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엄마가 완전히 잘못 안 거다. 엄마는 여자들이눈이 멀고 홀려서 자기 애인들이 저지르는 암울한 행동에서 눈을 돌린다고 했지만, 이 여자들,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기묘한 여자들 말을 들어보니, 반대로 이 여자들은 바로 그것에 매혹되어 있는 것 같았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홀딱 빠져서 확대경을들고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여자들은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여자, 나쁜 남자를 좋은 남자로 착각하는 여자, 사실 못된 짓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는데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게 된 남자를 잘 가다듬어 사람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여자가 절대 아니었다. 이 여자들은 유리깨지는 소리를 좋아하는 여자들이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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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단서들(경제적 자원, 사회적 지위, 그리고 연상의 나이)은 한 가지로귀결된다. 여성이 자기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쓰려는 자원을 획득하고통제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이 그것이다. 장구한 세월에 걸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을 오직 그가 성취한 것만으로 평가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원을 소유한 것만으로는충분하지 않다. 여성은 자원을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획득해서 제공해주는 자질을 가진 남성을 또한 필요로 한다.
어린 나이에 결혼이 이루어지는 문화권에서는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직접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밖에없다. 사실 현금 경제가 없는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배우자 선택의 판단 기준이 경제적 자원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티위 족의 젊은이들은 여성과 나이 든 남성들에 의해 꼼꼼히 검토받는데, 이에 따라누가 ‘선착자(comers)‘, 즉 장차 지위와 자원을 누릴 운을 타고난 사람인지 누가 뒷줄에 뒤처질 사람인지 판정을 받는다. 그들은 뛰어난 사냥및 싸움 솜씨를 알려 주는 여러 표시들, 특히 부족 내에서의 영향력을결정짓는 순위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는 강한 기질, 장래성 등에 근거해 평가받는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문화권에서 여성들은 남성이 어떤 인성을 가졌는지 잘 살펴서 그 가운데 장차 자원을 획득할 능력이뚜렷이 엿보이는 남성을 택한다. 그러한 성격적 특성을 중시하여 배우자를 선택했던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던 경쟁자 여성들에 비해서 지속적으로 자원을 얻고 높은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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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행동의 기원

이 세상 어딘가에 자연과 인간이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이루며 살아가는 곳이 있고, 우리 역시 타락한 서구문화의 폐해만 없다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막연한 기대를 우린 아직까지 떨쳐 버리지 못했다.
- 멜빈 코너, [왜 무모한 자들이 살아남는가]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는 행위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울 뿐 아니라 일상의 대화를 풍성하게 하지만, 그만큼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사의 여러 단면들 가운데 문화를 초월해서 이보다 더 우리로하여금 열띤 격론을 벌이게 하고 법률을 제정케 하며 정교한 예식을 행하게 하는 요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짝짓기는 이해하기 힘든점투성이다.  - P17

 생존상의 이득이 아니라 번식상의 이득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어떤 형질이 선택되어 진화하는 현상을 다윈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 이름 붙였다.
다윈에 따르면 성선택은 두 가지 형태를 띤다. 우선 동성의 개체들이 이성 배우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놓고 경쟁을 벌여서 경쟁에서 이긴 개체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 형태가 있다. 두 마리 산양이 서로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모습은 이러한 성내 경쟁 (intrasexual competition)을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이다. 성 내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주는 특질들인 강한 힘, 지능, 동료들과의 친화력 등은 경쟁의 승자가 더자주 짝짓기를 해서 더 많은 후손들에게 유전자를 전해 주게끔 도와주었기 때문에 진화하였다. 성선택의 또 다른 형태에서는 하나의 성(性)에 속하는 개체들이 특정한 특질을 지닌 이성 배우자를 다른 배우자보다 더 선호한다. 이렇게 배우자로 더 자주 선택받는 개체들은 유전자를 후대에 보다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특질들이 진화하게 된다. 선호받는 특질이 없는 동물들은 짝짓기의 향연에 초대받지못하고 그들의 유전자는 종착점에 다다른다. 공작 암컷들이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깃털을 내보이는 수컷들을 선호했기 때문에, 변변찮은 깃털을 지닌 수컷들은 진화의 먼지 속으로 내동댕이쳐 잊혀졌다. 오늘날 공작 수컷들이 모두 눈부신 깃털을 뽐내는 까닭은 진화의 역사를 통해 공작 암컷들이 아름답고 현란한 수컷들과 짝짓기하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 P20

부정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한 심리 전략의 하나가 바로 질투이다. 자기 배우자가배신했을지 모른다는 신호에 불같이 반응해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위한 행동에 나선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던 조상들을 제치고 자연선택되었다. 즉 배우자의 부정을 방지하는 데 실패한 조상들은 낮은 번식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질투라는 감정은 애정 관계에 대한 위협적 요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여러 가지 행동을 유발시킨다. 예컨대 성적 질투는 두 가지 판이하게 다른 행동, 즉 경계(vigilance)와 폭력(violence)을 낳는다. 어떤 경우에는 질투심을 느낀 남편이 아내가 외출할 때 몰래 뒤를 밟는다거나, 아내가 간다고 한 곳에 실제로 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불시에 전화를건다거나, 파티에서 아내를 유심히 지켜본다거나, 아내의 우편물을 몰래 읽어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경계 행동에 속한다. 다른 경우에는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포착된 바깥 남자를 질투에 빠진 남편이 위협하거나, 이 경쟁자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친구들을 동원해서 흠씬 두들겨 패주거나, 아니면 경쟁자의 창문에다 벽돌을 집어던질 수 있다.
이러한 행동들은 폭력 행동에 속한다. 이 두 가지 범주의 행동들, 즉 경계와 폭력은 질투라는 동일한 심리 전략이 서로 다르게 표출된 결과이다. 이들은 배우자가 배신할지 모른다는 적응적 문제를 이렇게도 해결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P36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대량 소비되는 음식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맥도널드를 좋아하는 유전자를 진화시킨 것은 아니다. 맥도널드에서 사 먹는 음식들로부터 과거의 환경에 맞추어 진화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생존 전략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지방, 당분, 단백질과 염분을 햄버거, 밀크셰이크, 감자튀김, 피자 등을 통해 소비한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인기를끄는 이유는 바로 대단히 농축된 영양분을 다량으로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영양분 결핍에 시달렸던 과거 환경에서 진화한 음식 선호가 잘드러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양분을 진화 역사를 통틀어 유례없이 어디서나 많이 구할 수 있는 오늘날 우리는 영양분을 과다 섭취하고 있다. 과거의 생존 전략이 현재의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과 다른 과거의 환경 조건에서 진화한 음식에 대한 선호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지난 수백 년간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느린 시간 척도상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이 어땠는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지만, 뱀에 대한 공포나 아이들에 대한 애정 같은 현재의 선호 양상으로부터 과거의 환경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우리는 태곳적 세상에 맞춰 설계된 장비들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생존 전략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진화된 짝짓기 전략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대에는 부적응적일 수 있다. 예컨대 에이즈(AIDS)의 등장은 조상 환경 때에 비하여 일시적 성 관계가 생존에 훨씬 더 위험한 손실을 끼치게끔 만들었다. 우리의 진화된 성 전략을 이해함으로써만이, 곧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조건하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는지 인식함으로써만이 우리의 현재 행동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생긴다. - P43

변화에 대해 진화심리학이 암시하는 바를 잘못 추론하는 데서 또다른 저항이 생긴다. 어떤 짝짓기 전략이 진화생물학에 근거하고 있다면 이 전략은 바꿀 수 없고, 고칠 수 없고, 불변하다고 흔히 간주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맹목적인 로봇처럼 우리는 생물학적 명령이 지시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의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과 환경적으로 결정되는 것, 두 가지 서로 독립적인 범주로 잘못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 인간 행동은 둘의 상호 작용의 산물이다. DNA의 가닥 모두는 특정한 환경적, 문화적 맥락에서 풀린다. 사람의 일생을 통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사회적, 물리적 자극들이 진화된 심리 기제에 입력되며 모든 행동은 예외없이 이러한 심리 기제와 그에 대한 환경적 영향의 합작물이다. 진화심리학은 상호 작용을 대단히 강조하는 관점이며, 다시 말해 인간 심리를만들어 냈으며 오늘날에도 그 심리를 이끌고 있는 역사적, 발달적, 문화적, 상황적 특질들을 규명하려는 흐름이다. - P49

진화심리학에 대한 또 다른 저항은 페미니즘 운동에서 나온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진화적 설명은 남녀의 불평등을 암시하고, 남성과여성이 맡을 수 있는 역할에 제한을 가하고,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부추기고, 여성을 권력과 자원으로부터 영원히 배제시키려 하고, 현상태를 타파하기가 어렵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확산시킨다고 우려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때로 진화적 설명을 거부한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인간 짝짓기에 대하여 이처럼 두려운 함의를 내포하지는 않는다. 진화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은 상당수 혹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동일하며, 인간의 진화 역사를 통해서 상이한 적응적문제를 지속적으로 맞닥뜨려 왔던 제한된 영역에서만 다르다. 예컨대 남녀는 특정한 성 전략을 각기 어느 정도 더 선호하느냐를 두고 달라질뿐, 구사할 수 있는 성 전략의 전체 목록은 동일하다.
진화심리학은 남녀의 진화된 짝짓기 행동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지, 남녀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규정하지 않는다. 또한 진화심리학은 적절한 성 역할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진화심리학은 어떠한 정치적 의제도 없다.  - P50

 예를 들면 일본 여성은 남성보다 약 150퍼센트 이상 경제적 전망을 중시한다. 네덜란드여성은 남성보다 약 36퍼센트 더 경제적 전망을 중시한다. 이는 다른어느 나라 여성들보다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차는 변하지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결혼 상대자의 경제적 자원을더원한다.
이 발견은 인간의 짝짓기 심리가 진화적 토대 위에 세워져 있음을보여 주는 최초의 상세한 비교문화적 증거이다. 우리의 조상 여성은 체내 수정, 9개월 동안의 임신, 그리고 수유라는 엄청난 짐을 짊어졌기 때문에 자원을 소유한 배우자를 선택함으로써 엄청난 혜택을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배우자 선호 덕분에 우리의 조상 여성들은 생존 및 번식상의 적응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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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행동의 기원

이 세상 어딘가에 자연과 인간이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이루며 살아가는 곳이 있고, 우리 역시 타락한 서구문화의 폐해만 없다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막연한 기대를 우린 아직까지 떨쳐 버리지 못했다.
- 멜빈 코너, [왜 무모한 자들이 살아남는가]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는 행위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울 뿐 아니라 일상의 대화를 풍성하게 하지만, 그만큼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사의 여러 단면들 가운데 문화를 초월해서 이보다 더 우리로하여금 열띤 격론을 벌이게 하고 법률을 제정케 하며 정교한 예식을 행하게 하는 요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짝짓기는 이해하기 힘든점투성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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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빠와 아빠 유형의 사람은 엄마와 엄마 유형의 사람과 다르게 ‘홀로코스트도 있었으니 나도 힘을 내야지‘ 혹은 ‘나는 코에 종기가 생겼지만 길 아래쪽 저 사람은 코를 잃었으니까 나는 그 사람은 코를 잃었는데 나는 코를 안 잃었다고 기뻐해야 하고 그 사람은 홀로코스트를 안 겪었으니까 기뻐해야 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세상에 나보다 더 고통 받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감사드려야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나로서도 아빠 생각이 어디가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 삶은 당연히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말이다. 삶이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 할 테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 또 이 평범한 세상, 이 작은 인간 세상에 사는 우리는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지도 않고 상대적인 것 대신 영•원한 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 P134

 엄마와 엄마 유형, 그러니까 우울한사람도 비극 앞에 굴복하는 것도 참지 못하고 자신이 아니라 다른 불쌍한 사람이 끔찍한 운명을 겪도록 선택한 신의은총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조차도, 내내 속 편하게지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들 유형에 속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 즉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이나 불안한 상황에서도 사람과 삶에 대한 선의와 신뢰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도 극히 드물게 있었지만, 엄마와 엄마 유형의 사람이거나 아빠와 아빠 유형의 사람이거나 나를 포함해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 P135

나는 어릴 때에도- 어찌면 어렸기 때문에- 빛을 왜곡하는 장막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다가오는 상처와 쌓여기는 고난과 잃어버린 희망과 사라진 신뢰와 아무도 극복하려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정신적 무력감과 관련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간의 어두움과 결탁했거나 혹은그 어둠에서 나온 물리적 환경이 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은 길고 우울한 이야기 속에 파묻혀 있어서 진정빛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어둠속으로 들어오면 어둠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둠에 포섭될 위험이 있고 심지어는 (만약 그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히 환하고 각별히 빛나는 사람이라면) 자기 목숨을 잃는 지경에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둠속에서 살아와서 안전한 어둠에 이미 오래전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도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만약 우리가 이 빛을, 투명함을, 광휘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그걸 즐기게 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익숙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걸 믿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감명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희망을 갖게 되고 해묵은 전통을 버리고 빛에 물들고 빛을 흡수해서 우리 자신이 빛을 내기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빛을 뺏기거나 빛이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두려움과 슬픔이 압도하는환경에는 빛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나의 환경에는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 P137

그렇기 때문에 개가 필요한 것이다. 개들은 중요하다. 사람 사이, 부족 사이, 국가 사이, 성별 사이에서 순식간에터져나와 주변 모든 것에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입히는혐오와 자기혐오의 감정이 순간 맞부딪쳐 치명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막아주는 균형추, 가림막, 안전장치다. 이런 나쁜 기억, 고통, 역사, 인간성의 쇠락을 막고 피하고밀어내려면 개가 짖는 소리, 그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울음소리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가 군인들이 지나갈 때까지 십오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군인들과 맞닥뜨릴 일이 없고 무기력함과 부당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 정상이고 평범하고 좋은 사람인 내가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거나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생각하는 상황도 일어날 일이 없다. 만약에 전장이 되어버린 거리에 이미 나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개 짖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파악해 군인들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만약 이쪽으로 오고 있다면 얼른 샛길로 들어가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피하면 된다. 그런데 군인들이 개를 죽여버렸다. 중재자를 제거해버렸다. 그래서 새로 개가 태어나 우리 지역에 충성하도록 기르고 가르치기 전까지는 과거의 직접적이고 밀착된 증오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밤새 개가 학살을 당하고 난 다음 날 아침, 엄청난 사체들을 마주했을 때에도 직접적인 감정이 솟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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