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왼쪽 무릎이나 당신의 손톱처럼 눈에 보이는 특정 형태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비롯해서 모든 생물의 몸은 개별 유전자에 의해 구축되는 각각의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다. 수백에 이르는 많은 유전자들이 협동해서 신체의 거의 대부분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한 유전자의 작용은 마치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일련의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그런 환경에는 배아의 상태도 있고 출생 후의 것도 있으며, 내적인 것도 있고 외적인 것도 있다.) 몸의 각 부분은 유전자가 번역된 것이 아니며, 선택은 각 부분에 직접 작용하지도 않는다. 선택은 생명체를 그 전체로서 받아들이거나 거절한다. 그 이유는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여러 부분들이 전체적인 조합으로 그 생물에게 유리함을 주기 때문이다. 개별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 경로를 계획한다는 식의 이미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발생 유전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킨스에게는 또 다른 은유가 필요할 것이다. 가령 다수의 유전자들이 총회를 열어 동맹을 결성하고 가능한 상황을 예측하는 조약에 가입하는 식의 상상이 그런 은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처럼 많은 유전자들을 하나로 융합시키고, 그것들을 환경이 매개하는 작용의 계층적인 연쇄에 결합했을 때, 그 결과를 우리는 ‘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124
결국 나는 도킨스의 이론이 주는 매력이 서구의 과학적 사고에 얽혀있는 몇 가지 악습(우리가 원자론, 환원주의, 결정론 등으로 부르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체란 모두 ‘기본‘ 단위로 분해시킬 때에만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 방식, 미시적 단위가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거시적 결과의 거동動)을 낳으며, 동시에 설명할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리고 모든 사건이나 사물은 명백하고 예측 가능하고 결정론적인 원인을 가진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몇 개의 작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과거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단순한 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유효했다. 지금 나는 가스 스토브의 손잡이를 돌리면 불이 붙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불이 붙는다.) 여러 가지 기체 법칙은 분자에서 시작해서 그것보다 큰 예측 가능한 부피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생물은 서로 합병한 유전자들 이상의 무엇이다. 생물은 역사라는 중대한 요소를 가지고 있고, 몸의 여러 부분은 복잡한 상호작용을 한다. 생물의 몸은 협동하며 작용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선택에 노출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된다. 물과 그것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분자들이라는 비유는 몸과 유전자의 관계와는 빗댈 수도 없는 형편없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나 자신의 운명에는 정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전체성에 대한 나의 직관은 생물학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을것이다. - P125
찰스 다윈은 1872년에 출간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중요한 저서에서, 동물의 적응적 행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인간에서는 상징으로 내면화된 여러 가지 몸짓의 진화적 기반을 밝혀내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형태뿐만 아니라 감정에도 진화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격노할 때 윗입술을 들어 올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싸움용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려 한다. 인간이 나타내는 혐오의 제스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구역질을 일으키는 고도로 적응적인 행동과 결부된 안면의 움직임인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많은 동시대인에게는 무척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다윈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사람에게서, 극도의 공포 때문에 머리털이 곤두서거나, 광포한 분노 때문에 이를 드러내는 등의 몇 가지 표정은, 인간이 과거에 그보다 훨씬 낮은 동물적 상태로 존재했다는 믿음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 P140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이르러 직립하게 되었을때 게임은 이미 끝난 셈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에서 몸 구조의 주요한 개조는 이미 완료되었고, 후속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던 것이다. 이후 인류의 뇌가 커진 과정은 해부학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태아기의 급속한 성장 속도를 이후까지 연장시킴으로써, 그리고 성인이 되어도 어린 시절 영장류 머리뼈의 특징적인 비율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우리의 더 커진 뇌를 우리 자신의 성장 프로그램에서 제외시킨다. 우리의 뇌는 전체 패턴의 모든 부분들과 그밖의 유형 성숙적 특징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진화한 것이다. - P179
순수하게 몸의 구조가 개조되는 문제인 직립 자세는 광대한 범위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인 문제이고, 뇌가 커진 것은 표면적이고 이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뇌가 커짐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그 형성 과정의 상대적인 용이함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이적인것은 복잡계 (그중에서도 인간의 뇌는 가장 두드러진 경우이다.)가 가지는 전체적 성질, 즉 단지 양적인 것에 불과한 구조적 변화를 놀랄 만큼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기능으로 번역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다. - P180
그러나 만약 진화가 밀집 행진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진행한 것이라면, 화석 기록은 연속되고 완만한 조직의 발전 패턴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진화적인 래칫의 상정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21장에서 다루겠지만, 생명은 지구 자체가 형성된 직후에 태어났고, 그런 다음 30억 년 지구 역사 전체의 약 6분의 5에 해당하는 기간)에 걸쳐 거의 동일한 상태로 지속되었다. 이 장구한 기간 동안 생명은 원핵생물의 수준(유성 생식이나 복잡한 신진 대사가 가능한 내부 구조(핵, 미토콘드리아 등)를 갖지 않은 세균과 남조류 세포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약 30억 년 동안 생명의 최고 형태는 조류 매트(algal mat, 침전물을 고정시키는 원핵생물인 조류가 만든 얇은 층)였다. 그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6억 년 전에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동물의 주요한 설계가 수백만 년에 걸쳐 나타났다. 우리는 ‘캄브리아기 폭발(Cambrian explosion)‘이 왜 그 무렵에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건이 그때 일어나야 했다거나, 또는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야 했다는 식으로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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