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했던 걸까요
김본부 지음 / 나무야미안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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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얻게 된 몇 가지 단어로 당신의 마음을 사려 하다니 나의 꿈은 이렇게 큽니다.'

내가 읽는 책들은 대중 없지만, '시'를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쩐지 '시'를 싫어한다기 보다 '시'를 읽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책의 한 구절은 짧다. 스무 단어도 되지 않는 짧은 문장을 책의 첫 줄을 펴기도 전에 만났다. 좋은 문장과 좋지 않은 문장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좋은 문장은 한 번만 읽고도 쉽게 이해되는 문장이다. 좋지 않은 문장은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다. 이것은 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좋은 시는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기'를 통해 곱씹고 사색하게 만든다. 이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런 시들이 굉장히 많다. 커다란 여백의 공간에 한 두 줄만 차지 하는 시 구절은 자신이 넓은 평수를 차지 하고 눌러 앉은 선인인 듯, 여백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분명하게 비여있지만 꽉차 있는 이런 시구절이 짧은 산문 사이 사이에 들어 앉아 있다.

길게 쓰여진 산문을 읽다가 덜컥하고 만나는 짧은 시구절은 도통 넘어가지지 않았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와 대화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어떤 음식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전에 '음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어린 나이였다. '음미'라는 말을 알리가 없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코로 음식의 향과 맛을 감상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먹는 것이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음식을 제대로 먹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당시 내가 그 말을 이해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가끔 불현듯 떠오르는 그때의 상황과 말은 성인이 되면서 불쑥 불쑥 떠올랐다. 음식을 먹을 때, 음악을 들을 때, 글을 읽을 때, 눈을 감고 제대로 향과 맛을 감상해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불쑥 떠오르는 것이 어쩐지 '시를 읽는 방법'과 같은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함축적인 단어의 힘은 되뇌고 되뇔수록 풍미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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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서는

처음 짓는 표정도

모국어처럼 발음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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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중간 중간 짧게 삽입되어 있는 '시'는 글을 많이 읽어 본의아니게 겉을 훑어 지나가려던 속도감을 낮추게 해주었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것 처럼, 독서의 매력은 빠른 시간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것을 흠씬 즐겨야한다. 습관적으로 전투적인 움직임을 보이려던 동공을 붙잡고 제동을 걸어주는 이런 산문과 시는 앞으로 종종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읽어야 할 듯 하다. 책은 '김본부'님의 글이다. 그간 그가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는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 한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 그보다 더 낯선 그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나는 내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아무리 무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도 우리는 부득이하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끝은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다.

어쨌건 시간이 이만큼이나 흐른 마당에 그들과의 추억은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울그락 붉으락'하다가 차갑게 식기도 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가 다시, 솜처럼 부드러워지기를 반복했던 나의 표정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 찰라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왜 그들을 바라보며 그토록 많은 감정을 바꾸며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로 얼굴을 붉히고 별거 아닌 일로 쉽게 마음을 열기도 했다. 마치 그들과의 관계가 내 인생의 전부라도 되는 것마냥 살았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에 나오는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라는 구절처럼 고의성이란 1도 없는 그저 인생의 흐름에 왜 그들과 이별했는지, 어떻게 그들과 함께하게 됐는지는 기억에 나질 않는다. 정말 사소한 사건 사건과 추억이 스치듯 기억이 날 뿐이다. 책의 어느 한 구절에는 '당신도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식의 짧은 문장이 나온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만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은 좀 처럼 하지 않고 살았던 듯 하다.

내 어린 시절은 조금 특이하다. 내 멋대로 인생의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명분을 내세워 갈피없는 시절을 보냈다. 그런 일관성 없는 삶의 방식 덕분에 내 추억과 인맥은 '제주, 서울'을 넘어서 해외의 시골까지 넓어졌다. 한인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뉴질랜드 '랑기오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종교도 없는 내가 왜 '장로회 예배'를 참석해서 현지인과 인사하고 그들의 자녀들과 자기 소개를 나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와카타네라는 지역에서 공원에 앉아, 거기서 뛰놀던 초등학생들이랑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연날리기를 같이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동양인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든 백인마을에 살던 젊은 동양인을 그들은 아마 어렴풋하게라고 기억하게 있을 것이다. 내가 그처럼 완전한 로컬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세상이 만들어낸 흐름이 어떻게 나를 이곳으로 돌이켜 놨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알 수는 없다. 다만 길지 않은 세월을 살며 정말 많은 사람들을 전 세계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만났다.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한 이들은 각자, 나와의 추억을 갖고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그곳에 남아 이곳 저곳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가끔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들은,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음미'하는 법처럼 느닺없이 찾아온다. 나는 느닺없이 찾아온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지금의 음식과 글, 노래를 음미해본다. 불현듯 떠오른 사람들이 나에게 불쑥 불쑥 찾아왔을 때, 나는 그들과의 기억을 음미하듯 더듬으며 떠올려보곤 한다.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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