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제너는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23명에게 우두접종법을 실험했고, 마침내 1798년 우두 접종법이 천연두를 예방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논문에서 제너는 처음으로 우두접종법을 ‘백신 vaccination‘으로 명명했다.
19세기 말까지 천연두 예방을 위해 우두접종법과 인두 접종법이 모두 사용되었다. 특히 의사들은 인두 접종을 위해 진료 가방에 천연두에 걸렸던 사람의 피부 딱지를 가지고 다녔다. 천연두에 걸린 가족을 구하기 위해 편지 봉투에 피부 딱지를 넣어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피부 딱지가 아버지에게 빨리 도착하기를. 어제 아기의 팔에서 떼어낸 신선한 천연두 피부 딱지라서 또다시 잃어버리면 안 돼요. 이 정도면 열댓명은 충분히 접종시킬 수 있어요." 1876년 대도시에 거주하던 아들이 시골 마을에 사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제너는 우두 접종의 효과를 논문으로 입증했으며, 백신을 무상 공급하고 우두 접종법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우두 접종법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백신을 개선하여 더 많은 사람이 접종받을수 있도록 노력했다. 1840년 영국 정부는 백신법을 제정해 위험 부담이더 높은 인두 접종을 금지하고 백신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의무적으로 백신을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했고, 이로써 근대적 의미의 예방접종이 탄생했다. 제너의 업적은 100년 뒤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과 탄저병을 예방하는 진보된 개념의 백신을 개발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 P146

역사 이래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천연두 바이러스의 마지막 운명은 어떻게 될까. 1980년 천연두 바이러스가 사라진 뒤, 세계보건기구는 1993년을 끝으로 세계 모든 연구소에 남아 있던 천연두 바이러스 물질을 폐기하고 미국 질병예방센터 cdc와 러시아 벡터 VECTOR 연구소, 두 곳에만 보관하도록 했다. 그러나 천연두 바이러스가 이 두 장소에만 존재할 것이라고믿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저온에서도 생존할수 있기 때문에 어느 실험실 냉동고에 숨어서 잠자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개발도상국들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천연두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앨 것을 주장해왔다. 천연두 바이러스를보유한 두 나라 가운데 러시아는 천연두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만들수 있는 시설을 갖췄고 탄도미사일에 바이러스를 실은 생물학 무기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은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서라도 천연두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면 안 된다며 세계보건기구를 압박하고 있다.  - P150

비엔나 병원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는13년 동안 산욕열로 사망한 산모의 사망률을 조사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들이 관리한 제1병동의 사망률은 16%였는데, 조산원들이 담당했던 제2병동의 사망률은 2%에 불과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무릎을 꿇고빌면서 의사들이 관리하는 제1병동으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산모가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출산한 여성은 산욕열 발생률 자체가 매우 낮았다.
제멜바이스는 왜 사망률에 차이가 나는지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제1병동 의사들이 매일 아침, 전날 사망한 출산 여성의 시체를 부검하는 반면에 제2병동의 조산원들은 시체 부검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루는 동료 의사가 시체를 부검하던 중에 손에 상처를입고 패혈증으로 사망했는데 산욕열로 사망한 여성의 발병 원인, 경과와 놀랍도록 비슷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갑자기 산욕열에걸린 여성과 내 동료는 같은 이유로 사망했으리라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의사들이 시체를 해부하고 절개했던 손과 손가락으로 분만을 도우면 죽음의 독소가 출산한 여성의 생식기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병동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염소 액체 소독약으로 손을 소독하도록 했다. 그러자 사망률이 2%로낮아졌다. - P153

1955년 요오드 소독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요오드와 다른 화학성분을 결합시킨 포비돈 요오드가 개발되었다. 포비돈 요오드는 요오드가 천천히 분해되어 피부나 점막에 자극이 적으며 피부에 착색되지도 않는다. 머큐로크롬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포비돈 요오드를 ‘빨간약‘이라고 부르지만 포비돈 요오드의 실제 색깔은 갈색이다. 베타딘이라는 상표로도 잘 알려진 이 약은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를 죽이는 살균 작용이 뛰어나다. 손 소독제에는 7.5~10%의 포비돈 요오드 용액이 들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농도가 낮아질수록 살균 효과가 높아진다.
지난 180여 년 동안 많은 병원과 가정에서 요오드 소독제를 사용해왔지만 요오드에 죽지 않고 내성을 갖는 세균은 발견된 적이 없다. 여기서 소독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좋은지 그 기준을 엿볼 수 있다. 소독제는 다양한 병원성 세균 및 바이러스를 빠르게 죽이는 반면에, 사람에게 해가 없어야 하며, 물에 잘 녹아야 한다. 특히 몸에 직접 바르는 소독제는 자극적이지 않고 악취가 없으며 사용법이 간단할수록 좋다. - P158

2015년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항생제 소비 수준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감기나 독감에 걸려 병원에 가면 흔히 항생제를 처방한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자료에따르면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미국에서도 3분의 2가 넘는 환자가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처방받았다. 기침, 콧물, 목이 아픈 감기나 독감은 바이러스가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가아니면 항생제는 필요하지 않다.
항생제는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지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를 낫게 하는 약이 아니다. 병원은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줄이고, 정부는 항생제사용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 내성균이 나타날 위험을 줄여야 한다. 또한 매년 독감 백신을 맞고 손을 자주 씻으며 마스크를 써 독감을 예방하는 것도 불필요한 항생제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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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머니의 영혼은 어디 있을까요?
- 어느 영혼들처럼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자들을 찾아 떠돌고 있겠지. 어쩌면 나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미움을 샀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제 그런 걱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뭔지도 모르는 양심의 가책을 찾다가 지칠 대로 지쳤거든. 나는 끼니도 거른 채 괴로워했지. 내게 쏟아지던 욕설과 저주를 송두리째 감수했던 기억 때문에 밤새 지독한 고통에 시달렸어. 그러면 됐지, 이제 뭘 더………. 죽는날을 기다리며 주저앉아 있는데, 내 영혼이 간청하더구먼. 일어나라고, 질질 끌려 다닐망정 억척스럽게 살라고. 순간 나의 죄업을 씻어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것 같기도 했지. 하지만 이미 삶을 포기했던 나는 "모든 것은 여기서 끝난 거야. 나는 더 이상 이런 삶을 끌고 갈 힘이 없어."라고 말한 뒤에 입을 열어주었지. 나의 영혼이 떠나는 순간, 나는 느꼈어.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가 손바닥에 떨어지는것을. - P93

그 여자가 죽고 난 후에 땅이란 땅은 죄다 황무지로 변했지.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둔 땅을 바라보는 것처럼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일도 없더구먼. 마을에 불길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지. 남자들은 목구멍에 풀칠할 만한 곳을 찾아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했어. 나는 꼬말라가 온통 "잘 있어요!"라는 작별의 인사말로 넘쳐나던 날들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는 모습이 꼭 무슨 잔치를 치르는 것 같았으니까. 남자들은 다시 돌아온다며 처자식은 물론이고 세간까지 맡기고 떠났지.
어쩌다 처자식을 데려가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돌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다들 처자식은 고사하고 고향마저 잊어버린 것 같았고, 나처럼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뻬드로 빠라모가 죽는 날만 기다렸어. 그 양반이 죽게 되면 재산을 나눠준다는 약속 때문에 간혹 돌아오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그 양반은 죽지 않고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었어. 마치 광활한 메디아 루나 앞에 버티고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 P113

‘당신은 마치 뚜깐 같아.‘ 그 사람이 나에게 말했어.
‘또 한 마리의 뚜깐 말이야. 당신은 밤의 어둠 속에서, 침실의 모포 속에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잖아.‘
하지만 그 사람은 떠나버렸지.
나는 다시 돌아왔어. 늘 다시 돌아오던 그 바다로, 바다가 밀려나고 있어. 내 발목을 적시던 바다가 저만치 밀려나고 있어. 나의 무릎과 나의 허벅지를 적시던 바다가, 보드라운 두 팔로 나의 허리를 안고 가슴을 어루만지던 바다가. 어깨까지 차오르며 목을 휘감던 그 바다가 멀리 밀려나고 있어. 나는 그 사람의 품속에 안겨 있어. 영원히, 나는 격렬한 소용돌이에 휩싸인 채, 온몸을 내맡긴 채 격랑의 물결 위를 떠다니고 있어.
나는 그 사람에게 말했지. ‘바다로 나가고 싶어요.‘
그러나 그 사람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
나는 다음 날에도 바다에 있었어. 그 물결에 온몸을 내맡긴 채." - P134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종소리에 홀린 듯 도처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꼰뜰라, 아니 더 먼 곳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의 대열이 흡사 성지 순례 행렬 같았다. 그들중에는 곡마단이나 거리의 악사들도 끼어 있었다. 조문객이든 구경꾼이든,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들이 가까워지면서 무리를 지어 어울렸다. 그사이 장례식은 축제로 변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축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종소리가 그쳤지만 축제는 계속되었다. 그들에게는 한여인의 죽음과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고통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몰려든 사람들을 떠나도록 만들 방법 역시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별개 문제였다. 죽음은 이미 다른 일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 P161

‘이제 새로운 밤은 찾아오지 않아. 그는 유령들로 가득찬 밤의 세계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유령들과 함께 땅속으로 묻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제 곧 아분디오가 나를 찾아오겠지. 피투성이가 된 두 손으로 내가 거부했던 돈을 달라고 할 거야. 하지만 나는 그자를 피해 눈을 가릴 손이 없어. 그래서 그자가 하는말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날이 새면서 그자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자의 목소리마저 죽을 때까지.‘
그는 누군가의 손길이 자신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몸을ㅜ일으켜 세우는 느낌을 받았다.
- 저예요.돈 뻬드로.
다미아나가 말했다. 점심을 이곳으로 가져올까요?
- 아냐, 내가 가지. 지금 가고 있어.
뻬드로 빠라모는 그녀의 팔에 기댄 채 몸을 움직이려고 기를 썼지만,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무슨 말을 중얼거렸지만, 입 밖으로 토해 내지 못한 채 쓰러지고 있었다. 땅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무더기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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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성 폭력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플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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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1994년부터 피해자 보상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는 20여 년이 걸렸다. 수많은 사람의 건강과 삶을 망가뜨린 직접적인 가해자는 기업이지만, 정부와 전문가 집단, 언론에게도 책임이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왜 신속히 해결되지 못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려 한다.
사전 예방 단계인 1단계에서는 가습기 살균제를 시판하기에 앞서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우리 몸에 어떤 해를 입힐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정부 부처가 그 성분을 점검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했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 CMIT/MIT가 이미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이라는 이유로 인체 유해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미국에서 CMIT/MIT는 공업 또는 산림 분야에서 살균용 농약으로쓰이는, 인체 호흡기에 유해하고 독성이 강한 물질이었다. 또한 환경부는 카펫 항균제와 목재 항균제로 각각 제조 · 신고된 PHMG와 PGH가 유독물질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산림과 공업, 카펫 세정 · 살균용 화학물질이 어떻게 사람에게 직접 노출되는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 수 있었을까? 세정·살균용으로 허가된 화학물질을 인체 호흡기로 들이마시는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하려면 동물을 이용한 흡입 독성시험 자료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자료도 없고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판매되기 시작했다. 생활용품의 안전을 담당하는산업통상자원부는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제품이 안전함을 국가가 인증한다는KC마크를 부여하기도 했다. - P99

정부의 제도적 허점과 전문성이 결여된 판단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SK 케미컬은 영업 비밀이라며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애경과 유통을 담당했던 이마트에 성분명과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애경과 이마트는 원료가 된 물질이 무엇인지, 소비자에게 안전한 물질인지 확인하지 않고 제품을 판매했다. - P100

문제 해결 단계인 2단계에서는 폐질환 사망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하루라도 빨리 밝혀졌어야 했다. 2006년부터 원인을 알 수없는 폐질환으로 사망한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이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2007~2008년에도 유사한 증상으로 어린이가 사망한 사례가 질병관리본부에 잇달아 보고되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결국 5년이 지나도록 질병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폐질환은 바이러스 같은 세균, 유해화학물질, 생리적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하지만 국내 질병관리본부에는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질환을 다루는 전담 부서가 없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처럼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질환을 다루는 전문 부서가 따로 있었다면, 단기간에 원인을 밝혀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 P101

사후 조치 단계인 3단계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과의 관련성에 관한 정확한 규명, 가해 기업과 책임자 처벌, 피해 보상, 법적·제도적 보완을 통한 향후 대책 수립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고, 해당부처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으며, 언론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해야 할 전문가들은가습기 살균제가 어떻게 폐를 손상시키는지, 호흡기 이외의 다른 장기에 나타난 부작용은 없는지, 폐질환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대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옥시는 외국에 독성 시험을 의뢰하고 대형 로펌에 법률 지원을 받으면서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과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 P102

이러한 동서양의 아편 교역은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초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생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인도의 동인도회사를 거점으로 아편을 재배, 가공하여 중국으로 팔기 시작했다. 영국 상인을 통해 밀수된 아편은 청나라 부유층에서 하층계급까지 퍼져나갔다. 아편 중독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관련 범죄가 발생하는 등심각한 사회문제가 이어졌다. 이에 청나라 황제는 정부 관리 린저쉬林則徐를 파견해 아편을 몰수한 뒤 모두 폐기 처분했고, 마약 밀매상들을 홍콩으로 추방했다. 그러자 청나라에 아편을 수출해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던 영국은 청나라가 자유무역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아편전쟁을 벌였다. 영국의 실제 속셈은 전쟁에 승리해 중국 연안에 항구를 개방하게 하여 더 많은 아편을 중국에 파는 것이었다. 제1차와 제2차 아편전쟁은 청나라 조정의 부패 및 사회적 혼란으로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나라 조정은 린저쉬를 전쟁 도발 책임자로몰아 면직시켰고, 아편 무역의 합법화를 포함한 치욕적인 난징조약을 맺었으며 이후 패망의 길을 걸었다. - P104

헤로인이 진통제로 널리 쓰인 처음 몇 년간은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헤로인을 투여받은 환자들에게서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중독 현상이 나타났다. 환자들은 정신착란, 호흡곤란, 환각, 구토, 금단현상, 망상, 균형 감각 장애 등의 심각한 증상을 보였다.
의사들은 증상이 악화되자 더 많은 헤로인 주사를 놓았고, 그 결과 더욱 심하게 중독되는 환자들이 생겨났다. 병원에서 헤로인을 투여받다가 중독된 사람들은 통증이 없는데도 계속 헤로인을 찾았다. 약을 끊지 못한 사람들은 중독 증상에 고통스러워하며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19세기 말에 강력한 진통제로 각광 받던 합성 마약 헤로인은 우리몸에서 어떻게 작용하기에 심각한 중독을 초래하는 걸까? 헤로인은기침, 설사, 수면 장애 등에서 나타나는 심한 통증을 억제하는 데 가장 강력한 약이다. 헤로인은 뇌 신경세포 표면에 있는 특이한 단백 수용체와 결합함으로써 신경세포의 통증 신호를 차단한다. 다시 말해 단백 수용체는 뇌 신경세포 외부의 신호를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데, 헤로인이 통증 신호 전달을 차단함으로써 통증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헤로인을 지속적으로 투여받다가 투여를 중단하면 정신착란, 불안, 무기력, 현기증, 불면증, 기억력 상실, 느린 맥박과 같은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금단현상은 인간의 판단력과 행동을 조절하는 뇌의 도파민 수용체가 감소되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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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에 가면 물이나 음식이 잘 맞지 않아 갑자기 설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 필수품으로 사람들은 대개 지사제나 항생제를 챙기는데, 설사의 원인이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항생제를 먹는것은 좋지 않다. 더욱이 일부 항생제는 장내 세균 균형을 파괴해 유익한세균도 죽이기 때문에 설사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지사제는 유아나 어린이에게 쓰기에는 효과에 비해 위험성이 크다. 지사제를 먹으면 창자운동이 억제되어 체내 탈수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배변이 줄어든다. 그러면 우리 몸은 탈수 증상을 인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설사 치료가 지연될 수 있으며 창자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창자내 세균을 없애지 못해 해로울 수 있다. - P62

먼저 술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자. 우리가약을 먹으면 소화관을 통해 혈액으로 흡수된 뒤, 여러 장기에 영향을주기도 하지만, 간의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신장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한편 술은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90% 이상이 간에 존재하는 알코올 분해 효소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 acetaldehyde가되는데, 이때 보조인자NAD의 도움을 받는다. 계속해서 아세트알데히드는 알데히드 분해 효소ALDH의 작용으로 아세트산acetic acid으로 분해된다. 우리 몸에 흡수된 알코올은 뇌에 영향을 줘 기분이 좋아지고 취하게 만들며, 대사된 아세트알데히드는 심장박동을 빠르게 해 얼굴과 목, 온몸이 빨개진다.
유전적으로 동양인의 50%는 알데히드 분해 효소가 부족하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아세트알데히드가 혈액에 축적되어 얼굴에 홍조를 띠는 알코올 플러시 반응Alcohol Flush Reaction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알코올은 알코올 분해 효소에 의해 천천히 분해되지만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는 알데히드 분해 효소에 의해 빠르게 대사된다. 이 때문에 술을 마신 뒤에 혈액 내 아세트알데히드 농도는 알코올의 1000분의 1 수준으로 유지된다.
술 깨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알코올 분해 효소 또는 보조인자를 조절하는 등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 P65

2003년에 학술지 <알코올Alcohol>에 숙취의 원인에 관한 주목할 만한 학설이 발표되었다. 과음으로 인해 면역 항상성에 이상이 생기면서 숙취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면 면역 세포가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해 이물질의 침입에 대항하도록 한다. 하지만 사이토카인이 과다 분비되면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데, 이를 사이토카인 폭풍이라고 한다. 과음을하면 혈액에서 사이토카인이 많이 분비되고, 이럴 때 나타나는 증상과 숙취일 때 나타나는 증상이 비슷해서 과음에 따른 사이토카인 증가가 숙취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P67

또한 금주령은 술과 관련된 범죄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주류 밀매를 둘러싼 범죄를 유발했다. 영화 <대부Godfather>와 <로우리스Lawless>는 미국 금주령 시대의 사회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시카고의 갱단 알카포네는 맥주 밀매로 1927년부터 당시 화폐가치로 매년 6000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맥주 밀매가 천문학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통로가 되자 이를 둘러싼 갱단 간의 갈등이 심해져 알 카포네가 아일랜드 갱단 7명을 사살한, 발렌타인데이 학살로 불리는 끔찍한 사건이터지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1929년 말에 불어닥친 경제공황으로 인해 주류세를 걷어 정부 재원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금주령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1932년 미국 대선에서 금주령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금주령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 P71

중세 스위스의 화학자이자 의학도인 파라셀수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약과 독의 양면성‘에 관해 정의를 내렸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생각은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P77

파라셀수스가 "용량이 늘어나면 약이 독으로 변한다"고 주장한 것은 현재까지인류가 접해온 모든 약, 즉 약초 뿐 아니라 동물, 광물, 곰팡이에서 추출한 약, 화학적으로 합성한 약과 바이오 약에 적용된다. 치료에 필요한 약이라도 너무많이 먹거나 복용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몸의 다른 기관에 부작용이나타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 P78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오늘날 의약품 허가 심사 제도의 기틀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미국 의회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 허가와 감시 체계를 강화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첫 번째로 제약 회사는 신약이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반드시 임상 시험을 거쳐확인한 뒤 FDA에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FDA는 심사를 거쳐 허가를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료 심사 기간도 60일에서 180일로 늘렸는데, 이는 조급하게 시판허가를 내주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두 번째로 신약뿐 아니라 기존 의약품 관리에 대한 FDA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로써 1938~62년에 시판된 모든 약의 유효성을 다시 평가한 결과, 전체 약 가운데 40%가 효능이 없다고 판명되었고, 600여 개의 약이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세번째로 FDA는 약의 겉포장에 부작용을 표시하게 하고 처방 약의 광고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제약 회사는 약과 관련된 부작용 기록을 보관하고 신속하게 FDA에 보고해야 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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