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에 대한 톰프슨의 답은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그 본질은 예언적인 것이었다. 그는 생명체는 그것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물리적인 힘에 의해 직접 그 형태가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즉 최적의 형태란 적절한 여러 가지 물리적 힘의 영향을 받는 가소성 물질의 자연적인 상태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생물은 여러 가지 물리적 힘이 작용하는 계가 변할 때, 하나의 최적 상태에서 다른 최적 상태로 갑작스럽게 도약한다. 이제 우리는 대부분의 물리적인 힘들이 너무 약해서 형태를 직접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대신 자연선택에서 그 답을 찾는다. 그러나 선택이 느리고 지속적인 방식으로밖에 작용할 수없다면, 다시 말해 어떤 복잡한 적응 형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한 걸음씩 누적적으로밖에 작용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다시 벽에 부딪치게 된다. - P54

 생물을 이루는 여러 부분들은 성장과정에서 복잡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그중 어떤변화가 그 생명체 전체로 퍼져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생명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시카고에 있는 필드 자연사 박물관의 데이비드 라우프(David Raup, 1933~2015년)는 톰프슨의 통찰을 현대의 컴퓨터에 응용해서 앵무조개에서 대합조개, 달팽이에 이르는 모든 고둥들의기본 형태가 단 세 가지의 단순한 성장 경사(gradient)를 여러 가지로 바꿈으로써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나는 라우프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세 가지 경사 중에서 2개만 수정해서 흔한 달팽이를 보통 대합조개로 바꿀 수 있다.  - P55

한편 다윈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우주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일관된 다원주의자였다. 그는 적응이나 조화를 중시했다. 그 이유는 자연선택이 진화의 여러 힘 중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에는 자연 선택 말고 다른 과정도 함께 작용한다. 그리고 생물들은 적응의 결과가 아니고 생존에 직접 도움을 주지도 않는 특성들도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다윈은 비적응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두 가지 원리를 강조했다. ① 생물은 통합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한부분의 적응적 변화가 다른 특성들에 비적응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다윈의 표현으로 "성장의 상호관계(correlations of growth)"였다.) ② 선택의 영향으로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발생한 기관은 그 구조에 따른 결과로, 선택받지 않은 다른 많은 기능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 P66

여기에 월리스의 딜레마가 있다. 즉 우리의 실제 선조들로부터 오늘날 생존해 있는 원주민에 이르는 모든 ‘야만인‘은 유럽의 예술이나 도덕, 철학의 가장 섬세한 정교함까지 발전시키고 그 가치를 완전히 인식할수 있는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자연의 상태에서, 빈곤한 언어와 도덕을 가진 초보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가진 능력의 극히 작은 일부밖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연 선택은 당장의 사용(immediate use)에만 유용한 특징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뇌는 그것이 원시 사회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나친 과잉 설계 (overdesign)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연 선택이 인간의 뇌를 구축할 수 없었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것이다.

야만인들의 제한된 정신발달을 위해서는 고릴라 뇌의 1.5배 정도 크기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그들의 큰 뇌는 결코 진화의 법칙들에 의해서만 발달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진화의 본질은 각각의 종의 요구에 엄격히 부응해서 일정 수준의 조직에 도달하는 것이지 결코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아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자연 선택은 유인원의 뇌보다 조금 고등한 정도의 뇌를 야만인에게 주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철학자의 뇌와 거의 다르지 않은 뇌를 가지고 있다. - P72

초선택주의는 오랫동안 여러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해 왔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의 조화라는 신화(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의 세계이며, 만물은 그 세계 속에서 가능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는 이 경우에 모든 생물의 구조는 구체적인목적을 위해 훌륭하게 설계되었다는 생각)가 19세기 후기에 과학이라는 옷을 입은변형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은 볼테르(Voltaire, 1694~1778년)가 소설『캉디드(Candide)』에서 생생하게 풍자한 어리석은 그로스 박사의 환상세계는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월리스보다 1세기 앞선책이지만, 이 책에서 그로스 박사는 윌리스의 주장이 가진 오류의 본질을 정확하게 집어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삼라만상은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다. ・・・・・・ 모든 것은 최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의 코는 안경을 쓰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리는안경을 쓴다. 다리는 구두를 신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구두를 신는다." 이런 팡그로스주의는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주제로 한 수많은 대중들은 인간이 수렵을 하기 위해 큰뇌를 진화시켰다고 주장하며, 현대 모든 악의 근원을 이러한 생활 양식 때문에 형성된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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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의 이질감 때문에 생긴 불행한 소외감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낀 것은 오라치오 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던 바로 그 길에서였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자랐고, 이들의 행동은 내게도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거친 언어는 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6년 동안 매일같이 이들이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왔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훌륭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해야 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기껏해야 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서 내 주장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을 때만 그런 모습을 잠깐 내비칠 뿐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내 친구들은 물론 내 남자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함께 릴라의 결혼 피로연에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피로연이야말로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전혀 다른 데도 내게 필요한 유일한 사람인 릴라가 이제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행사였다. 그녀가 없으면 나와 자동차로 이 길을 달리고 있는 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나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나처럼 고향에서 벗어난 알폰소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왜 니노에게 "나와 함께 있어줘. 함께 피로연에 가자 내 기사가 실린 잡지는 언제 출판이 되는지 알려줘. 우리끼리 이야기하자. 파스콸레의 운전과 그의 천박함에서, 카르멜라와 엔초와 안토니오의 거친 말투에서 우리를지켜줄 우리만의 은신처를 만들자"라고 말하지 못한 걸까. - P426

다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잘못이기도 했다. 나는 니노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 당연시했다. 정작 나 자신은 내 어머니와는 달라야 한다는 집착에 시달렸으면서 말이다. - P433

릴라 앞에는 와인 병이 놓여 있었는데 눈빛만으로 병을 산산조각내어 와인을 사방으로 튀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릴라는 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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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돌로는 수렴 진화(收렴進化, 다른 계통에서 비슷한 적응 형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흥미를 가진 다윈주의자였다. 그는 기초 확률론의 관점에서 보아도, 수렴을 통해 완전히 유사한 현상은 절대 일어날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물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계통이 다른 생물이 공통된 생활 양식에 적응하면서 외형적인 유사성을 나타낼 수는 있다. 그러나 생명체는 복잡하고 독립적인 수많은부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전부가 완전히 동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 두 번 진화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진화는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불가역)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선조의 징후는 반드시 보존되며, 수렴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항상 표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가장 경탄스럽게 생각하는 수렴의 예를 하나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어룡이다.육생 선조에서 파생한 이 바다 파충류는 어류에 흡사하게 수렴해서, 고도로 효율적인 유체 역학적 설계의 등지느러미와 꼬리를 적재적소에 진화시켰다. 이 구조들이 주목할 만한 까닭은, 그것들이 원래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선조인육생 파충류는 등에 아무런 혹도 없었고, 꼬리에는 지느러미로 발달할 수 있는 돌기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룡은 전체설계나 복잡한 세부 구조의 측면에서 물고기와는 다르다. (예를들어 어룡의척주가 아래쪽 꼬리지느러미 속으로 뻗어 있는 데 비해, 꼬리 척추를 갖는 어류의 척주는 위쪽 꼬리지느러미 속으로 뻗어 있다.) 어룡은 폐를 가지고 있어서 수면에서 호흡하고, 지느러미가 아니라 변형된 발뼈를 골격으로 하는 지느러미 모양의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파충류에 속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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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린 시절 꿈꿔왔던 부의 의미가 다시 한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세상에 둘도 없는 신발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힘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체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 P330

나는 창문에서 릴라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그녀 모습이 망가져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편지에 쓴 아름다운 문장들과 금이 가고 구겨진 구리 냄비를 생각했다. 그녀와 나의 내면에서 파열음이 날 때마다 항상 그 이미지를 떠올렸다. 나는 그 어떤 형태의 틀도 릴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지않아 그녀가 모든 것을 또다시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 릴라가 그렇게 하길 바랐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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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는 릴라처럼 내면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아이였다. 이것은 축복이자 고통이었다. 이들은 만족하는 일이 없고 쉽게 포기하는 법이없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도나토 아저씨는 이들과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매 순간을 밝게 살았다.
그날밤 이후, 니노의 아버지는 가벼운 입맞춤만을 남겨놓고 나를어둠으로 밀쳐낸 그의 아들에 대한 믿음직스러운 대안이자 내 편지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릴라의 대안이 되었다. 나는 나중에야 이러한사실을 깨닫고 놀랍다고 생각했다. 릴라와 니노는 서로를 잘 알지못하고 친하게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비슷한 점이 아주 많은 것같았다. 둘 다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으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언제나 명확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틀렸다면?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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