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 - 사진작가 문철진 여행 산문집
문철진 지음 / 미디어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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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에도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았지만, 어쩐지 '가지 못하는 것'과 '가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행서적을 좋아했지만, 근래들어 부쩍 여행서적을 자주 읽는다. 가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 위로 받는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여행 서적마다 특별하게 다른 부분은 없다. 비슷한 나라에 비슷한 경로로 간다. 거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생각의 차이가 조금씩 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편지형식을 띄고 있다. 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여행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로에 따른 순서도 없다. 일본을 갔다가 갑자기 브라질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페이지에는 태국이 나오는 것 처럼 사건의 순서와 시간에 관계없이 나온다. 어쩐지 진짜 친구의 편지를 읽는 듯 하다. 문철진 작가는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벌써 십 수 권을 출판한 그는 최근 코로나의 여파로 해외로 나가는 일에 부담감을 가졌다. 중독이란 이런 것일까. 그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몸에도 흘러나와 마치 담배나 마약과 같이 금단 증세가 일어난다고 했다.

여행다운 여행을 가 본 기억은 드물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관광'과는 다르다. 삶과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훌쩍하고 여행을 떠나버리긴 쉽지 않다. 대게 여행을 하게 되면 여럿이서 함께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고 유명한 관광지를 도는 것을 생각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의 로망은 조용히 재밌는 소설책을 가방 가득하게 갖고가서 혼자 사색하고 글쓰고 읽고 하는 여행이다. 누구와 생각의 차이로 다투고 싶지도 않고 무얼 먹을지 고민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챙기거나, 눈치를 살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낮선 곳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싶은 욕심이다. 대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고 오겠다는 강박증 같은 각오를 하고 떠난다. 언제 다시 살펴보지 모를 사진을 마음껏 찍고 SNS에 남기게다는 일념을 갖는다. 추억을 갖는다는 것은 내부가 아닌 외부의 사건이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외부의 일이 너무 복잡하여 쉬며 충전하러 떠나는 길에 굳이 찾아 추억을 만들 욕심은 없다. 예전 '김영하' 작가 님의 글에서 중국을 떠나는 길에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맞이 한 적이 있다'고 읽은 적이 있다.

여행에서의 추억은 굳이 찾지 않더라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조용히 사색을 하며 글을 쓰려던 여행에서도 어떤 무언가의 사건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다만 글쓰는 사람에게는 불쾌한 사건도 좋은 사건처럼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된다는 점에서 없어도 괜찮고 있으면 더 괜찮은 일이 될 것이다. 여행에서 사진은 몹시 중요하다. 사실 말은 추억을 하고 싶지 않다고 표현했지만, 오래 전 떠났던 여행을 복기하는데는 사진만 한 것이 없다. 예전 어린시절에 가족 여행에서 아버지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계셨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의 갯수가 정해져 있던 필름카메라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담기 완벽했다. 다만 요즘처럼 어제든 수 배 장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깨닳으려는 여유가 사라지게 된다. 가장 완벽하게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여 단 한 컷을 찍어내려는 미세한 마음의 작동과, 언제 우연히 행복한 표정이 찍힐지 몰라서 마구자비로 찍어대는 사진과는 분명 본질의 차이가 발생한다.

사람은 미묘한 감정을 파악하려는 노력으로 굉장히 기민한 감각을 소유하게 된다. 빌어먹을 하루 중에서도 분명 감사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쌓여 온순하고 예민한 그 행복의 감정이 숨겨 보이지 않게 될 뿐이다. 책에서는 그야말로 글보다 사진이 많다. 하지만 글보다 사진에 더 오랜기간 시선을 머물려 사색했다. 작가가 나와 같은 장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의미없는 한 컷을 찍고 다음 컷을 준비하는 인스턴트 같은 감정은 아니였다는 것은 사진과 함께 하는 편지글에서 읽힐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10년 가까운 기간동안 살면서, 제주에서 20년 가까운 기간을 살면서 여행에 굶주려 있는 내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일상이었던 곳을 특별한 감정을 갖고 방문하고 추억과 사색하는 이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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