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생각이 실행이 되는 것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소속감이 있다면, 가족의 일원, 회사의 일원, 어느 공동체의 일원으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죽음에 대한 관념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 P175

한번 자살 제지를 받은 사람 중 67퍼센트는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평균 수명을 다했다. 누군가의 자살 시도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생각해온 결심의 표출이지만 막상 그날 누군가의 중재로 당신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진심으로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죽음이 아닌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 P191

혹시나 지금 죽음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들이있다면 자신의 정서 문제가 치료를 통해 회복될수 있으며, 결코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주기를 바란다.
정서 문제는 신체의 질병, 예컨대 감기 등과같이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지지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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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법의학자는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통해 자살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살은 개인의 내밀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흐름과 무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 P92

죽음은 개인의 권리와 함께 사회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삶은 함께 존중받고 보살펴져야 한다. 각자의 죽음이 삶과의 아름다운 이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노력이 절실함을 깨우쳐야 한다.
- P104

법적으로는 크게 민법과 형법이 있는데 형법에서 적용하는 대표적인학설은 진통설이다. 형법은 어떠한 행위의 범죄 처벌 여부와 그 처분의 정도나 종류를 규정한 법으로, 진통이 있다면그때부터 사람으로 보아 법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진통 전의 태아를 사망하게 하면 살인죄가 아닌 낙태죄를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진통이란 여성의 자궁 경부가 열리면서 아기가 머리를 내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따라서  만일 그때누군가가 아기를 해했다면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민법에서는 또 다르다. 민법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예를 들어 언제부터 내가 내 손자나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지는 민법에 따라 결정한다. 민법에서는 아기가 자궁 경부를 통해 완전하게 신체를 노출했을 때부터를 사람으로 본다. 이처럼 민법과 형법에서 적용하는 학설은 약간 다르며 관련 학설 또한 진통설, 일부노출설, 전부 노출설, 독립호흡설 등 여러 가지다.
- P107

지금은 누구라도 뇌사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뇌사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인정된 오늘날 새롭게 등장한 논쟁거리가 생명의 자기 결정권 문제다. 의사조력자살 또는 의사조력사망 문제 등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있느냐 없느냐가 현재 우리 사회의 첨예한 논쟁거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과연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질문해보게 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자의 뒷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시 구절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죽음은 준비되고 예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P141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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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지유는 만드는 법을 잘 안다.
먼저 돼지고기를 사야 한다. 머리나 갈비, 뒷다리 같은 덩어리고기를 뼈째 사는 게 좋다. 엄마는 항상 도매시장에 간다. 마트에서 파는 살코기는 양에 비해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비싸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놓고 돈 얘기를 하는 건 상스러운 짓이니까. 대신 이렇게 말한다. 오리도 칼슘이 필요해.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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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가방엔 누군가의 일생이 있다.

죽음의 기록이 담고 있는 것들

죽음, 세상에 이보다 무겁고 힘들고 어려운 주제가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모두의 삶에서 결코 누구도 비켜갈 수없는 인생 일대사 문제이기에 한 번쯤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기로 한다.
정확하게는 죽음을 통한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어둡고 모호한 죽음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함께하는 죽음 그 자체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그로부터 우리의 ‘오늘‘ 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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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앉아 연기를 시작하려는 체조선수처럼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제가 현재 뭘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를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내가 더듬거렸다.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대로 앉아 나에게서 다음 얘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침착하고 진지하게 보이도록 차근차근 말을 이으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모든 반응을 주시하면서, 내가 찾아낸 일거리들을 상세히 열거하고 그 각각의 일에서 얼마나 버는지를 알려주었다. 또 그 일들을 다 맡아 집에서 처리하는 것 외에도 학교 시험 준비까지 하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는지도 설명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일이 아주 바람직하게 들리도록, 즉 나의 삶을 지적이고 책임감 있는 방법으로 꾸려갈 것이며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를 따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아버지는 내게서 꼭 들어야 할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침묵을 지켰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저 자신을 부양하고 학업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아셨겠지요." 그러고는 겨우 들릴락말락하게 말끝을 흐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훌리아를 데려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허락을 구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결혼했고 훌리아는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 P326

빅 파블리토 역시 그의 옆으로 가 있었다. 그가 한편으로는 인자하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놀리는 투로 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반쯤은 다정스럽게 또 반쯤은 조롱하듯이 그를 앞뒤로 흔들면서 내 쪽을 쳐다보고 말했다. .
"문제는 이 페드리토는 자기가 유명한 사람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여기선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니까요." 파스쿠알이 웃었고 빅 파블리토도 웃었다. 나 역시 웃는 척했고 페드로 카마초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는 파스쿠알이나 나까지도 기억 못 하는 척하려고 든다니까요." 빅 파블리토가 마치 강아지를 가지고 놀듯 거의 까까머리인 그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우리, 당신이 왕이었던 시절을 기념하기 위해 점심을 같이할 생각인데, 당신 운이 든 거라고, 페드리토, 오늘은 훌륭한 뜨거운 음식을 먹게 될 테니까. 손님으로 모실 테니 같이 가자고!"
"대단히 고맙습니다만......" 그가 즉시 깍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갈 수가 없겠군요. 제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제가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으면 궁금해할겁니다."
- P355

내가 올가 아주머니와 루초 삼촌(그들은 내 아내의 언니와 형부에서 내 장인, 장모로 바뀌어 있었다) 댁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이슥할 무렵이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고 절망감을 느꼈다. 사촌 파트리시아가 잔뜩 못마땅한 기색을 띠고 나를 맞았다.
그러더니 내가 소설 쓸 자료를 모은다는 핑계로 자기를 감쪽같이 속이고서 훌리아를 만나고도, 집안 식구들이 훌리아가 파렴
치한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입을 봉했을 가망성도 얼마든지 있는 거 아니냐며 나를 윽박질렀다. 그러나 파트리시아는 훌리아가 파렴치한 죄를 저지르는지 아닌지 조바심이 나서 조금이라도 마음 놓고 있지 못하고, 만일 다음번에 내가 마누엘아폴리나리오 오드리아 장군의 연설문을 읽으러 국립도서관으로 간다면서 아침 여덟시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 여덟시에 핏발선 눈으로 술냄새를 풍기면서, 더군다나 손수건에 립스틱 자국이라도 묻혀가지고 돌아온다면 내 눈을 후벼파거나 쟁반으로 머리통을 깨버릴 것이었다. 내 사촌 파트리시아는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면 무슨 짓이건 다 할 수 있는 당찬 여자였으므로.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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