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람이 중국공산당 내에 여기 한 사람 저기 한 사람씩 흩어져 있는 것은 별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공동행동을 위하여 한데 모여야 하며 또한 중국만을 위하여 희생될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조선혁명을 보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의하였다. 1932년 이래 조선공산당과 우리의 만주공산당은 독립해 있었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조선 문제를 연구하지 않았으며 조선 문제를 별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더는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처럼 우리 자신을 잃어버릴 처지가 못 된다. 우리는 쫓겨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세력에 가담하는 하나의 세력으로서 중국에 가세해야만한다. 일본제국주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장래의 행동을 위하여 조선인의 운동을 건설하고 준비하는 방향으로 재빨리 우리의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우리는 동의하였다.
1935년 8월 1일, 중국공산당과 홍군과 중화소비에트 정부는 국민당과의 항일연합전선을 제창하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러자 우리 조선인들은 즉시 중국민중과 협력하기 위하여우리 자신의 민족전선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하였다.  - P459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 P464

인류 역사의 전통은 민주주의적이요. 이 전통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 천부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한테서 그것을 도둑질해 가는 자도 있다. 물은 사람을 빠뜨려 죽이기도 하고구해주기도 한다. 오늘날 인간사회는 고요한 마을 연못이 아니라 성난 홍수이다. 사람은 반드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만한다. 14살 때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결코 물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나는 몇 차례나 스스로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파괴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은 깊고 어두우며 행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소곤거리는 소리와 침묵의 웅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P466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은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不死性)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수가 없다. 유일한 그의 개인적 결정이라고는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나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밖에 없다. - P473

내 남편 에드가 스노우는 1938년 한커우(漢口)에서 이 조선항일의용군 소속의 조선인 몇 명과 회견하였다. 그는 이들이 중국정부로부터 지원을 얻어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내게 이야기하였다. 국민당은 이처럼 열렬한 좌익혁명가들이 자기네 군대에 대하여 형제애를 갖도록 하는 일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그랬을 경우 나타날 정치적 결과를 두려워하는 태도가 역력하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부대는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러자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을 탈출하여 여기에 합세하였다. 조선인의 일본군에 대한 태업도 많이 일어났다. 또한 그들은 중국의 첩보활동에서 매우 귀중한 부분이기도 하다. 조선인 징병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탈주하였다.  - P476

일본인 지배에 대한 조선인들의 끊임없는 투쟁 이야기는어떠한 억압 아래서 이 투쟁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고려해 볼때, 대단히 영웅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무장습격이 만주에서 행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도, 자바, 인도차이나, 타이완, 버마의 식민지운동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은 대단히 집요하면서도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었다. 조선에서 검증된 것처럼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개화한 제국주의의 모범 따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것은 극동에서도 가장 불행한 나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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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임포스터였기 때문에 내가 거머쥘 수도 있었을 좋은 기회들을 번번이 놓치기도 했다. ‘못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해보기도 전에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기회를놓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동이 겸손이라고 착각했다.
이런 착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메타인지를 공부한이후로 내 태도를 ‘자신을 깎아내리는 겸손‘에서 ‘메타인지적 겸손‘으로 조금씩 수정해갈 수 있었다. 그러자 성공에 대한 태도도달라졌다. 메타인지는 문제에 대한 판단을 최우선에 놓는 것이다.
즉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보고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수학 숙제에서 첫 번째 문제를 읽고 ‘아, 문제가 조금어렵네‘ 하는 자신의 생각을 모니터링하게 되면, 모니터링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나갈지 방향을 가늠하게 된다. ‘필기노트를 다시 읽어보자‘는 전략을 택하기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컨트롤 과정이다. 나는 메타인지를 사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겸손이 발휘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이고,
여기서 진전된 뭔가를 더 배우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메타인지적 겸손이다. - P236

부모에게 필요한 정확한 메타인지란 자녀의 자신감을 믿어주는것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 그리고 아직은 더 연습이 필요한 것을관찰할 수 있는 것도 메타인지다. 아이가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에 ‘넌 항상 부족하고 미숙한 아이‘라고 믿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 P242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런 ‘척할 때 쓰이는 에너지가 무한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험결과에서 보듯 우리에게 주어진 정신에너지는 유한하다. 임포스터들도 마찬가지다. 실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제할 때 실은 엄청나게 많은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나는 실험을 떠올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내 자아가 몽땅 고갈돼버리고 말것이다. 그러니 그러기 전에 나 스스로 들켜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 P250

실제로 아들아이는 시험점수를 잘 받아오는 편이다. 초등학교때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점수 따기가 수월해서다. 하지만 벼락치기는 습관이 될 수 있다. 벼락치기 공부는 배운 내용을 내가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내가 어려워하는지 살펴볼 기회를 앗아간다. 시험에 나올 법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욱여넣기 급급하다 보니, 자신의 학습상태를 모니터링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모니터링이 없으니 당연히 자기 수준에 맞게 학습전략을 컨트롤하는 단계도 시작되지 않는다. 더 나은 학습방법이 뭘까 궁리하고 시도해보는 일은 더욱 요원해진다. 스스로 학습방식이나 목표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고 학업수준이 높아질수록 불안해진다.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슬금슬금 공부를 미루게 된다. "나중에는 다 할 수 있겠지?" 하고마음을 달래보지만, 메타인지를 사용할 줄 모른다면 이런 생각은기만적인 자기위안에 불과하다. - P258

 임포스터인 내가 책을쓸 때 나의 ‘넘어짐‘을 드러내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고, 내가 이룬 성공에 대한 나 자신의 공로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내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모든 부분, 즉 실수와 성공을 보며 스스로 이뤄낸 것들을 오롯이 인정하는 기회를 건네줄 수 있었다.
임포스터로 힘겨워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넘어짐과 성공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부모‘를보며 자녀들 또한 그들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들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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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종교적 약속은 신앙에 기초한다고 생각했다. 신앙이란 신의 힘으로 드러난 진실에 대한 내적 확신을 뜻했다. 하지만 18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신앙에서 열정의 향기가 났기 때문이다. 열정을 뜻하는 ‘enthusiasm‘은 ‘신이들린‘ (possesed by a god)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 바로 이 열정이 청교도 혁명에 불을 지폈고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놨다. 새뮤얼 존슨은 ‘열정‘을 ‘사적 계시에 대한 헛된 믿음, 성은에 대한 헛된 확신‘이라정의했다. 존슨은 존 로크(John Locke)의 글에서 이 정의를 가져왔다.
"열정은 이성이나 신의 계시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오만한 뇌의 자만심에서 나온다." - P518

영국 성공회는 고등 교육을 독점했다. 다시 말해 ‘39개조의 신앙고백‘에 적힌 가르침에 대해 맹세하지 않은 자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거나 학생을 가르칠 수 없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를 쓰기 위해서 역사적 문헌을 연구한 덕분에 과거에 존재했던 신학적 논쟁을 깊이이해하고 있었다. 기번은 신앙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즐겨 말했다.)주교는 세속적 권력도 가졌다. 그들은 종교적 귀족계층의 대표로서 상원에서 의석을 차지했고 투표권을 행사했다. 존슨은 이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 누구도 학식과 독실함으로 주교가 될 순 없다. 의회에 이해관계가 있는 누군가와 연이 있는 자만이 주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많은 주교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 P529

보즈웰은 존슨의 친구 윌리엄 제라드 해밀턴(William Gerard Hamilton)의말을 고별사로 대신했다. 해밀턴은 정계에 처음 입문했을 때 에드먼드버크와 함께 일했다.
"그가 떠나고 우리의 가슴에 아주 깊은 구멍이 남았습니다. 그 무엇도 이 구멍을 메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가득 채워지지않는 법입니다. 존슨은 죽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가장 훌륭한 벗을 사귑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새뮤얼 존슨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당시 그 누구도 해밀턴이 존슨이 <더 램블러>에 했던 말을 떠올렸음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압제할 수 없다. 이것은 아마도 신의 섭리일 것이다. 한 개인이 은퇴하거나 사망하여 이 세상에 깊은 구멍을 남길 정도로 아주 중요한 존재여선 안 된다." - P566

에드먼드 멀론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매일 그가 너무나 그립다네. 그는 거의 매일 습관처럼 나를 찾아왔지. 나는 정신없는 그의 언행에 때때로 불평하곤 했지. 하지만 지금은 그가 만들어내는 소음, 우스꽝스러운 소리와 기분 좋은 우스갯소리가 너무나 그립다네. 가엾은 나의 친구. 보즈웰은 너무나 갑자기 우리의 곁을 떠났어. 나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그 친구는 훌쩍 세상을 떠나 버렸어."
6월 8일 제임스 보즈웰은 오킨렉의 가족 지하 납골당에 안치됐다. - P590

이들 외에도 수백 명의 회원들이 더 있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이들은 아니다. 문학계와 예술계가 아닌 정계와 귀족 출신의 회원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그리고 또 눈에 띄는 점은 러디어드 키플링, 맥스 비어봄 그리고 T. S. 엘리엇이 회원으로 선출됐을 시기에 그들의 경력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뮤얼 존슨과 에드먼드 버크가 살아 있었다면, 이토록 많이 이들이 회원으로 선출되지 못했을 것이며 어느 누가 새로운 회원으로 선출될 수 있었겠는가? 아마 디킨스(Dickens), 새커리(Thackcray), 트롤로프(Trollope), 하디(Hardy), 로렌스(Lawrence), 오웰(Orwell), 오든(Auden) 그리고 라킨(Larkin)은 회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더 클럽에는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총리들도 몇몇 있었지만, 영국의 가장 위대한 총리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없었다. 그리고 조지 엘리엇 (George Eliot)이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도 회원으로 선출되지 못했다. 더 클럽은 끝까지 남성들만을 위한 모임이었다. - P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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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개인은 자기가 곤경에 처했을 때 타인의 희생을 바라는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오직 공산주의자들만이 상호 협력 정신과 동지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에도 또한 이기주의라는 오래된 암이 조직을 먹어치우고 있어 그 부패가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인간의 생사가 본인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사회제도의 잘못이며,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은 자신의 제반 이해를 돌보기 위해 이중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P376

1) 리리산(李立三) : 1896년 출생. 1922년 노동자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 5·4운동(1919) 때 상하이총공회 (上海總工會: 노동조합총동맹) 위원장으로 혁명운동에 투신한 후 최후까지 도시노동자에 의한 공산혁명의 달성이라는 중국공산당 내의 이른바 ‘리리산노선‘의 지도자였다. 귀국 후 중국정부의 노동부부장(1949)도 역임했다. 그는 중국공산당 서기를 지냈고 극좌파였다.-님 웨일즈, 리영희 - P388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이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지도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따라갈 것이다. 추종하는 자들에게는 단하나의 길밖에 없다. 지도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추종하는 자는 자유롭지만 지도하는 자는 그렇지 못하다. 추종하는 자는 책임 없이 행동할 수 있지만 지도하는자는 역사적 결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추종자가 아니다. 추종자였을 때가 더 행복하기는 했다. 주도권을 잡고 지도하는 것이 내 임무이다. 이 임무는 내 경험에 의해 부여되고 내부에서의 강제에 의해 억지로라도 이행해야만하는 의무인 것이다. 이 지도를 수행하기까지 살아남지 못한수천 명의 앞서 죽은 사람들이 수많은 손가락을 가진 하나의 손이 되어 나에게 앞으로 나가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들의 지식도 그들과 함께 죽었다. 내가 그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그 지식은 나와 함께 살아남아서 나 또한 죽을 때까지 창조적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 P404

1) 남의사 : 장제스 독재 정부가 만든 전국적인 비밀경찰 조직. 공식 명칭은 역행사(行)이나 이곳의 제복이 하의 노란색, 상의 남색이었기때문에 ‘남의사‘로 불렸다. 황푸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 출신자를 중심으로 1932년 3월에 건립되어 주로 항일 애국운동과 민주운동을 진압하였고, 공산당원들을 참살하였다. - 역자 - P417

내가 구금되어 있던 4월 26일에서 6월 15일 사이에 약 50명의 공산당원이 감옥에 들어왔다. 거기에서 거의 40명이 전향하고 배반하였다. 각자 자기 자신의 석방을 보장받으려면 다른 두 명의 동지를 팔라고 강요당했다. 감옥에서 나가는 자들은 모두가 배반자였으며, 자기에게 배당된 두 명의 동지가 체포될 때까지 경찰 두 명이 따라다녔다. 동지 두 명이 체포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자유의 몸이 되고 더 이상 경찰도 따라 다니지 않게 된다.
이러한 배반과 도덕성의 실추는 지난 2년 동안 줄곧 늘어나고 있었지만, 지금껏 그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전연 모르고있었던 것이다. 한 투쟁의 막바지에서 패배를 당하는 것처럼보이는 이 집단적 배반의 이유를 토의하기 위해 나는 감옥 안에서 비밀회의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당 노선의 잘못이 무엇이며 체포되면 법정에서 사용해야 할 전술이 무엇인가를 토의했다. 법정에서 혹은 박해를 받더라도 자기가 당원이라는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기로 전원이 결의했다. 또한 전향서를 쓰거나 혹은 다른 동지들을 배반하여 체포당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결의했다. 당 관계를 자백하느니 차라리 죽어야 한다. 운동 전체의 사기와 규율이 위태롭게 된 것이지 지도자 개개인의 운명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 P423

이 모든 배반을 직접 목격하고 나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으며 몸도 급격히 악화되었다. 인간생활의 특징에는 아름답고 장렬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인간성에대한 믿음을 상실하였다. 또한 중국공산당에 대한 믿음도 흔들렸다. 오류니 부정이니 어리석음이니 비겁함이니 하는 것은 용서해줄 수가 있다. 하지만 변절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말인가. 비슷한 상황이라면 조선사람도 이런 짓을 할까 하고자문해 보았다. 조선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증오 때문에 배반하는 일이야 있겠지만 나약함이나 비겁함 때문에 배반하지는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이라면? 러시아인은? 유럽인이라면? 이것은 중국인의 성격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것으로, 혁명조차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일까. 어떤 인종을 다른 인종과 따로 떼어놓고 매도한다는 것은 내가 여태까지 품고있던 신념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줄곧 배반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중국에서 일어나는 이런 배반에 필적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인종적 특징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치적 윤리의 붕괴로 인해 약체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러한 동지들은 더는 우리가 내걸고 싸우고 있는 강령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 P424

전향을 거부한 것은 관념적이고 어리석고 미치광이 같은짓이었을까? 대중 앞에서 전향을 하여 재차 활동할 수 있는자유를 얻는 것이 단 하나의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간단한 일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확고히 결심하였다. 자기자신도, 당도, 또한 다른 어떤 사람도 절대로 배반하지 말자. 어리석은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진실이었고 또한 그것이야말로 내 도덕성을 편히 쉬게 해주는 반석이었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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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무조건 엄마 아빠 말을 따라야 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순종적이고 소심한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이건 팩트다"라는 말은 가능하면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한다. "넌 틀렸어" 같은 권위주의적인 어휘들 또한 아이의 사고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장애물이 될 뿐이다.
메타인지는 스스로에 대해 계속해서 성찰하게 하는 능력인데,
극단적 표현은 이러한 능력의 발달을 저해한다. 가급적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 "그건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또 다르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것이 좋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자신이 한 말을 되돌아보고 자기 생각도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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