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약하다는 점, 그것이 이유였을지 모릅니다. 인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강해지는 대신 유연하게 적응하는 전략을 택해야 했습니다. 빙하기가 꼭 춥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변덕스럽게도 조금 따뜻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건조하거나, 반대로 비가 계속 쏟아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기후가 변하면 거기에 맞춰 동식물상과 환경이 변했습니다. 지형도 바뀌었습니다. 바닷물의 높낮이가 달라져 섬이 육지가되고 바다가 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유연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먼저 급변하는 환경을 잘 살피는 법을 배웠습니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 그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내 기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늘 전에 없이 새롭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변하다 보면 과거와 비슷한 환경을 다시 맞을 때가 있지요. 인류는 바로 그럴 때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활용해 대처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는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정보가 원천이라는 사실도요. 인류는 이렇게 해서 정보력(문화)에 의존해 살아남는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이런 정보력의 보고는 노인입니다. 쌓아온 시간만큼 정보를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정보력을 전수 받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제 인류는 다른 어떤 유인원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적응해 살고있습니다. 아마 인류는 처음에는 이런 정보력의 원천으로서 노인을 존중하고 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좀 더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됐습니다. 다른 동물은 지니지 못한 능력, 바로 보편적인 협력과 이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포기할 줄 아는 능력, 생판 모르는 남과도 콩 한쪽을 나눠 먹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추거나 희생하는 능력, 제 힘으로 살 수 없는 이웃과부족한 힘이나마 나누는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에 함께 참여할기회를 나누는 능력입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한 이 능력을 바탕으로, 오늘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현하고 있습니다. - P160
몸집은 암수 차이가 크지만 송곳니 크기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기간토피테쿠스는 수컷끼리의 경쟁이 격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컷의 덩치가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인은 바로 포식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몸집이 크면 포식자를물리칠 때 유리합니다. 특히 수컷의 덩치가 커집니다. 포식자는 암수를 가리지 않는데 수컷만 몸집이 커지는 것은 재생산과 관계가 있습니다. 유인원을 비롯한 영장류의 경우, 몸집을 키우려면 자라는 기간(성장기)이 늘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성장기가 길어지면 성적으로 성숙해지는 시기는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해야 하는 암컷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암컷은 마냥 몸집을 키우지 않아 작고, 수컷만 성장기가 길어져서 몸집이 커집니다. 나중엔 확연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되지요. 실제로 영장류를 연구해 보면 암컷의 성장기와 성적 성숙기가 안정돼 있고, 개체 차이도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수컷은 환경 요인에 따라 성장기가 변하기 쉽고 몸집 역시 개체별로 차이를 많이 보이지요. 기간토피테쿠스의 성차가 적고 크기도 작은 송곳니는 무시무시한 천적이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무엇이 기간토피테쿠스로 하여금 큰 체구로 무장을 하게끔 만들었을까요? ‘킹콩‘을 탄생시킨 이 무시무시한 천적은 놀랍게도 인간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P169
기간토피테쿠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비운의 종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플라이스토세 내내 줄어드는 자원을 놓고 다른 동물과 경쟁을 했고, 이들을 모두 제치며 세상에서 가장 우세한 종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기간토피테쿠스는 그 중 하나의 예에 불과하겠죠. 저는 기간토피테쿠스를 생각할 때마다 오랑우탄이 떠오릅니다. 오랑우탄은 기간토피테쿠스가 살던 동남아시아 삼림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몸집이 크고 암수 크기 차이도 큽니다. 그러나 오랑우탄은 단일 수컷-복수암컷이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단일 수컷-단일 암컷 짝짓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희한하게도, 오랑우탄은 외톨이처럼 철저히 홀로 생활합니다. 혹시 오랑우탄의 홀로서기는 인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거대한 친척, 기간토피테쿠스의 멸종에서 배웠는지모릅니다. 유인원의 가장 무서운 천적은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인간은 지금도 모든 유인원들에게 천적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은 다른 모든 유인원을 멸종에 이르게 하고 홀로 살아남게 될지도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P172
심장도 피로해졌습니다. 네 발로 걷는 짐승은 심장이 몸 위쪽에습니다. 온몸 구석구석으로 피를 보낼 때 중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손쉽습니다. 예외적으로 목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기린이 있지만, 대신 머리가 몸에 비해 유별나게 작고 심장은 유별나게 커서 어려움을극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두 발로 서는 바람에 심장의 상대적인 위치가 네 발로 걷는동물보다 낮아졌습니다. 겨우 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게 됐죠. 그 결과 머리는 물론이고 가슴과 어깨, 양팔이 모두 심장보다 높은 위치에있게 됐습니다. 심장은 이제 몸 위로 상당량의 피를 올려 보낼 의무가 생겼고, 과거보다 훨씬 큰 부담을 졌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두뇌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커서, 기린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피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가만히만 있어도 전체 에너지의 20퍼센트, 많게는 최고 50퍼센트까지 혼자 소모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이제 인간의 심장은 가장 많은 피를 가장 높은 곳까지, 중력의 방향을 거슬러 가며 쉴 새 없이 올려 보내게 됐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Sisyphus)와도같습니다. 끝도 없이 피를 몸의 꼭대기로 퍼 올립니다. 언제 백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심장과 관련한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 P180
호모 하빌리스 문제의 핵심은, 고인류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다양성‘ 입니다. 어떤 두 사람을 놓고 비교해 본다고 합시다. 똑같이 생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조금씩 다릅니다. 임의의 두 사람이 생김이서로 다른 이유는 대개 몸집 크기, 성별, 그리고 나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차이가 있어도 우리는 이들이 모두 ‘사람‘이라는 하나의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렇게 같은 종 사이에서 보이는생김새의 다양성을 우리는 ‘종 내 다양성(intraspecific variation)‘이라고부릅니다. 종 내 다양성과 대비되는 개념은 ‘종간 다양성 (interspecificvariation)‘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 한 명과 침팬지 한 마리를 놓고 비교해 보면 둘은 매우 다릅니다. 이제, 개체의 다양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종사이의 다양성이면 종 내 다양성, 다른 종사이의 다양성은 종간 다양성입니다. 이번에는 상황을 뒤집어 보겠습니다. 다양성의 양상을 보면, 반대로 두 개체가 서로 같은 종사이인지 다른 종사이인지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크기만 다르고 생김새가 대략 비슷하면 같은 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이만 보인다면 역시 같은 종입니다. 나이에 따른 차이를 보여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체별로 특징이 달라도 기본적인 특징이 비슷하면 같은 종입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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