펼쳐진 폭력, 우울, 불안 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직접 보지 않고도 지인과 소통할 수 있다.

흔히 사용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다. 나 역시 SNS을 적극적이진 않지만, 사용하고 있다. 내 목적의 일상 소통이라기보단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하는 용도이기 때문에 인원 수가 늘거나 적거나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찌 사는가 궁금해서 SNS를 통해서 묻기도 한다. 얼마 전엔 고등학교 친구가 페이스북의 친구로 추천이 떠서 근황을 댓글로 주고 받기도 했다.

근래 코로나 19로 인해 외로움에 대한 논의는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내의 논문을 도와주다보니 감염병에 대한 논문을 많이 읽고 있다. 강제적으로나마 아내에게 도움을 주면서 함께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나름 기쁘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책은 외로움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외로움과 감염. 많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지지가 필요하다(p.17)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공유할 수 있도록(p.62)

외로움은 필요한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다는 주관적인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소속된 사람들에게서 고립되거나 버려졌거나 단절됐다고 느낄 수 있다(p.34). 그런데 묘하게도 16세기 후반까지는 영어에 외로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p.93).

저자는 외로움과 고립, 고독에 대한 구분을 하며(p.34), 외로움과 우울증, 불안에 대한 구분을 한다(p.79). 상담을 하다보면, 사소한 단어의 차이가 참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상대가 느끼는 것을 명확하고, 세심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아니라는 거부가 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온라인 상담을 할 땐 단어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사회의 공생 관계가 긴밀해진 데 따른 총 심리적 비용과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평가 중인데, 17년 피츠버그 대학교의 브라이언 프리맥 교수와 동료들은 SNS에 더 많이 접속하는 사용자들이 덜 접속하는 사용자들보다 외롭다고 느낄 가능성이 2배 높음을 발견했다(p.144~145). 참 어려운 상황이다. 외롭고 우울해서 SNS로 가느냐, 혹은 SNS를 많이 해서 외롭고 우울해질까?

때론 SNS를 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보인다. 얼마 전 아끼는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SN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 역시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며, 내가 읽은 책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요즘 인스타 안 해요. 왠지 나만 불행하게 사는 거 같아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진을 보면 우울해져서 안 하기로 정했어요."

진짜가 된다는 것은 취약성을 보이는 일이다. 본모습을 숨기거나 왜곡했을 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는 경우에는 특히 용기가 필요하다(p.158).

나는 내 또래보단 젊게 살지 못 하는 사람이다. 애늙은이 소리를 어린 시절부터 들었다보니,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내 모습을 때론 꾸며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내 차를 타면 들려오는 노래는 90년대 혹은 80년대 노래가 종종 나온다. 한 번은 박사 과정 때 지도 교수님을 차로 모셨는데, 차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듣곤, "제 시대의 노래를 듣고 있네요? 그런데 전 요즘 노래를 듣는데."

다소 다른 이야기같지만, 내 왼쪽 편에는 아직도 5년 넘게 쓴 휴대폰이 있다. 아직도 통화 등이 잘 되서 굳이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새로 나오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은데, 이상하게 나는 딱히 관심이 없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한 선배가 "징하다"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진짜가 된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과 꾸민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뭐가 옳다 그르다고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어쩌면 약해보이는 것, 혹은 약해보였을 때의 나에게 다가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 숨기고 생활하는 것을 아닐까?

1부를 읽은 후 느낌은 원론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부에서는 연결된 삶을 만드는 법에 대한 구체적 사례가 나온다.

자기 비판은 파멸적인 자기대화로 이어질 수 있기에(p.257) 자기자비를 통해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판단과 조소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혹은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p.267).

                             

켈트너 교수는 우리가 덜 연결돼 있다고 느낄 떄 세상은 더 많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p.274). 라고 한다. 언젠가 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연결은 강화되었지만, 관계는 단절되었다(정확하진 않다)라는 광고였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우리에게도 필요하지만, 미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닐까?

2002년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진 트웬지 교수는 사회적 소속감과 학문적 성과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배제의 영향이 부모와 교육자가 전통적으로 인식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은밀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p.325).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연결을 좀 더 끈끈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선 저자는 용기가 필요하다(p.360)고 주장한다. 이제부터라도 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야겠다.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여, 먼 사람까지도. 그 속에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직접 만날 순 없더라도 목소리라도 들어봐야겠다.

취약해질 용기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줄 용기

우리 자신을 믿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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