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약하다는 점, 그것이 이유였을지 모릅니다. 인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강해지는 대신 유연하게 적응하는 전략을 택해야 했습니다. 빙하기가 꼭 춥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변덕스럽게도 조금 따뜻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건조하거나, 반대로 비가 계속 쏟아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기후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 동식물상과 환경이 변했습니다. 지형도 바뀌었습니다. 바닷물의 높낮이가 달라져 섬이 육지가되고 바다가 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유연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먼저 급변하는 환경을 잘 살피는 법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 기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늘 전에 없이 새롭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변하다 보면 과거와 비슷한 환경을 다시 맞을 때가 있지요. 인류는 바로 그럴 때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활용해 대처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는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정보가 원천이라는 사실도요.
인류는 이렇게 해서 정보력(문화)에 의존해 살아남는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이런 정보력의 보고는 노인입니다. 쌓아온 시간만큼 정보를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정보력을 전수 받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제 인류는 다른 어떤 유인원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적응해 살고있습니다. 아마 인류는 처음에는 이런 정보력의 원천으로서 노인을 존중하고 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좀 더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됐습니다. 다른 동물은 지니지 못한 능력, 바로 보편적인 협력과 이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 생판 모르는 남과도 콩 한쪽을 나눠 먹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거나 희생하는 능력, 제 힘으로 살 수 없는 이웃과부족한 힘이나마 나누는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에 함께 참여할기회를 나누는 능력입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한 이 능력을 바탕으로, 오늘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현하고 있습니다. - P160

몸집은 암수 차이가 크지만 송곳니 크기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기간토피테쿠스는 수컷끼리의 경쟁이 격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컷의 덩치가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인은 바로 포식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몸집이 크면 포식자를물리칠 때 유리합니다. 특히 수컷의 덩치가 커집니다. 포식자는 암수를 가리지 않는데 수컷만 몸집이 커지는 것은 재생산과 관계가 있습니다. 유인원을 비롯한 영장류의 경우, 몸집을 키우려면 자라는 기간(성장기)이 늘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성장기가 길어지면 성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기는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해야 하는 암컷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암컷은 마냥 몸집을 키우지 않아 작고, 수컷만 성장기가 길어져서 몸집이 커집니다. 나중엔 확연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되지요. 실제로 영장류를 연구해 보면 암컷의 성장기와 성적 성숙기가 안정돼 있고, 개체 차이도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수컷은 환경 요인에 따라 성장기가 변하기 쉽고 몸집 역시 개체별로 차이를 많이 보이지요.
기간토피테쿠스의 성차가 적고 크기도 작은 송곳니는 무시무시한 천적이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무엇이 기간토피테쿠스로 하여금 큰 체구로 무장을 하게끔 만들었을까요? ‘킹콩‘을 탄생시킨 이 무시무시한 천적은 놀랍게도 인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P169

기간토피테쿠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비운의 종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플라이스토세 내내 줄어드는 자원을 놓고 다른 동물과 경쟁을 했고, 이들을 모두 제치며 세상에서 가장 우세한 종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기간토피테쿠스는 그 중 하나의 예에 불과하겠죠. 저는 기간토피테쿠스를 생각할 때마다 오랑우탄이 떠오릅니다. 오랑우탄은 기간토피테쿠스가 살던 동남아시아 삼림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몸집이 크고 암수 크기 차이도 큽니다. 그러나 오랑우탄은 단일 수컷-복수암컷이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단일 수컷-단일 암컷 짝짓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희한하게도, 오랑우탄은 외톨이처럼 철저히 홀로 생활합니다. 혹시 오랑우탄의 홀로서기는 인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거대한 친척,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에서 배웠는지모릅니다. 유인원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인간은 지금도 모든 유인원들에게 천적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은 다른 모든 유인원을 멸종에 이르게 하고 홀로 살아남게 될지도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P172

심장도 피로해졌습니다. 네 발로 걷는 짐승은 심장이 몸 위쪽에습니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피를 보낼 때 중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손쉽습니다. 예외적으로 목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기린이 있지만, 대신 머리가 몸에 비해 유별나게 작고 심장은 유별나게 커서 어려움을극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두 발로 서는 바람에 심장의 상대적인 위치가 네 발로 걷는동물보다 낮아졌습니다. 겨우 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게 됐죠. 그 결과 머리는 물론이고 가슴과 어깨, 양팔이 모두 심장보다 높은 위치에있게 됐습니다. 심장은 이제 몸 위로 상당량의 피를 올려 보낼 의무가 생겼고, 과거보다 훨씬 큰 부담을 졌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두뇌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커서, 기린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피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가만히만 있어도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 많게는 최고 50퍼센트까지 혼자 소모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이제 인간의 심장은 가장 많은 피를 가장 높은 곳까지, 중력의 방향을 거슬러 가며 쉴 새 없이 올려 보내게 됐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Sisyphus)와도같습니다. 끝도 없이 피를 몸의 꼭대기로 퍼 올립니다. 언제 백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심장과 관련한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 P180

호모 하빌리스 문제의 핵심은, 고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다양성‘ 입니다. 어떤 두 사람을 놓고 비교해 본다고 합시다. 똑같이 생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조금씩 다릅니다. 임의의 두 사람이 생김이서로 다른 이유는 대개 몸집 크기, 성별, 그리고 나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차이가 있어도 우리는 이들이 모두 ‘사람‘이라는 하나의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렇게 같은 종 사이에서 보이는생김새의 다양성을 우리는 ‘종 내 다양성(intraspecific variation)‘이라고부릅니다. 종 내 다양성과 대비되는 개념은 ‘종간 다양성 (interspecificvariation)‘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 한 명과 침팬지 한 마리를 놓고 비교해 보면 둘은 매우 다릅니다.
이제, 개체의 다양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종사이의 다양성이면 종 내 다양성, 다른 종사이의 다양성은 종간 다양성입니다. 이번에는 상황을 뒤집어 보겠습니다. 다양성의 양상을 보면, 반대로 두 개체가 서로 같은 종사이인지 다른 종사이인지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기만 다르고 생김새가 대략 비슷하면 같은 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이만 보인다면 역시 같은 종입니다. 나이에 따른 차이를 보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체별로 특징이 달라도 기본적인 특징이 비슷하면 같은 종입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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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공중 집회소의 홀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미 노인이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당신은 젊었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의 당신 모습이 그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의 당신, 그 쭈그러진 얼굴이 젊었을 때의 당신 얼굴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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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공중 집회소의 홀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미 노인이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당신은 젊었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의 당신 모습이 그때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의 당신, 그 쭈그러진 얼굴이 젊었을 때의 당신 얼굴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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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는데 머리 크기만 커지자 여러 가지 고민스러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큰 아기를 낳기 위해서 골반은 넓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산도도 넓어지니까요. 하지만 직립 보행을 하기 위해서는 골반이 좁을수록 좋습니다. 다리를 앞뒤로바삐 움직이며 걸어야 하는데 다리가 좌우로 멀리 벌어져 있으면 중심이 흔들거리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인류는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출산과 보행 중에서 결국 보행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골반이 커지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으니까요. 좁은 산도를 통해 머리큰 아기를 낳는, 유례가 없는 출산의 어려움은 그대로 감내하고 말이지요!
경이롭게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출산과 분만은 수도 없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왔습니다. 산도보다 머리가 큰 아이를 낳기 위해 여자의 골반은 뼈와 뼈 사이가 물렁해졌고, 벌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게됐습니다. 골반뿐 아니라 골격 전체의 관절이 벌어집니다.  - P65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약 258만~1만 2000년 전) 기간에 아프리카는 건조해졌습니다. 숲이 점점 줄어들고 초지가 늘어났습니다. 식물성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점점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인류의 조상에게 무척 불리했습니다. 
••••••
그래서 인류는 동물성 지방을 얻는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방법이랄 것도 없습니다. 사자부터 독수리, 하이에나까지 모든 경쟁자들이 내장과 고기를 다 발라 먹고 버리고 간 찌꺼기를 먹는 거니까요. 바로 뼈입니다. 뼈는 무시할 게 아닙니다. 팔다리의 뼈 속에는 골수가 있고 머리뼈 속에는 뇌가 있습니다. 골수와 뇌는 모두 순수한 지방 덩어리로 영양이 풍부한데, 이를 노리는 경쟁자는 벌레와 박테리아 정도입니다. 초기 인류가 아무리 약했다 해도, 이정도는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뼈 안의 영양분을 취하는 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뼈는 매우 단단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팔다리뼈는 먼 훗날 무기로도 사용할 정도로 굵고 단단합니다. 이빨로는 이런 뼈를 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 인류는 돌로 뼈를 깨서 골수를 빼 먹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뼈 깨는 돌은 점점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석기‘가 되었습니다. 호모 하빌리스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올도완 석기는 이렇게 뼈깨는 돌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P77

노화 과정을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 중에 ‘다면 발현(pleiotropy, 多面發現) 가설‘이 있습니다. 다면 발현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관여하는 현상입니다. 어떤 유전자가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한 기능을담당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동시에 그 유전자는 노년기에는 해롭습니다. 그렇다면 해로움만 따져서 이 유전자가 사라져야 할까요? 다면 발현 가설에 따르면,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했던 유전자는 선택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쉽게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포 지방 단백질E 엡실론 4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중 지방단백질을 치우는 유익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노년의 치매나 뇌졸중과 관련이있어도 계속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은 공짜가 아니라 노년에 치러야 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얻은 대단히 값비싼 적응 능력인 셈입니다.
한가지 더, 그럼 만약 지금이라도 채식을 한다면 노년에 이런 병의 위험에서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유전자가 없어질수는 없으므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 P81

결국 락타아제 돌연변이는 목축업과 낙농업 때문에 증가했다는 ‘가설‘은 맞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의문이 있습니다. 어떤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돌연변이를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후손을 많이 남겨야가능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유를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은 마실 수있는 사람에 비해 일찍 죽거나 후손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죠. 인류 진화 역사에서는 극히 최근인 1만 년 전에 발생한 신생 돌연변이가 어떤 인구 집단에서는 구성원 중 최고 90퍼센트가 이 돌연변이를 지닐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우유를 소화시키는 능력이 대단히 강력한 자연 선택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 P90

이런 상황에서 털이 없어져서 맨몸이 되는 돌연변이가 우연히 등장합니다. 이 돌연변이를 지닌 인간은 맨몸에 난 땀을 증발시켜서 뜨거운체열을 발산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아프리카의 대낮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뭐든 장점이 생기면 예기치 못한 단점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게 되면서 인간은 물에 그만큼 많이 의존하게 됐습니다. 건조화가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마실 물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이 행동반경 내 어디에 있는지가 대단히귀중한 정보가 됐죠. 물은 계절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정보(기억)를 저장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일도 중요해졌습니다. 또 자주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나오는 일은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피할 방법도 중요해졌습니다.
자외선도 문제였습니다. 자외선을 막아 주던 털이 없으므로, 인류의 피부는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자외선은 피부암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체내의 엽산을 파괴해 기형 태아가 생길 확률을 높입니다. 후손을 남길 확률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일입니다. 체내로 들어오는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다면 진화에서 매우 유익했을 것입니다.
인류의 피부에서 이 역할을 하는 것은 멜라닌(melanin) 색소입니다. 인체의 멜라닌 색소는 특수한 세포가 생산하는데, 멜라닌 색소가 많아지면 피부색도 검어집니다. 이게 바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류가 검은 피부를 지녔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인류는 털과 땀을 맞바꾼 후에는 검은 피부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이에반해 털이 있는 동물의 피부는 됩니다. 털이 가려 주기 때문에 굳이 색소가 필요 없고, 색을띨 다른 이유도 없어서지요. 인간 역시 머리털로 덮여 있는 두피는 하얗습니다.). - P99

하지만 피부색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중요합니다.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멜라닌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오히려 멜라닌이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햇빛 보기 힘든 곳에서는 자외선이 부족한데, 우리 몸에는 약간의 자외선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몸에서 유일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비타민 D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비타민 D는 칼슘 흡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없으면 칼슘이 흡수되지 않아 뼈가 물렁해지고 형태가 일그러집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한 시기가 길어지거나 성장기의 중요한 때에 이러한 시기를 겪으면 구루병이 됩니다.
물론 뼈가 튼튼하지 않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겠죠. 그러나 가임기여성의 뼈 중에는 형태가 일그러지면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기가 나오는 골반뼈입니다. 산모와 아기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증세 앞에서, 인류는 다시 멜라닌이 없는 흰 피부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광범위한 지상의 ‘피부색 유전자 분포‘는 위도에 따라 가지런한 형태로 정리됐습니다. 적도 부근 지역은 자외선이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을 정도로 1년 내내 충분히 내리됩니다. 온대 지역은 자외선이 부족한 기간이 한 달 정도이며 냉대 지역은 자외선이 1년 내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 지역 원주민의 피부 속 멜라닌 농도는 바로이런 자외선 부족 정도와 대략 일치합니다.
••••••
같은 위도에 살아도 얼마나오래전에 이주한 집단이냐에 따라, 그리고 평소 비타민 D를 음식으로얼마나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P100

 흰 피부의 돌연변이는 적어도 수만 년 전에는 나타났어야 합니다. 5000년은 의외로 최근입니다. 이렇게 늦게 나타난 이유는 농경의 발생과 정착입니다. 농경 이전 시대에는 자외선이 부족한 지역에 살아도 비타민 D를 합성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비타민 D가 풍부한 식물, 해산물, 고기를 충분히 섭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농작물에 의존하는 식생활이 정착되면서 곡류와 전분류에 점점 의존하게 됐습니다. 먹을거리를 통하여 비타민D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게 되자 멜라닌을 없애고 자외선을 이용해서 비타민 D를 합성하게끔 하는 돌연변이가 유익하게 된 것입니다. - P102

장한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입니다.  노인들이 간접적으로 자손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이 가설에 따르면 폐경 이후의 어자(할머니)들은 직접 새로운 자손을 낳지는 않지만, 손주들을 돌보는 방법으로 후손의 생존률을 높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진화에도 유리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딸의 아이들이 잘 클수록 왕성한 경제 활동을 통해 도와줍니다. 이런 적응 체계가 성립하려면, 나이가 들수록 출산율은 감소하는 반면, 체력등에서는 노화가 늦춰져야 합니다. 이는 여자들이 폐경 후에도 한동안 활동력을 유지하는 실제 관찰 결과와도 잘 일치하는 모습이죠. - P108

재미있게도 우리 현생 인류가 주인공인 시대인 후기 구석기 문화는이전까지의 인류 문화와 혁명적으로 다릅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암각화 등의 예술과 상징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노년층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요? 저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과 상징은 추상적 사고와 연결됩니다. 또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실제적인 기능도 있지요. 예술과 상징이 늘어났다는 건 이 시기에 그만큼 정보의 전달이 중요해졌다는뜻입니다.
노년은 바로 이렇게 정보가 늘어난 시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손주를 볼 때까지 살면 세 세대가 같은 시대를 공유하게 됩니다. 두 세대가 같은 시대를 사는 것에 비해 오랜 기간 정보를 모으고 전달할 수 있지요. 만약 두 세대가 50년 정도를 공유한다면, 세 세대는 75년 동안 일어난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이렇게 노년은 정보의 생산과 전달, 공유가 늘어나게 된 실질적인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술과 상징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P113

사람의 뼈와 이빨을 보면 그 사람의 성장과 질병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데 그게 고스란히 흔적을 남깁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에나멜질형성 부전(enamel hypoplasia)‘이라는 증상입니다. 영구치가 만들어져야하는 어린 시기에 영양부족으로 치아의 에나멜(법랑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치아 표면 에나멜에 골이 패이지요. 치아는 한 번 만들어지면 평생을 갑니다. 따라서 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에나멜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치아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인류학자들이 조사를 해 보니, 농경을 시작한 집단의 치아에서 에나멜질 형성부전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는 오히려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났습니다.
몸의 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뼈나 다리뼈의 길이를 재 봤더니, 농경을 시작한 집단에서 오히려 더 작았습니다. 몸집이 왜소해진 것입니다. 역시 굶주림과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농업이 시작되고 풍요로운 식생활이 시작됐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오히려 영양은 부족해지고 건강은 형편없게 변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경향은 오늘날의 사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잔뜩 부푼 어린이들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죠? ‘콰시오커(kwashiorkor)‘라는증세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단지 칼로리 섭취가 적을 때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오히려 칼로리는 많이 섭취하지만 단백질 섭취는 부족할 때 생기는 병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매일 밥이나죽만 먹을 때 생기는 병입니다. 이 병은 그대로 방치하면 대단히 치명적입니다. 공교롭게도 칼로리와 단백질이 모두 부족한 일반적인 영양실조가 차라리 덜 위험할 정도라고 합니다.
먹을거리를 손으로 직접 지어서 땅에서 거두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농업은 다양한 곳에 투자하지 않고 한두 개의 회사 주식에만 ‘올인‘하는 주식 투자와 비슷합니다. 대박이 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둬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 재해 등으로 농사를 망치면 다음 해 내내 고픈 배를 부여잡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지요. 반면 농경 이전의 채집 생활을 하는 사회에서는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먹을거리를 채집하고 사냥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먹을거리가 떨어져도 다른 먹을거리로 대체할 수 있었죠. 배 터질 정도로 먹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굶주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습니다. - P121

군집 생활은 단순히 감염이 쉬워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집건너 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환자가 나타나는 ‘풍요로운‘ 환경을 맞자 병원체는 전에 없던 특이한 적응을 했습니다. 병원성이 더 강해진것입니다. 이전의 병원체는 숙주를 죽이지 않고 오래 같이 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살 수 있으니까요. 만약 숙주가 덜컥 죽어 버리면 거기에 사는 병원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독성을 약하게 해 병에 걸린 사람이 잘 죽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숙주를 죽여도 바로근처에 새로운 숙주가 계속 공급됐습니다. 병원체는 이제 숙주를 죽여도 될 정도의 강력한 병원성을 지니게 됐습니다. 여기에 농사를 짓기위하여 도입한 동물(가축)도 가세했습니다. 동물이 지녔던 병 중 일부가 사람에게 옮겨와 새롭게 퍼졌습니다. 이제 인류는 강력한 질병의 공세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됐습니다. - P123

 특히 유전학의 발달은 우리에게 그동안 몰랐던 농경의 숨은 가치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바로 유전자의 다양성입니다. 농경 덕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자, 진화의 원동력인 유전자다양성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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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발달이 유전자 다양성을 늘렸다는 것은, 인류 문명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 사건입니다. 농업이라는 ‘문명‘이, 인류의 진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면 진화는 멈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명과문화의 발달, 그리고 인구 증가의 영향으로 인류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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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 없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미는 모자수의 연인이었고무엇보다도 지혜로운 친구였다. 누구도 유미를 대신할 수 없었다. 이런 말을 유미에게 한 적이 없다니 자신이 유미의 진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몇 년이 아니라 오래오래 유미와 함께 살 줄 알았다. 우스운 행동을 하는 손님 이야기를 이제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장례식장에서 누구보다도 의젓하게 목발을 짚고 서서 어른들과 악수하는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조문객들이 검은 정장을 입은 어린 사내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릴 때 솔로몬은 "울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한 여자한테는 "엄마는 캘리포니아에 있어요"라고 말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그 여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때 솔로몬도 모자수도 그 말의 뜻을 설명하지 않았다. - P154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선자는 쉰두살이었다. 반점과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항상 부지런히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는 경희는 선자보다 열네 살이나 많았지만 훨씬 젊어 보였다. 선자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있는 짧은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한 번도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분명 어떤 남자도 자신을 원할 리 없었다. 선자의 삶에서 그런 시절은 이삭의 죽음으로 끝났다. 평범한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했다. 허리와 허벅지도 굵어졌다. 얼굴과 손은 부지런히 일하는 가난한 여자의 것이었고, 아무리 지갑에 돈이 많다 한들 무엇도 선자를 매력적으로 만들수 없었다. 오래전, 목숨보다 더 한수를 원했다. 한수와 헤어졌을때도 그가 돌아와 자신을 찾아내서 붙잡아주기를 바랐다.
한수는 일흔이었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용모가 더 준수해진 것 같았다. 숱 많은 백발을 여전히 세심하게 다듬어 향유를 발라 손질했다. 고급스러운 모직 정장을 입고 멋진 구두를신은 한수는 고상한 정치인이나 잘생긴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누구도 한수를 야쿠자 두목으로 생각할 리 없었다. 선자는 욕실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외출하기 전에 굳이 거울을 보지도 않았다. 보기 흉하거나 부끄러운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여자의 일생에서 누구한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기가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
선자는 차가운 물을 틀어서 세수를 했다. 어찌 됐든 한수가 자신을 조금은 원하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을 깨닫자 당황스러웠다. 선자의 삶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정도면 됐다. 선자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불을껐다. - P171

 수없이 되풀이한 노력을 증거로 내놓고 싶었다. 엄마라는 것은 딸이나 아내, 이혼녀, 여자친구, 식당 주인이되는 것보다 훨씬 더 에쓰코의 본질에 가까웠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 일은 에쓰코 자체였고,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다쓰오가 태어난 순간부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슬픔과 회의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더라도 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였다. 엄마라는 에쓰코의 삶의 일부는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터였다. - P243

 에쓰코가 젊은 엄마이던 시절에 깨어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느낀 유일한 시간은 밤에 아이들이 자러 간 후였다. 에쓰코는 그 시절 모습 그대로의 아들들을 보고 싶었다. 통통하고 하얀다리, 이발소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서 이상하게 잘린 바가지 머리를 보고 싶었다. 그저 피곤해서 아이들을 야단치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질렀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 조금 더 오래 욕조에서 놀게 두고 자기 전에 이야기책을 하나 더 읽어주고 새우튀김을 한 접시 더 만들어주고 싶었다. - P246

"노아는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그 무엇보다도요. 책 읽기를 정발 좋아했어요."
"디킨스의 책을 읽어보셨어요?"
"몰라요." 선자가 말했다. "글 읽을 줄...…."
"정말요? 노아 님 어머님이시니 보쿠 상도 아주 똑똑하실 텐데요. 어른들이 다니는 야간학교에 다니시면 되겠어요. 노아 님이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선자는 노인을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관리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공부하자고 모자수를 꼬드기던 노아가 기억났다.
관리인이 갈퀴를 바라봤다.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나서일을 하러 돌아가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관리인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선자는 묘비 밑에 맨손으로30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 사진이 달린 열쇠고리를묻었다. 흙과 풀로 구덩이를 메우고 나서 손수건으로 열심히 손을 닦았지만 손톱 밑에 흙이 남아 있었다. 땅을 밟아 다지고 손가락으로 풀을 털었다.
선자가 가방들을 집어 들었다. 경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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