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판탈레온 판토하는 그녀 뒤를 쫓아내려가면서 그녀의 불그스레한 등과 통통한 엉덩이, 힘줄이 불거져나온 종아리를 본다. "여긴 일은 많지만 돈은 그다지 많이 못 받는 곳이야 그런데 뭐 때문에 이토록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많은 거지? 근사하게 생긴 짱꼴라 포르피리오 때문인가?"
"안정적이기 때문이에요, 판토하 씨." 추추페는 머리로 울긋불긋한색깔의 옷들을 가리킨다. 그 옷들은 마치 벌떼처럼 떼를 지어 웅성거린다. "거리에서 하는 일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아요. "세탁부‘가 행운의 하루를 보내면 그 이후 사흘은 공쳐야 해요. 휴가도 없고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죠."
"‘코딱지‘는 자기 매음굴에서 무자비해요." 젖빨개는 호각을 불어 여자들을 조용히 시키고 가까이 오라고 지시한다. "그 작자는 아가씨들을 배고파 죽게 만들고 함부로 다뤄요. 그리고 피곤해하거나 불평하는 기색이 보이면 즉시 내쫓고요. 배려라든가 인간성이 어떤 건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여기는 다르지요." 추추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항상 손님이 있고, 근무 시간은 여덟 시간이고, 매우 잘 조직되어 있어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심지어 벌금을 내라고 해도 대원들이 아무런 불평도 안 하고 참는 거 보셨죠?"
"사실 첫날은 약간 걱정됐어." 레오노르 부인은 빵을 잘라 버터와잼을 바르고는 한입 물어 맛을 보면서 씹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않니? ‘아기 빵‘은 이키토스에서 최고로 맛있어. 얘야, 한번 맛보지않을래?"
"좋소. 그럼 네 명을 뽑도록 하겠소." 판탈레온 판토하가 지시한다. "뭘 기다리나? 어서 줄을 세워, 짱꼴라."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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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면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핀 쪽으로. - P192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 P212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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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버스에서 터져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시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밤처럼.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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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법칙을 이루는 가닥들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겉보기에 개연성이 매우 낮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이 법칙의 힘은 그 가닥들이 함께 작용할때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부터 그 가닥들을 하나씩 살펴볼 텐데, 출발점은가장 중요한 가닥 중 하나인 ‘필연성의 법칙aw of inevitability‘이다. 이 법칙은 단순하며 곧잘 간과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일의 바탕에 깔려 있다. 필연성의 법칙이란 ‘무슨 일인가는 반드시 일어난다‘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 P98

로또에서 복권을 모조리 사는 것은 필연성의 법칙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고 큰돈을 버는 방법 중 하나다. 이 법칙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방법들 중에 조금 더 신뢰할 만한 것은 주식 정보 사기다. 물론 이 방법을 실행하려면 먼저윤리적인 문제들을 숙고해야 할 텐데, 이 점은 일단 제쳐두기로 하자. 이 사기는 필연성의 법칙과 ‘선택의 법칙‘을 함께 이용한다. 선택의 법칙은, 간단히 요약하면 만일 어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오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주가의 변동을 단지 우연으로 10주 연속해서 바르게 예측할 확률은 2분의 1을 10번 곱한 결과와 같다. 즉 1,024분의 1이다.
이제 이런 신묘한 예측을 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나는 우선 주식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어느 주식이든 상관없다. 다음으로 나는 순진한 잠재적 희생자 1024명을 선정해서 그들에게 그 주식의 가격이 다음 주에 어떻게 변동할지에 대한 예측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그들 중 절반에게는 주가가 내린 것이라는 예측을 전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전한다. 주가는 오르거나 내릴 수밖에 없으므로, 잠재적 피해자들의 절반인 512명은 틀린 예측을 받고 나머지 절반인 512명은 바른 예측을 전해 받은 것이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면 나는 틀린 예측을 받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바른 예측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집중한다. 나는 그들 중 절반인 256명에게는다음 주에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전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내릴 것이라는 예측을 전한다. 이번에도 주가는 오르거나 내릴 수밖에 없으므로, 잠재적 피해자 256명은 바른 예측을, 나머지 256명은 틀린 예측을 전해 받은것이다. 그러면 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틀린 예측을 받은 사람들은 제쳐두고나머지 절반에 집중한다. 이런 식으로 지난주에 바른 예측을 받은 사람들에새로운 편지를 보내는 일을 매주 반복한다. - P104

우연의 법칙의 셋째 가닥인 ‘아주 큰 수의 법칙‘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준다. 이 법칙에 따르면,

아주 많은 기회가 있으면, 아무리 드문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칙은 ‘큰 수의 법칙‘과 전혀 다르다. 3장에서 살펴본 큰 수의 법칙은, 규모가 큰 표본들의 평균은 규모가 작은 표본들의 평균보다 덜 요동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평생 동안 단 하나의 클로버 줄기만 보았는데 거기에 잎이 4개 달려 있다면 당신은 깜짝 놀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작위로 선택한 클로버가 네 잎 클로버일 확률은 약 1만 분의 1이니까 말이다. 그러나클로버 잎을 살펴보는 것이 당신의 취미라면, 당신은 네 잎 클로버를 몇 번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풀밭에 갈 때마다 네 잎 클로버를 찾으려고주위를 꼼꼼이 살피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네 잎 클로버를혼자서만 찾지 않고 당신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찾을 가능성이높다. 또한 네잎 클로버를 찾는 사람은 당신과 당신의 동호회 말고도 당연히 더 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네 잎 클로버를찾으려 애써왔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특정 시간에 어딘가에서 누군가가네 잎 클로버를 발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아닌 게 아니라, 네 잎 클로버를많은 사람들이 자주 탐색한다고 전제하면, 누군가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이 사실은 거의 불가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 P109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터무니없이 낮게 추정하게 된다. 즉 실은 개연성이 매우 높고 심지어 거의 확실한 사건을 개연성이 아주 낮은 사건으로 착각하는것이다. 우연의 법칙의 한 가닥인 ‘조합의 법칙‘은 그런 상황에서 기회의 개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착각을 유발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예로 ‘생일 문제‘가 있다.
••••••
그러나 이것은 틀린 계산이다. 왜냐하면 방금 얻은 확률 누군가가 당신과 생일을 공유할 확률은 생일 문제가 요구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일이 같은 두 명이 있을 확률에 관한 것이다. 이 확률은 당신과 생일이 같생일 문제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든지 상관없이 그저 자기들끼리은 타인이 있을 확률을 포함한다. 내가 위에서 계산한 것은 후자다. 그러나전자는 두 명 이상의 타인들의 생일이 당신과는 다르지만 자기들끼리는 같을 확률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합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당신과 생일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는 타인은 -1명뿐이지만, 방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두 명을 뽑아서 만들 수 있는 쌍의 개수는 총 nx (n-1)/2이다. 이 개수는이 커지면 급격히 증가한다. n=23이면, 이 개수는 253으로, (n-1)=22보다 10배 넘게 크다. 요컨대 방안에 23명이 있다면 가능한 쌍은 총 253개인데, 그중에 당신을 포함하는 쌍은 22개뿐이다.
이제 23명의 생일이 제각각 다를 확률을 따져보자. 두 명이 있다면 첫째사람과 둘째 사람의 생일이 불일치할 확률은 305 다. 다음으로 이 두 명의 생일이 불일치하고 또한 셋째 사람의 생일도 이들 각각의 생일과 불일치할 확률은 3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 명의 생일이 각각 다르고 또한 넷째 사람의 생일도 이들 각각의 생일과 다를 확률은 364/365 x 363/ 365 다. 이 추론을 계속 이어가면, 23명의 생일이 제각각 다를 확률은 다음과 같다.
364/365×363/365×362/365•••×343/365이 곱셈의 결과는 0.49다. 23명의 생일이 다 다를 확률이 0.49이므로, 이들 중에 생일이 같은 사람들이 있을 확률은 1 빼기 0.49, 곧 0.51 이다. 보다시피 2분의 1보다 더 크다. - P114

동물들이 지진에 앞서 발생하는 모종의 지반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어 왔지만, 시민 보호를 위한 국제지진예보위원회는 그런 예측력이 존재한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에는아주 큰 수의 법칙의 존재와 미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조언할 수 있을 것이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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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그 말을 절반은 믿었습니다. 죽을수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겠지만, 어쩌면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뿐 아니라 조원들 대부분이, 특히 어린 친구들은 더 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도부를 이끌었던 대변인이 전날 외신기자들을 만나 했다는 말을 우리는모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패배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반드시 죽을 것이며,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지요. 고백하건대 나에게 그런 초연한 확신은 없었습니다.
김진수의 생각에 대해선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리라고 예상하면서도 도청 밖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왔던 걸까요. 아니면 나처럼,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도청을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던 걸까요. - P113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 P114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넣으며 한 남자애가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P119

그후 우리는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서로가 자격증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를 내고, 빚이 생기고, 다치거나 병을 얻고, 정 많고 서글서글한 여자를 만나 잠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믿고,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무너뜨려 다시 혼자가 되는 비슷한 경로를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처럼 지켜보는 사이 십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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