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20세기 들어 빈서판이, 수호자들이 생각하기에, 완벽하게 믿는다고 공언하거나 아니면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하는 일종의 신성한 교의가 되었다는 것이 한 이유이다. 오로지 그런 흑백 논리를 신봉할 때에만, 행동의 어떤 측면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을 행동의 모든 측면이 선천적이라는 믿음으로 바꿔치기 하거나 유전적 특성이 인간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유전적 특성이 인간사를 결정한다는 믿음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의 모든 차이가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신학적 필연성을 인정할 때에만 비유전적 요소에 기인한 비율이 내려가면 유전적 요소에 기인한 비율이 올라간다는 진부한 수학적 원리에 분노할 수있을 것이다. 마음이 빈서판일 필요가 있을 때에만, 우리가 인간 본성때문에 기쁠 때 찡그리기보다는 미소를 짓는다는 주장에 격분할 수 있을 것이다. - P219
두 번째 이유는 "급진적" 사상가들이 그들 자신의 설교에 갇혀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종차별, 성차별, 전쟁, 정치적 불평등이 논리적으로 박약하거나 현실적으로 틀린 것은 애초에 인간 본성에는 그런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나태한 논리에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부터,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발견은 인종 차별, 성차별, 전쟁, 정치적 불평등 같은 것들도 결국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것과 동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또한 그로 인해 그런 사실을 발견하는 이단자들을 깎아 내릴 필요성이 갈수록 커졌다. 과학적 논증의 평범한 기준들을 적용해도 소용이 없을 때에는 다수의 이익이 위태롭다는 이유에서 다른 기술을 동원했다. - P219
인간 본성 과학에 가장 끈질기게 반대해온 우파집단은 종교 부문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진화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마음의 진화도 믿지 않고, 비물질적 영혼을 믿는 사람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뇌 세포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와 관계가 깊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진화에 대한 종교적 반대는 몇 가지 도덕적 두려움에서 동력을 얻는다. 분명한 것은 진화라는 객관적 사실이 성서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의엄밀한 진실성을 훼손하고 그럼으로써 종교적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한 창조론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서가 생물학적으로 틀렸다면 내가 왜 도덕과 구원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믿겠는가?" 그러나 진화에 대한 반대는 성서를 직해하려는 욕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현대의 종교인들은 성서에서 말하는 모든 기적의 엄밀한 진실성을 믿진 않지만, 인간이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더 큰 목적―즉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려는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간이 화학적 복제자들의 돌연변이와 선택의 우연한 산물이라면 도덕성은 기반을 잃을 것이고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충동에 복종하는 존재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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