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프로젝트를 위해 무엇이 부정되는가? 데이비드 엥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는 배제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공식 역사로부터 아시아인들의 몸을 배제하고, 미국으로의이주에서 아시아인들의 몸을 배제해온 역사라고. 엥은이런 누락을 "존재를 흔적 없이 지워버리겠다고 위협하는결핍"이라고 일컫는다." 엥의 목록에 추가해야 하는 다른 배제들도 있다. 아시아 이민자들은 애당초 이주를 촉발한 트라우마로 얼룩진 역사로 인해 겪는 슬픔을 부정당할 뿐 아니라 "인종화된 타자를 배제하면서도 붙들고 있어야만" 그 민족적 이상이 유지되는 나라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얼룩진 출발로 인해 겪게 되는 슬픔 역시 부정당한다. 아시아이민자들은 동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결코 동화에 닿지못하는 "거의 백인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에 특권을 부여하는 지배적인 인식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달고 사는 뿌리 깊은, 무형의, 심리적 문제"에 시달린다. 이들은 자신의 슬픔을 부정하면서 존재가 지워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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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윤금이라고 하는 기지촌 성노동자가 말싸움중에 한 손님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기지촌에서 살해당한 성노동자는 윤금이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은과잉 가시화되었고, 이 사건은 미군이 한국 성노동자에게저지른 범죄 때문에 한국 재판으로 인도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한미관계에 전례가 되었다." 목숨을 잃은 윤금이는 김현숙의 말을 빌리면 "한국 여성의 몸을 상대로 자행된 제국주의적폭력의 물질적 증거가 되어 "젠더와 성 정치를 논의하기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물질적 증거‘는 분명 이 사건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양공주는 그 생명이 기지촌이라고 하는 게토 안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 죽음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없다고 여겨지는 일회용품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은 일반 대중의 눈에는 띄지 않았다. 하지만윤금이 사건은 ‘주한미군의 윤금이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소속된 광범위한 단체들의 지원을 받았다. 이 위원회는 나중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이어졌다. 1980년대와1990년대에 미국과 한국 정부를 향한 적개심이 커지면서 양공주라는 인물에 반제국주의적 욕망이 가득 들어찰 수있는 조건 역시 확대되었다. 윤금이 사건은 피식민국가의 상징인 양공주가 수치심 때문에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던성노동자에서 환대를 받으며 귀향한 조국의 딸로 탈바꿈하는전기가 되었다. 그 사건은 한국의 파열된 과거로 회귀하는 또다른 순간이기도 했다. - P203

그래서 이제는 이 여자를 바라봐야하는 건, 이 여자를바라보면서 남한 민중이 국가의 탐욕에 어떻게 팔아넘겨지고있는지,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에 의해 어떻게 짓이겨지고있는지까지 시야를 넓혀야하는 건 정치적 의무였어.
죽은 양공주의 이미지는 이 사건을 떠들어대는 운동가들에의해 널리 유통되었지. "이 여성의 몸이 발견된 환경이너무 참혹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그들 스스로주장하면서도 말이야. 너무 잔인하게 살해당해 거기에 생긴모든 시시콜콜한 상해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인 여자의 몸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언어는 이런 식이었지. "여자의 자궁안에 맥주병 두개. 코카콜라 병 하나가 질을 관통하고 있음.
우산이 직장 안으로 27센티미터 들어감. " "여자의 알몸이 "증거를바닥에 늘어져 있음. (...) 몸과 얼굴은 피범벅임.
훼손하려는 시도에서 (범인은) 여자의 입엔 부러진 성냥을채워 넣었고 몸에는 흰 가루세제를 뿌렸다. " 하지만 여자를 보이게 하려는 이 시도 속에서 여자는 다시 한 번 삭제되었어. - P205

하지만 윤금이 살인 사건 이후 기지촌 매춘부들은 반미담론에서 "한국인과 한국 여성들의 집단적인 고통을 상징하는" 군사 지배의 희생자로 노출되었다. 김현숙의 주장에 따르면 양공주에게 이런 상징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기 삶의 의미를 협상하는 기지촌 여성의 행위자성을 부정한다. 양공주의 몸위에서 이데올로기 전투가 일어나면서 양공주가 한반도의 포퓰리즘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고, 이에 따라 여기저기 퍼날라지는 양공주의 이미지는 갈등 정치의 상징인 양공주가 디아스포라를 경유하면서 더욱 굴절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양공주라는 인물을 두고 디아스포라 학계는 억압받는 자의 몸을 복화술사의 헝겊 인형처럼 사용하는 반체제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모국의 정치에 간여하고픈 긴장된 욕망을 드러냈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에게 양공주는 한인 디아스포라내의 여성 주체성에 관한 의미 협상의 장이 되었으며, 여성주체에게 자신의 의미를 협상하는 역량을 부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심하게 만들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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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바라보다가 큰 한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똑바로 섰다. 나처럼 샘의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그가 말했다.
"안녕, 루이자 클라크." - P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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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성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인 양공주는 아마 한국전쟁 기간 동안 처음으로 시야에 들어왔을터이지만 이 인물은 ‘위안부‘라는 형태로 이미 그곳에 존재했다. 양공주의 시작은 불확실하고 그 발달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모호하다. 하지만 기지촌 매춘에 관한 최근의 문헌들과 위안부여성 및 기지촌 초기 세대 여성들의 서사 모두가 이 두 시스템 또는 두 몸을 깔끔하게 가르는 경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커밍스에 따르면 미군이 1945년 9월에 한국을 점령했을 때 이들은 일본이 한국에 만든 위안소 역시 점령하여 그곳에 배치된 여성들도 함께 넘겨받았다. 이와 유사하게요시미 요시아키吉見明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군의 폭력‘에 관한 뜬소문이 맹위를 떨쳤고 점령군을위한 ‘완벽한 위안소 시설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라는 요구역시 그랬다"고 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일부 여성의 몸을 제공함으로써 그 외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 P171

존 라이John Lie는 20세기 한국에서 성노동이 발전해온 궤적을 추적하면서 전근대/식민지 이전 시기에 엘리트 지주계급을 위해 한정된 여성 계층이 수행하던 성노동이 식민지시기와 식민지 이후 시기에 상업화되고 군사화된 성노동으로 어떻게 변화해갔는지를 분석한다. 일본의 한국 식민화는 이나라에 근대화를 가져오고, 따라서 성노동의 계층 시스템을 제거했지만 두 가지 새로운 형태의 매춘을 등장시켰다.
사업가와 정부 관료들을 위한 상업화된 성노동과 일본군을위해 마련된 ‘위안소‘에서 수행되는 성노동이 그것이다. 라이는기지촌은 일본 위안소의 연장선이라는 입장을 보강하면서이렇게 말한다. "동북아 지정학에서 미국의 지배는 남한 국내의 성 경제에서 미군(1945년에는 사실상 모든 남성)의 특권적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 미국의 지배하에서 주요 성노동 조직은 주한 미군을 위해 일했다. 식민지 시기에 한국 여성들은 일본식민지 지배자들을 위해 일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에게 유흥을 제공했다." 미 군정은 1946년에 공식적으로 매춘을 금지했지만 1953년까지 한국에는 35만 명의 매춘부가 있었고 이들 가운데 60퍼센트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미군 기지를중심으로 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캐서린 문에 따르면 "일본군 성노예들은 한국 내 미군 대상 매춘의 역사적 원형으로 기능한다." - P185

여성의 성노동을 국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한국에서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외국인을 위한 매춘은 1970년대초에 들어서야 한국 정부로부터 적법성을 얻었고, 정희 세라 서에 따르면 이제는 "이 나라의 연간 예산보다 더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황영주는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현재의 매춘 시스템"은 "국가 폭력의한 양상으로서 매춘, 가부장제, 군사주의가 결탁한 뿌리 깊은 결합 관계"에서 비롯된 "더 큰 실천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성과 국가에 관한 전통적인 서사를 살피면서 "여성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만 그 기여를 인정받아 왔다. (...) 일상적인 시기에 여성은 종종 망각, 배제 또는 주변화되었지만 국가적인 위기나 전쟁 기간에는 여성의지위가 국가에 의해 ‘승격‘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초에 기지촌 성노동자들을 ‘민간 외교관‘이라 부른 사례는 국가가 압박을 받고 있을 때 전형적으로 주변화되어있던 여성들이 어떻게 ‘승격된‘ 지위를 획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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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최초의 갈등이었던 한국전쟁은 미래에 있을 전쟁을, 특히 브루스커밍스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훌륭한 반공 관리자로서의역량"을 시험하는 현장 역할을 했다. 베트남은 이미 1950년대부터 거론되고 있었고,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개발된전쟁 기술들은 나중에 베트남과 이라크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출발대이자, 이미 일본 식민 지배자들이 개시한 것을 지속하는 연장선이었다. 가령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의 연합국들이 주도한 전범 재판에서 일본은 다수의 위안부 여성을 비롯한한인 강제징용자들의 몸을 대상으로 생물학 전쟁과 고문 기술을 시험한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셸든 해리스SheldonHanis에 따르면 일본은 이 기술을 미군과 공유하는 조건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은 이후 이 기술들을 한국전쟁 기간동안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다시 적용했다.
한국전쟁은 다른 여러 전쟁들과 유사한 점이 많긴 하지만,
이를 다룬 대부분의 학술적 성과들은 이 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일지 모르는 것을 소홀히 다뤄왔다. 그것은 바로 파괴의 규모와 강도가 여러 가지 면에서 20세기의 다른 어떤전쟁보다 더 참혹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훨씬 많은 목숨을 앗아가긴 했지만 부수적인 피해의 비중은 한국전쟁이 더 컸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민간인 사망자가 40퍼센트였던 데 비해 한국전쟁에서는 사망자의 70퍼센트가 민간인 사망자라는 추정도 있다. 베트남전쟁은 비무장 민간인을 겨냥하여 야만적인 전술을 수행한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한국전쟁에서도 동일한 전술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되었고, 그로 인해 훨씬 단기간 동안 더 많은 사망자를 집약적으로 발생시켰다. 사르콘웨이-란츠Sahr Conway Lanz는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전쟁에 관한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의 비용을 대체로 간과해왔다. 그들은 한국전쟁의 만행에, 그것이 야기한 참상에, 그 갈등이 한국인들에게는 절대 제한된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대부분의 전쟁 사학자들은 역사를 서술하면서 항공기에 의한 파괴,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 미국 참전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피해, 그리고 게릴라전으로 인해 UN군에게 대두된 문제들을 각주로 남겨두었다. - P103

아니어도 최소한 연루되어 있었다. 커밍스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게 아니었다. 많은 특별 진술과 주장이 그와 반대임을 보여준다. 만일 전쟁이 그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김일성 또한 그때 ‘전쟁을 개시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그 시점을 반추해서 살펴보면 내전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다가온다는 진실을 서서히 더듬더듬 깨닫게 된다. 내전은 주변 모든 사람의 탓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비난의 대상 중에는 한국을 생각없이 분단시켜 놓고 나서 식민지적인 정부 기구를 다시 수립한 미국인들과 거기에 공조한 한국인들도 충분히 포함된다.

커밍스는 여기서 사실상 미국의 개입으로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1945년 9월 8일 이전에 시작된 자생적인 독립운동 세력이 무력화되고, 일본에 협력한 한국 관료들이 처벌은커녕 외려 보상을 받고, 한반도가 소련과의 권력 투쟁을 위한 경기장으로 탈바꿈하여 무장한 저항군이 세를 키울 맹아가 형성되었다는점에서 한국전쟁으로 비화한 ‘내전‘은 미군의 개입으로 악화되었음을 암시한다. 전쟁사학에서는 다양한 사항을 놓고 논란을 벌여왔지만 그 와중에도 문화적 트라우마가 한반도의 거의 전 인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있어서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 P110

두 나라의 협력이라는 이런 줄거리는 미국을 늘지배적인 남성-한국군에게는 형, 국제결혼의 로맨스에서는남편, 그리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는 아버지ㅡ으로 그리는 가족 관계 비유에 의지한다. 한국전쟁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베트남전쟁과 닮았지만, 베트남전쟁이 미군의 실패한 남성성의 사례였다면 성공적인 구출 작전이라는 한국에 관한 서사는국가들로 이루어진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회복시킨다.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통일 운동가 박성용의 말을 빌리면 "미국인들은 전쟁에서 미군이 용맹함을 뽐낸 이야기를 듣는 데 익숙하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이 미군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전 가운데 하나였다는 신화를, 잔혹 행위는 자국 군대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에의해 자행되었다는 신화를 믿는다. 이 신화는 미군이 진실을 감추거나 위장함으로써 탄생한 것이다." - P115

<민간인 피난민 대상 기총소사 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1950년 7월의 어떤 문서에서 터너 로저스 대령 Colonel Turner Rogers은 이렇게 우려를 표명했다.
"민간인 대상 기총소사와 관련된 우리의 작전은 과한 주목을 받을 게 분명하고 미 공군과 미국 정부를 곤란하게 만들 수있다. 공군은 민간인 사상을 방지하기 위해 신중하게 작전을 진행하는 대신 피난민 기총소사와 민간인 학살과 가옥 파괴를 이어갔다. 1950년 여름이 끝날 무렵, 워싱턴 DC의 군 홍보실로 한국 내 미국 폭격기들이 "무차별적"이라는 소문이 전해졌다. 결국 펜타곤은 한국 내 미군들에게 부정적인 보도를 피하기위해 촌락의 폭격을 더 이상 기록하지 말고 그것을 "군사적인 표적"이라고 부르라고 권고했다. 한국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산업적인 표적이나 군사적인 표적이 너무 없다는 것, 이런 표적은 대부분 전투 초기 몇달만에 파괴되었다는 점이었다. 한 UN 간부가 1951년 8월 보고한 대로, "서울에서 (...) 극동에서 가장 근대적인 도시 중하나인 그곳에서, 산업 시설의 85퍼센트, 사무 공간의 75퍼센트, 생활공간의 50~60퍼센트가 파괴되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미 공군 작전 요약서는 적에게 점령당했다고 판단될 경우 마을 전체를 주기적으로 잿더미로 만들고 도시에 "포화 처치"를 가하는 "초토화 정책"을 이행해, 그로부터 종종 "탁월한 결과"를 얻었다고 보고했다. - P131

전쟁 심리학자 데이브 그로스먼Dave Grossman에 따르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때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죄책감 반응을 가로막는 것은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인종적인 차이, 그리고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에대한 믿음이다. 군사적인 수사를 통해, 그리고 1950년대미국 대중문화를 통해 구축된 ‘오물gooks‘이라는 인식은 한국인이 인종적·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므로 남측에서는 구해주고 북측에서는 말살시켜야 한다는 관념을 반영한다. 하지만 피난민들이 갈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꾸준히 이동하는 통에 북과 남은 사실상 구분이 불가능해졌다. 공산주의로부터구조되었다던 바로 그 한국인들이 미국과 UN군에 의해학살당하고 남한군과 미국군에 의해 정치수로 수감되었다.  - P135

트라우마는 안정된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감각을 항시 흔들어놓는다는 점에서 기억을 소개시킨다. 기억은 위협을 당할때마다, 트라우마가 되돌아올 것 같다거나 새로운 트라우마가 일어날 것 같다는 감각이 있을 때마다 도망갈 태세를 취한다. 물론 재앙이 임박했다는 이런 감각은 망상이다. 트라우마는 절대로 완전히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절대 도착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일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트라우마는 어떤 끈질긴 과거의 효과로서 현재 안에 이미깃들어 있다. 트라우마를 입은 주체는 끊임없이 뿌리 뽑힌 상태에 있다. 그는 전에도 그곳에 있어보았다는 점에서 익숙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반복의 힘을 통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장소는 원래의 장소도 최종 목적지도 아니며, 그를 실패한 기억과 불완전한 망각 사이에 붙들어둘 뿐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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