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탐구 경로를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역사적, 진화론적 경로를 검토해보자. 마음은 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이 있지만 마음이 태초부터 있었던 영구불변의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마음 (그것이 마음이었다면 말이다.)을 지닌 존재에서 진화했고 그 단순한마음을 지닌 존재는 더 단순한 마음을 지닌 존재에서 진화했다. 지금부터 40억~50억 년 전, 적어도 이 지구에는 간단하건 복잡하마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변혁이 어떤 순서로 왜 일어났을까?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억측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지만 중요한 단계들은 밝혀졌다. 일단 그 이야기를 하고나면 적어도 우리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틀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마음에서 사이비 마음, 원시 마음, 얼치기 마음, 또는 얼치기-절반반토막 마음을 구분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 옛 구조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지라도 그것이 얹혀 있는 저울이나 애당초 그 저울을 만들어 낸 조건과 원리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 P44

하나하나의 세포(제한된 수의 업무를 수행하는 작은 행위자)는 바이러스처럼 무심하게 움직인다. 이런 멍청한 난쟁이가 대거 집결하면 거기서 정말로 마음이 있고 진짜 의식이 있는 사람이 나오는 것일까?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다른 식의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로봇의 후예라고 해서 우리가 곧 로봇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물고기의 직계 자손이지만 물고기는 아니며 세균의 직계 자손이지만 세균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튼 만일우리 안에 신비에 쌓인 잉여 요소(이원론자와 생기론자는 바로 이런 것을믿는다.)가 있다면 모를까, 우리는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몇조개에 이르는 거대 분자들의 집결체다. 그리고 이 분자들은 결국 최초의 자기 복제 거대 분자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로봇으로 이루어진 존재도 참다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여러분이 그런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P54

 단순한 세포가 처음 등장하고 나서 약10억 년이 지났을 무렵 우리 조상은 이미 대단히 복잡한 기계 (기계로 만들어진 기계)로 발전했지만 아직 마음은 없었다. 그렇지만 움직이는 궤도는 전처럼 수동적이고 방향성이 없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환경에서 에너지와 물질을 뽑아 쓰고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지키고 고치는 수많은 전문 하부 조직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미세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정교조직은 마음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les)는 그런 조직이나 그런 조직의 후예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알고있었다. 그는 그것을 양육혼(養育魂, nutritive soul)이라고 불렀다. 양육혼은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가령 어떤 세포의 세포질 안에서 떠도는 미세한 하부 조직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의 원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질료가 아니라 형상이다.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단세포 유기체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의 육체는 다른 조건에서는 다르게 활성화되는 자기 조절적, 자기 방어적 조직이 필요하다. 이 조직은 자연선택에 의해 탁월하게설계되었으며 하부 수준에서는 유기체가 떠돌다가 마주치는 수동적 조건에 의해 켜지거나 꺼지는 아주 작은 다수의 수동 스위치로이루어져 있다.
인간도 동물처럼 좀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신경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양육혼(자기 조절적, 자기 방어적 조직)이 있다. 대사계, 면역계처럼 우리의 몸 안에서 자기 보수와 건강유지의 소임을 맡는,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복잡한 체계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 P56

우리는 이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체계들과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구분짓지만 묘하게도 그 체계들의 세세한 작동 구조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것들이 마음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은 스위치는 원시 감각 기관과 유사하며 스위치가 꺼지고 켜질 때 나타나는 효과는 지향적 행위와 흡사하다. 왜 그럴까? 정보에 따라 조절되지만 추구하는 목표를 달리 하는 체계들이 만드는 효과이기에 그렇다. 이런 세포와 세포의 조합은 마치 자신이 상황을 지각하고 거기서 규정된 방식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특수한 원인을 집요하고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하인 내지는 아주 작고 단순한 머리를가진 행위자처럼 움직인다. 세계는 작게는 분자에서 크게는 대륙에 이르기까지 그런 존재로 가득차 있다. 그런 존재에는 동식물과그것을 이루는 부분(및 부분의 부분들) 같은 자연물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공물까지 포함되어 있다. 비근한 예로 자동 온도 조절 장치는그런 단순한 유사 행위자에 해당한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는 이 모든 존재를지향계(intentional system)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지향계가 행위(가짜이든 진짜이든)를 한다고 가정하는 관점을 지향적 자세 (intentionalstance)라고 부르겠다. - P58

지향적 자세
지향적 자세는 어떤 대상(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 또는 인공물일 수도있다.)의 행위를 그 대상이 스스로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행위‘를 ‘선택‘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전제 아래 이해하는 신낙이다. 따옴표에 둘러싸인 이 용어들은 흔히 말하는 ‘인생 철학‘, 곧우리가 남들과 심리적 고민을 놓고 대화를 나눌 때 쓰는 일상의 담론에서 나온 말이다. 지향적 자세는 우리가 서로를 상대할 때 흔히취하는 자세나 관점이다. 다른 존재를 바라볼 때 지향적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의인화하는 일과 비슷하다.  - P59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지향적 자세는 우리가 갖다 붙이는 목표가 진짜도 아니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행위자에 의해 ‘정말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좌우지간먹혀든다는 사실이다. 이런 융통성은 제대로 된 목표가 어떻게 추구되는가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거대 분자는 정말로 스스로를 복제하고 싶어 할까?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이 나오든 지향적 자세는 사태를 설명한다. 실험실 접시의 바닥을 아무렇게나 휘젓고다니면서 독성이 강한 쪽은 피하고 영양분이 많은 쪽으로만 다가가는 플라나리아나 아메바 같은 단순한 유기체를 생각해 보자. 이유기체는 좋은 것을 좋고 싫은 것을 피한다. 물론 이것은 물건을쓰는 사람이 느끼는 좋고 싫음이 아니라 유기체 자신이 느끼는 호불호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합리적 행위자의 기본특성이지만 이 단순한 유기체가 정말로 무언가를 추구하긴 추구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런 물음에 답할 필요가 없다. 어떤 답변이 주어지든 그 유기체가 예측 가능한 지향계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 P67

정리하자면 지향계는 그 행동이 지향적 자세에 의해서 예측되고 규명되는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자기 복제하는 거대 분자, 자동 온도조절 장치, 아메바, 식물, 쥐, 박쥐, 사람,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흥미도에서는 차이가 많을지 모르지만 하나같이 지향계다. 지향적 자세의 핵심은 어떤 존재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그 존재를 행위자로 예우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 존재가 영리한 행위자라고 가정해야 한다. 멍청한 행위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해괴망측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행위자가 주어진 조건 속에서는 오직 지혜로운 수만을 둔다는이 대담한 가정 덕분에 우리는 예측력을 얻는다. 행위자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토대, 행위자가 가지는 목표나 욕구의 토대와 관련된 특수한 믿음과 욕망을 행위자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주어진 조건을 묘사한다. 이 경우 우리의 예측력은 이런 특수한 상황과 밀접하게 결부되므로,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론가로서 보이는 믿음과 욕망, 또 문제의 지향계가 드러내는 믿음과 욕망의 특수한 내용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므로 나는 그런 체계를 지향계(intentionalsystem)라고 부른다. 이것은 철학에서 말하는지향성과 통한다. - P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제야 알겠니? 비둘기를 숨긴 것은 내가 아니야.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거든. 내가 숨겼을 것이라구 모자 속이나 소매 속에숨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란다. 나는 아줌마의 손을 빌린 거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아줌마 손에 비둘기를 쥐여주었단다. 아줌마는 손바닥에 비둘기를 쥐고 손을 빼었지. 그때 벌써 내 손바닥에는 비둘기는 없었지. 아줌마의 손에 들어 있었으니까. 나는 텅 빈 손바닥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 그들을 속였단다. 비둘기가 생긴것은 똑같은 이치였단다. 내 손바닥을 확인하러 들어오는 아줌마의 손에 비둘기가 쥐어져 있었거든. 그리고 내 손바닥 위에 아줌마는 비둘기를 놓았단다. 이제 알겠니? 손가락 다섯 개는 남하구 악수하라고 있는 거란다. 남의 손을 믿고 남과 악수를 하는 순간 기적이일어나는 법이지."
"그렇담 미리 아줌마와 짰었나요? 아줌마가 미리 할아버지의 요술을 알고 있었나요? 그래서 비둘기를 채어갔었나요? 그리고 또 손바닥 위에 비둘기를 놓았나요?"
"천만에."
마술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자연히 알게 된단다. 무심코 모자 밑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아줌마의 손바닥에 비둘기를 쥐여주거든. 순간 아줌마는 나를 쳐다보지. 그리고 내가 하려는 요술을 금방 알아차리거든 우린 갑자기 친구가 된다. 비밀을 아는 순간 같은 마술사가 되지.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스탠과 결혼할 때, 나는 어떤 과제를 떠맡는다는 사실을알았다. 하지만 그는 매우 영리하고 재능이 많으니, 내가 옆에서 돕는다면 그가 이루지 못할 게 없으리라고 기대했다.
남편의 성취를 통해 보상을 받으리라고 예상했다. 가족중심적인 여자에게 개인적 성취란, 다정한 이웃들이 사는동네에 편안한 집을 장만하고 성공한 남편과 반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자녀를 두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배웠고, 믿었고, 또 그것이 옳다고 느꼈다. 그래서 스탠과 나는 공동목표를 갖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되도록 내가 돕는 것이었다. 우리 둘 다 그가 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의 성공이 곧 가정의 성공이 될 터였다. - P36

인에이블러들에 의한 의존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느끼게해주는 기본적인 상호 교환과는 다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건강한 상호 의존interdependence과 기생적인 의존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가정생활에서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 P43

개인이 어려운 시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상호 의존적 사회에 동참하는 사람과 의존적인 사람을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장애, 슬픔, 혹은 역경을 핑계 삼아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의존적인데, 이런 감정적 의존은 경제적 의존보다도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감정적인 의존자는 과거나 현재에 실제로 실망한 일이나 상상의 실망을 기회 삼아, 본인의 활동 부족이나 가짜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것들만 없다면 세상에 나가 용을 죽일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날리는 펀치는 마치 혼자 하는 권투처럼 허공을 가로지를 뿐이다. 어떤 사람의 삶은 온통 대응하기 힘들고 해결할 수 없는 외적 문제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하고 싶지도 않은 어떤 위기에 연루되어 있다. 이처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진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해결하도록 넘겨주고 또 그것을 기꺼이 떠맡으려는 사람까지 있다면, 조장과 의존enabling-dependence 관계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 P45

나는 아이가 터무니없는 짓을 할 때 나무랐다. ‘나무라다‘는 말은 내 행동을 설명하는 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실효가 없는 훈계에 불과한 내 나무람은 존에게 앞으로 계속 똑같이 행동해도 심각한 징벌은 없으리라고 암시했던것이다. - P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머리말
마음이란무엇인가?

나는 철학자지 과학자는 아니다. 철학자는 답을 주기보다는물음을 던지는 데 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이 말이 나 자신이나내가 택한 학문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않다. 좋은 물음을 찾고 낡은 질문의 관행과 전통을 깨뜨리는 일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웅대한 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려운 작업이다. ‘자명한 제1원리에 입각하여 모든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늘 열린 마음을 간직할 수만 있다면 철학자는 질문 비판가로서 전문적으로 갈고닦은 능력으로 이러한 탐구에 훌륭하게 기여할 수 있다.  - P10

어떤 존재가 마음을 가진 집단에 들어간다는 데는 중대한 뜻이 있다. 그래야만 특정한 윤리적 태도가 가능해진다. 마음을 가진 존재만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마음을 가진 존재만이 주변상황에 신경을 쓸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가 그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잘못에 내가 정당한 제재를 가할 경우) 그가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 실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건 그의 관심은 윤리라는 방정식 안에서 중요한 뜻을갖는다. 꽃에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꽃에게 하는 일은 꽃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가를 걱정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꽃에게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꽃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 P23

우리는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마음이 없는 존재에 마음을 부여할지도 모르고 우리 안에 섞여 있는, 마음을 가진 존재를무시하고 넘어갈지도 모른다. 이런 두 가지 실수는 성격이 다르다. 마음을 확대 해석하는 과오, 곧 화초와 우정을 나눈다든지 책상위에 잠들어 있는 컴퓨터가 잘 있는지 걱정이 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 따위는 심한 경우라도 고지식함이 빚어낸 착각의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마음을 축소 해석하는 과오, 곧 마음을 가진 사람이나 동물의 경험, 고통, 희열, 좌절된 야심이나 꺾인 욕망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일은 끔찍한 죄악이 아닐 수없다. 무기물처럼 취급당한다면 여러분은 심정이 어떻겠는가?(1런 질문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마음을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P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공지능과 딥러닝 deep Learning 시스템이 우리 모두를 ‘특이점singularity‘으로 어떻게 인도하는지를 다룬 글을 읽는 건 특별하지도 않다. singularity는 ‘개별적인, 유일무이한, 비길 데가 없는‘을 뜻하는 라틴어 singularis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Ray Kurzweil 이 규정한 개념, 즉 어떤함수가 무한값을 취하는 시점을 뜻하는 수학적 의미를 가리킨다. 커즈와일은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고, 생물학적 지능과 비생물학적 지능이 나타날 것이며, 기계 지능이 무한한 속도로 우주를 채울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상상으로, 이렇게 되면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우주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시스템을 장기적 관점에서 모형화하는 작업은, 그럴듯한 극단적 의견에서 비롯한 결과를 실현해보려고 애쓴다. 종말론과 특이점이 대표적인 두 극단이고, 우리 미래는 이 둘을 아우르는 범위 내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다. 요즘 미래 예측에서 특히눈에 띄는 것은, 두 극단을 부정하는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두극단 중 하나로 경도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분법에 기우는이런 경향을 재앙론자와 기술만능주의자의 충돌로 묘사했지만, 이런 명칭도 감성의 극단적 양극화를 반영하기에는 너무 점잖은 듯하다." 이러한 양극화에는 구시대적인 계량적 예측을 인용하는 경향이 뚜렷이 수반된다. - P365

계량적 예측은 크게 세 범주로 나뉜다. 가장 작은 범주레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역학 관계가 한정된 일련의 과정을 다루는 예측이 포함된다. 두 번째로 훨씬 더 큰 범주에는 올바른방향을 가리키지만 구체적 결과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확실한예측이 포함된다. 끝으로 세 번째 범주에는 내가 에너지와 환경에 관해 언급한 사례처럼 공상소설에 가까운 예측이 포함된다. 이런 예측도 수치로 가득할 수 있지만, 그 수치는 미심쩍은 가정의 결과일뿐이다. 게다가 컴퓨터로 작성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추적한 과정은 현실 세계와 확연히 다르기 십상이다. 물론 그런 공상적 예측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그러한 예측에 담긴 발견적가치heuristic value, 즉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가치를 변명거리로 내세우겠지만, 경험이 일천한 사람은 그 결론을 들먹이며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거나 다른 합리적 대안을 일축할 수 있다. - P367

과거의 허황된 예언에 비추어보면, 둘 모두 망상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은 1970년대 초에 예측하던 세계, 즉 지구 전체가 굶주림에 허덕이는 세계도 아니고, 비용이 들지 않는 핵분열로 에너지를 얻는 세계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뒤에 우리는 진화의 끝에 있지도 않을 것이고, ‘특이점‘에 의해 변형된 문명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2030년대에도우리는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 있을 것이다.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상상할 수 없는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불가능한 것을 해내려고 노력하며 장기적인 예측을 시도할 것이다. 더 곤혹스럽고 더 우스꽝스러운 예측이 있을 테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놀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 상황을 예상하고 상상하기는 매우 쉽다. 하지만 관성에 의한 발전과 예측하지 못한 중단에서 비롯되는 현실적인 미래를 예상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예측 모형이 아무리 많아도 그어려움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우리의 장기 예측은 앞으로도 계속 틀릴 것이다. - P377

이런 결론은 모순도 아니고, 미래 예측을 일축하려는 ‘예측‘은 더더욱 아니다. 복잡한 시스템에 내재한 관성의 예측할 수 없는 상호작용에 근거한 결론, 필연적이지는 않지만 무척 개연성이 높은 결론일 뿐이다. 그 복잡한 시스템의 한쪽 끝에는 장기적으로 항상 내재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있고, 반대편에는 기술적 요인(가전제품의 등장, 전기 저장 분야의 획기적 돌파구)이나 사회적 요인(소련의 붕괴, 더욱 독해진 팬데믹)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단절과 중단이 있다. 여하튼 요즘 들어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 이유는 중대한 변화가 엄청난 규모로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 P378

상투적으로 말하듯 유일하게 남은 세계초강대국이 간호사와 의사에게 간단한 개인용 보호 장비, 예컨대 장갑과 마스크, 모자와 가운 같은 저차원적 물품조차 충분히제공하지 못하는 데 그런 공상적 목표를 추구한다는 게 납득이되는가?
그 결과 미국은 팬데믹이 창궐하는 중에 병원이 폐쇄되는 것만이라도 막기 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의 보호 장비를 공수해야했고, 중국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불했다. 뛰어난 세계화설계자들이 생존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본적인 물품의 생산을중국에 몰아놓은 탓이었다."매년 군사비로 5,000억 달러 이상(모든 잠재적 적국의 군사비를 합한 액수보다 많다)을 쓰는 국가이지만, 발생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가되어 있지 않았다. 기본적인 의료품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국내 생산에 수억 달러만 투자했더라도 수조 달러로 추정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 P388

게다가 실효성 있는 노력에는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줄이는 결과를 얻어내려면 적어도 두 세대 동안 지속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과감한 감축도 수십 년 내에는눈에 띄는 결과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세대 간 정의 intergenerational justice라는 무척 까다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디스카운트하는 우리의 변하지 않는 성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 P396

세계 평균 기대 수명(2020년에는 약 72세)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1세기 중반경에 태어나는 세대가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정책으로부터 경제적 누적 순편익을 처음으로 누리게 될 것이다." 부유한 국가의 젊은 시민들이 즉각적 이득보다 먼 편익을더 중요하게 생각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 또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저소득 국가들은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로 화석 탄소에대한 의존을 늘려가는데, 부유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반세기 이상 동안 절약해야 하는 삶을 기꺼이 수용할까? 지금 40~50대도자신들은 생전에 누리지 못할 보상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해 그런 삶에 기꺼이 동참할까? - P398

1장을 시작하며 말했듯 나는 비관론자도 아니고, 낙관론자도아니다. 과학자이다.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절대 강령은 없다.
과거와 현재, 불확실한 미래를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게 우리앞에 펼쳐질 불가지의 시간에 접근하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우리가 미래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진보와 후퇴, 극복할수 없을 듯한 어려움과 기적에 가까운 발전이 뒤섞인 미래가 가장 그럴듯한 전망이라는 건 알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이미 결정된 게 아니다. 미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P4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