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적 행동이 어떻게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개체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처음으로 제공한 사람은 영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이었다. 포괄 적합도 이론 또는 혈연 선택론kin selection theory 으로 알려진 해밀턴의 이론은 개체 수준에서는 엄연한 이타주의적 행동이 유전자 수준에서 분석해보면 사실상 이기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흔히 B>C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공식으로 알려진 해밀턴의 법칙Hanilton‘srule에 따르면 이타적인 행동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적응적 이득B, benefit 에 유전적 근친도r, genetic relatedness 를 곱한 값이 그런 행동을하는 데 드는 비용C, cost 보다 크기만 하면 그 행동은 진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연히 이타적인 행동이 진화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 P208

이 논문에서 해밀턴은 이를 테면 개미 사회에서 일개미들이 왜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고 어머니인 여왕개미로 하여금 모든 번식을 도맡아 하도록 평생 돕기만 하는지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두 일개미 자매는 어머니인 여왕개미로부터는 우리 같은 배수체 생물과 마찬가지로 50퍼센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그 어느 날 혼인비행 때 당신의 정자를 어머니의 몸속에 넣어 주곤 세상을 떠난 아버지 수개미로부터는 그의 유전자 전부 100퍼센트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형제자매들끼리 평균 50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배수체 생물과 달리 평균 75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만일 일개미가 스스로 자식을 낳는다 하더라도 자식에게는 자기 유전자의 50퍼센트밖에 남겨 주지 못한다. 따라서 개미 사회의 번식을 순전히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스스로 번식을 하여 자기 유전자의 50퍼센트를 남기는 것보다 여왕개미를 도와 자매인 일개미를 낳게 하여 자기 유전자의 75퍼센트를 남기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되기 때문에 스스로 번식을 포기하는 이타적 행동이 진화한 것이다. - P212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의 경우, 사실상 개체들이 직접 자신들의 복사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후손에 전달되는 실체는 다름 아닌 유전자이기 때문에 적응 형질들은 집단을 위해서도 아니고 개체를 위해서도 아니라 유전자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에 도킨스는 개체를 ‘생존 기계 survival machine‘라부르고, 끊임없이 복제되어 후세에 전달되는 유전자, 즉 DNA를 ‘불멸의 나선immortal coil‘이라고 일컫는다. 개체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고 말지만 그개체의 특성에 관한 정보는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생명, 적어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의 역사는 유전자의 역사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체들이 태어났다 사라져 갔어도 그 옛날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탄생하여 신기하게도 자기와 똑같은 복사체를 만들 줄 알게 된 화학 물질인 DNA와 그의 후손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엄청난 생물다양성을 창조해 냈다. 각각의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분명히 한계성ephemerality 을 지니지만 수십억 년 전에 태어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DNA의 눈으로 보면 생명은 홀연 영속성 perpetuity 을 띤다. 지구의 생명의 역사는 DNA라는 매우 성공적인 화학 물질의 일대기이다.
- P215

그러나 결국 유전자도 개체의 번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복사체들을 퍼뜨릴 수 있다. 한 개체 내의 유전자들의 운명은 그 개체에게 달려 있다. 다윈의 고민 두 가지에 대한 분석을 다룬 저서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y」 에서 헬레나 크로닌Helena Cronin은 다음과 같이설명한다.

유전자들은 스스로 발가벗고 자연 선택의 심판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꼬리나 가죽, 또는 근육이나 껍질을 내세운다. 그들은 또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이나 기막힌 위장술, 배우자를 매료시키는 힘, 훌륭한 둥지를 만드는 능력 등을 내세운다. 유전자들의 차이는 이러한 표현형phenotype의 차이로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표현형적 변이에 작용함으로써 유전자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들은 그들의 표현형적 효과의 선택 가치selective value에 비례하여 다음 세대에 전파된다. - P222

자연 선택은 유전자, 개체, 집단, 그리고 심지어는 종의 수준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적응은 표현형으로 나타난다. 선택의 대상과 결과는 종종 다를 수 있다. 철학자 엘리엇 소버Elliot Sober는 아이들이가지고 노는 ‘선택 장난감selection toy‘를 가지고 이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했다.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이 장난감에는 맨 위층으로부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작은 크기의 구멍들이 뚫려 있다. 만일 가장 작은 구슬들의 색깔이 녹색이라면 맨 아래층에는 결국 녹색 구슬들만 모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제일 작은 구슬을 선택한 것이지 녹색 구슬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선택의 대상selection은 작은 구슬이었는데 결과적으로 selection for 작은 구슬들의 색깔인 녹색도 선택된 것이다. 자연 선택은 표현형에 작용하고, 그 결과로 후세에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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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진화에 가장 구체적인 작업가설을 제공한 것은 흥미롭게도 ‘기생충 또는 병원균-숙주 공진화 가설‘이다. 대부분의 기생 생물들은 세대가 짧고 무성 생식을 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공격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유성 생식을 하는 숙주 생물이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 바로 성이라는 설명이 포괄 적합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으로 우리에게 유전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있게 해 준 윌리엄 해밀턴의 이른바 ‘기생충 가설 parasite hypothesis‘의핵심이다.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생산하면 기생 생물의 공격 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다. 어느 기생 생물이 숙주 개체군에서 가장 흔한 유전형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 공격을 견뎌내는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성 생식이 보다 유리한 전략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면 기생 생물은 또다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어느 특정한 유전형을 공격하고 숙주는 새로운 면역력을 갖춘 새로운 유전형을 만들어 내곤 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된다. 기생생물과 숙주 생물은 일종의 진화적 군비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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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도 있었지만 여학생도 있었다. 여학생의 깨끗한 운동화와 흰 목양말과 건강한 종아리가 눈부셨다.
그 나라에도 물론 도시에는 학교도 있고, 스쿨버스까지 다니고 있는 걸 보았지만, 두 다리 외의 교통수단이 없는 고지의 농촌에서 그런 대처의 학교까지 가려면 젊은 건각으로도 두세시간은 보통이라고 한다. 남존여비가 더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저개발국에서 아들도 아닌 딸을 저 정도로 가꾸어 학교에 보내려면 본인의 각오도 비상해야겠지만 그 어머니의 노고는 도대체 얼마만한 것일까. 그건 엄마들이 딸에게도 꿈을가지기 시작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나는 엄마들이 아들에게거는 기대는 한 집안의 이익과 노후대책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인 데 비해 딸에게는 이 세상을 바꾸기를 바라는 더 원대한 꿈을 건다고 믿고 있다. 내 어머니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딸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면서 귀 따갑게 하신 말씀이 ‘너는 나 같은 세상 살지 마라‘였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세상을 바꾸라는 비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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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 점심시간 마침내 침묵의 계율이 풀렸다. 그동안 아무도 침묵을 갑갑해하거나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건만 혀가 풀리자 식당 안은 마치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포옹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 터뜨린 폭죽이었다. 침묵이 피워낸 꽃이었다.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은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만약 갇혀 있었다면 결코 그런 해방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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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장류 중에서 인간은 일부일처제의 성향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는 번식기가 되면 암컷의 체의 생식기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면서 번식할 준비가 되었다는 걸널리 광고한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언제 배란을 하는지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리 남편이라도 자기 아내가 언제 배란을 하는지를 알려면 날짜를 세는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은폐된 배란concealed ovulation‘이라고 불리는 이 독특한 진화 현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 수컷들처럼 여러 암컷에게 관심을 보이다 보면 이리저리 배란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남성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은 한 여인을 선정하여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되도록 자주 잠자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래야 그 여인의 배란기에맞춰 짝짓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자신이 그 여인이 낳는아이의 아버지일 확률이 높아진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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