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과연 약자를 보완하는 서비스가 도입될까? "소외 계층을 위한 대책을 내놓아라!" 말은 쉽다. 하지만 지속적인 불황에서 사회 정책은 점점 효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빅데이터가 도입된 이후 이런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약자는 배제된다. 효율적인 빅데이터는 소수자를 배제하고 다수의 이익에 부합한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과연 효율을 무시한 채 약자를 위한 정책을 펼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방식을 습득한 기계는 인간의 편견까지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전에 존재하던 소수자 배척은 빅데이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배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공정함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가 얼마나 피해를 받는지도 빅데이터로 수치화할 수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런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빅데이터가과정이 아니라 효율성만을 찾아간다면 그 길은 필연적으로 차별로 흐르게 된다. - P318
데이터가 추가되고 시스템이 벅잡해질수록, 우리는 인공지능이 내린 결과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앞의 사례에서는 정해진 몇 개의 수치로만 작동했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발견하고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모두 기초적인 빅데이터 사용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복잡한 빅데이터는 풀어서 설명할 수도 없고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다.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발전한 인공지능은 그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조차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인공지능은 막대한 데이터 중에서 알아서 답을 찾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나마 인종, 성별처럼 눈에 보이는 집단적 차별은 수정할 수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개인적 차별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차별이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데이터가 내린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빅데이터의 피해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강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럴 경우에는 곧 데이터가 수정되거나 폐기될 것이다. 하지만 약자에게는 그럴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들이 받은 피해는 드러나지도 않는다. 데이터과학자 출신 사회 운동가캐시 오닐 Cathy O‘Neil은 빅데이터를 "대량살상 수학무기 Weapons of Math Destruction"라 부른다. 데이터의 탁월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신뢰가 가져오는 폭력성은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하고 변화를 가로막을 명분이 된다. - P327
그런데 21세기 들어오면서 유튜브같이 전 세계인들이 함께 사용하는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유튜브에서 중요한 것은 조회 수다. 제1세계 백인 남성이든, 동쪽 구석의 10대 아시안이든 조회 수는 동등하다. 힘을 가진 백인 남성이 본다고 10번 조회한 것으로 쳐주진 않는다. 전세계인이 동시에 사용하는 채널이 생김으로써 모두가 1표라는 생각지도않은 민주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비틀스는 백인이고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BTS는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동양인이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BTS는 결코 미국에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미국 주류 사회가 알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유튜브의 높은 조회 수는 그곳이 미국이든 필리핀이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조회 수라는 것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주류 세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범위는 점점 확대되고 있고, 기존에는 무시당했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제공된다. BTS는 미국에서 주류 백인이 아닌 십대 아시안과 히스패닉, LGBT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미국의 구성원이지만 과거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이제 동일한(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기록되는) 데이터로 존재한다. 시장은 그들의 소비력을 알게 됐고, 이제는 그들의 요구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 P337
빅데이터라는 쓰나미가 우리 앞에 와 있다. 이 쓰나미는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선사할 수도 있고, 반대로 빅브라더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될 수도 있다. 데이터과학자 다비도위츠는 자신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이렇게 예언한다. "차세대 킨제이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차세대 푸코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차세대 마르크스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차세대 소크는 분명 데이터과학자일 것이다." - P338
라디오존데는 전파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 혹은 기업이 얼마든지 가로챌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세계 고층 기상관측망을 구성하는 모든 관측소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협정 세계시 기준으로 10시와 12시 (한국시간 오전 오후 9시, 태풍 등 긴급한 현안이 있는 경우 지역별로 추가할 수 있음) 라디오존데를 쏘아 올려 측정한 데이터를 공유한다. 라디오존데의 1회 비행 시간은 60분에서 90분 사이다. 정보를 제공하며 하늘로 올라가다 보면 대기가 점점 줄어들어 기압이 낮아지고그러면 풍선 속 공기가 팽창해 풍선이 터져버린다. 이 높이가 지상에서 37km쯤 된다. 풍선이 터지면 라디오존데는 달려 있는 낙하산을 타고 어디론가 떨어지는데, 대부분 그냥 버려진다. 즉, 일회용이다(낙하산을 씌우는 것은 혹시 모를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풍선을 포함한1회 발사 비용은 40만 원 정도로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기간이 누적되면 무시 못할 액수가 된다. 우리나라는 여덟 곳에서 하루 두 번 발사하니 하루에 총 16대가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87만 대의 라디오존데가 사용되고 버려진다. - P362
이름만큼 사용법도 간단하다. 가벼운 기체(보통 헬륨)를 넣은 네오프렌(고무의 일종) 풍선에 라디오존데를 달아 하늘로 띄우면 된다. 라디오존데는 1초에 한 번씩 전파를 지상으로 쏘는데, 전파는 기온, 기압, 습도 등에 따라 파장이 변한다. 지상에서는 전파의 파장을 통해 하늘 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사용하는 라디오존데에는 GPS가 달린 경우가 많아서, 데이터가 측정된 위도와 경도, 고도를 정확히 알 수있고, 그만큼 더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다. - P361
기상청은 최근 정확도가 떨어진 것이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비가 내리는 패턴의 변화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과거의여름을 떠올려보라. 장마가 와서 오랫동안 비가 내리고 이후 무더위가이어졌다. 하지만 현재 여름은 장마는 사라지고, 비가 스콜처럼 갑자기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친다. 비구름이 넓게 형성되어 지속해서 내리는 비는 예측하기 쉽지만, 불안정한 적란운에서 내리는 소나기는 예측하기 어렵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패턴을 무너뜨려서, 앞으로 일기예보는 한층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은 유독 어려운 점이 많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양기후의 특성이 있으면서도, 편서풍대에 위치해 대륙의 영향 역시 많이받는다. 나라는 좁은데 지역은 많이 나뉘어 있고 산줄기가 많아, 바로옆 동네인데도 날씨가 다른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 한해 1.5km 격자를쓰는 것도 작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지만, 관측 자체가 그 정도로 세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예보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 P375
한국의 연간 강수량은 지구 평균보다 많지만, 영토가 좁고 인구가많아 상대적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식량 대부분을 수입하기때문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7%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가축 사료까지 포함하면 24%까지 떨어진다. 우리가 먹든 가축이 먹든 합쳐서76%는 해외에서 수입한다. 해외에서 식량을 사 온다는 것은 식량 자체를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식량을 기르는 데 들어가는 물을 사는 것이기도 하다. "식량 안보" 같은 유치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은 식량 자급을 하고 싶어도 물이 부족해서 할 수가 없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물이 들어간다. 해외에서 식량을 사 오기 때문에 우리가 물을 펑펑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와 세계 인구 증가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 식량 수출국들은 수출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릴 것이고, 그러면 한국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 P404
심각해지는 빈부 격차와 경제 위기는 다시 우생학을 깨운다. 우리는우생학의 망령을 넘어서지 못했다. 단지 그들이 일으킨 끔찍한 범죄때문에 그대로 묻었을 뿐이다. 자국 우선주의, 난민 사태,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빈곤한 철학을 보여준다.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학을 알아야 한다. 군대를 군인에게만 맡길 수 없듯이 과학을 과학자에게만 맡길 순없다. 그러기에 과학은 너무도 중요하다. 물론 철학도 마찬가지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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