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 세월과 내공이 빚은 오리진의 힘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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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란 무언인가?' 대략 한자어로 그 의미를 추론해 볼 수 있지만 내가 자주 사용하던 어휘는 아닌 듯 하다. 책은 '노포'가 무엇이고 우리에게 문화나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시작으로 글의 포문을 연다. 삼겹살, 생등심, 돈까스, 호프 등 우리나라의 외식업이 다양해진 것과 중국집 배달음식을 비롯해 음식업이 서비스 산업으로 확대 된 것은 88올림필을 기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현재 배달문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중국집 배달 서비스'는 우리가 얼마나 '미래 산업'에 최적화 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배달 서비스 이용률은 세계 1위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사회와 음식 주문 플래폼이 세계적인 추세를 이루고 있는 현재, 한국은 누가 뭐래도 세계를 선도해 가는 음식 문화 강국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렇게 세계의 흐름에 발 빠른 데는 '후대의 기민성'만으로는 결코 부족하다. 이 책은 이런 대한민국 요식업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과거와 현재'를 먼저 이야기한다.

'노포'라는 것은 오래 된, 혹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말한다. 흔히 우리가 이런 문화를 떠올리자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이미지화 되는 국가는 '일본'이다. 수 대의 가문을 이어가며 전통을 잇고 있다는 일본의 '노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방영하고 했다. 그럴 때마다 부러웠던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그런 노포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한 맛집을 소개하는 다른 음식책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이 타겟으로 하고 있는 점포들은 '맛집'이 아니라 '노포'다. 즉, 자본과 마케팅으로 출판된 책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단골'로 그 정체성을 증명하는 곳들이다. 요즘은 너무나 음식점 광고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보니 어떤 광고가 진짜 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음식값 몇 푼 정도에 일정 원고료 정도면 맛이 없는 음식점도 맛집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어떤 정보가 정확한지 알 수 없는 차라 음식집 추천하는 글이나 책은 신용하기 조금 껄끄럽기도 하다. 특히 방송국에서 관련 이슈가 있었던터라 더욱 그런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점포'는 그 역사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우리나라에 '노포'가 많지 않은 이유는 '극변하던 근현대사'가 한 몫했다. 우리는 식민지배를 당하고 세계 전쟁 규모의 전쟁을 내륙에서 겪은 많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이며, 군사독재와 IMF로 인한 국가 파산을 경혐했던 국가다. 그 숱한 역사의 파란을 흔들리지 않고 맞이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여차하면 경영 위기로 문을 닫는 회사와 식당이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노포'들은 오랜시간을 자리하며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통채로 맞아 들였다. 그러면서 음식의 맛을 유지하고 편법이나 요령 없이 꾸준하게 초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책은 단순하게 맛에 관한 설명만 있지 않다. 그 노포에서 다루는 음식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함께 설명하고 그 노포의 역사와 문화 또한 함께 설명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있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도 많은 즐거움과 배움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생각해보자면 '무엇을 먹어야 할 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다보면 서울, 부산, 제주, 속초를 비롯해 여러 군데를 방문하며 음식을 한 접시씩 먹은 느낌이 든다. 노포의 음식과 철학 그리고 역사를 설명하는데 벌써 전국 일주를 한 느낌이 든다. 책의 아쉬운 점이라면 서울과 경상도, 제주도, 강원도 지역의 노포를 방문하면서 글을 썼지만, 전라도 지방에 관한 글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사실 여러가지 이유로 많은 전통을 자랑하던 '노포'들을 기만하는 일을 벌여오고 있었다. 그에 노포들은 취재에 불응하는 경우가 많았고, 맛의 고향이라는 전라도 지방이 그러한 이유로 책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점은 작가 님의 아쉬움 만큼 나도 아쉽기도 했다.

어린시절 업무차 전국의 모든 곳을 돌아야 했던 경우가 있다. '서울'부터 가까운 경기도 일대,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대소도시를 방문했었는데 그 때마다 각 지역의 맛집을 방문하곤 했다. 우리나라는 몹시 작은 나라지만 지역마다 음식의 특색이 확실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전국 일주의 테마가 '음식'으로만 정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 될 법한 상당히 매력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노포들 중 몇 군데는 내가 다녀봤을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방문한 지역은 지금 살고 있는 '제주'를 포함해서도 한군데도 없었다. 꼭 방문해야겠다고 다짐이 드는 곳들도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앞서 말했듯 예전에 봤던 일본의 음식점 다큐멘터리가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 않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오랜기간 터줏대감으로 그 자리를 지켜내면서 오랜 풍파를 맞이한 그들은 결코 음식을 '때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돈 때문에 창업한다는 요즘 우리네'의 잘못된 근성이 아닌 철학을 배울 수 있었다. 학생인 아들이 있기 때문에 술을 팔지 않기로 하여 지금까지 술을 판매하지 않는 식당부터 시작하여, 조금만 요령을 피워도 마진을 크게 남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집스러운 철학으로 일관하는 주인들... 또한 쉬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삶'의 정체성을 '노포'에 묻어 놓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자리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요즘 우리는 우리의 세계적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옛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잊는다.

'온고지신',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 것을 미루어 짐작함. 세계로 뻣어나가는 우리의 위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근간에서 받치고 있는 오랜 고목나무 뿌리 같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은 여타 맛집 소개와 차원이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노포'를 더욱 찾고 발굴하여 더 오랜 전통이 고수될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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