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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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작가를 알게 되는 과정 또한 이와 같다. 책 한 권을 읽을 때, 우리는 문자를 넘어 작가의 생각, 경험, 세계관, 개인의 역사에 접근한다. 글은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으며 미래도 함께 가져온다. 결국 그 사람의 인생과 정신을 오롯하게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독백'을 듣지 못한다. 독백을 듣지 못하니, 그의 과거와 생각을 알아낼 길이 없다. 단지 표면적으로만 알게 된다. 우리는 기껏해봐야 몇 분짜리 혼잣말은 훔쳐 들을 수 있고, 짧은 토막글 정도 훔쳐 볼 수 있으나, 대외적으로 '페르소나'에 씌워진 표면 뒤를 만날 수는 없다. 다만 수 시간 동안 조용히 독백하는 말은 결코 들을 수 없다. 한 인간의 역사와 생각, 철학을 어찌 몇 마디 혼잣말과 토막글로 알아 낼 수 있나. 그 불가능한 작업은 대체로 모두에게 기회를 열지 않는다.

독백을 훔쳐 볼 유일한 도구는 '책'이다. 책을 쓸 때 작가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한 시간과 장소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말한다. 이렇게 꺼낸 이야기는 몇 번의 퇴고가 더해지며 글이 된다. 결국 가장 정제된 자신을 드러내는 셈이다. 스스로 연극과 연출 모두를 잘 정리하여 독백하는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심지어 부모와 자식, 형제도 모르는, 때로는 자신조차 모르는 독백을 꾹꾹 담아 겉표지에 '이름'을 정하면 비로소 '책'이 된다.

고로 수 시간이 담긴 누군가의 독백을 훔쳐 보는 일은 꽤 값비싼 일이다. 이 독백은 이미 과거이며 그 과거의 독백은 대과거를 담고 있다. 시간이 생각과 물리며 '흐느는 유체'에서 단단한 고체로 고정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다시 누군가의 머리로 흘러 들어가 '흐르는 유체'가 된다.

그 유체는 독자의 '내면'과 잘 섞인다. 그리고 비로소 다른 어떤 것으로 전이되며 그 자체가 된다.

박노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의 도서인 '걷는 독서'를 서점에서 집어든 것은 우연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이어진 선택은 '눈물꽃 소년'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졌다.

한 작품으로 유체가 되어 나에게 흘러 들어온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를 아는 것은 다시 말해, 나를 아는 것이다. 그가 흘러 들어와 나의 어떤 것과 섞였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일부에 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섞였다는 의미다. 그는 어떻게 그런 책을 쓰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됐을까.

시인 '박기평'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줄여 '박노해'로 스스로를 불렀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10대 후반에는 거친 노동을 했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그는 1984년 스물 일곱의 나이로 첫 시집인 '노동의 새벽'을 출간한다. 이 책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팔렸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보다 어린 나이로 꽤 의미있는 한 줄을 남긴 이에 대한 깊은 호기심이 일었다.

입력값을 투입하면 출력값이 나오는 알고리즘처럼, 그에게 투입된 '과거'라는 입력값이 어떻게 현재라는 '출력값'을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과거를 살폈다. 시대는 다르지만 동일 나이를 경험한 인간적인 교감이 들었다.

'그 시대는 그랬지'를 할 수는 없으나, '그 나이는 그렇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감속에서 시대를 벗어난 공감을 했다.

돌이켜 나를 생각해 보건데, 내가 정의하는 나는 '어설픔'이다. 어떤 겸손과 자기비하 없이,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의 삶 전반은 '어설픔'이 묻어나 있다. 무언가 그럴싸한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나의 어린시절, 학생시절, 청년 시절은 '어리둥절' 무름표 표정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리숙하고 어리버리하며 미숙했다.

사람은 반대의 무언가에 끌린다던데, 나는 '완고'하고 '확실한 이들'을 보면 동경의 눈빛을 가지게 된다. 나에게 없는 확고함에 매료된다.

내가 운좋게 얻고 이뤘던 어떤 것들은 대체로 확고함이 아닌 모양을 가졌다. 그저 그러다보니 그렇게 됐다. 거기에 그럴싸한 이름들이 붙었을 뿐이다.

고로 자신이 명확한 이들은 어떤 배경을 갖고 살았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니, 과연 그 뿌리는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태어나는 모양이다. 가만히 스스로의 역사를 돌이켜 보다가 생각한다.

'생긴대로 살아야겠구나'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명확한 누군가의 '독백'을 훔쳐 봤으니, 어쩌면 완전히 모르는 '미숙함'은 아니다. 그 원천을 훔쳐본 미숙함이다. 같은 미숙함이지만 그나마 확고한 이를 훔쳐본 미숙함이, 그조차 해보지 않은 미숙함 보다 낫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책을 마무리 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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