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건
그립다는 이야기와 같다.

만화를 그리는 일은 내 얘기를 하고
나를 알아 가는일이다.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아픔과 행복을 알아 가는 일이다. 

만화 주인공을 만들고,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아, 세상은 이렇게 서로 위로하며 사는 곳이구나.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자. 

이 사람은어떤 고민이 있을까? 
이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 
이 사람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나는 왜 이 사람 옆에 앉아 있을까? 
그 사람이 점점 궁금해진다면 한번 물어보자.
내 만화 주인공이 되어 줄래?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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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사라졌고
내일은 오지 않았고
언제나 순간을 살며
영원을 꿈꾸더라도
바로 지금
오늘당장에 대해
선명해질 것

어느 주말 오후.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에서
아내와 나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평온한 나른함에 취해 
나도 모르게 말했다.

지금 너무 좋다.

아내도 말했다.

응, 지금 너무 좋다.

지금에 대해 말을 하면 
지금이 선명해지는가 보다.

지금 너무 좋다.라고 말한 그때의 
지금이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지금 너무좋다 라든지 
지금 너무 행복하다 라는 셔터로 
앞으로도 머릿속에 
많은 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 324.p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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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나
하지 않거나

어차피 후회한다면
해보라는 조언과 충고가
넘쳐 흐르는 시절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헷갈려 하는 적도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열심히 마음 먹는 것 만으로도

주어진 생은
주어질 삶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골똘하게 생각을 한다거나
오래오래 관찰을 한다거나

나아가서
화장을 한다거나
새 옷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거나
누군가를 미워한다거나

더 나아가서

헤아린다거나
상상한다거나
표현한다거나

자책한다거나
후회한다거나
뉘우친다거나

그런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나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을
가장 열심히 하려고 한다.
210.p

김소연
<그 좋았던 시간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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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무슨 책을 읽다가, 롬멜장군이 열차의 식당 칸에서 비프 커틀릿을 먹는 장면과 맞닥뜨린 적이 있다. 장면이라지만 특별히 상세한 정경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를 들면 ‘파리를 향하는 식당 칸 안에서 롬멜장군은 점심식사로 비프 커틀릿을 먹었다‘는 정도의 문장이 실려 있을 뿐이다. 게다가 딱히 비프 커틀릿에 얽힌 이야기도 아니다. 요컨데 롬멜장군이 비프 커틀릿을 먹었다는 단순한 이야기일 따름이다. 내가 어째서 이 별 볼 일 없는 문장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하면 색깔의 조화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우선 롬멜장군의 빳빳한 감색사지군복, 하얀 테이블 크로스, 막 튀겨낸 옅은 갈색의 비프 커틀릿, 버터에 가볍게 볶은 누들, 그리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북 프랑스의 푸르른 전원 풍경,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문장을 읽어나가며 퍼뜩퍼뜩 떠오르는 것이 그런 색깔들의 어울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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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별 사이
만큼이나
멀고 먼 서로에게

손짓 하나
몸짓 하나
글짓 하나

가닿을 수 있음만으로도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생각과 
똑같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도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사유는 우주를 
조금 더 친절하게
좀 더 밝게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기적을 
바라며 산다.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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