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태도 - 15년 동안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의미
박지현 지음 / 메이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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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 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이다.

흔히 하는 착각 중 이런 것이 있다. 혼자만 세상의 모든 짐을 들러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리를 나가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어깨이는 그만한 짐이 하나씩을 얹어져 있다.

과거 외국 공익광고 영상 중에 '우울증'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 영상을 본 적 있다. 영상에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두 사람 모두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중이다. 한 사람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매우 열정적으로 팀을 응원한다. 때로는 환호를 지르고 큰 소리로 웃는다.

화면은 시간이 흐른 뒤를 두 남자를 비췄다. 두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다음 화면에는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만 영상에 등장한다. 앞서 말한 우울한 표정을 짓던 남자다. 그렇다면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환호를 지르며 큰 소리로 웃던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남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철저하게 부숴 버리는 영상이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산다. 우리를 위로하던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린다거나, 세상에 웃음과 희망을 주던 유명인이 생을 달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대한민국 자살 통계에 따르면 여성보다 남성의 자살률이 두 배는 더 높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우울증이 남성에 비해 두 배는 더 높다. 이에 관해 어떤 이들은 '남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기대가 '강인함'이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로는 자신이 '우울하다'고 외치는 쪽이 '침묵하는 쪽'보다 더 건강한 편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삶은 '태도'다. 거창한 '꿈'과 '미래', '비전'은 어쩌면 지나간 '왕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뒤나 앞이나 어느 것에도 매달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때로 사회는 '소년, 청년'들에게 '꿈'과 '비전'을 가지라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어떻게 대하는지 이다. '과거'와 '왕년'에 얽매이는 '노년'처럼 '꿈'과 '희망'에 매달리는 청년도 과하면 독이다. 어느 시기 할 것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와 '지금', '여기' 뿐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산을 등지고 서 있으니 '뒷산'이라고 부르고, 산을 앞서고 있을 때는 '앞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가질 수 있다. 저쪽 편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 볼까 하는 그런 호기심은 간혹 '이타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산을 앞서는 사람이 그 산을 '뒷산'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객관화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것이 어디서 보아도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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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의 신 - 충주시 홍보맨의 시켜서 한 마케팅
김선태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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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주무관은 충주시 6급 공무원으로 나와 나이가 같은 87생이다. 아무런 연관성은 없지만 단지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괜히 관심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주대를 중퇴하고 6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이후에는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하여 면사무소에 출근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65만 구독자를 운영하는 '유튜버'가 됐다. 면밀히 말하면 그의 채널은 아니다. 채널은 '충주시' 채널이지만 모든 운영은 그가 한다.

유튜브 채널에서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은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카레밥을 먹는 영상이다.

'이게 왜?'

그랬다. 워낙 자극적인 컨텐츠가 많은 탓에 그 정도면 유튜브 세계에서 꽤 준수한 편이 아니던가. 그러다가 다시 썸네일을 들여다 봤다.

'뭐지? 충주시?'

충주시 공식 채널이었다. 그러다 다시 놀랐다.

'뭐지? 공무원이야?'

아슬아슬 선을 넘을락 말락, 대한민국 사회가 임의로 설정한 선을 지키며 운영됐다.

그를 잊고 지내다가 쇼츠에서 'Sam smith'의 'holy'패러디 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당시 'Sam Smith'의 'I'm not the only one'이라는 노래에 심취해 반복 재상으로 듣던 시기였다.

'어디서 많이 보던 사림'이었다.

'누구였지?'

채널을 눌러보니 '충주시 공식 채널'이다.

'뭐지? 그 공무원이야?'

그 이후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상과 채널이 올라 갈 수 있는가.'

'또한 그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가'

이후, 잊혀질 때 쯤 해서 '긴급체포' 시리즈를 봤고, 다시 잊혀질 때 쯤해서 '세금 먹방'을 보게 됐다. 몇 번의 선택을 받던 그 채널은 '충주시 공식 채널'이라는 구독할 이유가 전혀 없고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채널을 구독하게 했다.

사실 마케팅이란 그렇다. 마케팅은 이미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이들에게 구매 가능성을 올리는 일이다. 즉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충주시'는 완벽한 성공을 이뤘다.

나의 호기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단순 '애향심'만 가지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나또한 적잖은 기회를 가졌으나,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경우가 많았다. 마치 무르 익지 않은 과일을 수확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보겠다고 설친 경우다. 그러나 어떻게 그는 그 수많은 유혹을 견뎌 낼 수 있나. 그 부분에서 인간적인 존경심도 들었다.

그의 노하우는 매우 간결하게 책에 담겨 있다. 꽤 가볍고 쉽다. 때로 사람들은 '가볍고 쉽다'는 것에 불쾌감을 가질지 모른다. 다만 '가볍고 쉽다'는 것은 본질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는 정보전달의 본질인 '쉽고 재밌다'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유튜브 채널처럼 도서는 쉽고 재밌게 내용을 설명한다.

누구를 타겟해야 하느지, 어떤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지, 그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사실 조직이 규모화 되면 보수적으로 변한다. 그 어떤 조직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조직에서는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악습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효율'보다는 '명분'이 훨씬 중요해 지는 경우가 많다.

매너리즘에 빠진 조직원은 모든 것을 '관례화'한다. '최초의 의미'는 사라지고 그저 행위만 남는 것이다.

'군 조직'이 그렇다. 군조직에서는 '본질'은 사라지고 '행위'만 남는 경우가 많다. 그저 '행위를 위한 행위'만 남는 것이다. 이런 관례에 불만을 가지면 조직은 그저 '시키면 시키는대로'하라는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한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의미는 이미 사라지고 모두 관례만 남는다. 그러나 규모가 큰 조직 중 가장 큰 조직은 어디인가. 바로 국가 행정 조직이다.

이 행정 조직은 답답함 투성이다. 최근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느끼는 바가 있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에서는 꽤 많은 서류를 보내온다. 거기에 서명하고 이름을 쓰고 다시 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참 멍청하다' 싶을 정도로 바뀌지 않은 몇몇 관행이 보였다. 바로 불필요한 반복되는 서명이다. 세부내용에 대해 동의 하는지 묻고 서명을 요구한다. 그리고 문서 하단에는 '위 내용에 동의한다'는 서명이 다시 있다.

'동의 한 내용에 대해 동의한다는 서명'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아마 그 최초의 문서 원문은 수십년 전 어떤 행정직 공무원이 작성한 글일 것이다. 그것을 수정하지 않고 아무도 불평하지 않으니, 사용하던 방식대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관행은 점차 비효율을 낫는다. 변화에는 책임이 필요하다. 공무원은 비교적 책임을 피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해서 대체로 공무원 조직은 '비효율적'이고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김선태 주무관'과 '그 조직'은 참 독특한 모양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하여도 그가 속한 집단의 모든 관행이 다른 부서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비효율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오래된 관례를 이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신선한 도전이 하나 둘 생긴다는 것은 국민 한 사람으로서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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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70만부 기념 에디션)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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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도 온도가 있다. 따뜻한 말이 있고 차가운 말이 있다. 어떤 말은 포근히 감싸주고 어떤 말은 냉철하게 찌른다.

온도가 쓰임이 있듯, 언어도 그렇다. 따뜻함이 필요한 시기와 차가움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언제나 포근한 말이 강한 것은 아니고, 언제나 차가운 말이 강한 것도 아니다. 각자는 그 시기마다 적절히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성장시킨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말은 적절히 사용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렇다. '희대의 탈옥수'로 유명한 '신창원'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돈 안 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를 와. 빨리 꺼져"

그 말이 그를 범죄자로 만든 계기라고 했다. 그는 '만약 너는 착한 놈이다.'라고 한 번만 말해 주었더라도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스스로에게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과연 그 말이 적절하게 의도한 대로 전달되는가.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한다. 생각해 보건데, 살면서 후회가 되는 일은 대체로 '말'과 연관되어 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후회를 돌이켜 보건데 '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루냐는 몹시 중요하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은 때로 말을 듣지 않거나 미쳐 날뛰거나, 때로는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말의 입에 물린 고삐를 당겨 겨우 조련하는 '말 조련사' 만큼이나 자신의 입에 고삐를 물려언어를 조련하는 '말 조련사'도 능숙한 재능이 필요하다.

입 근처에서 조련되지 않은 말이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도록 내버려 두는 동안, 이 주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만 보면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무방비하게 방치하다가 시간이 지나 후회하는 일이 잦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남을 속이면 기껏해야 벌을 받지만, '나를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형벌을...'

남을 후려친 고삐 풀린 망아지가 결국 남을 상처 입게 하지만,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그 주인이다. 남을 다치게 하고 다시 나를 다치게 할 정도로 자신의 '말'을 조련하지 못하는 '미숙한 조련사'로 살아가며 꽤 다양한 후회를 하게 된다. 입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소리는 '정보'를 담고 줄줄이 귀를 타고 들어간다. 그것이 머리로 들어가면 '기체'처럼 퍼져 나간다. 그것은 상대의 이곳 저곳에 스며든다.

사람의 영향력은 별 없으면서 언제나 무한하다. 우리는 당장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신'만이 가능할 것 같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속담에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1999년, 영어 강사였던 한 중국인이 자신의 스타트업 회사에 대한 투자를 유치하고자 했다. 그렇게 그는 일본의 투자자 '손정의'를 만나고 이 만남으로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탄생한다.

중국인 영어 강사는 중국 최대 부자인 '마윈'이었다. 손정의는 마윈의 비전에 감명 받아 단 5분 만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투자는 아주 성공적이었고 마윈은 중국 최대 부자가 됐고, 손정의 회장의 투자금 또한 초기 투자금의 수백 배로 올랐다.

어떤 말을 하고 살고 있느냐는 실제 그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살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살고 있는가. 다만 우연히 시작한 책에서 이기주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며 꽤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어떤 상처는 유의미하게 회복된다. 어쩌면 이또한 언어의 힘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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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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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작가를 알게 되는 과정 또한 이와 같다. 책 한 권을 읽을 때, 우리는 문자를 넘어 작가의 생각, 경험, 세계관, 개인의 역사에 접근한다. 글은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으며 미래도 함께 가져온다. 결국 그 사람의 인생과 정신을 오롯하게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독백'을 듣지 못한다. 독백을 듣지 못하니, 그의 과거와 생각을 알아낼 길이 없다. 단지 표면적으로만 알게 된다. 우리는 기껏해봐야 몇 분짜리 혼잣말은 훔쳐 들을 수 있고, 짧은 토막글 정도 훔쳐 볼 수 있으나, 대외적으로 '페르소나'에 씌워진 표면 뒤를 만날 수는 없다. 다만 수 시간 동안 조용히 독백하는 말은 결코 들을 수 없다. 한 인간의 역사와 생각, 철학을 어찌 몇 마디 혼잣말과 토막글로 알아 낼 수 있나. 그 불가능한 작업은 대체로 모두에게 기회를 열지 않는다.

독백을 훔쳐 볼 유일한 도구는 '책'이다. 책을 쓸 때 작가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한 시간과 장소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말한다. 이렇게 꺼낸 이야기는 몇 번의 퇴고가 더해지며 글이 된다. 결국 가장 정제된 자신을 드러내는 셈이다. 스스로 연극과 연출 모두를 잘 정리하여 독백하는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심지어 부모와 자식, 형제도 모르는, 때로는 자신조차 모르는 독백을 꾹꾹 담아 겉표지에 '이름'을 정하면 비로소 '책'이 된다.

고로 수 시간이 담긴 누군가의 독백을 훔쳐 보는 일은 꽤 값비싼 일이다. 이 독백은 이미 과거이며 그 과거의 독백은 대과거를 담고 있다. 시간이 생각과 물리며 '흐느는 유체'에서 단단한 고체로 고정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다시 누군가의 머리로 흘러 들어가 '흐르는 유체'가 된다.

그 유체는 독자의 '내면'과 잘 섞인다. 그리고 비로소 다른 어떤 것으로 전이되며 그 자체가 된다.

박노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의 도서인 '걷는 독서'를 서점에서 집어든 것은 우연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이어진 선택은 '눈물꽃 소년'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졌다.

한 작품으로 유체가 되어 나에게 흘러 들어온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를 아는 것은 다시 말해, 나를 아는 것이다. 그가 흘러 들어와 나의 어떤 것과 섞였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일부에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섞였다는 의미다. 그는 어떻게 그런 책을 쓰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됐을까.

시인 '박기평'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줄여 '박노해'로 스스로를 불렀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10대 후반에는 거친 노동을 했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그는 1984년 스물 일곱의 나이로 첫 시집인 '노동의 새벽'을 출간한다. 이 책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팔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보다 어린 나이로 꽤 의미있는 한 줄을 남긴 이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 일었다.

입력값을 투입하면 출력값이 나오는 알고리즘처럼, 그에게 투입된 '과거'라는 입력값이 어떻게 현재라는 '출력값'을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과거를 살폈다.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 나이를 경험한 인간적인 교감이 들었다.

'그 시대는 그랬지'를 할 수는 없으나, '그 나이는 그렇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감속에서 시대를 벗어난 공감을 했다.

돌이켜 나를 생각해 보건데, 내가 정의하는 나는 '어설픔'이다. 어떤 겸손과 자기비하 없이,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의 삶 전반은 '어설픔'이 묻어나 있다. 무언가 그럴싸한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나의 어린시절, 학생시절, 청년 시절은 '어리둥절' 무름표 표정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리숙하고 어리버리하며 미숙했다.

사람은 반대의 무언가에 끌린다던데, 나는 '완고'하고 '확실한 이들'을 보면 동경의 눈빛을 가지게 된다. 나에게 없는 확고함에 매료된다.

내가 운좋게 얻고 이뤘던 어떤 것들은 대체로 확고함이 아닌 모양을 가졌다. 그저 그러다보니 그렇게 됐다. 거기에 그럴싸한 이름들이 붙었을 뿐이다.

고로 자신이 명확한 이들은 어떤 배경을 갖고 살았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니, 과연 그 뿌리는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태어나는 모양이다. 가만히 스스로의 역사를 돌이켜 보다가 생각한다.

'생긴대로 살아야겠구나'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명확한 누군가의 '독백'을 훔쳐 봤으니, 어쩌면 완전히 모르는 '미숙함'은 아니다. 그 원천을 훔쳐본 미숙함이다. 같은 미숙함이지만 그나마 확고한 이를 훔쳐본 미숙함이, 그조차 해보지 않은 미숙함 보다 낫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책을 마무리 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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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한국사 2 근현대 - 김진영 선생님, 민족 독립 운동의 전개 생강 시리즈
김진영 지음, 해뜰날 그림 / 스터디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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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유효한 인간의 본능.

'편하게 일하고 싶다.'

이는 게으름이나 방만이 아니라 '효율성'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인물이 있다. '제임스 와트'다. 그는 기존의 증기기관을 개선하여 더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싶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방직 공장은 강이나 하천 등에 위치해야 했다. 이유는 물이 떨어지는 낙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낙수는 수차를 돌리고 수차는 기계를 돌렸다. 이러한 방식으로 방직기는 돌아갔다.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반드시 강과 하천 같은 지리적 조건이 필요했으며, 계절에 따라 수위 변동이 심했다. 혹여 가뭄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생산량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공급량이 일정하지 않으니, 가격에 대한 변동이 커지고 생산자는 그 위험부담을 안아야 했다. 이것이 사업적으로 꽤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불안정한 사업은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다 앞서말한 '제임스 와트'는 수력을 이용하지 않는 방식을 생각하고자 했다.

'어떻게 하면 떨어지는 물이 없어도 바퀴를 돌릴 수 있을까.'

그는 기존에 있던 증기기관을 개선하기로 했다. 증기기관은 무엇일까. 증기기관은 물을 끓여 그 증기로 피스톤을 움직이고 그 피스톤이 바퀴를 돌리게 하는 원리였다. 이는 산업혁명의 불씨를 당겼다. 영국은 비교적 석탄이 흔한 지역이었다. 특히 뉴캐슬, 랭커셔, 요크셔, 웨일스 지역에 석탄이 흔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에서 석탄 생산은 활발했다.

영국의 기후는 대체로 습하고 추운 편이다. 당시 석탄 난방은 영국 가정에서 매우 흔한 방식이었다. 이런 산업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으로 활발한 석탄 산업이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에 값싸게 구할 수 있는 원료인 '석탄'을 활용하여 작동하는 '와트'의 증기기관은 말그대로 혁명이었다.

공장들은 더이상 자연수력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위치에서 자유로워지고 일정한 생산량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면직물 생산의 효율을 높였다. 면직물 생산량이 일관적이고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가격은 낮아졌다. 높아지는 공급과 포화된 수요는 필연적으로 '경제 침체와 공황'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산업혁명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경제 공황과 침체가 발생했다. 이에 영국은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여 생산공급에 맞는 '수요처'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영국의 시선이 밖을 향하여 찾게 된 것이 '식민지'다. 식민지는 '값싼 노동력과 원료의 출처'이자 '좋은 판매처'였다. 제국주의는 이렇게 시작했다.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자본가'를 낳았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자본가는 '서구 자본'을 말한다. 즉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 '값싸게' 원료를 공급해 갔고, 식민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사용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제국'의 자본가와 '식민의 '노동가'라는 계급이 탄생했다.

이때,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든 국가 중에 '제국주의'에 합류하지 못한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 '미국', '소련'이다.

독일은 1871년 뒤늦게 통일을 하고 빠르게 산업화를 이뤘으나 이미 제국 열강들이 많은 식민지를 확보한 상황에서 고립되고 있었다.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자원 덕분에 식민지가 크게 필요하지 않았고 소련의 경우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토대로 방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 식민지가 필요치 않았다. 이 세 국가는 이후 근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 확보 경쟁이 치열했다. 식민지는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공급원이자 새로운 시장이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생산력이 크게 늘었으나 공급과잉은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1873년과 1890년대에 유럽 전체가 공황에 빠졌다. 독일은 높은 생산성을 토대로한 군사력을 가졌다. 이에 따라 식민지 확보를 하고자 했으나 이 과정에서 기존 열강들과 충돌이 잦아졌다.

미국은 커다란 시장과 원자재를 갖고 있어,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소련의 경우는 달랐다. 소련의 초반인 러시아 제국은 19세기 말까지도 대부분의 인구가 '농업'을 하고 있었다. 산업화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서구 기업들은 러시아의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는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문제를 발생했다.

이에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다. 이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혁명이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여기에는 '노동자'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탈바꿈 된다.

이미 제국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볼세비키 혁명은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이념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추구하면서 공산주의는 곧 식민지 해방과 국가 건설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였던 일부 국가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 공산주의 정부를 술비했다. 1949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기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했으며, 베트남에서는 호치민이 프랑스와 맞서 싸우고 미국과 전쟁을 통해 공산국가를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 조선도 비슷한 바람이 불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은 일부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자본가, 즉 서구열강의 자본에 의한 노동착취와 경제적 부당성, 양극화 등에 맞서기 위해 1920년 조선에서도 다양한 사회주의 단체가 결성된다. 이들은 당시 조선 사회 다수를 이루던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일본 자본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운동을 버린다.

일본제국은 당연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탄압하였다. 이렇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와중에 미국과의 패전에서 갑작스러운 일본 제국이 패망하며 갑작스러운 '독립'이 이루어진다.

식민지 지배는 꽤 큰 인적, 경제적 비용이 필요하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비용이나 행정비용이 들어가고 치안 유치를 비롯한 다양한 발생이 필요하다. 이미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식민지'를 건설할 필요가 크게 있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는 '국영 기업체'를 통해 경제를 조정하고 국가산업화를 추진하고자 하는데, 이는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하게 만든다. 또한 미국은 '자본가'들의 나라다. 고로 '자본주의'에 대항한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괄시할 수 없었다.

다만 이미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세워진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갖고 있는 소련 정부는 그들의 정책 방향성을 사회주의 체제에 맞게 일관적으로 이끌 수 밖에 없었다. 고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정치적, 안보적 동맹을 강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경을 맞닿고 있는 조선의 독립에 적극 지원하며 사회주의화 하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남쪽으로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북쪽'으로는 소련의 '사회주의'가 부딪치면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발생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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