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대가 변해가는 입장에서는 나 역시 실사구시의 입장을 나타낸다. 교육학에서도 복잡계적 접근을 주장하는 학자가 생겨나고 있다. 예측한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농구공 크기의 우주선을 발사하면서 미국 과학계엔 자극을 받았다. 스푸트니크호는 미국 교육계와 학계의 분수령이었다. 교육학 시절 엄청난 변화라며 소개를 해주었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교육을 잘 시켜 국가가 더 성장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나는 경험에 의한 학습 속에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 적성을 찾아가는 것이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쓸모없는 것들의 일부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완전한 삶을 살 충분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p.61)
무엇이 쓸모 있고, 무엇이 쓸모없을까? 퇴직 후 우리 세대는 30여 년 이상의 삶을 보내야 한다(사고나 병 없이 100세 시대를 가정한다면). 중요한 건 그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래 인문학 열풍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학이 사실 발전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힘은 분명 존재한다. 융합적인 측면이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측면이든..
다음 글을 보면서 느낀 건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랬나보다라는 것이다.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여러 대학에서도 산업 응용 연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져 기초 연구가 밀려나고 있다(p.41).
숫자 페티시즘 때문에 특히 인문 사회 분야의 연구는 가혹한 수량적 관점에서 미묘하고 복잡한 가치나 통찰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p.42).
우리 사회와 미래 사회가 기초 연구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p.48).
하지만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 과학과 사회의 대화(p.51)가 필요한 시점이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일상 생활에 활용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렀듯이, 우리가 주장하는 논문 역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학위 논문으로 작성한 내용은 대중적이여서 조회수라든가 인용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학회지에 냈던 평화 동아리에 대한 주제는 생각보다 조회수 자체가 적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우리가 지금 알고 이해하는 모든 것에 한정되어 있지만,
상상력은 온 세상을 포용하며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앞으로 알고 이해하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p.36).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사례처럼 훌륭한 내용도 적용하는데 시간이 걸리듯 언젠가는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논문을 적어야겠다. 그리고 누구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논문을 쓰고 싶다.
일반 대중이 학문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추가적인 목적과 가치를 폭넓게 이해해야만 실현 될 수 있다(p.48).
모든 발견은 길고 위태로운 역사를 갖는다. 누군가 여기서 한 조각을, 저기서 또 한 조각을 찾아낸다. 한 천재가 그 조각들을 꿰맞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나중에야 마지막 단계가 비로소 완수된다. 과학은 미시시피강과 마찬가지로 먼 숲의 작은 개울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다른 시냇물이 합쳐져서 물이 점점 불어난다. 둑을 터뜨릴 만큼 요란하게 흐르는 강은 수많은 원천이 합쳐져 형성된다(p.84).
무언가 큰 것을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각자의 한 걸음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해본다.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인듯 하다. 다만, 과학적인 내용들이 있는 편이라 과학에 어느 정도 관심있는 대학생, 이공계열 대학생(대학원생) 등이 읽으면 좋을 듯 하다.
책 속의 남은 한 마디(글감으로 저장해두었다가 활용하지 못한 문구. 언젠가 빛을 발하길)
상상력이란 언덕 너머 미지의 뒤편까지 보는 힘(p.47).
지식은 아무 제약 없는 질문에서 시작해 실질적 적용으로 끝이 난다(p.23).
인류의 진짜 적은 인간이 정신이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틀에 가둬 주조하는 사람이다(p.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