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세상을 바꾼 과학자들의 순수학문 예찬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지음, 김아림 옮김 / 책세상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버트란트 러셀은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에서

지난 150여 년 동안, 인간은 쓸모없는 지식이 무슨 가치를 지니는지 계속 의문을 던졌고,

반면 공동체의 경제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지식이라는 믿음이 점차 확산되었다

고 이야기했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쓸모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지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쓸모있는 지식은 무엇이고, 쓸모없는 지식은 무엇일까? 경제적 삶에 유용하지 않는 것은 쓸모가 없는 것일까? 밥벌이가 되지 않는 지식은 쓸모가 없는 것일까?

사범대학생 시절, 한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장 경제학적으로 비효율적인 학과가 있다면 사범대학일 듯 하다. 왜냐하면 열심히 배워서 그냥 알려주지 않느냐? 라고.. 지금도 깊게 동의하는 이야기다. 언젠가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유명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학생부나 자기소개서 컨설팅 받아본 적이 있는 학생있어? 몇몇 친구들이 손을 든다. 나는 도움을 어떻게 받았는지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때 느낀 점은 '아. 이런 정보도 돈이 되는구나'였다. 전과 제도를 알려주며 컨설팅비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였다. 교육학을 공부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상쾌하지 않는 내용이였다. 이런 거 그냥 알려줄 수 있지 않나..? 라는 의문이 바로 들었기 때문에 한편으론 거부감까지 들었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에서는 그 정보도 쓸모있는 지식이였나 싶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쓸모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두 학자의 글이 담긴 책이다.

내일의 세계-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에이브러햄 플렉스너 이렇게 두 저자가 있다. 두 저자에 대한 소개는 아래를 참고하기 바란다.

책의 표지가 사실 매력적이다. 겉표지가 기름종이(?!)식으로 되어 있다. 어린 시절 그림을 따라 그릴 때가 생각났다.

 

포터는 지식의 유용성 여부를 두고 응용된 연구와 아직 응용되지 않은 연구로 나누자고 말했다(p.15).

상당수의 대학을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훈련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사기꾼이자 무책임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기계로 낙인찍었다(p.18). 플렉스너의 주장은 현재에서도 의미가 있다. 실사구시를 강조하는 것과 학문의 본질을 강조하는 것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학의 본질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였기 때문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스펙을 쌓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 실사구시에 대한 반박 주장이다. 실사구시를 주장하는 이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필요치 않는 학문을 몇 십년째 가르쳐야 될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플렉스너는 교육기관은 호기심을 기르는 데 이바지해야 하며, 호기심이 지식의 직접적인 실용성과 적용의 고려로 왜곡되는 일을 줄여야 한다(p.65-66)고 주장한다.

흔히 빅데이터 전공이 유망학과로 뜨고 있으나, 실제로 빅데이터를 배울 수 있는 대학은 드물다는 것이 현재의 분위기이다. 아래 링크를 확인하면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poohsjw/221898694810

이렇게 시대가 변해가는 입장에서는 나 역시 실사구시의 입장을 나타낸다. 교육학에서도 복잡계적 접근을 주장하는 학자가 생겨나고 있다. 예측한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농구공 크기의 우주선을 발사하면서 미국 과학계엔 자극을 받았다. 스푸트니크호는 미국 교육계와 학계의 분수령이었다. 교육학 시절 엄청난 변화라며 소개를 해주었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교육을 잘 시켜 국가가 더 성장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나는 경험에 의한 학습 속에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 적성을 찾아가는 것이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쓸모없는 것들의 일부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완전한 삶을 살 충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p.61)

무엇이 쓸모 있고, 무엇이 쓸모없을까? 퇴직 후 우리 세대는 30여 년 이상의 삶을 보내야 한다(사고나 병 없이 100세 시대를 가정한다면). 중요한 건 그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래 인문학 열풍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학이 사실 발전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은 분명 존재한다. 융합적인 측면이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측면이든..

다음 글을 보면서 느낀 건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랬나보다라는 것이다.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여러 대학에서도 산업 응용 연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져 기초 연구가 밀려나고 있다(p.41).

숫자 페티시즘 때문에 특히 인문 사회 분야의 연구는 가혹한 수량적 관점에서 미묘하고 복잡한 가치나 통찰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p.42).

우리 사회와 미래 사회가 기초 연구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p.48).

하지만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 과학과 사회의 대화(p.51)가 필요한 시점이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일상 생활에 활용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듯이, 우리가 주장하는 논문 역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학위 논문으로 작성한 내용은 대중적이여서 조회수라든가 인용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학회지에 냈던 평화 동아리에 대한 주제는 생각보다 조회수 자체가 적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가 지금 알고 이해하는 모든 것에 한정되어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포용하며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앞으로 알고 이해하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p.36).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사례처럼 훌륭한 내용도 적용하는데 시간이 걸리듯 언젠가는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논문을 적어야겠다. 그리고 누구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논문을 쓰고 싶다.

일반 대중이 학문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추가적인 목적과 가치를 폭넓게 이해해야만 실현 될 수 있다(p.48).

모든 발견은 길고 위태로운 역사를 갖는다. 누군가 여기서 한 조각을, 저기서 또 한 조각을 찾아낸다. 한 천재가 그 조각들을 꿰맞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나중에야 마지막 단계가 비로소 완수된다. 과학은 미시시피강과 마찬가지로 먼 숲의 작은 개울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다른 시냇물이 합쳐져서 물이 점점 불어난다. 둑을 터뜨릴 만큼 요란하게 흐르는 강은 수많은 원천이 합쳐져 형성된다(p.84).

무언가 큰 것을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각자의 한 걸음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해본다.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인듯 하다. 다만, 과학적인 내용들이 있는 편이라 과학에 어느 정도 관심있는 대학생, 이공계열 대학생(대학원생) 등이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책 속의 남은 한 마디(글감으로 저장해두었다가 활용하지 못한 문구. 언젠가 빛을 발하길)

상상력이란 언덕 너머 미지의 뒤편까지 보는 힘(p.47).

지식은 아무 제약 없는 질문에서 시작해 실질적 적용으로 끝이 난다(p.23).

인류의 진짜 적은 인간이 정신이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틀에 가둬 주조하는 사람이다(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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