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승자독식 어휘 중 하나인 ‘좋다‘는 다양한 뜻을 가지지만 기쁨의 감정에서 ‘좋다‘는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만하다‘이고 ‘좋아하다‘는 ‘좋은 느낌을 가지다‘이다. 여기서 보통 이상의 수준이란 사랑스럽다, 예쁘다, 귀엽다, 아름답다 등의 느낌을 주는 사물이나 대상을 일컫는다. ‘사랑스럽다‘는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만큼 귀여운 데가 있다‘이고 ‘예쁘다‘는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 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이며 ‘귀엽다‘는 ‘예쁘고 곱거나 또는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이다. 또 ‘아름답다‘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이다. 사랑스럽다, 예쁘다. 귀엽다, 아름답다 등을 느끼면 그 존재를 귀하고 중요하게 여겨 몹시 보살피거나 위하는 마음을 가지는데 이것이 바로 ‘사랑‘이며 ‘존중‘이다. - P72
마음이 아플 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없다. 씻고 먹고 자는 기본적인 기능조차 마비돼서 부엌 싱크대와 욕실 세면대의 물기는 완전히 말라붙어 먼지가 내려앉고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머릿속만큼이나 집안 공기는 탁하다.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받을 수조차 없는 까닭은 난파선처럼 부서져 망망대해를 떠다니고 있어서이다.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거짓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당신이 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힘에 부치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없던 창문이 새로 난 것처럼 눈에 들어오고 창문 너머 어린이들이 온몸으로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하늘이 보이고 바람 냄새가 맡아진다. 갑자기 큰 숨을쉬고 싶어 신발을 꿰차고 밖으로 나간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는 광경을 보고 빨리듯 마트에 들어가 몇 가지 식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팔을 걷어붙이고 쌀을 씻고 콩나물과 파를 다듬는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처음 듣지만 내가 좋아하는 리듬이 나오고 밥 짓는 냄새와 국 끓는 냄새가 옅게 떠돈다. 가진 그릇 중 제일 예쁜 그릇에 밥을 퍼서 한 입씩 넣고 씹고 목구멍으로 넘길 때마다 따스하고 폭신하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나지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침대보와 이불보를 새로 바꾸고 "네가 편해지면 언제든 연락해."라고 문자 남긴 친구에게 "이제 나 괜찮다."는 문자를 남기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어쩐지 딱딱했던 심장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것도 같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밑반찬을 몇 가지 더 만들고 빨래를 하고 산책을 하고 서점에 들러 신간을 둘러봐야겠다. 꽃도 사고 연필도 사야겠다. 그러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일은 어제만큼 아프지 않고 오늘보다 편할 것 같은 예감, 간질간질하다. 어쩌면 모레쯤은 말괄량이 삐삐처럼 보는 것마다 번쩍번쩍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고 뭐라도 저지르고 싶어서 기분이 근질근질한 날이 올 것이다. - P84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잘 참고 잘 억누르고 잘 없애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잘 분출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외부나 내부의 자극과 나의 반응 사이에 ‘생각‘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좋거나 편하면 받아들이고 싫거나 힘들면 회피하는 식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감정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분석해서 어떤 감정인지 할 수 있는 한 세부적이고 정확하게 이름을 붙여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마음에서 감정조절은 이미 마쳤을 수 있다. 남은 것은 내가 느낀 이 감정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의 기준은 기질이나 상황에 따라다르겠지만 설마 화목보다 불화, 즐거움보다 고통, 평안보다 불안을 목표로 삼는 이는 지극히 드물 거라고 본다. - P96
감정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진통제를 취하면 (여기서 진통제란 약물을 포함해 감정의 억압과 회피에 동원되는 모든 수단을가리킨다) 당장의 아픔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감정조절에 실패한다. 이것이 앞서 말한 위염보다 심각한 부작용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붕대로 꽁꽁 싸매고 모르는 체하면 괜찮을줄 알았다. 그런데 과거의 아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홀연히 돌아온다. 싸매둔 붕대를 풀면 고약한 냄새와 함께 상처가 썩어 깊이 병들어 있다. 과거에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아서, 아파야 할 때 아파하지않아서 빚으로 돌아오니 인간의 의식이란 얼마나 지독한가. - P97
나쁜 일이 나와 부딪쳐 깨져 마음을 아리고 쓰리고 저리게 만드는 것이 아픔이다. 나쁜 일의 기준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두자고 앞서 말했는데 여기에는 죽음이나 이별, 사고, 파산, 실패 등 운명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 없는 것도 있지만 이러한 것도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눌 수 없는 기쁨, 위로(애도) 받지 못하는 슬픔, 존중받지 못하는 분노, 물리칠 수 없는 혐오, 보호받지 못하는 공포(불안 걱정 두려움), 발견할 수 없는 희망, 인정받지 못하는 신뢰,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 몸이나 마음이 느끼는 감각이 다같이 ‘아프다‘일지라도 에너지와 방향은 저마다 달라서 각각에 맞는 대처가 필요하다. 아픔이 모두 슬픔인 줄 알아 분노나 혐오, 공포, 희망, 신뢰, 욕구불만까지 "괜찮아질 거야" 식의 위로로 다루려 하면 맞지 않다. 그런데 감정을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슬픔과 분노, 공포가 그렇다. 우리의 마음은 종종 분노나 공포를 슬픔으로 위장하고 반대로 슬픔을 분노나 공포로 위장하기도 하며 관습적으로 행해질 때가 많아 스스로 쉽게 알아차리지못한다. - P107
나흘째 새벽 홀연히 이 말 하나가 가슴속에 떠올랐다. ‘나는 너무 미래에 살고 있구나.‘ 불안도 두려움도 다 그로 말미암은 것, 미래 때문에 지금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다 놓치고있구나. 큰맘 먹고 여기까지 와서 아주 단단히 손해 보는 일을하고 있구나.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구나, 앞으로는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 거부하리라. 더 이상 과거를 되새김질하지 마라. 과거에 머무르지 마라. 현재에 살아라. 과거를 변화시킬 순 없지만 현재를 변화시킬순 있다. 미래는 내 소관이 아니다. 미래여, 네 마음대로 하라. 하기는 내가 뭐라 한들 어차피 네 마음대로 할 테지만. 그때마다 나는 번번이 어쩔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너한테 더 이상 내 현재의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구나. 너에게는 달콤한 꿈만을 취하리라. 그것이 비록 환영이라 할지라도 매일의 강을 건널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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