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바스 - 파트리크 쥐스킨트, 박종대 역, 열린책들(2020)

콘트라바스 (Der Kontrabass) (2020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줄거리
이 작품은 쥐스킨트가 어느 작은 극단의 제의로 쓴 책으로 발간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콘트라바스 연주자인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인 이 작품은 〈희곡이자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또한 지금껏 독일어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희곡이자 연극 애호가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쥐스킨트 자신은 이 책에서 콘트라바스 연주자인 배우가 연극을 통해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속성과 오케스트라에서의 신분적 위치를 바탕으로 한 평범한 소시민의 생존을 다루었다고 소개하였다. 비록 역할은 중요하나 아무도 그것을 선뜻 인정하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느끼는 한 평범한 시민의 절망감뿐 아니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이 관습과 인식에 얽매이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자화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냉소적이면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페이지
p.10
콘트라바스는 태초의 악기입니다. 태초의 소리를 낸다는 말이죠. 제 말을 이해하시겠는지…… 아무튼 음악은 그런 식으로만 가능합니다. 왜냐고요? 극과 극의 긴장, 고음과 저음의 긴장 속에서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 모든 것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또한 거기서 음악적 의미와 삶이 생겨납니다. 네, 맞아요. 삶 자체가 생겨납니다.

p.11
자, 이제 지금까지 얘기한 걸 정리해 볼까요? 콘트라바스는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악기예요. 모든 악기의 기초를 잡아 주는 묵직한 저음 때문이죠. 한마디로 콘트라바스는 가장 깊은 소리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p.24
사실 소리 자체만 놓고 보면 플루트나 트럼펫이 콘트라바스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이 악기들엔 관통력이 없어요. 그래서 멀리까지 퍼져 나가지를 못해요. 미국인들은 이걸 보디감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없죠. 저는 있어요. 정확히 얘기하면 이 악기는 있어요. 제가 이 악기를 사랑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사실 그것만 빼면 이 악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나머지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죠.

p.29
장담컨대 애당초 콘트라바스 주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온갖 종류의 좌절과 우회를 반복하다 보니 어쩌다 여기에 닿게 된 것뿐이죠. 감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국립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바스 주자 여덟 명 가운데 삶의 굴곡을 겪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기구한 사연이 얼굴에 적혀 있어요.

p.42
짐작하실지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체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 자체로 인간 사회의 복사본이라 할 수 있죠. 특정한 인간 사회가 아니라 인간 사회 일반의 복사본 말입니다.

p.48
…… 저는 괴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음악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들수록 음악이 하나의 거대한 비밀이나 신비처럼 느껴지고, 음악을 알게 될수록 음악에 대해 무언가 보편적인 것을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요.

분류(교보문고)
소설 > 독일소설 > 독일소설일반

기록
2025.12.01(月) (신판 3쇄)

다.

한 줄
사연 없는 서성한 없다

오탈자 (신판 3쇄)
못 찾음

확장
남친으로 삼으면 안 되는 3B
원본은 3B의 연인(3Bの恋人)
일본에서 속설로 사귀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남자의 3가지 직업을 가리킨다. 미용사(Biyoushi), 바텐더, 밴드맨.
미용사는 여자가 많이 꼬여서 바람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바텐더는 밤에 일하기 때문에 생활 리듬이 안 맞아서, 밴드맨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강렬한 댓글은 ˝애초에 소리가 안나는 악기를 하는데 제정신인게 더 이상한거 아닌가?˝

Czardas Monti for two Double Bass solo - Lev Weksler(2014)
콘트라바스 소리를 잘 몰라서 솔로 연주를 하는 유튜브를 조금 찾아보았다. 합주 중에는 독주 파트가 없어서 콘트라바스만의 소리가 궁금했다. 손으로 하는 연주와 활로 켜는 소리가 많이 달라서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저자 - Patrick Süskind(1949-)

원서 - Der Kontrabaß (The Double Bass)(1981)

구판 - 콘트라베이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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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시오리코 씨와 인연이 이어질 때 - 미카미 엔, 최고은 역, 디앤씨미디어(2014)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시오리코 씨와 인연이 이어질 때

줄거리
시오리코에게 마음을 고백한 다이스케. 돌아온 대답은 ˝5월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약간 어색하지만 전보다도 친밀해진 두 사람에게 어김없이 오래된 책과 관련한 수수께끼가 찾아오고, 시오리코는 가족을 버린 어머니의 그림자를 직시하려 한다. 또 다른 불길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페이지
p.78
˝어떤 사정으로 도망친 사람이 자신이 찾아낸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도망친 사람이 있으면 남겨진 사람도 분명 존재해요. 남겨진 사람의 마음도 생각해줘야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오리코 씨는 시다와는 다른 시각에서 이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녀는 남겨진 사람이다.

p.99
˝……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상 한번 실패한 뒤에 다시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면 몰라. 그렇게 한번 도망쳐버리면 대부분의 일들은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위로하지 않는 건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는 까닭이리라. 이 아가씨 역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까.

p.191
˝지어낸 이야기 안에만 담을 수 있는 마음도 있는 거예요. 만일 세상 모든 게 현실이라면,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너무나 쓸쓸할 거예요……. 현실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거예요. 분명 신야 군 아버님도 그러셨을 테고요.˝

p.203
책에 관한 누군가의 고민을 고우라 씨와 반쯤 즐기는 기분으로 해결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책이란 소유자의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의 머릿속을 너무 많이 알면 언젠가는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족도, 일도 다 버리고 홀연히 떠난 그 사람처럼.

p.274
˝어머니를 만나고 올게요.˝
눈은 맞추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꼭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 돌아올게요. 이 손이 닿는 곳에.˝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미스터리/스릴러소설

기록
2025.11.30(日) (초판 1쇄)

다.

2014.10.24(金) (초판 1쇄)

다.

한 줄
오래 걸린 답변만큼 행복해지세요

오탈자 (초판 1쇄)
p.83 위에서 11번째 줄
지근 → 지금

p.112 밑에서 9번째 줄
˝시오리코 → 시오리코

p.113 위에서 5번째 줄
유의 → 류의

p.128 밑에서 1번째 줄
SHOONEN → Shonen, Shounen, Shōnen

p.299 밑에서 6번째 줄
않을 걸 → 않은 걸

확장
블랙 잭 - 데즈카 오사무(1973)
p.116
˝작가가 데즈카 오사무네요. 유명한 만화 아닌가요?˝
만화의 신이라고 불린 작가인데, 연재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게 의아했다.
˝맞아요……. 하지만 당시 테즈카 오사무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었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요?˝
˝네. 데즈카 오사무는 『우주소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 등을 그린, 전후 스토리 만화의 기반을 닦은 천재였어요. 하지만 이 시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경영하던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 도산했고, 연재하던 작품도 차례로 중단됐거든요. 원고료도 당시 만화가 중에서는 ‘B급‘ 이었다고 해요.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연재 전에는 『블랙잭』도 주목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조금씩 인기가 올라가 연재가 길어졌고…… 이내 새로운 팬층을 모으는 작품이 되었죠. 이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데즈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꽤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한편 고서와 고서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미카미 엔의 추리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도 이 블랙 잭 판본들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가 데즈카 오사무가 하도 고치고 새롭게 낸 판본들이 많아서 팬들과 수집가들에게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며, 데즈카 오사무의 팬이라면 심금을 울리는 말을 덧붙인다.
˝데즈카의 작품은 한 종류의 단행본만 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거든요.˝

이리스 후유미
시노카와 지에코에 대한 이미지는 마가타 시키 박사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이리스 후유미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다시 읽어보면서 고전부 시리즈를 번갈아 보고 있어서 그런가. 남의 생각을 읽고 조종하는 캐릭터는 단세포 뇌를 가진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이다. 외모에서 오는 이점을 적극 활용하는 점도 비슷한데,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가 남자라는 점도 특징일까.

저자 - 三上延(1971-)

원서 -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5 〜栞子さんと繋がりの時〜(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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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소지, 한희선 역, 검은숲(2020)

점성술 살인사건

줄거리
점성술사 겸 탐정, 미타라이에게 한 여성이 찾아와 ‘우메자와가 점성술 살인사건’을 의뢰한다. 40년 전, 밀실에서 살해당한 화가가 남긴 광기 어린 수기에 따라 살해된 여섯 딸의 시체가 일본 전역에서 발견되어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결국 미제로 남은 사건이다. 여성은 미타라이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또 다른 수기를 건네주는데…….

페이지
pp.14-15
인간의 육체에는 이처럼 행성에 의해 강화된 부분이 한군데씩 있다. 예를 들어 양자리의 인간이라면 머리가 강화되고, 천칭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허리가 별에 의해 강화된다. 태어나는 순간 태양의 위치에 따라 강화되는 부분이 결정되는데, 바꿔 말하면 강화된 부분이 하나뿐이라는 점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살아 있는 동안 결코 인간이라는 흔해 빠진 존재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별의 축복을 몸의 한 부분에만 받았기 때문이다.
머리가 강화된 인간, 배가 강화된 인간, 이런 식으로 제각기 강화된 부분을 하나씩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 중에서 머리가 강화된 자의 머리, 가슴이 강화된 자의 가슴, 배가 강화된 자의 배 같은 식으로 서로 다른 부분이 강화된 인간 여섯 명을 모아 각각 강화된 부분만을 떼 내어 하나의 육체로 합성할 수 있다면 어떨까!
육체의 모든 부위에 행성의 축복을 받은 완벽한 육체, 빛의 무용수가 탄생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힘을 받은 자는 대개 아름답다. 만일 이 빛나는 육체가 여섯 명의 처녀로 만들어진다면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가 될 것이다. 캔버스에 여성의 완성미를 줄기차게 추구해온 자로서 이렇게 구현될 아름다움을 나는 무섭도록 동경한다.

p.173
“맞아요. 미즈타니 씨가 제 친구예요. 그 사건 때 정말 어떻게 하나 했는데, 여기 상담하러 왔더니 바로 해결해주셨다고 했어요. 미타라이 씨는 점뿐만 아니라, 그, 탐정 같은 재능도 있으시다는 말을 자주 하더군요. 아주 머리가 좋은 분이시라고.”

pp.265-266
이렇게 매일 별의 움직임을 뒤쫓으면서 살다 보면, 지구 위 소소한 우리의 행위는 허무한 게 정말 많아.
그중 제일 허무한 것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는 경쟁이야. 그것만큼은 도저히 열중할 수가 없어. 우주는 천천히 움직이지. 거대한 시계의 내부처럼, 우리 별도 구석에 있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톱니바퀴의 얼마 안 되는 톱니 중 하나야. 인간 따위는 그 끝에 들러붙은 박테리아 같은 역할이고.
그런데 이 패거리들은 시답잖은 일로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 정도의 일생을 야단법석을 떨면서 보내지. 자신이 너무 작아서 시계 전체를 볼 수 없으니까. 그 메커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자만하고. 참 우스워. 이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웃음이 나. 박테리아가 변변찮은 돈을 모아서 뭐가 된다는 거지? 관 속까지 들고 갈 것도 아니고. 왜 그런 시시한 일에 그렇게 열중할 수 있을까?”

p.420
“이 경우는 지폐와 다르니까, 잘라낸 시체를 테이프로 이어 붙일 수는 없습니다.”
미타라이는 흥분한 우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대신할 강력한 접착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불투명 테이프의 역할을 한 것이 아조트라는 환상입니다. 이 이론인지 환상인지가 너무나 강렬하고 엽기적이어서, 우리는 시체의 일부분들을 옮겨서 맞추어본다는 지극히 간단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겁니다. 각각 한 부분이 부족한 여섯 구의 시체가, 아조트를 만들기 위해 한 군데씩 잘려 나간 결과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p.437
“염색체는 어떤 것에서든 채취할 수 있어. 혈액에서도, 타액, 정액, 피부, 뼛조각으로도 알 수 있지. 그러니까 시체를 까맣게 태웠다고 해도, 백골이 되었다 해도 이제 이런 트릭은 무리야. 1936년이니까 가능했지. 지금이라면 백골로 만들어서 뼈를 보슬보슬한 가루가 될 때까지 갈아버리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하면 혈액형도 염색체도 골조직도 알 수 없게 되니까. 지금은 현미경 단위까지도 수사의 대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범죄자에게 꿈이 없는 시대야.”

p.450
˝만주에 있었다고 했어.˝
˝만주……, 그렇구나, 영국의 범죄자가 미국으로 도망가는 것 같은 거네.˝
˝일본에 돌아왔을 때 기차에서 창밖을 보면, 우리는 창에서 보는 산을 먼 거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잖아? 그런데 그녀는 일본 기차에서 보이는 산들이, 품에 뛰어들어 오는 느낌이었다고 했어, 일본은 좁으니까. 시적이고 참 좋지? 정말 인상적이었어.˝
˝그 시절은 좋았을지도 몰라. 지금의 일본인은 지평선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

pp.457-458
“아니, 이 사건을 누가 해결했냐고? 너잖아? 그런데 완전히 무시당했어! 원래라면 지금쯤 네가 텔레비전인지 그런 데 나와서 훨씬 유명해졌을지도 몰라. 돈도 벌고.
아니, 네가 그런 생각하는 타입이 아닌 건 알아. 그래도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편이 살기 편한 경우가 많잖아. 이 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해. 조금 더 좋은 건물로 옮기고 이쪽에 좀 더 멀쩡한 소파도 놓을 수 있거든?”
“그리고 이 집은 뇌 대신에 구경꾼 근성밖에 없는 정체 모를 저능한 인간들로 우글거리게 되겠지. 나는 집에 들어올 때마다, 네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큰 소리로 불러서 찾아야 할 거야. 너는 이해 못 할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이 생활이 마음에 들어. 머리를 어딘가에 두고 온 패거리 때문에 내 페이스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다음 날 일만 없으면 원하는 시간까지 잘 수 있어. 파자마 차림으로 신문도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마음에 드는 일만을 위해 저 문을 나가고. 싫어하는 녀석에게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백은 백, 흑은 흑이라고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할 수도 있지. 이것들은 모두, 언젠가 형사도 말했듯이 세상이 상대해주지 않는 놈팡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대가로 손에 넣은 재산이야. 아직은 잃고 싶지 않아. 쓸쓸해지면 너도 있고, 나는 외톨이가 아니야. 이 생활이 정말 마음에 들어.”

p.504
세상일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글쓰기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사실 없다. 나이가 얼마든 모르는 것은 있고, 젊을 때 잘 알다가 점점 잃어버리는 세계나 지식도 있다.
또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것이며, 그것이 만일 걸작이라면 쓴다는 행위 자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가르쳐준다. 많은 독자가 의미 있게 받아들인 이야기가 세상의 구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적에 쓴 것이어도 신기하게도 모순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쓰는 사람의 순수한 영혼을 통해 하늘의 누군가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 아하 이런 세계도 있구나, 재미있네, 라고 생각한다면 소설을 쓰는 걸 고려해보면 좋겠다. 당신의 내부에, 당신 자신도 모르는 거대한 능력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미스터리/스릴러소설

기록
2020.06.19(金) (개정판 2쇄)

다.

2008.05.01(木) (초판 1쇄)

다.

한 줄
안 본 눈 삽니다

오탈자 (개정판 2쇄)
못 찾음

확장
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2권(이진칸촌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그림 사토 후미야, 이현미 역, 서울문화사(2006)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무단으로 도용하여서 더 유명해지게 된다. 무단 도용에 대해서 미스터리의 저변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시마다 소지는 법적 대응은 하지 않았고 영상화 제작은 반대하여서 만화책 버전에만 실린 에피소드.

데드맨 - 가와이 간지, 권일영 역, 작가정신(2023)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이고 『점성술 살인사건』의 오마주. 6조각의 신체로 이루어진 데드맨이 나오는 가부라기 형사 시리즈. 초판 2013년, 개정판이 나왔다.

저자 - 島田荘司(1948)

원서 - 占星術殺人事件(1981)

구판 - 점성술 살인사건(1997)

구판 - 점성술 살인사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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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 모리 히로시, 안소현 역, 노블마인(2007)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줄거리
어느 날, 갑자기 후배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후배가 예전에 언급한 이상한 음식점을 떠올린다. 이름도 없고 매번 장소를 옮기며 영업을 하는 그 수상한 음식점은 30대 후반의 여주인이 예약제로 운영한다. 주인공은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음식점을 찾아가 고지라 꿈을 꾸는 여자, 벌레를 짓이겨 씁쓸한 맛을 보는 여자, 우울한 가족사를 담담히 털어놓는 여자,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등 색다른 분위기를 지닌 여자들과 차례로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후배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주인공은 점차 그 음식점만의 묘한 매력에 빠져드는데…….

페이지
p.43
사람이 뭔가를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그건 살생의 동기와 만나는 것과 같다. 소화는 이를테면 궁극적인 파괴행위의 예비 단계다. 따라서 평소 고상한 사람이라도 식사를 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경박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섬세한 본질이 엿보여 환멸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건 더러운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심리에 가깝다. 이런 까닭에 식사 예법이라는 게 생겨났으리라.

pp.54-55
원래 대화라는 건 모두 그때뿐이다. 상대의 인간성이나 배경이란 정보가 축적되어 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소한 인상 하나로 그 정도의 축적은 싹 변할 수 있다. 날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다.

pp.64-65
˝아뇨. 저는 아무것도 얻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의사소통을 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의사소통의 목적은 대개 그 행위가 성립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가운데 상대가 여러 가지를 제게 물어오겠죠. 그래서 왠지 모르게 자신의 내면을 조금은 공개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불안함은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털어 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편이 죄책감이 더 많이 들거든요. 그런 적 없으세요?˝
˝음, 알겠어. 종종 있는 일이야. 일반적인 심리라고 해도 좋겠지. 자신만 알고 있는 걸 상대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친근감을 얻었다고 느끼는 거야. 상대도 비밀을 털어놓은 그 행위에 대해 친근감을 품겠지. 비밀을 공유한다는 연대감에서 비롯되는 거지.˝
˝그러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비밀은 비밀다운 가치가 옅어지는 게 아닐까요.˝
˝맞아. 바로 그래.˝
˝그럼 결국 추상적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건 정보를 베일로 싸라는 의미인가요. 일부러 상대에게 거리감을 두어, 서먹서먹함을 느끼게 하라고요? 추상성은 상대에 대한 다정한 배려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는데요. 어느 쪽이 진짜인가요?˝
˝모두 진짜야. 그건 대화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지극히 본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어. 이거다, 라는 정답은 없지. 그 균형을 항상 맞춰야 한다, 그런 게 아닐까? 어느 한쪽이 진실이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p.75
요컨대 젊은 시절에는 ˝이것도 하고 싶다, 저것도 하고 싶다˝고 바라던 일이 요즘에는 ˝이것도 못해봤고 저것도 못해봤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바뀐다는 말이다. 전철의 진행 방향으로 얼굴을 향하고 풍경을 바라보던 게 젊은 시절이라면 지금은 스쳐 지나가는 뒤쪽 풍경을, 멀어져가는 풍경을, 뒤돌아서서 멍하니 바라보는 느낌이다. 이런 시점의 차이가 사람을 크게 둘로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남녀를 불문하고 느끼는 그런 문제가 아닐까?

p.88
여주인이 방에서 나갔을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즉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다. 이름이 뭐고, 나이가 몇 살이고, 출신이 어디고, 어떤 신분이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런 정보에 따라 그 사람의 느낌이 바뀔까? 그것이 사람의 진정한 가치일까? 정보는 얼마든지 날조할 수 있다. 우리는 평소 그런 정보에 얼마나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까?
그저 이렇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분명 다른 상황보다 식사 중의 모습이 가장 그 인물을 잘 드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조신하고 고상하게 먹으면 이미 그것만으로 이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느낀다. 언어 정보는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지만 기품 있게 먹는 모습은 쉽게 익히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연출된 것임은 틀림없다.

p.93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틈을 메울 수가 있다. 이것은 다도(茶道)와 통하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지껄여댈 필요는 없다. 쓸데없는 의사소통을 배제하고 시간과 공간을 좀 더 본질적인 것으로 채우려는 수법이다. 또한 회화 같은 예술에서도 동일한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떠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을 배제한 평온함으로 채워진 공간이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소비시키는 게 예술 감상의 주요 기능이다.
그렇다, 이건 예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첫째, 인간이 이룬 것이어야 하고 둘째, 쓸데없는 소비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내린 정의다. 오늘 이 방의 침묵이야말로 정말 예술 그 자체가 아닐까? 다만 문제는 그녀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디까지 의식해서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p.147
원래 인간관계란 많든 적든 이런 허구 위에서 성립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모두 다 진실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야기하는 자신도 착각할 때가 있다. 완벽하게 의도해서 지어낸 이야기와, 무의식 가운데 왜곡되어 상황에 맞게 해석된 이야기, 어디쯤에 그 경계가 있는 걸까? 듣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모두 진실이 아니다.
잠깐. 그럼……. 진실이란 뭘까?
자신과 관련이 없는 타인의 인생에서 ‘나의 진실‘ 이란 무엇일까?
내가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인가?
요컨대 나는 허구와 실화의 차이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논의는 젊은 시절부터 친구들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이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말의 효과에 대해서 말이다. 예전에는 이 말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게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런 주장은 허식에 가까워졌다.

p.222
나는 혼자 웃었다. 재미있다, 인생이란…….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멈출 수가 없다. 돌아갈 수도, 되풀이할 수도 없다. 할 수 없었던 일을 언제나 되돌아보며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인 것이다.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기록
2024.12.16(月) (초판 1쇄)

까.

한 줄
조금 특이한 소설 있습니다

오탈자 (초판 1쇄)
p.136 위에서 7번째 줄
정j해진 → 정해진

확장
주문이 많은 요리점 - 미야자와 겐지, 김난주 역, 그림 시마다 무쓰코, 담푸스(2015)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나 『주문이 많은 요리점』 모두 등장인물들이 순순히 따라주는 게 웃기다

로제떡볶이 씻어서 다시 만들어 먹기 - 케인 TV(2021.05.30)
스트리머 중 음식 맛없게 먹는 걸로 첫손에 꼽힌다는 케인. 이런 입이 짧고 지독한 편식쟁이들이 뭔가 음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 듯. 라쿤도 아니고 로제 떡볶이를 물에 씻어먹는 기행을 저질렀는데( 콘치즈, 양념치킨, 계란말이, 탕후루, 마라탕, 팥빙수도 씻어먹었다) 이런 먹방이 방송이 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나.

저자 - 森博嗣(1957-)

원서 - 少し変わった子あります Eccentric persons are in stock(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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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가는 히나 - 요네자와 호노부, 권영주 역, 엘릭시르(2014)

멀리 돌아가는 히나 (Little birds can remember) (고전부 시리즈 4)

줄거리
이번 작품에는 《빙과》의 봄부터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의 여름, 《쿠드랴프카의 차례》의 가을을 지나 이듬해 4월까지, 고전부의 지난 일 년이 담겨 있다. 학교 괴담을 추리로 푼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헛간 탈출 대작전 ‘새해 문 많이 열려라’, 초콜릿 도난 사건을 다룬 ‘수제 초콜릿 사건’, 히나마쓰리에 얽힌 소동을 그린 ‘멀리 돌아가는 히나’를 비롯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페이지
p.64
˝잡학 외의 일로 너한테 뭘 가르쳐 줄 수 있다니 이거 기쁜 걸. 잘 들어, 호타로. 난 네가 어째서 그런 일을 했는지 똑똑히 알 수 있어.˝
˝…….˝
˝그건 말이지. ……익숙지 않은 녀석일수록 특이함을 노리기 때문이야.˝

p.263
그렇지만 나는 농담을 한 게 아니었다. 예전에 사토시가 빌려 준 셜록 홈스에 ‘불가능한 수단을 전부 배제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은 아무리 황당무계해도 그게 정답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약간 다를 수도 있다.

pp.389-390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게다가…… 지탄다도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사물을 보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요즘 세상에 상식이다. 어쨌거나 나는 오랜 친구나 마찬가지인 사토시에 관해서조차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도 이쪽이 멋대로 오해한다든지 상대방이 멋대로 곡해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p.427
말끝에서 귀에 익은 느낌이 묻어났다. 청초한 외모 그 깊은 곳에 언제나 있었던 열기. 지탄다를 떠올릴 때 내가 맨 먼저 연상하는 것. 작년 사월 처음 만난 이래로 이미 여러 번 나와 사토시, 이바라를 휘말리게 했던 그것. 호기심이다.

pp.459-460
이때 나는 전부터 품고 있었던 의문에 관해 한 가지 답을 얻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네가 포기한 경영 전략에 대한 안목 말이다만, 내가 길러 보면 어떻겠냐?’
그러나 어째선지 도무지 말할 수 있을 성싶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처음 하는 경험은 지금까지 풀 수 없었던 의문을 풀어 주는 큰 열쇠가 된다.
나는 알았다.
후쿠베 사토시가 어째서 이바라의 초콜릿을 부수었는지.
요컨대 이런 것이었다.
지금 어둠이 밀려오는 여기 지탄다가 저택에서 내가 한 말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닌 다른 한마디였던 것과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무뚝뚝한 태도를 한껏 가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추워졌다.”
지탄다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부드럽게 미소 짓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이젠 봄이랍니다.”

pp.461-462
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오늘 있는 것은 내일도 있고 3학기 다음에는 1학기가 오는 루프가 무한히 계속되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에 시간제한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외면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즉, 시간에 대해 너그럽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이야기에 있어서도 일단 고정됐던 시간이 움직여 구축된 관계성이 변화하는 종류는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삼장법사 일행은 요괴의 습격을 받는 여행을 영원히 계속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야지키타는 즐겁고도 바보 같은 여정을 영원히 계속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각각 천축과 이세에 도착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역은 시간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처음 만난 직후 아직 어색했던 무렵을 따로 빼고, 1학기, 여름 방학, 2학기, 겨울 방학, 3학기, 봄 방학에 각각 이야기를 분배했습니다. 심경 변화의 이유를 자세히 쓰면 후기가 아니라 자작自作 해설이 될 겁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화해했다는 뜻이겠죠. 일 년을 더불어 보내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거리감은 계속 똑같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 책에 그런 변화가 그려졌기를 바랍니다.

분류(교보문고)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기록
2025.11.26(水) (초판 1쇄)

해!

2016.11.27(月) (초판 1쇄)

다.

한 줄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씁쓸한 다크초콜릿 맛

오탈자 (초판 1쇄)
p.14 위에서 6번째 줄
신 나게 → 신나게

확장
흑뢰성 - 요네자와 호노부, 김선영 역, 리드비(2022)
pp.128-129
이야기는 노부나가의 아사쿠라 침공이 가경에 접어든 참이다. 오다의 승리로 승부가 났을 때, 노부나가의 누이동생이 오다 진영에 위문품을 보낸다. 팥을 넣어 위아래를 꿰맨 자루. 그것을 보고 노부나가가 소리친다. ˝자루 안의 쥐라는 뜻인가! 배후의 아사이가 배신했구나!˝ 아사이가로 시집간 노부나가의 누이동생이 오빠에게 궁지에 빠겠졌음을 넌지시 알렸다는 에피소드다.
일본인들에게는 유명한 이야기겠지만 이때부터 역사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을까. 『흑뢰성』으로 이룰 건 다 이루어버려서 앞으로 고전부는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천축에 도착하지 않은 삼장법사 일행으로 남을지.

상남자들의 낭만👊 - 신고킥TV(2023)
pp.382-383
˝그때 너도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던데. 내가 승리에 집착하지 않는 걸.
너하고 그 게임을 자주 했던 건 이 년 전이지. 그 당시 난 꽤나 한심한 녀석이었어. 이기기 위해서 이기고 싶어 해. 지면 상대방을 트집 잡고 규칙 탓을 했어. 게임뿐만이 아냐. 다케다 신겐에 대해 많이 아는 녀석이 있으면 그 이상으로 많이 알려고 책을 뒤졌고, 철도 마니아도 따라잡으려고 했어. 좌우지간 이기고 싶었던 거야, 난.
별별 것에 다 집착했어. 어떤 게 있었더라. 벌써 생각도 잘 안 나네. 그렇지만 그래, 예컨대 색깔 맞춰 옷을 입는다든지. 한자의 올바른 획순이라든지. 회전 초밥을 먹으러 가도 그저 올바른 순서로 조합해 먹는 데만 집착하느라 정작 맛있는 건 놓치고 그랬어.˝
사토시는 자못 재미있다는 듯 자신을 비웃었다.
˝참 재미없었어, 분명히 말해서. 그렇게 이기고 싶어 해 놓고 이겨도 재미가 없으니 대책이 없잖아? 그때는 왜 그런 건지 이유를 몰라서 이것저것 생각했지 뭐야. 하여튼 바보지. 재미있게 이기지 않았는데 재미있을 리 있겠어?
그러다 어느 날, 지겨워졌어 . 집착하는 걸 그만뒀어. 아니다, 집착하지 않는 데에만 집착하게 된 거야. 계기는 벌써 잊어버렸어.
그 뒤론 말이지, 호타로,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즐거워. 오늘은 자전거, 내일은 수예. 안보에, 간이 보험에, 클래식 . 집착하지 않는 정도의 집착을 양념으로 온갖 분야를 기웃거려. 그게 너였던가, 언젠가 날 형광 핑크라고 표현했던 게. 그 말이 딱 맞아.˝
남아프리카 황토흙에 쿠라이 야가레로 응답한. 승리보다 승부를 택한 낭만 치사량.

저자 - 米澤穂信(1978-)

원서 - 遠まわりする雛(2007)

원서 - 遠まわりする雛(2010)

원서 - 遠まわりする雛(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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