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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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胡蝶之夢), 나비가 된 꿈.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었는가.'

이 비유는 피아(彼我)를 잊었을 때 쓴다. 이 고사성어는 현대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그 깊이가 더 해질 예정이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지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이 없을수록 메타버스로 갑니다."

인구 밀도가 낮은 공간은 안전하고 자율성이 높다. 고로 사람들은 넓은 공간을 염원한다. 거기에 비용을 지불하고자 한다. 그러나 공간은 유한하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쪽은 부유한 쪽일 테고 가난한 사람들은 공간을 잃기 시작한다.

가난한 쪽은 현실 세계에서 공간을 얻지 못한다. 이들은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가상공간'이나 '메타버스'로 넘어 가는 것이다. 유현준 교수는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공간이 생겼을 때, 초등학생들이 먼저 갑니다."

온라인 활동이 많다는 것은 소득이 적다는 것이고 오프라인 활동이 많다는 것은 소득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사춘기 학생들도 자신만의 공간을 위해 방문을 닫는 대신, 스마트폰의 사이버 세계로 들어간다. 현실에서의 입지가 적을수록 '사이버'에서 체류 시간을 늘리며, 현실 세계보다 더 장기 체류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체류하지 않는다. 더 많은 활동을 가상세계로 한다. 심지어 바로 옆에 있으면서 메신저로 대화한다. 현실 우주에서 보기에 그들은 심지어 말 한마디하고 있지 않는 셈이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 도망가는 '가상세계'는 어디에 있나. 인류가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대략 930억 광년이다. 약자들은 이 넓은 우주에서 자신이 체류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 이들은 결국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간다. 가상세계다. 그곳에세 체류하며 시간을 쏟고 기억과 삶을 채워 넣는다. 우주 어디에도 없는 시공간을 쌓고 결국 그곳에 본심까지 두고 온다. 가난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의 인생까지 앗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SF소설 같은 이야기다. 다만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돈과 증권은 먼저 가상세계로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보다 가상에 더 많은 시간을 체류한다. 가상세계의 무존재한 존재들은 '성별도, 나이도, 출신도 없다. 무영혼의 망혼들이다. 현실에서 점차 갈 곳을 잃어가는 이들은 존재에 의문을 가진다. 사회는 이들에게 존재를 의문 갖게 한다.

사회는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사는 것과 그만 사는 것에 대해 결정할 자유'. '자유사'다.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 그것은 진정한 자유일까. 세계적인 고령화 사회에서 약자들은 현실 공간을 뺃앗긴다. 존재의 가치에 의문이 생긴이들에게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그것은 자유에 포장 됐지만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도망갈 곳을 잃은 이들이 결정하는 죽음 말이다.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대한민국 출산률 0.8%의 시대다. 대한민국에는 '자유사'가 없다. 다만, 역시 사람들은 '현실'에서 공간에 발디딜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유사'하지 않는 대신 자유적으로 출생을 하지 않는다. 사회가 '삶'의 공간을 폭력적으로 줄이면 벌어지는 일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본심'은 굉장히 독특한 소설적 배경을 갖는다. 자유사가 합법화 된 가까운 미래의 일본이다. 소설의 아들은 자유사를 희망하던 어머니의 선택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뒤, 사고로 사망한다. 어머니의 본심을 알고 싶었던 그는 VF라는 최신 기술로 어머니를 복원한다. 생전 어머니의 데이터로 복구한 가상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어머니의 본심을 알아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을 보며, 얼마전 tvN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지난 2020년 세상을 떠났던 전원일기의 응삼이 캐릭터, 배우 박윤배 님을 복원한 프로그램이었다. 복원된 박윤배 님은 가상인간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생생한 모습으로 출연진들과 대화했다. 저 AI가 박윤배 님의 '본심'이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점차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다. 먼 미래의 기술일 것만 같은 이 기술은 이미 이곳 저곳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기술이 철학과 부딪치며 여러가지 화두를 던진다.

얼마 전 chatGPT라는 프로그램이 소개됐다. 이 인공지능은 변호사 시험과 의사시험을 합격하고 소설을 쓰거나 간략한 희곡도 쓸 수 있다. 또한 스스로 그림을 그리거나 코딩도 한다. 얼마 전에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1위를 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꽤 철학적인 질문이 오고 갔다. 과연 AI로 그린 것은 AI가 그린 것이냐, AI를 도구로 그린 것이냐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언젠가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저작권을 AI가 갖게 되는 날도 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AI가 소득을 일으키고 세금을 내며 인간도 고용하는 세계 말이다. 소설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설명된다. 자유사를 선택하고 삶을 포기하는 인간의 유한함과 영생하는 AI와의 관계가 근로자와 고용자의 관계가 되면 인간은 기계에게 복종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물론 기계에게 복종하는 인간은 가난한 쪽이고, 그 기계의 소유권을 가진 인간은 부유한 쪽일 것이다.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에 사는 두 인간의 계층을 넘어, 별개의 다른 집단이 되면,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해갈까. 소설은 타인의 아바타가 되어, 타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업종도 소개한다. 현실 세계에서 '인생'을 판매하는 시대인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본심'은 일방향의 이야기를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소설은 미래의 모습을 빗대어 현재를 말하고 공상과학을 빌려 철학을 말한다. 어머니의 본심을 찾아 떠나는 아들의 이야기. 꽤 흥미있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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