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우리 집의 한 해는새끼 바다표범 기르기로 시작된다

창밖에 보이는 고로쇠나무가 찻집 문을 닫기로 정한 것 같다. 문을 연 것이 2월이니까 두 달 동안의 아주 짧은 영업이었다.
개점 당일의 날씨는 따뜻했다. 오색딱따구리가 찻집을 열었다.
아니 그보다는 오색딱따구리가 나무껍질의 갈라진 작은 틈새에서배어 나오는 수액을 찾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겠다. 그뒤에 찾아든 다른 한 마리가 수액의 양이 적다며 날카로운 주둥이로 그곳을 톡톡 쏘아서 생채기를 크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수액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 밑으로 나무껍질을 40센티미터나거무죽죽하게 물들이며 한동안 계속 흘러내렸다. 같은 날 오후에는 동고비, 북방쇠박새까지 찾아와서 찻집 손님이 되었다. 곤줄박이 부부도 왔다. - P10

그리고 가끔 골판지 사건이 벌어진다. 유빙 위에서 태어난 새끼바다표범이 밤중에 대만 말썽꾸러기 때문에 폭풍의 바다에서 풍랑을 맞고 어미와 떨어져 해변에 내던져진다. 제대로 된 어미라면 무슨 수라도 썼겠지만, 이런 우둔함은 사람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바다표범 어미만을 탓할 수는 없다. 아마 새끼가 해변에서 울부짖고있을 즈음, 어미는 저 먼 바다에서 새끼를 찾아 헤맬 것이다. "아기야, 어디 있니?"라고 외치면서 몇 시간 뒤 새끼는 어찌 된 일인지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내가 수의사라고 해서 다 살려 낼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이럴 때마다 곤혹스럽다. ‘어떻게 거절할까?‘ 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머리는 나보다 몇 배 더 빨리 돌아간다. "선생님, 귀엽죠? 봐요, 웃었죠? 그럼 부탁해요!" 하며 손을 흔들고는 내 말이 나오기도 전에 돌아가 버린다. 나는 중얼거린다.
"맙소사! 바다표범이 웃는다고?" - P17

그런데 증기기관차가 다니지 않게 되고 15년이 지난 뒤 야생화원에서도 꽃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알게 되었다. 시 당국은 유일한 관광자원인 꽃밭의 변화에 당황했고 대학에서 연구원을 불러다가원인을 조사하게 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원인은 불이 없어진 데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역시" 하며 머리를 끄덕인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불이 없어지자 초원은 지난해, 전전 해, 아니 그 이전의 마른 풀들이 쌓여서 서로 얽히다 보니 야생화의 씨가 발아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 백합이나 날개하늘나리 등이 포함된다고 하니 관계자는 속으로 증기기관차가 다시 등장해서 가끔 들불이 일어나면 좋겠다고까지 바라는 기색이었다. - P40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아내가 "송어든 연어든 가게에 1년 내내있잖아요"라고 대꾸했다. 하기는 수협이나 슈퍼에는 북태평양에서잡힌 것뿐 아니라 알래스카나 캐나다의 근해에서 잡혀 수입된 송어와 연어가 얼마든지 있다. 한편으로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형냉동 창고가 생선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서 우리들은 계절을 잃고 말았다. 봄의 바다가 잊혀져 가는것이다. 이러다가는 얼마 안 가서 항구를 떠나는 고기잡이배를 한척도 못 보는데도 생선은 여전히 가게에 쌓이는 날이 올지 모른다.
송어나 연어란 원래 토막 난 몸으로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요리하기 전에 태어날 손자 손녀들을 위해 옹근 생선과 토막 난 생선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찍는 사진이 요즘 부쩍 늘었다. 그걸 생각하면 울적하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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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란 무엇일까? 위키백과에서는 폭풍, 홍수, 해일,
지진, 산사태 등 자연현상으로 인명피해, 재산 손실 및 시설물의 피해가 발생해 사람이 활동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 정의한다. 즉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경우에만 자연재해로 분류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연현상 자체일뿐이다. 자연재해를 자연현상으로 인한 재앙이라는 의미의 천재지변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 P19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힘의 근원에는 크게 지질 순환geological cycle, 구조 순환tectonic cycle, 암석 순환rock cycle, 수문 순환hydrologic cycle, 생지화학 순환biogeochemical cycle 다섯 가지가 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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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처럼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고통은 오래갔다. 아니 사실아직도 그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가 무디고 속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두려워했고 그런 어머니에게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니 갑작스럽게 불어온 거센 비바람에 주변을 둘러 봐도 피할 곳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P306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반세기 이상이 걸려 토리노까지 온 그 두 인형은 릴라가 잘 지내고 있으며 나를 사랑하고 이제 드디어 틀을 깨고 세계 일주를 할 생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지난날 릴라의 세계만큼 작아진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진실에따라 젊은 시절 다른 사람들 때문에 또는 자기 자신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면서 늙어갈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안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나는 두 인형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나는 인형들을 내 책등에 기대어 놓았다. 보잘것없고 못생긴 인형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혼란스러워졌다. 소설과는 달리 진짜 인생은 일단 지나간 후에는 명확해지기보다 모호해지는 법이다. 릴라가 이토록 명확하게 자신을드러냈으니 이제 다시는 릴라를 보지 못해도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 P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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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폴리에 다시 정착한 것은 1979년이었다. 1976년 10월부터 1979년 나폴리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릴라와 자주 연락하는일을 되도록 피했다. 쉽지는 않았다. 릴라는 언제든 억지로라도 내인생에 끼어들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릴라를 무시하기도하고 참기도 하고 견뎌보기도 했다. 릴라는 가장 힘든 순간 내 곁에있어주고 싶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나는 나를 경멸하던 릴라의 태도를 잊을 수 없다. - P15

나는 내가 독일까지 가서 전 세계 범죄자 식별용 사진 사이에서 당시 릴라가 소중히 생각하던 사람의 얼굴을 본능적으로 찾아 헤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날 밤 파스콸레 펠루소는 태양계에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사건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기 위해 릴라가 자신의 작은 우주에서 그보다 훨씬 더 광활한 나의 우주를향해 쏘아올린 로켓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카르멘의 오빠는 세월이 흐를수록 좁아지는 릴라의 세계와 점점 팽창하는 나의 세계의 접점이 되었다. - P104

나는 여전히 릴라가 겁에 질려 쏟아낸 파도 같은 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두려움은 내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용암도,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지구 내부에서 흐르는 상상 속의 불타는 강물마저도 나를 두렵게 하지 못했다. 모든 두려움은 내 머릿속에서 정돈된 문장과 조화로운 이미지로 정리되어 나폴리의 길처럼 까만돌로 포장된 도로가 되었다. 그 도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나였다. 한마디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공부든 책이든 프랑코든 피에트로든 아이들이든 니노든 지진이든 그 무엇이 내게부딪혀 올지라도 결국 다 지나갈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나의 수많은 자아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나는 연필심이 원을 그리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컴퍼스의 고정된 축이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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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서 모든 것이 단순해진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려 했다. 가끔 니노에게 행복한지 물으면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키스했다. 드높은 창공에서 두 발을디딜 수 있는 유일한 표면인 비행기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도같았다. - P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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