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정윤희 옮김 / 다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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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유명한 책이다. 아마 읽지는 못 했어도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검색만 해봐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을 하였다. 다연이란 출판사에 대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에게 어떤 인식을 심어줄 것인지 기대가 된다. 고전을 도전하는 출판사는 아마 일반 서적 출판보다 더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출판사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업이 아닌 측량 일이나 목수 일 같은 정직한 육체노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호했다. 실제로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서 통나무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자극자족하는 생활을 하며 작성한 글이다.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1852년에 월든이 출간되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진 못 하지만, 훗날 빛을 발하게 된다.

제아무리 오래된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일지라도 입증되지 않은 것은 무조건 신뢰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 사실이라고 말하고 또 묵인하던 이야기도 내일이면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으며,

들판에 촉촉한 단비를 뿌려줄 구름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몇몇의 막연한 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p.14).

                                                             

 

라틴어로 집이란 세데스(sedes)라고 한다. 앉아 쉴 수 있는 곳. 슈필라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영향은 굉장히 크다. 저자는 월든 호숫가에 손수 지은 오두막에 홀로 지낸 공간이 바로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곳이 아니였을까? 이웃들과 1.6Km 떨어진 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침에 해가 뜨면, 호수는 뿌연 안개 옷을 벗어던지고

은은한 잔물결과 햇살에 반다된 매끄러운 수면을 드러내곤 했다. (중략)

이 조그만 호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이웃이 되어주었다(p.119).

철학자에게 일반적인 뉴스는 한낱 가십에 불과하고(p.130), 세상은 거짓과 망상이 건전한 진리로 여겨지고 진실은 거짓으로 여겨진다(p.132).

1800년대나 2000년대나 사람 사는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해간다는 것은 사회가 발전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변해야 할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알(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원론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시스템의 변화로 한참을 아내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시스템의 변화와 사람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만 변화된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변한다는 가정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람이 변화하여 시스템을 변화시키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결국 함께 변화되어야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촛불이 두 개로, 세 개로 되는 과정 속에서 시대가 가지고 있는 체계도 변화되어야 하고, 그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바람에서, 비에서 지켜주는 방패막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한 호수에서 독서도 즐겁게 하며 지낸다. 이 책의 구성 중 독서(3장), 동물 이웃들(12장), 겨울 동물들(15장)이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서울 출장을 갔다가 여유가 되면 들리는 곳이 있다. 어린 시절 몇 번 가보지 못 했던 동물원이다(아마도 기억에 몇 없을 듯). 물론, 가장 최근 기억은 사촌형의 결혼식이였으니 5년도 지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태원, 홍대의 밤을 즐기며 더 재밌게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동물원을 찾았을까?

어쩌면 지쳐있는 내 상황을 대변해주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처럼 자연주의적 삶을 그린 건 아닐까.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어두운 밤이면 마당을 거쳐 가야 할 때를, 보름달 아래 울리는 곤충 소리를. 그리고 어딘가에서 멍멍 짖는 반가운 강아지 소리를.

지금 캠핑이 유행하는 것도 다들 지쳐있다는 건 아닐까. 한 번쯤 경험한 도심이 아닌 곳에서의 삶을.

내가 지금 거주하는 곳은 결혼 후 2번째 집이다. 이 곳으로 간다고 했을 때, "왜 거길 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교통도 불편하고, 주위에 편의 시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산 아래 집이 있어서 공기가 참 좋다. 아침에 눈 떠서 창가를 보면 산이 바로 보인다. 내 좁은 마음도 넓어지고, 커지는 기분이 든다.

각박한 삶, 분주한 삶 속에서 그나마 즐기는 여유라고 생각이 든다.

책을 덮은 지금 저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월든 호수는 왕관에 박힌 빛나는 보석과도 같다

는 이야기와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살고 삶의 본질적인 사실에 직접 부딪혀가면서 인생의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헛되이 살아온 것을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p.125).

주말인 지금, 괜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다연 출판사의 월든은 다른 번역본보다 더 내용이 많은 거 같다(비교하진 않고, 주관적인 기억이다). 무삭제 완역이라는 타이틀인지 모르지만, 약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기에 조급하게 읽을려고 하면 탈이 날 거 같다. 음미하며 차근 차근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은 도심에서 정신적인 일탈을 원하는 분이다. 고전이다보니 한 번쯤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19세기의 개개인의 삶을 통해 현재의 삶을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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