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폴리에 다시 정착한 것은 1979년이었다. 1976년 10월부터 1979년 나폴리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릴라와 자주 연락하는일을 되도록 피했다. 쉽지는 않았다. 릴라는 언제든 억지로라도 내인생에 끼어들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릴라를 무시하기도하고 참기도 하고 견뎌보기도 했다. 릴라는 가장 힘든 순간 내 곁에있어주고 싶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나는 나를 경멸하던 릴라의 태도를 잊을 수 없다. - P15

나는 내가 독일까지 가서 전 세계 범죄자 식별용 사진 사이에서 당시 릴라가 소중히 생각하던 사람의 얼굴을 본능적으로 찾아 헤맸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날 밤 파스콸레 펠루소는 태양계에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사건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기 위해 릴라가 자신의 작은 우주에서 그보다 훨씬 더 광활한 나의 우주를향해 쏘아올린 로켓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카르멘의 오빠는 세월이 흐를수록 좁아지는 릴라의 세계와 점점 팽창하는 나의 세계의 접점이 되었다. - P104

나는 여전히 릴라가 겁에 질려 쏟아낸 파도 같은 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두려움은 내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용암도,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지구 내부에서 흐르는 상상 속의 불타는 강물마저도 나를 두렵게 하지 못했다. 모든 두려움은 내 머릿속에서 정돈된 문장과 조화로운 이미지로 정리되어 나폴리의 길처럼 까만돌로 포장된 도로가 되었다. 그 도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나였다. 한마디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공부든 책이든 프랑코든 피에트로든 아이들이든 니노든 지진이든 그 무엇이 내게부딪혀 올지라도 결국 다 지나갈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나의 수많은 자아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나는 연필심이 원을 그리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컴퍼스의 고정된 축이었다.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