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종교와 과학에 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원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쉬운 주제도 많은데 왜 하필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복잡한 감정도 있었지만 점수를 따기 위해 열심히 자료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어렸고, 성격적 특성인지 논쟁에 대한 부분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과학의 발전이 나의 결론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수업은 논쟁을 중심으로 하는 발표 수업이였기에 중도적인 입장을 걷는 나의 입장은 교수님의 성에 찼지 않았던 거 같다. 흑백 논리의 질문(한 학생이 종교가 먼저냐? 과학이 먼저냐?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이 질문에 대해선 같은 입장이다. 상호협력 속에 개개인의 행복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한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당연스러워서는 안 될 것이고, 종교적 차원을 위해 과학의 발전을 의도적으로 늦춰서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속에 나는 애매한 입장을 고수하는 발표자의 모습과도 같았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같은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라고 한다면, 예전보단좀 더 논리적을 답변할 수 있을텐데란 아쉬움도 남지만, 어쨌든 지나간 일이다.
책의 한 구절에서(p.43)
평소에는 세속주의자이다. 그래서 죽음을 무시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 논쟁할 ˖는 과학주의자가 된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장례식장에서는 계시종교를 믿는다. 돌아가신 고인이 지금 좋은 곳에 가셔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말이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는 명상종교를 믿는다.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향해 비판한다. 이처럼 우리는 모순된 답을 가지고 살아간다.
종교를 종교의 관점으로 다루지 않고 자신에게 익숙한 관점에서 종교를 평가(p.26)한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한다. 영역 오류에 대한 지적을 하는 것이다. 영역오류는 A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A라는 영역의 논리로 이해해야 하나, 라는 영역의 논리로 A를 이해할 때 생기는 왜곡을 의미한다(p.24).
선각자들은 죽음에 대한 고뇌로 종교를 발견하였다. 죽음에 대해 무시하거나 소멸되거나 정신으로 남거나 영혼으로 남거나 라는 네 가지로 이 책은 정리한다(p.39). 이를 확장시켜, 세속주의, 과학주의, 명상종교, 계시종교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이해하기 용이한 정리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하는 과학주의가 답이라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속주의에 따라 살아온 삶은 후회의 삶이 될 수 밖에 없다(p.47).
대학생 시절 종교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앞서 글쓰기는 그렇게 원하던 것은 아니지만, 의문을 자발적이였기에 같이 수업을 듣던 한 학생(학생이라고 표현했지만, 교수님의 연령과 비슷하셨던)이 마치 목사임을 알고 논리학 수업을 마치고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눴던 기억이 있다. 당시 불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였기에 두 종교에 대해 비교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칼뱅은 예정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신약성서의 로마서 8장 30절에는 신은 미리 정해진 자들을 부르고, 부른 자들을 의로 삼으며 의로 삼은 자들에게 영광을 내렸다라는 구절을 통해 미리 결정되었다는 것이 예정설이라는 사고까지 확장하게 된다(추후 예정설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불법에서는 인과이법을 통해 삼세 생명론을 논하였다.
이 책에서 내가 생각할 때 장점은 각 종교에 대한 실천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속주의의 실천은 성장 과정을 이해하는 것/성공 긍정하기/계획 세우기과학주의의 실천은 자기 돌봄/명상/용기
명상종교의실천은 깨달음/평화/자비/명상/머무름
계시종교의 실천은 경전/기도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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