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 윤금이라고 하는 기지촌 성노동자가 말싸움중에 한 손님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기지촌에서 살해당한 성노동자는 윤금이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은과잉 가시화되었고, 이 사건은 미군이 한국 성노동자에게저지른 범죄 때문에 한국 재판으로 인도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한미관계에 전례가 되었다." 목숨을 잃은 윤금이는 김현숙의 말을 빌리면 "한국 여성의 몸을 상대로 자행된 제국주의적폭력의 물질적 증거가 되어 "젠더와 성 정치를 논의하기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물질적 증거‘는 분명 이 사건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양공주는 그 생명이 기지촌이라고 하는 게토 안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 죽음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없다고 여겨지는 일회용품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은 일반 대중의 눈에는 띄지 않았다. 하지만윤금이 사건은 ‘주한미군의 윤금이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소속된 광범위한 단체들의 지원을 받았다. 이 위원회는 나중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이어졌다. 1980년대와1990년대에 미국과 한국 정부를 향한 적개심이 커지면서 양공주라는 인물에 반제국주의적 욕망이 가득 들어찰 수있는 조건 역시 확대되었다. 윤금이 사건은 피식민국가의 상징인 양공주가 수치심 때문에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던성노동자에서 환대를 받으며 귀향한 조국의 딸로 탈바꿈하는전기가 되었다. 그 사건은 한국의 파열된 과거로 회귀하는 또다른 순간이기도 했다. - P203
그래서 이제는 이 여자를 바라봐야하는 건, 이 여자를바라보면서 남한 민중이 국가의 탐욕에 어떻게 팔아넘겨지고있는지,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에 의해 어떻게 짓이겨지고있는지까지 시야를 넓혀야하는 건 정치적 의무였어. 죽은 양공주의 이미지는 이 사건을 떠들어대는 운동가들에의해 널리 유통되었지. "이 여성의 몸이 발견된 환경이너무 참혹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그들 스스로주장하면서도 말이야. 너무 잔인하게 살해당해 거기에 생긴모든 시시콜콜한 상해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인 여자의 몸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언어는 이런 식이었지. "여자의 자궁안에 맥주병 두개. 코카콜라 병 하나가 질을 관통하고 있음. 우산이 직장 안으로 27센티미터 들어감. " "여자의 알몸이 "증거를바닥에 늘어져 있음. (...) 몸과 얼굴은 피범벅임. 훼손하려는 시도에서 (범인은) 여자의 입엔 부러진 성냥을채워 넣었고 몸에는 흰 가루세제를 뿌렸다. " 하지만 여자를 보이게 하려는 이 시도 속에서 여자는 다시 한 번 삭제되었어. - P205
하지만 윤금이 살인 사건 이후 기지촌 매춘부들은 반미담론에서 "한국인과 한국 여성들의 집단적인 고통을 상징하는" 군사 지배의 희생자로 노출되었다. 김현숙의 주장에 따르면 양공주에게 이런 상징을 부여하는 행위는 자기 삶의 의미를 협상하는 기지촌 여성의 행위자성을 부정한다. 양공주의 몸위에서 이데올로기 전투가 일어나면서 양공주가 한반도의 포퓰리즘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고, 이에 따라 여기저기 퍼날라지는 양공주의 이미지는 갈등 정치의 상징인 양공주가 디아스포라를 경유하면서 더욱 굴절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양공주라는 인물을 두고 디아스포라 학계는 억압받는 자의 몸을 복화술사의 헝겊 인형처럼 사용하는 반체제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모국의 정치에 간여하고픈 긴장된 욕망을 드러냈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에게 양공주는 한인 디아스포라내의 여성 주체성에 관한 의미 협상의 장이 되었으며, 여성주체에게 자신의 의미를 협상하는 역량을 부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심하게 만들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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