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 영화가 묻고 심리학이 답하다,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김혜남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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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 15일, 뉴욕크리스티 경매에서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91cm의 토끼 조각품이 9110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은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의 한화 가치는 대략 1084억 원이다. '제프 쿤스'의 '토끼'는 인터넷 서칭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술의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마트에 파는 토끼모형 풍선이다. 이것이 1000억의 가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군다나 이런 알 수 없는 현대 미술은 내가 이해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으며 그 사장은 매년 더 커지고 있다. 미술 시장 거래 규모는 대략 674억 달러로 우리돈 76조 6천 억원이 넘는다. '토끼'가 거래되던 2019년 기준으로는 한 해 만에 7%나 성장했다. 이쯤되면 '비트코인'의 '가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 전까지 가장 비쌌던 현대 미술 작품은 '풍선 개'였다. 이 또한 626억 원이나 한다. 이 풍선 개의 모양은 더 아이러니한데, 길다란 풍선으로 길거리에서 만들어 주던 풍선 개의 모양을 하고 있다. 현대 미술은 더 이상 표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것이 담고 있는 내면을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매우 간단한 한 문장을 남겼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혹은, 부처는 우리에게 그만큼 짧은 문장을 남겼다.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각자가 사는 인생의 종류와 상황은 다양하지만, 그 어느 때인가, 짧으면서도 그 문장 안의 공간이 낙낙한 말들은 우리 생각의 여지를 넓히면서 때에 맞게 위로 하고 힘을 준다.

 현대 미술은 작가가 관객에게 겉모양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정신적 선물을 주는 것이다. 정작 만들어낸 작가는 관객에게 자신이 무엇을 선물했는지 알 수 없다. 보기에 따라 수 천 혹은 수 백 조 개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그 빈공간의 여지를 넘겨 주는 것이다. 해석의 여지가 적어 질수록 관객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의 범위가 그만큼이나 좁아진다. 점 하나 찍고 10억의 가치를 한다는 현대 미술은 사실상 무한대의 표현을 하고 있는 샘이다. 예술 영화라고 평가되는 영화들을 보자면 가끔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갑자기 뜬금없는 대사가 맥락에 맞지 않게 나오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는 영상이 한동안이나 노출된다. 여기에 온갖 평론가들은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아 그것을 찾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설명하곤 한다. 다만 그것은 정답일 수 없다. 그것은 그 평론가가 해석한 해석일 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는 대뜸, 알 수 없는 대사가 하나 나온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자를 마주하면서 형사(송광호)는 지긋이 그를 바라보며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한국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로 꼽히는 이 명품 대사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다양한 해석으로 설명된다. 다만, 이는 사실상 '송강호' 배우의 애드리브로 완성된 대사다. 깊은 감독의 철학이나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다고 밝혀졌다.

 사실상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넘기는 행위는 가끔 난해하지만, 더 가치 있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백의 미' 혹은 '미완성의 미학'이 그렇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미완성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이이러니하게도 더 치솟았다. 이은성 작가의 '동의보감'은 작가가 '춘하추동' 4권으로 기획했던 책임에도 3권까지만 존재하고 작가가 운명을 달리했다. 그로인해 그 소설은 결국 3권으로 출시하여 '미완'으로 남게 됐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은 그의 삶이 젊은 시절로 끝이 나며, 미완성인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해석을 할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른다. 영화 뿐만 아니라 '책'도 그렇다. 사실상 이처럼, 사고의 여지를 넉넉하게 비워 두는 매체는 활자 매체다. 활자에는 '영상'도, '소리'도 없다. 그 모든 것을 관객에게 넘겨주고 곡선과 직선으로만 이뤄진 정보활자만 넘긴다. 이런 이유로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간혹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에 반에 영화는 꽤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주인공의 음성과 표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양한 기법을 통해 감독은 영화 만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시도를 한다. 이것이 현대 영화가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냥 표면적인 내용만 이해하고 보기에 그 깊이가 상당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는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해석을 공유하고 전달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 님의 말처럼, 작가는 작품 속에 무언가를 숨겨 놓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용하는 이가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플랫폼의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과 같다. 김혜남 작가님은 이번 책을 통해 그가 느꼈던 영화의 생각을 담았다. 봤던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기준으로 영화를 살피며 보통의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재미난 캐릭터들의 이면을 찾아 해석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과 가치관, 지식을 동원하여 해석한 영화의 이야기는 또다른 재미를 만든다. 그 글들을 보면 다시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영화도 있다. 그의 이야기 중 '늙음'에 대한 말이 꽤 와닿는다. 그의 문장은 플라톤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플라톤은 '늙음에 만족할 때 늙음을 지탱할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늙음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이것은 젊음에도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그가 플라톤의 말을 빌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영화 '황금연못'에서 노인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나이듬'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지능은 80세까지 증가하며 우리는 점차 쇠퇴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전속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롱펠로는 80세 때 대학 50주는 강연에서 'Morituri Salutamus'라는 시를 읊었다.

카토는 80세에 그리스어를 배웠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대왕을 쓰고,

시모니데스는 동료들로부터 시에 관한 상을 받았다.

80세가 넘은 바로 그 나이에......

초서는 우드스톡에서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들으며

60세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썼다.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마지막까지 씨름하며

80세가 지나서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사실상 우리의 하루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모든 상황과 현상은 제일 처음 말했던 '현대 미술'과 같다. 언제나 해석에 따라 그 가치가 열려 있으며,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감에 서글퍼 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고귀한 성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영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은 즉, 자기 삶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을 갖는 훈련으로 만들고 언제나 자기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도록 할 수 있다. 600억이 넘는 풍선개나 1000억이 넘는 토끼처럼, 나의 삶에 어떤 해석의 여지를 남겨 뒀는지에 따라 우리 삶의 가치는 100조나 1000경의 가치가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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