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알고 보면 천연자원 측면에서는 엄청난 부자다. 니제르에는 우라늄과 원유와 인산염이, 모리타니에는 철광석과 구리가, 차드에는 석유와 우라늄이,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에는 금광이 있다. 하지만 그 나라 모두에는 통치 구조와 부정부패, 불투명한 자금 운용, 산업의 경제적 모델에 대한 우려 또한 있다. 대다수 사헬 국가들은 원자재를 스스로 가공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의 수입은 주로 자국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광산 기업들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흔히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은 세금 우대조치 때문일 텐데 결과적으로 이 조치는 정부 곳간에 큰 수입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 P325

물론 이런 가능성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주요 선수가 된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이 추구해온 이른바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정책은 이곳에서는 견고한 대국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사헬 지역에 자신들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도 이 과정의 일환이다. 2015년에 중국은 인민해방군과 기타 보안군의 해외파병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중국 특수부대가 말리에서 유엔의 평화유지 작전에 참여했다. 한편 베이징 정부는 부르키나파소를 회유해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중단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와 군사 관계를 확대하고있다. 또 2017년에는 지부티에 최초로 해외 해군기지를 개항했다.
이러한 행보는 일대일로를 표방한 중국의 경제 정책과 딱 들어맞는다. 이는 전 세계 무역망을 연계하거나 업데이트해서 상품들이 원활하게 중국으로 드나들게 보장하는 것이다. - P330

효율적인 통치 구조와 안보, 외부 세계의 도움이 없다면 사헬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식민주의에 이은 탈식민지 경제와 정부 기관의 부패는 국내외 극단주의자들로 하여금 이 지역에 만연한 실정, 빈곤, 사회적 균열의 틈을 파고들게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자신들과 대결하는 외국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시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외국인들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기다렸고 결국 대다수 외국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외부 세력은 사헬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피를, 재원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 P332

만약 미국이 병력을 줄인다면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어려운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병력을 증강하든가. 현 수준을 고수하든가 아니면 아예 본국으로 돌아가든가. 문제는 이것들이 하나같이 빈약한 선택지라는 것이다. 떠나자니 이곳에서 혼란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지역 정부들이 반란 세력들을 산산조각내고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할 수단을 가졌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또 만약 정부가 붕괴된다면 통제되지 않는 곳들은 지방 또는 국제 테러 조직의 지배를 받는 일종의 영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폭력사태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그 충격파는 남쪽의 중앙아프리카와 북쪽의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으로까지 번져 적어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다른 선택은 현 수준의 지원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도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싸움터를 내주고 물러서야할 위험이 높다. 그리고 마지막 옵션, 즉 병력을 강화하는 것은 금전적인 측면과 사상자 측면에서 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 P333

폭력상황이 해안 국가들까지 번지는 것에 프랑스는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의 대응도 필요하다. 만약 이들이 손을 뗀다면 사헬 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으로부터 도움을 얻고픈 유혹을 받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찌감치 그 기회가 오기만을 엿보고 있다. 말리와차드 같은 나라들은 이념적으로 유럽이나 미국과 결혼한 사이는 아니다. 냉전시대에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애를 쓰느라 도움만 된다면 어느 편과도 손을 잡으려 했다. 만약 이들이 이제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및 경제적 지원이 고갈됐다고 믿는다면 그 진공상태가 발생할 때까지 손놓고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경제, 외교, 군사적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한 서구의 힘에 도전할 기회만을 노리는 베이징이나 모스크바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시리아의 혼란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보아왔다. 요컨대 푸틴 대통령이 <유럽의 소심함>과 <미국의 무관심>을 이용하는 것을 말이다. 사헬 같은 유동적인 지역이야말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P334

에티오피아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중요도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물이다. 이 나라의 강점이 담수(염분이 없는 보통의 물)라면, 해수는 이 나라의 약점이다. 에티오피아에는 12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고 9개의 큰강이 있다. 덕분에 이웃 나라들 대부분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보니 에티오피아는 그들에 대해 큰 정치적 영향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반면이 나라에 부족한 것은 해안과, 직접적으로 해상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지만 담수 덕분에 중동에 대한 영향력과 홍해에 대한 접근성을 키워가면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 P341

하지만 사정은 변하고 있다. 우선 청나일강, 아와시강, 오모강, 셰벨리강을 비롯한 여러 강에 댐과 발전소를 건설해서 수력 발전에 사용하는 유량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청나일강에 건설한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이 댐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하기로 한다.)까지 가세하면 이 나라 에너지 수요를 거의 충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나라들에도 전력을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되면 시골 주민들이 나무와 숯을 땔감으로 써서 삼림을 황폐화시키고 토양의 침식을 유발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이 기술은 에티오피아의 부를 좀 더 평등하게 분배하고 역사를 얼룩지게 한 지역 갈등도 극복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 P347

 현대 에티오피아는 악숨 제국 시대로돌아가겠다는 계획은 없다 해도 살아남고 번영을 이루려면 확실하고 믿을 만한 교역로를 확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에티오피아 수출입 상품의 대부분이 이웃 나라의 영토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교역로는 비좁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포함하고 10개국의 해안을 따라 흐르는 연안 무역 병목지대인 홍해를 경유하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수출과 수입의 대략 90퍼센트가 바다를 통해 이뤄지는데 화물 대부분이 지부티의 심해항을 통과한다. 그런데 2019년에 벌어진 한 사건은 단일 교역 노선에 의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상기시켰다. 당시 시위대가 지부티와 에티오피아 간 고속도로를 봉쇄해 버리자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사용할 연료가 아예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취약성을 보강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는 지부티 항구의 지분을 매입했으며 소말리아 베르베라항의 지분 19퍼센트도 획득했고, 수단의 포트수단과 케냐의 라무 지분도 확보하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 오고 있다. 또 에리트레아의 항구로 가는도로들도 다시 개통시키고 있다. - P364

에티오피아에게는 권력을, 이집트에게는 불안을

청나일강은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에 도달해서 백나일강과 합쳐져 비로소 나일강이 되어 이집트로 흘러간다.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과 저수지는 수단과의 국경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2020년대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 저수지는 가득 찰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에티오피아 고원지대까지 250킬로미터를 되돌아가서 그 지역의 수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여름. 그러니까 댐 건설이 시작되고 9년이 지난 시점에서 동아프리카 지구대 위에서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정부 사이에 협의가 없었음에도 댐 뒤편의 저수지 수위가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 것을알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나라 전체에 전기를 공급할 목적으로 발전기를 테스트할 수 있는 지점까지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우기를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에게 그 댐의 건설은 사실상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는 곧 한 나라가 지리의 감옥에 갇히는 극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나일강은 이집트와 그 국민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나일강이 없으면 이집트도 없다. 청나일강에서 시작된 나일강의 85퍼센트가 이집트로 흘러들어 오는데 에티오피아가 여기에 손을 대려는 것이다.
물론 그 흐름을 완전히 끊어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렇게 할수 있는 힘을 갖겠다는 것이지만. - P367

그런데도 이집트의 군사 행동을 제약하는 것들이 많다. 여기서 또다시 지리가 에티오피아에게 미소를 짓는다. 에티오피아는 내륙국이기 때문에 이집트 지상군은 수단을 통하거나, 아니면 홍해로 내려가서 에리트레아를 통해 들어와야 한다. 최근에 전투 경험이 없는 것은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군대라 해도 구미가 당길 만한 선택지가 없다. 게다가 이집트 군대의 역사는 썩 긍정적으로 봐주기가 어렵다. 1874년부터 2년 동안 이집트가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벌인 처참한 침공 시도는 식민주의를 몰아낼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나라를 상대할 때 따르는 위험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1960년대에는 이집트군7만 명이 예멘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홍해를 건넜지만 6만 명만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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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서럽게 흐느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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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쯤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에 아빠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빠는 내가 뭐라고 하며대들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쳐엄마가 치료를 계속 받도록 설득하자고 말이다. 하지만 항암치료는 이미 엄마에게 남은 존엄을 마지막 조각까지 앗아가버렸고,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더 앗아갈 존엄이 남았다면 그것마저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 것 같았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많은 결정을 우리에게 맡겨왔다. 우리가 자신의 변호인이 되도록, 자신을 대신해 간호사와 의사에게 간청하고 투약에 관해서 질문하도록. 하지만 나는 은미 이모 덕분에 알게되었다. 만약 두 차례의 항암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면 그쯤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게 엄마의 바람이라는 것을. 그것은 내가반드시 존중해야 할 결정 같았다 - P200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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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헬이 해안이라면, 사하라는 바다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안에서 모래바다를 건너 또 다른 해안, 즉 유럽으로 가려고 한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을 떠나고싶어 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약 380만 명이나 되는 이곳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곳을 향해 삶의 터전을 뜨고 있다.
이 지역의 무력 분쟁과 급속한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 같은 상황은한층 더 악화되고 있다. 알카에다와 ISIS라는 맹금들이 자신들의 보다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다른 집단의 고통과 희생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면,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한 집단들은 세력을 더 키우기 위해 그들의 브랜드를 빌려오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이 지역 여러 나라에서 맹위를 떨쳐온 갈등의 불꽃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이제 그 갈등은 해안가를 넘어 훨씬 멀리 퍼져나갈 기세다. 유엔 사무총장인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이런 경고를 한 바 있다. "우리는 폭력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2020년에 사헬 지역은 세계에서가장 빠른 속도로 폭력이 증가하는 곳이었다. 유엔은 그 테러 공격의수위가 "유례없이 파괴적"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헬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헬에 머물지 않는다. 대다수 유럽인은 이 지역과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 문제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고 있는지잘 모르고 있다. 유럽은 이미 이주민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유럽의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주민과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른바 <유럽 요새>를 구축하자는 호소도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물결이 밀려들어 오고있다. 하지만 양쪽 지역을 모두 안정화시키려면 북쪽이 아니라 지중해 남쪽을 봐야 한다. - P294

사막이 되돌아오자이 어마어마한 공간을 건너는 것은 어려워졌다. 오아시스의 위치에 따라 그저 짧은 길들이 개척될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지평선 앞에 낙타가나타났다. 이것은 가히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년 전에 출현한 규모는 작지만 선구적인 낙타 행렬은 보다 긴 교역로를 열게 해주었다. 낙타에 물품을 싣고 먼 곳을 다니는 대상 무역은 점점 몸집을 키우게 되는데 그 규모가 1만 2천마리까지 헤아린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해양을 떠다니는 초대형 유조선에 비할 만하겠다. "낙타는 한 집단에 의해 고안된 말"이라는 이야기는 온당치 않다. 사실 낙타는 볼품없이 생긴 짐승일지 모르지만 그 어떤 짐승도 하지 못하는 짐을 운반하는 일을 할수 있었고 그 일을 해냄으로써 역사를 바꾸었다. 이 <사막의 배들>이야말로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건너면서 대량 운반을 가능케 한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다. - P298

수십 년 동안 지도에 표시돼 오던 서구 열강의 세력권은 주로 행정구역처럼 관리되다가 나중에는 사실상의 국경선이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탈식민지화를 거친 지역들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었다. 1964년에 아프리카연합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의회원국 수장들은 지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구 열강이 임의대로 지도에 표시한 기존의 국경선을 고수하는 게 낫다는 데 마지못해 합의했다. 만약 식민지 이전의 종족 간 유대 관계를 기반으로 영토를 교환하는 협상을 하다가는 자칫 대륙 전체에 분쟁을 일으킬 수있기 때문이다.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고, 남수단이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수정된 사항을 제외하면 이 합의는 대부분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분쟁이후에 이루어졌지만, 후자의 경우는 새로 탄생한 국가 내에서 끔찍한 내전을 불러왔고 그 불안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
오늘날의 사헬에서도 이런 사례가 존재한다. 국경을 지도 위에 표시할 때는 잘 지켜지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기후변화, 지하디스트, 지역 내 식민지 이전의 분열주의 등이 결합하여 <갈등의 시대>를 만들면서 이 지역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 P303

기후변화, 사막화, 폭력의 악순환
최근 들어 갈등 양상은 풀라니족 거주 국경지대를 넘어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나이지리아 일부 등 사헬의 다른 지역에까지 퍼져나가는 추세다. 폭력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따라다니는 주제들이 있다. 일단 가뭄으로 땅이 말라서 소나 양을 치기 어려워지면 유목민들은 새로운 도시나 시골을 찾아 들어온다. 여기서 그들은 <외부인>으로 취급받고 그 지역 농민들과 이해가 충돌하면서 여기저기서 폭력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태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기후변화다. 테러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 또한 국경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년에 걸친 기후변화로 어떻게 한 지역이 형성됐는지, 때로는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아왔다. 그런데 대략 1950년대부터 여기에 인간이라는 요소가 끼어든다. 인구 증가에 발맞춰 땔감수요도 증가해서 이 땅의 초목이 사라져 갔다. 게다가 동시에 증가한 가축들이 그만큼 많은 풀을 먹어 치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토양 침식과 사막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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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벌어진 열강들의 패권 경쟁에서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지중해 유역에서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1870년대에 주요 강대국들 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중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을 두고 옥신각신했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왕관에박힌 보석과도 같은 존재인 인도로 들어가는 뒷문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이용하려는 러시아에 대해 우려했다. 또 러시아가 지중해를 봉쇄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입구뿐 아니라 인도로 접근하는 것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거쳐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은 아예 그리스라는 나라의 <보호자>로 자처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그리스가아니라 자신들의 제국을 보호하겠다는 저의였겠지만. - P225

그리스는 경제가 붕괴되는 와중에도 난민들의 유입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키 어려운 데다 다른 위기를 살펴볼 경황이 없는 국가에 외부세계마저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 않았다. 2016년에 상황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이주민들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막고 그리스에서 되돌아온 이들을 받아주도록 EU 측에서 터키를 회유한것이다. 그 대가는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난민 지원 기금과 터키 시민들의 EU 국가 무비자 여행이었다. 그러자 바다를 건너는 이들의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만 명이 여러 섬의 열악한 난민촌에 수용된 상태이며 사람들 또한 거의 매일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보다 북쪽에 있는 나라들의 더욱 엄격해진 태도를 보건대 대다수 EU 국가들이 더 많은 이주민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갈등, 빈곤, 기후변화 등을 촉진시키는 요인들로 인해 문제 해결에는 보다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그리스 섬들의 일부는 난민 수용소로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다. - P233

그리스는 자국에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할까봐 이웃에 있는 동명의 마케도니아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뒤 독립하여 탄생한 이 신생 국가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이 문제는 2018년에 이르러서야 해결이 났다. 양측이 마케도니아라는 국명 대신 북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리스 내에서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민족주의자들이 격렬하게 들고 일어났다. 어쨌거나 이 조치는 그대로 이행되었고 결국 북마케도니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길을 터주었다. - P238

 그런데 현대 터키는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면서 동과 서를 잇는 교차로에 또다시 서 있는 입장이다. 터키는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이주민과 난민 행렬이 통과하는 관문 중 하나로 그 문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문지기가 된다는 것은 권력을 쥔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시리아와 리비아가 포함된 아랍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에도 점점 더 자주 개입하면서 다른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부딪히기도 한다. 자신들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터키의 야심은 <신오스만주의 neo-Ottomanism>의 분명한 신호다. 이는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전 방위를 아우르면서 중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 P253

이러한 터키화 과정에는 1915년부터 1923년 사이에 행해진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도 포함되어있었다. 많은 터키인들은 오스만제국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고수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그들을 내부의적으로 간주했다. 주로 터키 내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서 자행된 대학살에서 전투 가능 연령대의 아르메니아계 남성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비슷한 수의 여성과 아이들이 강제로 추방당했고 노인들은 물과 식량도 없이 시리아 사막으로 쫓겨났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벌어진 가장 잔혹한 행위인 이 대학살은 역사에서 지워지면서 터키공화국의 새로운 건국 신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대다수 역사학자는 그 사건이 치밀하게 계획된 대량 학살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터키 당국은 그러한 잔혹 행위들이 저질러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말살시킬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계획적인 대량 학살이었다는 것만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 P263

그것은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나토의 입장에서는 냉전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터키를 가입시키면 가까운 미래에 터키가 도박을 걸거나모스크바에 의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맹의 남쪽 측면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을 터였다. 1952년에 그리스도 같은 이유로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비록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지만 두 나라 모두 나토의 선택지와 화력을 증강시켰다. 터키의 해군에게는 흑해에서 소련을 묶어두는 역할이, 육군에게는 불가리아 국경지대에서 소련 지상군을 묶어두는 역할이 주어졌다. 1960년, 1971년, 그리고 1980년에 터키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도 나토 동맹국들이 애써 못 본 체했던 것도 터키가 가진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265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이 지역에 힘을 보여줄 만큼 막대한 부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중동에서 핵심 주전 선수가 되고자 결심한 터키 정부는 그들과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아랍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이집트도 신오스만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늘 무슬림형제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었다. 무슬림형제단이라면 세계적으로 이슬람법이 지배하는 칼리프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세포와도 같은 조직들을 통해 가동하는 다국적 수니파 이슬람주의 단체다. 그들이 볼 때 거의 모든 아랍 국가들은 배격해야 할 군주제 국가이거나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관대하다. 아랍의 국가들은 이를 알고 있는 만큼 그래서 무슬림형제단을 꺼린다. 1920년대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무슬림형제단은 수년 동안 심한 탄압을 받은 끝에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되고 치러진 2012년 이집트 선거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에르도안은 희희낙락했다. 그는 이집트는 물론 리비아, 튀니지에서도 새로 들어선 이슬람 정부와 전략적 관계를 수립하기를 희망했다. 물론 터키가 상급 파트너가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이듬해수개월에 걸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정부가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고 만다. 에르도안이 이 사태를 맹비난하자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시시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만다. 시시 대통령은 다른 지역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터키를 무슬림형제단뿐 아니라 다른 이슬람 단체들과도 수상쩍은 관계를 맺고 이슬람 테러를 지원하는 위협 세력이라고 여겼다.  - P272

유프라테스강의 약 90퍼센트, 티그리스강의 45퍼센트가 아나톨리아 고원지대에서 발원한다. 유프라테스강은 시리아와 이라크로 흘러들어가서 티그리스강과 거의 나란히 흐르다가 이라크 남부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이 두 강 사이에 펼쳐진 비옥한 땅이 <두 강 사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메소포타미아다. 두 강들, 특히 그 중 유프라테스강은 무려 6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물, 식량, 에너지를 공급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다. 그리고 이 수도꼭지를 틀어쥔 쪽이 터키다.
1960년대 후반에 터키는 두 강을 따라 댐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하류 지역 나라들로 흘러 들어가는 수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으레 그렇듯 그 지역에서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댐 가운데 하나라는 아타튀르크 댐을 포함해 족히 수백 개의 댐이 건설돼 있는 상태다. - P280

물 협정은 터키의 주요한 국내 문제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댐 건설은 일자리 창출과 전기 생산, 그리고 용수를 개선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남동아나톨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들의 수원이 쿠르드족의 주 본거지인 아나톨리아 일부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터키 정부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키고, 최근까지도 쿠르드족의 민족성을 부인하면서그들을 인종적으로 <산악지대 터키인>이라고 규정하려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터키 정부는 수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하면서도 터키 국경 내에 쿠르드족 무장단체들이 발을 들이는 것을 엄중히 단속하는 데에 시리아가 찬성해야한다는 조항을 자주 고집한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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