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근현대국어 만들기의
역사를 되짚어보다

근대 어문개혁으로부터 시작된 국어학 연구

"우리말 연구를 왜 하는 걸까요?"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서지요."
근대 국어학 연구의 일관된 목표는 ‘국어 만들기‘, 곧 ‘국어의 정립‘이었다. 그러한 목표가 분명하던 시절, 우리말 연구를 왜 하느냐는질문에 대한 모범적인 답은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서‘였다. 이런 질문과 대답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근대 어문개혁 운동과 더불어 국어학연구가 시작되었고 근대 어문 규범을 세우는 과정에서 국어학이 체계화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어문개혁은 ‘언문‘을 ‘국문으로 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개혁의 요지는 속된 글로 취급받던 언문의 위상을 높여 한문을대신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법률· 칙령은 모두 국문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을 혼용한다" (칙령 제1호 공문식·1894)는 원칙은 일견 단순했지만,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단순치 않았다. 국문 쓰는 법, 즉 한글 맞춤법을 정해야 했고, 공문서에 쓸 수 있는 공통의 말, 즉 표준어를 정해야 했고, 소통 가능한 문장을 쓰는 법, 즉 문법을 체계화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어문규범화의 결과물을 모두가 공유하기 위한 사전을 편찬해야 했다.
근대 어문개혁과 더불어 시작된 국어 만들기는 맞춤법과 표준어를 정하고 문법을 체계화하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근대 어문개혁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지배적 문자였던 한자의 역할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하는지가 국어 연구와 국어 정책의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국문과 국한문을 동시에 인정하는 1894년의 칙령은 20세기 내내 이어진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어학 연구와 국어 정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 P4

식민지의 시간은 권력 언어 일본어의 힘이 무한정 확대되는 시간이었다. 조선어 과목의 교과서를 제외한 모든 교과서가 일본어로 쓰였고, 교실에서의 강의 언어는 일본어였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럴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월등한 일본어 실력을 갖춰야 했다. 식민지 현실에서 권력 언어의 위력은 조선총독부의 행정력을 뛰어넘었다. 행정력을 동원한 강요 이전에 이미 일본어는실질적 공용어로 자리잡았다. 식민 지배 초기 2개 언어 병용 정책은결국 ‘국어 상용화‘를 위한 준비 단계였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조선어 학계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조선어 학계의 대응은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2개 언어 병용 정책의 상황을활용하여 한글 강습 활동과 같은 대중 사업을 진행했다. 둘째, 철자법및 표준어 제정, 조선어사전 편찬 등 조선어 규범화 사업에 매진했다. - P19

이런 점에서 1938년 이후 진행된 조선어학회의 어문 정리 사업은조선어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강압적인 상황에서도 조선어학회가 조선어 문화의 독자적인 발전이라는 목적의식을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한글 강습 활동을 통해 문맹 타파사업을 전개하고, 조선어 규범화 사업을 통해 조선어를 공용어의 위상에 걸맞게 만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식민지라는 한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어학회는 조선총독부의 언어정책과 길항작용을 하면서, 조선어 문화를 유지해야 함을 그리고 조선어 연구를 심화해야 함을 끊임없이 환기했다. - P22

●●● 선생님께서 당시 교련 선생에게 두들겨 맞을 걱정을 하신 걸 보면, 그리고 학생 체벌이 일제 교육의 잔재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일제강점기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체벌이 심했을 것 같아요.
◇◇◇일제하의 여러 가지 제도를 가만히 회고해보면, 물론 일본인들이 나쁜 점도 많이 있지만 개중에는 좋은 점도 있어요. 첫째 교원들은거의 다 성실했어요. 성실하고 정말 진심으로 인생 교육을 했어요. 소학교 다닐 적에 담임선생이 일본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저녁형이라 어려서부터 밤에 공부하고 늦게 일어나니까 학교에 매일 지각을했어요. 지각하면 교실에 들어가서 뒤에 서 있어야 했어요. 벌서느라고. 담임선생이 왜 늦었느냐고 물어요. 오다가 뒤가 마려워서 뒤를 보고 나니까 늦었다고 했더니, 이 일본 선생이 "네가 공부는 잘해서 좋은데 그런 변명하면 아무 소용없다. 공부 잘해도 소용없어. 왜 변명해?"라고 했어요. 내가 지금 팔십 넘어서도 변명은 안 해요. 그 가르침 때문에 그런 걸 보면 교육이 중요하잖아요. 일본인 선생이지만 이런 점은 훌륭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다닌 학교에서 학생을 매 때리는 방식으로 체벌하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대신 벌을 세웠어요. 종아리 치는 일도 없었어요. 교육 부분에서 일본 식민이 되라고 하는 황국신민화 교육은일본 정부가 교사들에게 시켜서 하는 거였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 부분 말고 인성 교육 같은 부분에서는 교육적이라고 볼 만한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분위기나 교사 성향에 따라 체벌의 정도는 다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경우겠지만, <조선일보> 기사를 검색해보니까 1936년 7월 15일과 1937년 12월 19일 자에 교사의 체벌로 사망한 학생의 사건과 함께 당시 학교에서의 체벌 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더라고요. 물론 선생님 말씀대로 일본 교사들의 교육철학에서 배울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황국신민화 교육과 인성 교육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식민지 교육이라고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 P32

●●●그래도 제가 해방될 때까지 계속 일본말로 우리나라 여성들을교육했다는 것이 친일 행위의 일종인 것은 분명하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 선생님께서 일본말로 학생을 가르친 것까지도 친일 행위의 일종이었다고 고백하신 말씀을 들으니, 자신에 대한 기준이 너무 엄격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어로 수업하는 게 원칙인 상황에서, 일본어 수업을 교사 개인의 선택적 행위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수업 시간에 한글을 칠판에 쓰면서 학생들에게 한글을 보여주시고자 했던 행위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당시 학생들의 한글 해독 능력이 궁금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소학교를 다니셨을 때, 그중 소학교 3학년때인 1938년부터는 조선어 과목이 사실상 폐지되다시피 했었고,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셨을 때는 학교에서 조선어 사용과 교육이 금지되었으니, 당시 학생들은 한글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도 한글로 판서하는 게 좀 미숙하셨을 것 같고 학생들도한글을 읽는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 그 말씀은 옳습니다. 제가 보통학교에 입학해서 얼마 있다가 조선어 과목이 폐지되었거든요. 그래서 학교에서 안 가르쳤으니까 모르지요. 그런데 저는 원래 집에서 한문과 한글을 동시에 배웠습니다. - P36

제가 일본의지배를 받았던 민족이 일본어를 이해하는 비율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식민지로는 타이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와 비교가 되지요.
일제 말기 타이완의 경우를 보니까 일본어 해득률이 85퍼센트예요. 이건 대단한 겁니다. 나머지 15퍼센트는 저 어디 오지에 사는 노동자나 농민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다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거예요. 당시 타이완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일을 실제로 겪었습니다.
1964년에 하버드대학에 초청 받아서 갔었는데, 그때 마침 초청 받아 온 타이완 학자와 함께 지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부부 사이에 편지를 일본말로 써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집에서 일본말을 한답니다. 나이는 나하고 비슷했지요.
타이완의 일본어 해득률이 85퍼센트였다는 것과 내가 미국에서 겪은 일을 관련지어 생각하면 일제 말기 우리의 언어생활이 어땠을지 짐작이 갈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해방이 한 20년만 늦어졌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제가 <국어 정책론》에서 조금 언급한 것 같은데요, 일본어 해득률이 90퍼센트에 육박했을 겁니다. 그럼 국어 회복은어렵지요.
여기서 하나 고백하고 싶은 게 아까 말한 대로 열 살에 소학교 들어가서 일본말로 교육 받고, 다들 짐작하다시피 작문은 늘 일본말로 썼습니다. 지금도 어떤 때는 일본말로 생각해요. 일본말로 사고를 해요.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머릿속에서 우리말 어휘를 찾아야 해요. 어떤때는 우리말 어휘를 찾을 수 없어서 일한사전 들출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적절한 어휘를 찾을 때가 있어요. 자, 이 이야길 들으면 누구는 거짓말이라고 그럴 겁니다. 이렇게 이 문제가 중대한 문제예요. - P39

◇◇◇ 일제의 침략이라는 게 애초부터 그렇게 대단한 흉계였어요. 그런데 일제의 침략은 ‘한일합방‘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거같아요. 우선 1894년 갑오개혁이 일본의 수중에서 이루어졌어요. 일본 군대가 왕궁을 지키는 그러한 상황에서 갑오경장(갑오개혁)이 선포가 됐거든. 우리 역사에서는 그때부터 근대화를 시작한 거니까 그건인정하자고 하지요. 그런데 일본 측에서 보면 갑오경장을 통해 근대화를 한다고 표방했지만 실제 내용은 내정 침투를 위장한 거란 말입니다. 이건 우리가 정확히 알아둬야 해요. 또 그 후에 1897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선포했는데 그것은 독립국을 가장한 일본의 괴뢰정부 수립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왕이라고 하던 걸 황제라고 했고요.
그럼 일본의 의도는 뭐냐. 왕을 황제라고 하니까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쌍수를 들어서 다 환영한 겁니다. 우리가 당시 청나라에 예속되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대한제국을 수립한 것은 청나라와 단절한다는 거예요. 단절했으면 어디로 가느냐? 일본 쪽으로 붙인 거예요. 자기네 괴뢰로, 근데 우리 역사책이나 역사가들 서술한 거 보면 안 그래. 다 찬양해요. 대한제국 위대하다고. 나는 그런 거 보면 당최 하도 실망스러워서 말이 안 나와요.
그다음에 마침내 ‘일한합병‘, 일본사람들은 ‘일한합병‘이라는 명칭을 썼어요. 우리는 ‘한일합방‘이라는데, ‘한일합방‘이 왜 잘못된 말이냐면, ‘한일합방‘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합방해야 쓸 수 있는 말이에요. 그렇잖아? 그러니까 ‘일한합방‘이 맞아요, 일본이 했으니까. 우리사학에서 내가 보기에는 아주 참 제대로 안 해요.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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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깃털 같아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럴 때 인간은 아주 작은 입김에도 날아갈 수 있다.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가버린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당신의 누름돌, 당신의 한 점이 되어줄 수는없을까.
한 점. 딱 한 점만 보고 걷는 것이다. 나도 이쪽에서 딱 한 점만 보며 걸을 것이다. 그쪽의 당신도 그렇게 와주었으면 한다. - P168

문장이 가지고 있는 주술적 힘. 아플 것이라고 쓰면 정말로 아프게 되고, 일어날 것이라고 쓰면 정말 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또 한번 배운다. 앞으로 올 시간과 지금 이 시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것도. 그러니 이런 발상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와 현재의 결과로서 미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성실하게 나아가고 발전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지만, 미래는 이미 완성형으로 존재하고있는지도 모른다. 완성된 미래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처럼, 폭죽처럼 펑! 우리 앞에 끼어드는 것일지도. - P194

그런 의미에서 ‘밀코메다(Milkomeda)‘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상상적 현실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현재 우리 은하의 이름은 ‘밀키웨이(Milky Way)‘인데, 약 40억 년 뒤엔 안드로메다와 충돌해 새로운 은하가 탄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새 은하의 이름이 (밀키웨이와 안드로메다의 합성어인) 밀코메다라고. 40억 년이라니, 겨우 열 개뿐인 인간의 손가락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먼 시간에게도 이름이 있다. 내일, 한 달뒤, 1년 뒤, 10년 뒤에게도 없는 이름이.
없음의 있음을 기약하며 이름을 붙이는 행위. 그것이야말로 시의 임무가 아닐까. 미래의 내가 어떤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복숭아나 마 아닌 무엇이 언제 또 나의 손을 부풀게 할지 알 길 없지만, 그 시간을 통과해왔기 때문에 마를 만질 땐 꼭 장갑을 끼는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오늘 쓸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와야 할 시간은기필코 오게 되어 있다. 그럴 때 나의 인사는 "왜 왔어?"가 아니라 "왜 이제야 왔어"이기를 바라며. - P196

 경상북도 봉화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지구상에 단 둘뿐인 시드볼트 중 한 곳이다. ‘새로운 노아의 방주‘ ‘미래 인류의 씨앗 저장고‘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시드볼트는말 그대로 시드(seed, 씨앗)를 저장해두는 볼트(vault, 금고)다. 기후변화나 핵전쟁 등 지구 차원의 대재난에대비해 식물의 멸종을 막고자 마련된 공간이다. 시드볼트와 유사한 기관으로는 시드뱅크(seed bank)가있는데, 시드뱅크는 그때그때 필요한 씨앗을 꺼내쓸 용도로 마련된 공간이며 그 수도 현저히 많다고한다(전 세계에 1500곳 정도). 반면 시드볼트는 절대로열려서는 안 되는 장소다. 시드볼트가 열렸다는 것은 곧 그 종의 멸종을 의미한다. 즉, 시드볼트는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 예비된 장소다. 종말의순간에야 비로소 열리는 문. 완전히 파괴된,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된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유일무이의 수단.
이야기를 듣는 내내, 문학이라는 두 글자가 겹쳐졌다. - P232

글쓰기는 나무 패는 일을 닮았다. 뭔가를 쓰고자 마음먹을 때를 떠올려보라. 처음 생각은 통나무에 가까울 것이다. 그 통나무는 분명 생각의 모태지만 땔감으로 바로 쓸 수는 없다. 땔감이 되려면 우선 통나무를 톱으로 잘라 들어 옮길 수 있는 크기로 만들고, 다시 그것을 여러 번의 도끼질로 쪼개 장작으로만들어야 한다. 아궁이에 들어갈 만한, 불이 잘 붙을만한 형식을 갖춰야 한다. 도끼질이 서툴고 능숙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가 가진 힘과 믿음의 세기로 내려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언제나 ‘모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탕은 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 밑에 받쳐놓는 나무토막을 말한다. 모탕이 있기에 우리의 글쓰기는토대를 얻는다. 안정감과 탄력을 얻는다. 결국 모탕은 ‘좋은 질문‘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처음 질문을떠올려보자. "선생님, 그런데 태풍이가 왜 우리 학교에 와요?" 이 문장은 너무나 좋은 모탕이다. 잠들어있던 우리의 정신을 깨우고 진동케 하는 모탕이다.
자, 이제부터는 당신 차례다. 당신은 이 모탕 위에서 어떤 문장(땔감)을 획득할 것인가. - P239

끝을 갈망하는 이에게 끗이라는 단어를 안겨주는건 외발자전거를 탄 곡예사에게 저글링을 시키고 불불은 훌라후프를 통과해보라는 명령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두려울 것이다. 고독하고 힘겨울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끝!‘이라 쓰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선생님은 이제 없다. 살아 있는 한 끝은 영원히 유예된다. 끝은 죽은 자의 것. 그러니 나는 끝이 아닌 끗의 자리에서, 끗과 함께, 한 끗 차이로도 완전히 뒤집히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고싶다. 여기 이곳, 단어들이 사방에 놓여 있는 나의 작은 놀이터에서.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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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은 바 임무에 능력의 최대치를 쏟아부어 잘해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남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_RBG, 2015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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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제5항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여 사회국가 원리를 수용하고 있어, 결국 우리 헌법은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헌법재판소2001.2.22.99헌마365 결정, 1998.5.28. 96헌가 결정)."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이 지향하는 ‘평등‘
을 ‘실질적 평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질적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라는, 즉 차이에 대한 존중이 평등의 본질임을 밝힌다. 차이에 대한 존중이란 인간다운 생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의 삶을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있도록 보장하고, 신체적 능력 등 기타의 사유로 상대적 기회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 P146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유독 타인의 욕망이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욕망이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혹은 "남보다 뒤처지지않은 삶을 살아야 돼"라는 말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기본적으로 내 삶의주체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저렇게 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와 같이 타인의 기준과 욕망에 삶의 조건을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174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국민에게 규율과 원칙이 힘 있는자들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그것을 이룬 방식 자체가 원리원칙보다는 국가나 기업,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과 같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행해져온 것이다. 그렇기에경제 성장과는 별도로, 국민은 높아진 삶의 질을 누리기보다 결국 ‘힘 있는 자가 되어 성공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고 이는 언제나 불만족스럽고 불안한삶에 자신을 위치시키도록 만들었다. - P181

왜 우리는 이렇게 혐오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누군가를 배제하고 미워하는 것일까. 나는 그이유가 ‘불안‘에 있다고 본다.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가면서 사실은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불안한 마음은 비교적 쉽게 비난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비난과 혐오의 마음으로뒤바뀐다.
앞서 한국 사회는 원칙과 책임을 중시하기보다 성장과발전, 결과와 물질이 중심이 된다고 보았다. 가진 자에 대한 지나친 사회적 인정과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강한 멸시가 동시에 존재한다. 또 가진 자를 질투하고 선망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실패에 허덕이는 사람 앞에서 위로하거나 격려하기보다 오히려 그를 격렬하게 비난한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워갈 수밖에 없다.
살면서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실패가 없는 인생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실패를 어떻게 잘 극복하고 겪어내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않다. 무언가 실패하면 그 사람에게 다른 기회가 주어지기 어렵다. 입시에 실패했다고 해서 혹은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가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198

어째서 한국 사회는 이토록 질투와 혐오의 문화가 만연한 것일까. 질투와 혐오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집단 간의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무엇이 옳고 우월하다는 관점이 너무나 분명하고 고정적으로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자. 경제적측면에서 더 많은 부가 더 많은 행복과 직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더 높은 지위가 더 큰 성공이라고 바라보지 않는가. 더 좋은 성적이 훌륭한 학생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P203

한국 사회에는 좀 더 다양한 삶의 가치가 등장해야 하고, 그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의 경험, 다른방식의 삶을 인정하고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생애 단계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낙인을 찍는 문화는 결국 분노를 형성하게 되고 이는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진다. 다른 기회, 실패를 통한 성장 등 우리 사회에 삶에 대한 믿음이 전반적으로 생긴다면 자신의 분노감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폭력적인 태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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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시손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닌, 존재론적슬픔을 함의한 광막한 단어다. 문득 가시손의 반대말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쓸어 담고 쓰다듬고 치료하는 손이겠지? 다행히 세상엔 가슴팍에 청진기를대고 숨소리를 듣거나 진맥을 짚어 영혼의 상태를 살피는 손도 존재한다. 내가 무수한 나들의 총합이듯이 나의 손안에도 무수한 손들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시손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한평생 파괴지왕으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닐 터. 연습하는 손은 게으른 손을 이길 것이고 호기심 가득한 손은 나태한 손을 앞설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당신은 어떤 손을 가졌습니까. 그 손안엔 무엇이 있습니까. 따뜻합니까. - P121

매일 진다. 지는 기분이 든다. 피곤해서도 지고 귀찮아서도 지고 허무해서도 지고 우울해서도 진다.
그날따라 입고 나온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지고,
하필 우산을 두고 온 날 소나기가 내려서도 지고, 편의점에 들러 만 원이나 하는 우산을 샀는데 비가 홀랑 그쳐 씩씩거리며 또 진다. 텀블러 뚜껑이 제대로안 닫혀 가방 안이 홍수가 되어서도 지고,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서도 지고, 주차장 구석에서 들려오는고양이 울음소리가 구슬퍼서도 진다. 변해서 슬픈이유는 다름 아닌 그것이다. 응전할 힘이, 무기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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