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번거롭고 때로 굴욕스러운 일을 겪다 보니 푸드 스탬프를 신청하거나 복지 혜택을 받을 때 수혜자가 마주하는 관료주의적 장벽이 떠올랐다. 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나약함을 서류로 증명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결함이 매우 현실적이며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심 앞에 우리는 납작 엎드려야 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런 고통을 통해 수치심 머신이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수치심을 건드려 이윤을 챙기는 이들 앞에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 P273

남아공 국민은 이 역사를 공개적으로 논의했다. 피해자들이 다시 목소리를 얻었고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사실을 확인하고이에 합의하면서 자기본위적 신화도 증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학습 과정이 있어야 사회는 불의와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고칠 수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공의 현실이 보여주듯이, 진실과 마주한다고 해서 수 세기에 걸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첫발을 내디뎌야만, 국민이 수치심의 첫 두 단계(상처받고 부인하는 단계)를 지나 현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나아가도록 이끌 수 있다.
어떤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려면 우리는 냉정하게 초당파적 진실을 수용하면서 나름의 화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투운동이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수치심과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경찰의 조지 플로이드 살해 후 터져 나온 시위는 인종과 정의에 관한 토론을 미국 전역으로, 나아가 전 세계로 확대했다. 이는 희망찬 시작이지만, 인종차별기제에 관한 철저하고편향 없는 분석이 아직 부족하다. 그 실상을 가감 없이 밝혀야 수치심 머신의 청사진이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그럴 때만 우리는이 기계의 엔진을 멈추게 할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P284

수치심 자체를 이용해 권력자에게 대항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미 이런 사례들이 있다. 사회운동가들은 미국인 수백만 명을 아편성 진통제에 중독시킨 퍼듀 파마와 그 소유주인 새클러 일가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시위와 법정 소송에 압박을 느낀 퍼듀는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소유주 일가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지급해야 했다.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새클러 가문의 이름은 퍼듀가 부정하게 번 돈으로 후원해온 박물관과 대학에서 지워지고 있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탐사보도와 법정 소송 덕분에 대중은 새클러 가문을 비판하고 그들에게 저항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안다.  - P285

이는 상당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2020년 대선 이후, 페이스북은 더 수익성 있는 유해 콘텐츠로 서서히 돌아갔다. 어쨌거나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건 거짓말과 조롱이었다. 이러한 냉소적 태도는 불법화하거나 엄청난 벌금을 물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기업에 책임을 묻기 전까지 의심스러운 정보가 계속불어날 것이다.
이를 막는 한 가지 방법은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소셜 미디어회사에 망신을 주고, 동시에 거짓 메시지로 이익을 얻거나 그런 메시지와 연관된 곳에서 정치기부금을 받는 정치인에게 모욕을주는 것이다. 미국 정부보다 소셜 미디어에 덜 휘둘리는 유럽연합은 허위 정보를 제공할 경우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을 물린다. 거액의 벌금과 극적인 규제 조치가 있어야 현실은 바뀔 수 있다. - P290

사람들의 인생이 읽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을 주지 않을까?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면,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보람 있고 평화로울 것이다. 이는 큰 과제이지만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다. 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 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난민을 무시하는 이민국 직원의 태도, 열두 살 난 딸에게 뚱뚱하다고 무안 주는 엄마의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 P292

다음 과제는 수치심을 낳는 행동을 포착한 다음 이를 분석하는 것이다. 신앙심을 비웃는 행동이 사회에서 자주 본 모습을 따라 한 것인지, 개인의 상처나 불만에서 나온 행동인지, 아니면 일종의 개종 전략인지 살펴본다(내 친구는 자기 친구들을 ‘무신론 전도사‘라고 부른다). 또 이들이 사제에게 학대당한 피해자를 비난하는지 아니면 교회를 향해 비판하는 것인지, 또 그런 비난으로 누가 어떤 이득을 보는지, 그 이득이 돈인지 지위인지 관계의 우위인지를 따져본다.
답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 인지해야 우리의 행동도 달라진다. 머릿속에 수치심 항목을 만들어놓아야 무례한 댓글, 추잡한 비교행위, 남을 폄하하려는 리트윗, 불가능한 기대치 등 자존감을 꺾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동은 남들이 약자를 놀릴 때이에 동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다. 상당수의 조롱 행위가 온라인에서 일어난다. 온종일 운이 따라주지 않는 유명인부터 이상한 디자인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 아메리카 원주민 노인과 험악한 눈싸움을 한 우익 고등학생까지, 모두가 온라인에서놀림당한다. 조롱은 직장이나 동네, 어린이 야구장에서도 일어날수 있다. 누가 잘못이라도 하면 다들 한마디씩 해도 되는 줄 안다. 저널리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이렇게 지적했다. "평범한 사람을 떼 지어 공격할 목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면 안 된다."
타격 대상에게 실행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고 경로를 바꿀 만한 힘이 있더라도,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조롱하는지 따져봐야한다. 그 사람의 행동을 고치려는 걸까? 나의 정의감을 친구들에게 과시하려는 걸까? 새로 뜬 캐런 영상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나? 이 여성이 직장을 잃고 다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길 바라는 걸까? 공공연한 인종차별 행위를 인종차별이라고 외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시야를 넓혀 인종차별의 원인을 짚어야 하지 않을까? 경찰이 애초에 백인에게 관대하게 공권력을 행사하고 백인의 경비대 역할을 자처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할 일은 리트윗이 아니라 경찰 개혁이 아닐까?
분노하지 말자.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분노할 일이 차고 넘친다. 분노는 중독성이 있다. 교도소 개혁에 힘쓰거나 유권자 억압에 저항하고 싶다면 뛰어들라. 그러나 종종 우리는 분노로써 행동을 대신하는데, 분노하면 속이 후련해지고 돈도 안 들기 때문이다. 분노는 모욕 행위를 부추길 뿐이다. 화가 치밀어오를 때, 내가 자기만족을 위해 화를 내는 건 아닌지 돌이켜보자. - P295

오늘날 수치심 체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속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잘못 때문에 영원히 수치심의 늪에 갇혀야 하는가에 대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수치심을 없애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는저녁 식사 자리부터 복지사무소, 기업 이사회실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영역이든 개인적 영역이든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존엄하게 대우하자고 요구하는 일이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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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진영 내의 논쟁은 1967년 가을과 겨울 내내 계속되었다. 하지만 11월 말에 벌어진 두 가지 사건으로 사실상 출마가 불가피하게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로버트 케네디가 11월 26일 <페이스더네이션>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었다. 바비는 미국이 공산주의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싸우고 있다는 주장을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수만 명을 죽이겠다고 말할 권한이 있을까요? 이미 우리는 수백만 명을 난민으로 만들고 여자와 아이들을 죽였는데, 그렇게 해도된다고 말할 수 있나요? ••• 전 우리한테 그런 권한이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케네디는 이 문제를 계속 도덕적인 프레임에 넣으며 말했다.
"우리가 네이팜 폭탄을 사용할 때, 마을이 파괴되고 주민들이 죽을그 문제는 이곳 미국에 있는 우리 미국인들의 도덕적 책임이자 도덕적 의무입니다."
한 패널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존슨이 재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케네디는 이 질문에 솔직히 답할 수 없어서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로부터 6주 뒤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인 월터 리프먼은 케네디와 개인적으로 만나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의원님이 존슨의 재선이 국가의 재앙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물론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만... 의원님을 평생 떠나지 않을 질문은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의원님께서 최선을 다했냐는 겁니다." - P62

케네디는 출마 여부를 두고 크리스마스 휴가 내내 고민했다. 새해가 되자마자 가까운 친구와 측근에게 자신은 1972년 대선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장 저를 지지할 사람들이 없어요. 출마해도 사람들은 제가 존슨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앙갚음하는 거로 여길 겁니다."
1월 4일 샌프란시스코 연설에서는 존슨의 베트남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선거에서는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1월 30일 기자들과 아침을 먹으며 진행한 비공개 대화에서 "어떤 상황이 생기더라도" 존슨 대통령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또다시 불출마 의사를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다음 날 베트콩은 남베트남 도시와 군 시설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구정 설날에 벌어져서 구정공세라고 불린 이 공격은 베트콩에 군사적으로는 패배였지만, 심리적으로는 승리였다. 미국인 다수가 존슨 행정부의 전쟁에 대한 낙관적인 공언이 근거 없거나 의도적인 거짓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9일 뒤 시카고에서 케네디는 구정공세가 "우리 스스로 현실을 외면하는 데 이용한 정부의 망상을 산산이" 깨버렸다며, "완전한 군사적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게아니라고 했다. 대다수 미국인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P64

케네디는 평소 자신답지 않은 외교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꺼렸다. 남미 방문을 앞두고 브리핑을 하던 국무부 관리가 브라질 정부의 인권침해에 관해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피할 수 있는 외교적 수사를 제안하자, "전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아요"라고 쏘아붙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 말인즉슨 브라질 정부가 정당을 해산하고, 국회를 폐쇄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를 빼앗고, 정적들의 권리를 전부 빼앗은 후에 국외로 추방해도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 정유 회사를 건드리면 국물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것 같군요." - P75

 케네디는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정책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에 전에 먼저 고백과 사과를 했다.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고백을 하겠습니다. 저는 베트남 문제에 관해 초기에 내렸던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미국이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가게 만든 그 결정들말입니다."
그러고는 "그런 노력이 처음부터 성공 불가능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케네디 행정부가 지지한 남베트남 정부에 "부패와 탐욕과 비효율이 가득" 했다고도 인정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크니, 저는 역사와 국민앞에서 제가 져야 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오류라고 할지라도 그런 오류가 지속되는 상황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비극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얻도록 도와줍니다. …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훌륭한 사람만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다. 유일한 죄는 자만이다. 그어느 때보다 지금이 우리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준에 맞게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케네디의 사과는 이날 아침 연설에서 가장 큰 환호성을 받았다. 학생들이 케네디 같은 어른이 실수를 인정한 사실을 고마워했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한때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기 때문에 케네디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을 수월하게 해주었을 수도 있다. 케네디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를 도덕적 근거를 들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저처럼 생각하리라 믿습니다만, 지금 미국이전쟁을 수행하는 방향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또한대부분의 미국인이 저처럼 생각하리라 믿습니다만, 지금 미국이 마치 세상에 다른 나라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립국은 물론이고 우리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의 판단과 기대에 반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 P80

이런 미국인의 고통을 끝내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고 선언한 케네디는 미국 정치의 담화에서 신성시되는 한 가지 명제에 이의를제기했다. 경제 성장과 소비,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은 서로 델 수 없는관계에 있다는 명제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공동체의 우수성과 가치를 포기해가면서 물질적인 것의 축적을 추구해왔습니다. 현재 우리의 GNP는 연간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미국을 GNP로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의 GNP에는 공기 오염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치우는구급차가 포함됩니다. 현관문을 걸어 잠그는 특수열쇠와 그 열쇠를 부순사람들을 집어넣을 감옥도 GNP에 포함됩니다. 미국의 삼나무가 훼손된것도, 자연의 신비를 파괴하고 도시를 확대된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폭탄과 핵탄두 제조비용 ..…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GNP에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또는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시poetry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국민의 결혼생활은 얼마나 건강한지, 토론은 얼마나 지적인지, 그리고 공직자가 얼마나 청렴한지는 GN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용기도 측정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GNP는 삶을 가치 있게만드는 것을 빼고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GNP는 미국에 대해 거의 모든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도, 정작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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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존슨 대통령과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미네소타 출신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존슨 대통령을 이겨야 했다. 그렇게 유권자를 모을 힘을 보여주면 공화당의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한 리처드 닉슨을 11월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민주당의 중진들에게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비 케네디가 처음 참가할 수 있는 예비선거는 5월 7일 인디애나선거였다. 이후 5월 14일 네브래스카와 워싱턴 D.C., 5월 28일 오리건, 6월 4일 캘리포니아와 사우스다코타, 6월 18일 뉴욕 예비선거가예정되어 있었다. 케네디와 보좌관들은 출마 선언과 인디애나 예비선거 사이의 7주간 당 지도부 일부가 존슨 대통령에게 대의원 지지를 약속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케네디는 당 지도부가 중립을 유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예비선거가 있는 주와 없는 주 모두에서 집회, 공항환영식, 차량 행렬에서 대규모의 열광적인 군중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인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쉽지 않은 전략이었다. 지지 군중이 지나치게 열광할 경우 온건파와 당 지도부가 걱정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지지자들이 적게 모이고 반응이 미온적이면 당 지도부가 존슨 대통령을 계속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략을 더 어렵게 만든것은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로서 케네디가 가진 약점이었다. 1951년에 이미 정치를 시작했고, 형 케네디의 대선을 승리로 이끈 노련한 선거사무장이었지만, 공직 선거에 출마한 경험은 1964년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가 유일했다. 상원 선거운동 당시에는 연설이 어설펐고 내용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목소리가 단조로웠고 툭하면 말이 길게 끊어졌을 뿐 아니라, 열광적인 군중 앞에 서는 것을 불편해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떨치지 못한 듯 보였다. - P53

전세 비행기를 마련할 시간도 없어서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일반 항공편을 탔는데, 케네디가 탑승 게이트 앞에서 동승객들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다른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승객 중에는 케네디의 출마를 반기는 사람과 분노하는 사람이 섞여있었다.
케네디의 선거운동 캠프가 항공기로 이동할 때는 대개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시고, 장난도 치는 유쾌한 분위기였지만 첫 비행만은 다른때와 달리 긴장이 감돌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비행기 엔진소리, 밤 하늘, 그리고 파국을 맞을지 모르는 일을 향해 가고 있는 수행원들, 이 모든 것이 마치 적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침투하는 공수부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도착하는 곳에서 해방자로 환영을 받을 수도, 도착하기도 전에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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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들은 너의 어두운 거리에서 창백한 표지판들을 마치 이마처럼 치켜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름이, 주름 잡힌 이마 같은 표지판들에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들이 이 세상이요, 그들은 침대, 굶주림 그리고 여자라고 불린다. 울라 혹은 카롤라. 얼어붙은 발과 눈물, 정거장들의 이름은 담배나 립스틱 또는 술이다. 아니면  신이거나 빵이다. 그리고 정거장의 창백한 이마들, 그 표지판들은 이름이 있다. 그들은 여자라고 불린다.
너 자신이 철로다. 녹슬고 얼룩이 진, 은빛으로 반짝이고 아름답고 막연한 철로다. 너는 정거장으로 나뉘고, 역과 역사이에 묶여 있다. 정거장들에는 표지판이 있고 저기 여자가, 달이 혹은 살인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다.
너는 열차다. 덜커덩거리며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열차다. 너는 철로다. 온갖 일이 네 위에서 일어나고 너를 녹슬어 눈멀게 하고 은빛으로 반짝이게 한다.
너는 인간이다. 너의 뇌는 기린처럼 외롭게 끝도 없이 긴 목 위 어디엔가 붙어 있다. 그리고 네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이는 아무도 없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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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이브는 새롭고 강력한 수치심 머신의 피해자였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이끄는 디지털 업계는 온라인에서의 조롱으로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이용하고 퍼뜨린다. 대형 연구실에서 수학자는 심리학자 및 인류학자와 긴밀히 협업해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 기계를 학습시킨다. 이들의 목적은 이용자를 온라인에 끌어들여 광고라는 금광을 캐는 것이다. 이용자를 단단히 붙잡는 수단으로 조롱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섹스만큼이나 강력하다. 데이터 과학자와 고위 경영진이 조롱에 기반한 전략을 따로 세우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여기에 주목한다. 조롱은 트래픽을 올리고 수익을 높인다. - P136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탄산음료 코너에서 목격한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친구나 이웃끼리 공유하며 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쩌다 한번 넘어진 일도 전 세계가 공유한다.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이 드라마에 동참한 수백만 명은 거대 기술기업에 공짜 노동을 제공한다. 이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우리가 만드는 사회를 규정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한다. 또 온라인에 떠도는 수치심 문화는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뿐 아니라 진실로 받아들이는 대상에도 영향을 준다. - P137

알고리즘 설계가 이렇다 보니,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분노 자극엔 매우 능숙하지만 평화로운 합의 도출에는 서투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무능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페이스북 임원진은 자사의 사업모형과 관련해 불편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 내부 연구 자료를 일단 무시하고 넘어갔다. 이후 2020년 페이스북의 의뢰로 진행한 시민권 감사에서 "페이스북 리더십은 양극화 문제에 대해, 그리고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극단적이고 양극화된 콘텐츠를 무심코 주입한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않는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들은 이 문제를 소홀히 다루면 "현실 세계에서 위험한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되어 성난 군중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을 이에 대한 근거로 들 수 있다. 소셜 미디어에 퍼진 음모론에 빠진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죽음과 파괴의 씨앗을 뿌렸고, 미국 부통령의 목을 매달겠다며으름장을 놓았다. - P144

온라인이든 사교모임이든 새로운 동질 집단은 그 집단을 넘어 시야를 확장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동질 집단은 나의 정보 채널을 장악하고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우리는 어리석게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과 공유한 가치가 보편적이라고 믿어버린다.
우리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우리끼리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현재 다수의 대학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학적부에 연락처와 함께 본인이 원하는 인칭대명사를 기입하고 또 여러 인종이나 종족, 성 정체성과 관련해 가장 최근 승인된 용어나 약어를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을 보면 역사적 불의에 맞선 노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꾸준한 진전을 ‘이루고‘, 새로운 용어가 그 결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런식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새로운 규범을 싹틔우므로, 옛용어를 고수하는 사람은 이제 방침을 바꿔야 한다. 교실에서 꾸지람을 듣든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남들의 우스꽝스러운 영상을보든, 변화의 계기는 때로 약간의 수치심을 동반한다.
문제는 한 공동체에서 오랜 세월철저한 논쟁을 거쳐 얻어낸것, 즉 진리로 여기는 것을 다른 집단이 매우 생소하게 여길 수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원하는 인칭대명사를 표기하라고? 이걸 왜 하지? 내가 원하는 인칭대명사를 밝히지 않으면 남들에게 무례한 건가? 이런 사람들에게 용어 수정은 정의를 둘러싼 담론의 합리적 결론이 아니라, 고상한 척하는 이질적 집단이 만들어낸 당황스러운 명령이다. 인칭대명사 문제도 소위 깨어 있는 자들이 만든 규범일 뿐이다. 그래서 양측은 서로를 비방하는데, 한쪽은 새로운 교리를 퍼뜨린다고 욕하고, 다른 쪽은 이를 거부한다고 비난한다.
온라인 소모임에 파묻혀 시야가 좁아지면 대화가 편협해지고오해가 생기며 남들을 경멸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상대를 나와 다른 존재일 뿐 아니라, 컬트cults (강렬한 일체감을 바탕으로 극단적 이념을 추구하는 집단, 종교적으로 사이비를 뜻하기도 한다 - 옮긴이) 추종자로 여기게 된다. 보통은 상대방도 우리를 그렇게 본다. - P145

데이터 경제에서 수치심은 두 번째 생명력을 얻는다. 강제퇴거,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당하거나 아동보호법으로 구속될 뻔한 사건, 카지노 여행, 이 모두가 온라인에 풍부한 정보를 남기므로, 수치스러운 데이터를 먹고 사는 다수의 기관에는 그야말로 노다지다. 이런 정보는 사회연결망을 훌쩍 뛰어넘어 신용평가 회사, 담보대출 중개인, 가석방 심사위원회 같은 공식 경제 formal economy부문으로, 더 나아가 수많은 장사꾼과 사기꾼에게까지 뻗어나간다. 디지털이나 문서에 남은 매우 치욕스러운 정보를 수백 수천의 알고리즘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는 남들에게 평가당하고 돈벌이에 이용당하며 각종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다. - P149

바디튠으로 보정한 수영복 사진을 공유하는 것부터 트위터에 정의로운 척 소신 발언을 올리는 것까지, 이 모든 온라인 활동은 거짓과 망상을 부추긴다. 이런 행동은 세상을 달리 규정하는 것 그리고 나의 수치심을 다른 사람을 통해 해소하는 것에 초점을맞춘다. 게다가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좋아요‘, ‘공유하기‘, 이모티콘으로 공감을 표시하므로, 우리는 이런 반응에 현혹되기쉽다. 보정한 내 셀카에 예쁘다는 칭찬이 올라오면 남들은 못생겼고 심지어 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월마트 통로에서 넘어진 뚱뚱한 여성의 사진을 신나게 공유했는데 남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면, 나는 그 여성이 건강해지도록 살짝 자극한 것일 뿐이라고 합리화한다. 이는 물론 꾸며낸 말이고 생수에 담긴 독과 같다. 애석하게도 그 해악은 개인을 훨씬 넘어선다.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부지런히 끌어들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 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 우리는 나한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과도한 감정에 몰입하지만, 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 시스템은 바로 영속적으로 굴러가는 수치심 머신이다. - P154

현대적 의미에서 관계 끊기 canceling는 종교적 배척과 비슷하다. 즉 신앙을 떠났다는 이유로 친구 혹은 이웃이었던 사람과 말도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 선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사회에서 인종주의를 추방하고, 여성을 존중하며, 성정체성을 밝힌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그 과정은 여러모로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과 닮았다. 아마추어 탐정들은 SNS에 올라온 게시물을 샅샅이 살핀다. 소프트웨어로도 이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다 말이든 행동이든 허물이 될만한 증거를 찾으면 팔로워를 총동원해 실수한 사람을 공격한다. - P164

도나 힉스의 시각으로 캔슬 문화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존엄성침해가 곳곳에 배어있다. 대화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고 비난받는 자에게 해명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납작 엎드려 사과하라고 요구하지만, 사과한다 해도 비난이 줄지 않는다. 인터넷 거물기업의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증폭되는 이 과정은 규칙을 강요하고, 단 한 번의 잘못도 처벌하며, 적법한 절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힉스는 섣부른 판단 대신 일단 사람들의 말을 믿어보자고 권한다.
충동적 비난을 자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도덕성을 과시하는 트윗이 정작 근본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시에 살다가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교외의 부유한 백인 동네로 이사 간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모종의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자기 동네 캐런이 추태 부리는 영상을 찍어 신랄한 비난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자신은 이들과 달리 고상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은 만족감을 줄지 몰라도, 반인종주의 활동의 행동 지침으로 삼기에는 너무 저급하다. 인종별 학교 분리와 거주지 분화 현상을 없애고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도 더 필요한 일이다.  - P165

이 현상은 1619년 아프리카 노예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이래형성된 인종 관계의 양상을 그대로 따른다. 억압자들은 수치심을느끼며, 그중 남들보다 유독 심하게 느끼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자신이 인권 유린에서 혜택받는다는 사실을 거부하고 다른 신화를 중심으로 뭉쳐야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일례로 19세기에 사람의 능력을 두개골의 형태 및 윤곽과 관련지은 골상학이라는 유사과학이 백인우월주의자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과학으로포장한 이 빈약한 논증은 한 세기 후 두개골에서 유전자로 옮겨갔다.
여전히 남부 연합기를 숭상하는 다수의 무리는 자족적인 거짓역사에서 위안을 얻는다. 노예제가 반인륜적 범죄이면 남부인은도덕적으로 타락한 행동을 한 셈이므로, 이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부 연합기 아래 모인 군중은 이보다 듣기 좋은이야기를 고안해야 했다. 인지부조화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결국 허구적 사실이 대거 교과서에 실렸고, 모든 세대가 남부의 잃어버린 대의 Lost Cause (남부 연합이 노예제 때문이 아니라 남부의 자치권을 위해 북부연방과 싸웠다는 역사관으로 노예제도를 합리화한다- 옮긴이)라는 신화를 주입받았다. - P167

우리 대부분 그렇다. 자신의 허점을 직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어서 다들 자신에게 관대한 편이다. 물론 선의를 지닌 사람도 많다. 보통은 선의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시험대에 올랐을 때, 우리의 행동은 스스로 내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수치심 렌즈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즉 모든 관계와 만남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심코 흘린 말과 농담조차 남에게 수치심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 여러 형태의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이 감정과 엮인다.
일단 수치심에 눈을 뜨면 이것이 어디에나 있음을 알게 된다.
수습 직원에게 내뱉는 모진 말, 할아버지에게 리모컨 작동법을 알려주며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 열두 살짜리 아이에게 디저트좀 그만 먹으라며 주는 핀잔, 신랄한 리뷰를 리트윗하는 행위 등모두가 수치심을 낳는다. 수치심이 늘 나쁘거나 부적절한 것은아니지만, 일단 이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번개같이 빠른수치심 네트워크에서 언제 조롱이 일어나는지 알아채야 한다.
비만, 가난, 약물 중독, 인종차별 등 어떤 문제를 겪고 있든, 아니면 뭔가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는 각기 다른 수치심의 차원에서 저마다 선택과 마주한다. 많은 이들이 어느 한영역에서는 확고한 자세를 보이며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반면 다른 영역에서는 매우 풀어진 태도를 보인다. 어느 날 오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과 대치하며 용감히 싸우던 사람이, 잠시 짬을 내 접속한 트위터에서는 독설을 마구 내뱉을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낙인찍기에 반대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낙인찍기에 멀두하는 등 우리는 수치심에 관한 한 점잖으면서 동시에 무자비할 수 있다. - P179

내재적 불안정성은 사이언톨로지(과학기술로 정신을 치료한다는미국의 신흥 종교 옮긴이)부터 ISIS(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에 이르기까지 종교 집단과 컬트 집단 내부에도 존재한다. 이탈자와 주변인은 집단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존재다. 집단에 심취한 광신도의 경우, 빈약한 세계관만으로도 의심을 거두고 강경 노선과 정통주의로 돌아선다. 인지부조화를 낳는 허술한 세계관이라도 말이다. 인셀 집단의 가장 열성적인 신도들은 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독자적 교리를 구성해서 채드와 스테이시의 세계관을 하나하나 반박한다.
결국 인셀은 깊은 수치심 때문에, 주류의 관습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경멸 때문에 불쾌한 동맹과 손을 잡기도 한다. 일부 인셀들은 백인 우월주의에서 공통된 명분을 발견한다. 양쪽 집단에 호소력을 갖는 한 가지 이데올로기로 교체 이론replacement theory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선진국 여성은 성실히 커리어를 쌓고다양한 관심사를 추구하는 등 지나친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백인의인구 성장률이 떨어져 백인 권력의 인구학적 기반이 약해졌다. 이 이론은 여성 인권이 열악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 이를테면 무슬림이나 멕시코인이 피부색이 짙은 아기를 수억 명 출산해서 백인 사회를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러한 인식은 조던 피터슨이 주장한 가부장적 여성혐오와 이론적 거리가 아주 가깝다. 게다가 교체이론은 인종주의적 색채가 더 짙을 뿐, 비슷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바로 백인 여성이 자녀를 더 많이 낳도록 강제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파트너와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이에따라 인셀이 만날 수 있는 여성들도 많아질 것이다. - P205

대다수 히키코모리는 외로움에 짓눌려 산다. 이는 매우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부분이다. 외로움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점점 증가하는 유행병으로, 코로나 이후 더욱 심각해지면서 자살과 약물과다복용을 급증시켰다. 외로움은 수치심의 여러 징후 중 진형적인 형태이자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비만, 가난, 중독, 성 기능 부전 등 수치심의 원인이 무엇이든, 남들의 평가에 취약한 사람은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수치심의 여러형태처럼 자기 강화적self-reinforcing 악순환을 낳는다. 수치심이 외로움을 낳고, 외로우면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자신을 처벌할 확률이 매우 높다.
히키코모리의 처지는 자연스럽게 수치심 산업의 시장이 된다. 현재 많은 업체가 히키코모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큰 경제적 기회는 히키코모리가 아닌 그들 부모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모들은 그야말로 수치심의 피해자다. 노력과 직업적 성공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자식이 자발적으로 방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 P207

나는 그 집 아들이 성적 욕구불만과 사회적 배척에서 자신을구원해줄 공동체와 정체성을 찾고 있다고 짐작했다. 이런 행동은 인생의 전환기에, 예를 들면 친구도 없이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 흔히 튀어나온다. 보통은 무난하게 지나가지만 방황하는 아이에게 창피를 주면 그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게다가 아이는 그런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이 헛소리임을 알면서도 동지애 때문에 발을 빼지 못했을 것이다.
혐오집단에서 빠져나온 남성들을 연구한 사회학자 마이클 키멜은 집단의 역학에 대한 최소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혐오집단을 떠난 남성들은 대부분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았다. 전혀 믿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도 그곳에 머물렀던 건 소속감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수치심 네트워크에서 벗어나게끔 다른 선택지와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며 실수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 사랑과 용서로 받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 P210

코로나 환자 비하는 해롭지만, 내 남편이 맨얼굴로 거리에 나갔다가 당한 수모는 정당하고 건전하다고 본다. 마스크 쓰기는 개인의 선택이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에게 창피를 주는 것은 전략상 효과적이며 심지어 필요하다. 바이러스 같은 위험 요인을 사회적으로 감시하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대유행은 새로운 규범을 낳았고,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수치심이등장해 그 규범을 강제했다.
다양하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규범을 강제하는 일은 불가능에가깝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건전한 수치심은 일종의 승리를거두었다. 그 승리가 반드시 기분 좋은 감정을 동반하지는 않았어도 건전한 수치심은 정당하고 효과적이었다. - P224

한편 자유로운 몸이든 갇힌 몸이든, 시위 지도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증오의 시선을 느꼈다. 이런 반응은 권력층을 규탄할 때 흔히 나온다. 이는 정부의 거짓말과 왜곡뿐 아니라 시위대가 초래한 불편으로도 생긴다. 시위대의 목표에 공감해도 다수의 시위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훗날 마틴 루터킹 목사처럼 추앙받더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상징적 인물은 활동 당시엔 원망을 듣고 종종 멸시당한다. 이들을 남들의 고통에 기대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적 인물로 보기때문이다. 또 이들 때문에 교통이 혼잡하고 경제활동이 중단되는 등 일상이 마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 P240

간디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추종자 2,500명 정도가 계속 제염소로 행진하면서 영국 정부를 향한 시위가 극에 다다랐다. 경찰은 나무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치며 시위대를 공격했다. 비폭력을 다짐한 인도인들은 막으려고 말조차 들어 올리지 않았으므로, 시위대에게 충돌의 책임을 물으려는 주장은 꾸며낼 수도 없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어느 미국인 기자는 "인도인이 볼링핀처럼와르르 무너졌다"라고 표현했다.
간디의 설계대로 펼쳐진 드라마에서 인도 시위대는 성인처럼보인 반면, 대영제국과 그 군대는 누가 봐도 야수처럼 행동했다. 미국 의회에서 소금행진을 겨냥한 폭력의 심각성이 공식적으로거론되면서, 영국의 인도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영국에서도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영국의 전총리 윈스턴 처칠은 훗날 간디의 소금행진에 대해 "영국이 인도땅을 밟은 이래 그런 굴욕과 저항은 처음"이라고 회고했다.
시위대가 물리적으로 참패한 와중에도, 수치심은 불의를 깨부수는 공성 망치 battering ram 로 기능했다. 시위자는 대부분 카스트제도의 하층민 출신이었다. 이들은 수 세기 동안 너희는 열등하며 평생 천한 신분으로 사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교육이나 주거, 심지어 소금에 대해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 곧바로 조롱이 날아들었다. 교육받지 못했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었으며, 의사 표현도 서툴렀다. 이들은 수치심의 첫 단계에 갇힌 채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천한 존재가 어떻게 감히 시민권과 평등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는 전형적인 약자 비하로, 앞서 살핀 중독자나 빈곤층을 향한 비난과 같은 종류다. 간디(그리고 훗날 그의 정신을 계승한 미국의마틴 루터 킹 목사)는 추종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이들이 압제자에게 맞서도록 이끄는 일을 중시했다.  - P244

오늘날 수치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은 기업 가치가수조 달러에 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그중에서도 구글과 페이스북이 가장 주목받는다. 앞서 살폈듯 이 기업들은 인터넷 이용기록을 추적해 표적 광고를 하고, 우리에게 디지털 주홍 글씨를붙이며, 진실이든 허구든 가장 수익성 있는 단편적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이들의 시스템은 침투력과 편향성이 강한데, 잘못된 사업 관행이 점점 누적되자 폭로가 터져 나왔다. 이어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규제가 되살아나면서 그간의 행적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묻기시작했다. 그러나 기업의 속셈을 밝히고 현실을 바꾸려면, 이들에게 동력을 제공하는 인공지능 엔진을 파헤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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