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른 메세지를 전헌다.

한 바퀴의 생을 돌아
다시 아이가 되어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게
삶이라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사고하는 법을 다시 잊어버리고, 단일성을 잊어버리면서 여러 해를 보내야만 했다. 마치 내가 천천히, 그리고 멀리 우회로를 돌아, 어른이 아이가 된 것처럼, 사상가가 소인배가 된 것처럼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길은 대단히 좋았고, 내 가슴속의 그 새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길은 대체 어떤 길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리도 많은 어리석은 짓, 아주 많은 악덕, 아주 많은 오류, 아주 많은 혐오와 환멸과 비참을 통과해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일이었다. 내 마음은 그것에 대해 긍정의 말을 하고 있고, 내 두 눈은 그것에 대해 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절망을 체험해야만 했다. 나는 자비를 체험하기 위해서, 다시 옴을 듣기 위해서, 다시 제대로 잠을 자기 위해서, 젣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 모든 생각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을 할 때까지, 자살할 생각을 품을 때까지 처절하게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아트만을 다시 내 안에서 발견하기 위해서 바보가 되어야만 했다. 나는 다시 살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길은 또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그것은, 그 길은 멍청하다. 그 길은 꾸불꾸불하고, 그 길은 어쩌면 빙빙 순환하는지도 모른다. 그 길이 제멋대로 나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124~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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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 어디즈음
살아가고 있는가.

내 계절 어디즈음
걸어가고 있는가.

이 여행길이
목적지였음을
언제즈음 알아차릴 것인가.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계절을 다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무는 잘 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겨울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바깥의 계절과 상관없이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있는가? 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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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성과 차이점
결여와 충족
필요와 충분

이천 년 전에
살다간 사람보다도
못한 하루를 살아선 안되겠구나.

반대성은 완전한 차이이다.
반대성과 결여된 상태 및 
모순적 대립과의 관계에 대해서.

차이가 있는 사물들은
서로의 사이에 더 많은 차이를 
갖기도 하고, 한결 적은 차이를 
갖기도 하기 때문에 
가장 큰 차이점도 있다. 
그리고 이 가장 큰 차이점을 
나는 반대성이라고 부른다. 

가장 큰 차이점을 반대성이라 
하는 이유는 귀납법을 보면 분명하다. 

왜냐하면 유에 의해 차이가 있는 
사물들(유를 달리하는 사물들)은 
서로 다름으로 통하는 길조차 없고
너무나 간격이 멀어서 비교가 
불가능하며, 또 종에 의해 차이가 있는 
사물들은 저마다 생성이 시작되는 
두 극이 서로 반대이고
이 두 극 사이의 간격은 따라서
이들 반대 사물들 사이의 간격도
가장 크기 때문이다. 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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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헤어지고 싶은 마음
헤어지면 만나고 싶은 마음

공부하고자 하면 놀고 싶은 마음
놀고자 하면 공부해야 할 거 같은 마음

일할 때는 집안 걱정되는 마음
쉴 때는 일 할 걱정되는 마음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 이순간 여기에 있지 못하는 마음

모두가 집착이요
끝도 시작도 없는 무간지옥임을
알아차리고 벗어나려는
그 마음도 집착이라는 마음

죽을 때 죽고
살 때 사는 법을 배우고 익히자

삶의 스위치을
잘 켜고 끄는 법을 배우고 익히자.

사람이 죽고 살고 하는 것은 도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현상이다. 무에서 유로 나아가면 바로 생이요, 유에서 무로 들어오면 바로 사다.

사는 무리들도 열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이 있고, 죽는 무리들도 열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살아서 움직여 사지로 가는 것도 열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이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산다는 것을 너무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대개 이런 말을 들었다.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육지에 가도 사나운 외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싸움터에 나아가도 병장기의 해를 받지 않는다. 외뿔소도 그 사람을 뿔로 받는 일이 없고, 호랑이라도 그 사람을 발톱으로 할퀴는 일이 없고, 군대에 들어가도 그 사람을 칼날로 해치는 일이 없다.
고 한다.
그것은 무슨까닭이냐? 생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을래야 죽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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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는 지식을 추구하기 보단

알고 있는 것들
이미 알고 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깨달음의 지혜로 추구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것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이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눈 먼 사람에게
빛에 대해 설명해주기보다는

눈 먼 사람이 직접 눈 떠서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철학이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

충분한 방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지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알지 못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를 잃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고 만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와의 해후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이다. 

레비나스는 자칫 서로 이해하지 못해 
적대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는 
타자와의 해후에 있어 
그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얼굴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다음과 같은 문단이 대표적이다.

인간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지어다!‘ 
하고 표현하는 ‘얼굴‘의 개념만은 
자기만족을 느끼는 동안에도
혹은 우리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애를 겪는 동안에도 
회귀하지 않는다. 

이는 현실적으로 죽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죽일 수 있는 것은 
타자의 얼굴을 응시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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