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들판에, 외롭게 자기 집만 남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봐 주위 사람들은 많이 죽었어. 이쪽은 인명은 물론 가재도구도 전부 무사해. 이건 말이야, 견디기 어려운 광경이야. 그런 사태를 사람이 견뎌낼 수 있을까? 마지막은 운을 하늘에 맡기고 천우신조덕이라고 생각하면 간신히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철저하게 방재를 한 주택은 요새지, 주택이 아니야. 살기 편할지 어떨지 의심스러워. 요새에 산다는 건 늘 재난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과 같으니 말이지"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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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닿는 부분은 현관손잡이 빼고는 나무가 좋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현관문은 안과 밖의 경계선이니까 금속을 쥐는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지. 밖에 있는 문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으면 실내가 밖으로 삐져나온 것 같아서 뭔가 쑥스러워." - P145

"우리 집 같은 전통 화과자점은 십 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게 일이야 똑같다는 데 가치가 있어. 새로운 작품을 몇 년에 한 번 어쩌다 만들어도 손님들이 신기해하는 잠깐 동안만 팔리고 손님들은 결국 늘 먹던 것을 원하더라고. 장인기라고 하면 숙련이라든가 세련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인내력과 지구력이야.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사실 아버지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부러울 거야." - P150

감자를 감싸고 있던 부드러운 흙은 여름의 아침 햇살을 받아 금방 하얗게 말라간다. 오랜 시간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쪼이고있던 새끼 곰 등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면 이런 향기로운 냄새가 날 것 같았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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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같은 종류의 인간 본성을 공유한다는것을 보여 주는 증거는 풍부하지만, 그것이 개인, 인종, 성별 간의 차이역시 우리의 본성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는 점에서 옳았다. "인간은 본성은 비슷한데 습성이 다르다." "
현대 생물학에 따르면 사람들을 비슷하게 만드는 힘은 사람들을 다르게 만드는 힘과 다르다. (실제로 서로 다른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경향이있다. 유사성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차이점은 행동 유전학자들이 연구한다.)자연 선택은 유능한 유전자-원활하게 기능하는 기관들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를 집중시키고 무능한 유전자를 걸러 내어 한 종을 균일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표준 종합 설계도를 완성한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우리는 깃털이 같은 새 떼가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신체기관(두 눈, 간, 네 방으로 나뉜 심장)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똑같은 정신 기관이 있다. 언어의 경우가 가장 뚜렷한 증거이다. 신경학적으로 온전한 모든 아이는 어떤 언어라도 획득할 장비를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 점은 마음의 다른 부분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처럼 빈서판을 버린다는 것은 사람들간의 차이보다는 인류의 심리학적 통일성에 더 주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55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모든 종은 유전적 변이성을 품고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변이성이적은 종에 속한다. 유전학자들은 우리를 "작은" 종이라 부르는데, 우리가 마치 바퀴벌레처럼 지구 상에 창궐해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농담처럼 들린다. 사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유전적 변이의 양이, 구성원이 적은 소수의 종에게나 기대할 만큼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수에 있어서는 인간이 침팬지를 압도하지만, 인간들보다 침팬지 사이에는 더 많은 유전적 차이가 존재한다. 그 이유는 진화의 역사에서 아주 최근(약 10만 년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집단적으로 병목 지점을 통과했고, 그로 인해 작은 양의 유전적 변이를 가진 소수 종으로 후퇴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살아남아 재기하기 시작했고, 약 1만년 전 농경 발명 이후 인구 폭발을 거쳤다. 그 폭발로 인해 인류가 수적으로 희박했을 때 존재했던 유전자들이 무수히 복제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유전자가 많이 축적될 시간이 별로 없었다. - P256

병목현상을 겪은 후 여러 번 인종 간의 차이가 출현했다. 그러나 여러 민족의 피부나 머리카락의 차이가 아주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사실 우리의 직관이 경험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인종 간의 차이는 대개 기후에 적응한 결과이다. 열대 지방에서 피부의 색소는 일종의 햇볕 차단제였고, 툰드라에서 눈꺼풀은 고글이었다. 기후 요소에 직면하는 신체기관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직면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종간의 차이가 실제보다 더 뿌리깊다고 착각하기 쉽다. 기후에 적응해 피부색의 차이가 나타나는 한편, 이웃한 집단들을 내적으로 비슷하게 만드는 진화 작용도 전개된다. 희귀한 유전자가 풍토병에 대한 면역력을 제공할 수 있고, 그래서 양 집단의 구성원들이 짝을 짓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유전자는 압지로 빨아들인 잉크처럼 한 집단에서 이웃 집단으로 스며들게 된다.  - P257

보다 현실적인 경우에는 차별이 정당한가를 판단할 때 각 사안의 특수성에 의존해야 한다. 모든 10대 청소년에게 운전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책임감 있는 10대들에게는 공정하지 못한 일종의 연령 차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리적 성숙도를 측정하기 위해 테스트 방법을 개발하는 재정적 비용이나 분류상의 실수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비용―가령 10대들이 자신의 차를 숲 속에 감춰 놓는 경우―을감당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인종별 신상 파악― "흑인 운전자"에 대한 검문을 끔찍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2001년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부 테러 이후, 여론조사에 응답한 미국인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사람이 인종별 신상 파악-"아랍계 탑승객" 조사에 반대하지않는다고 답했다. 이 두 가지를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리화나 판매책을 체포하는 이득이 무고한 흑인 운전자에게 돌아가는 손해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목숨을 건 공중 납치범을 막는 이득은 아랍계 승객들에게 돌아가는 손해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비용 대 편익 분석은 또한 인종적 특혜를 정당화하는데도 이용된다. 사업장과 학교를 인종에 따라 다양화했을 때 얻는 이득이 백인을 차별하는 비용보다 크다는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 P265

 자칫 재능을 죄악으로 추락시켜 그 해결책을 재분배가 아닌 복수에서 찾을 수도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잔학 행위가 평등주의의 이름으로전개되었는데, 성공을 범죄의 증거로 여기고 부유층을 공격했다. 소련에서는 쿨락("부르주아 농민")이 레닌과 스탈린의 손에 절멸되었고, 중국문화혁명에서는 교사, 전(前) 지주, "부농"이 모욕과 고문과 살해를 겪었으며,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 하에서는 도시 거주자와 지식 전문가들이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죽거나 처형되었다. 교육과 기업 정신을 자산으로 해 번영을 이루었던 소수 민족들, 가령 동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인도인, 나이지리아의 이보스인,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중국인, 전 세계의 유대인이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조직적인 학살의 희생자가 된 것은 그들 중 두드러지게 성공한 사람들을 기생충과 착취자로 몰아붙인 결과였다. - P271

 시어도어 루스벨트, H. G. 웰스, 에마 골드만, 조지 버나드 쇼, 해럴드 라스키, 존메이너드 케인스, 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 마거릿 생어, 마르크스주의 생물학자 홀데인과 허먼 밀러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진보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우생학을 옹호했다. 왜 그들이 한 방향으로 줄을 섰는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보수주의 가톨릭과 성서 벨트의 신교도들이 우생학을 싫어했던 이유는 그것이 지식 · 과학 엘리트들이 신을 갖고 놀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우생학을 좋아한 이유는 그것이 현 상태보다는 개혁을, 자유방임주의보다는 행동주의를, 이기심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사회적 목표를 위해 국가의 개입을 확대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우생학이 미국과 서유럽의 강제 불임 수술로 이어지고 후에 나치 독일의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우생학을 포기했다. 우생학의 역사도, 인간 본성 개념으로 제기되는 도덕적 문제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좌파-우파 논쟁으로 압축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되는 두 가치관의 충돌이란 측면에서 새롭게 분석되어야 하는 경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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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세기 들어 빈서판이, 수호자들이 생각하기에, 완벽하게 믿는다고 공언하거나 아니면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하는 일종의 신성한 교의가 되었다는 것이 한 이유이다. 오로지 그런 흑백 논리를 신봉할 때에만, 행동의 어떤 측면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을 행동의 모든 측면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으로 바꿔치기 하거나 유전적 특성이 인간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유전적 특성이 인간사를 결정한다는 믿음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의 모든 차이가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신학적 필연성을 인정할 때에만 비유전적 요소에 기인한 비율이 내려가면 유전적 요소에 기인한 비율이 올라간다는 진부한 수학적 원리에 분노할 수있을 것이다. 마음이 빈서판일 필요가 있을 때에만, 우리가 인간 본성때문에 기쁠 때 찡그리기보다는 미소를 짓는다는 주장에 격분할 수 있을 것이다. - P219

두 번째 이유는 "급진적" 사상가들이 그들 자신의 설교에 갇혀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종차별, 성차별, 전쟁, 정치적 불평등이 논리적으로 박약하거나 현실적으로 틀린 것은 애초에 인간 본성에는 그런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나태한 논리에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발견은 인종 차별, 성차별, 전쟁, 정치적 불평등 같은 것들도 결국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것과 동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또한 그로 인해 그런 사실을 발견하는 이단자들을 깎아 내릴 필요성이 갈수록 커졌다. 과학적 논증의 평범한 기준들을 적용해도 소용이 없을 때에는 다수의 이익이 위태롭다는 이유에서 다른 기술을 동원했다. - P219

인간 본성 과학에 가장 끈질기게 반대해온 우파집단은 종교 부문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진화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마음의 진화도 믿지 않고, 비물질적 영혼을 믿는 사람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뇌 세포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와 관계가 깊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진화에 대한 종교적 반대는 몇 가지 도덕적 두려움에서 동력을 얻는다. 분명한 것은 진화라는 객관적 사실이 성서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의엄밀한 진실성을 훼손하고 그럼으로써 종교적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한 창조론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서가 생물학적으로 틀렸다면 내가 왜 도덕과 구원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믿겠는가?"
그러나 진화에 대한 반대는 성서를 직해하려는 욕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대의 종교인들은 성서에서 말하는 모든 기적의 엄밀한 진실성을 믿진 않지만, 인간이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더 큰 목적―즉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려는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간이 화학적 복제자들의 돌연변이와 선택의 우연한 산물이라면 도덕성은 기반을 잃을 것이고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충동에 복종하는 존재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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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란 참 이상하다. 목적도 마음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키코의 온갖 것이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을 잘 설득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설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남는다. 그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말의 의미 그 자체보다도 소리로서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유키코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유키코의 목소리를 모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유키코는 선생님한테도 각각의 사원들한테도 신뢰받았다. 온화하고 정확한 일처리가 그 목소리에 묻어났다. 그러니까 나는 유키코를 눈으로 좋지 않았다. 다만 귀는 유키코의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 P62

"건축가가 만든 것에는 크고 윤기 있는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듯한 느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선생님 건축은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어. 라고 할 정도의 소리랄까. 작은 소리를 감싸는작은 것이라고 할까."
"애당초 신앙의 소리는 조용하게 얘기되었을 거야. 원시 기독교 시대에도 억압된 신도들은 동굴 속 교회에서 속삭이듯이 얘기를 나눴겠지?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교회가 커지면서 바깥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어졌어. 목회자의 목소리도 낭랑해지고 교회 건축도 점점 장엄해지고, 파이프오르간도 성대하게 울리게 되었지. 현대건축, 특히 고층 빌딩은 그 연장선상에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 건축에 들어서면 아무도 큰 소리를 안 내게 되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촉감이라든가 부드럽게 들어오는 광선이라든가 늘 쓰는 사람이 한참 지나서 겨우 알아챌 수 있는 장치들은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것이나 같으니까, 사람목소리도 거기 맞춰 작아지지 아스카야마의 디테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중얼거림 같은 것인지도 몰라.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중얼거림을 알아차릴까 하는 문제는 있겠지만.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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