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에게 딱 맞는 신을 찾고 싶었다!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는 특히 심한 편이다. 아버지가 암 전문의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날 끌고다니며 회진을 돌았다. 아버지는 너무 많이 볶아서 타버린 커피 냄새와 공포의 악취가 풍기는, 형광등이 켜진 연옥 같은 카페테리아에 나를 놓아두고는 환자들을 보러 갔다. "20분 뒤에 돌아오마." 그러고는 한두 시간 뒤에 미안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아버지가 맡고 있던 환자 한 명이 죽었다면서 환자들은 언제나 죽었다. 그것도 항상 병원에서 죽었다. 그래서 나의 여덟 살짜리 뇌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만 피해 다니면 절대 안 죽겠구나. 물 샐 틈 하나 없이 탄탄한 논리였다. 그리고 나는 열일곱 살에 다리가 부러졌을 때를 빼면, 대체로 그 결론대로 살아왔다 - P8

나는 떨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혹시 암일까? 그것보다 더한 병? 그런데 암보다 더한 병이 뭐지? 틀림없이 암보다 더한 병이 있을 텐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나이는 나랑 비슷했고, 말투를 보니 카리브해 지역이나 서아프리카 출신인 것 같았다. 간호사가 몸을 기울이고 피를뽑다가 내 두려움을 알아차렸는지 동작을 멈추고는 내 귓가로 다가와 내게 말했다. 천천히, 분명하게. 그 말을 나는 결코 못 잊을 것이다. "아직 당신의 신을 만나지 못하셨나요?" - P9

 하지만 이성만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내가 아는 한, 이성의 힘만으로 순수한 지복의 상태에 이른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이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뛰어난 도구지만, 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데는 그다지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한다. 이성은 뛰어난 하인이지만, 주인이 되기에는 형편없다. 이성은 G. K. 체스터튼의표현처럼 "지적으로는 당혹스럽지만 지극히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순간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 P16

우리는 처음의 몇 단어를 몇 번이나 자꾸만 되풀이한다. 라일라하 일랄라.
하느님 이외의 신은 없다. 이게 무슨 뜻인가? 예전부터 나는 이것이 알라의 우월성을 확립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신 이외의 신은 없다는 뜻이라고. 빌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수피교도들은 어디서나 신을 본다. 그들은 범신론자가 아니다. 모든 것이 신이라는 믿음은없다. 하지만 사방에 신의 흔적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볼 수 있다고. 코란은 말한다. 어디를 보든 신의 얼굴이있다. 신 그 자체가 아니라 변장한 신이다. "널리 알려지는 것을 좋아하는 숨은 보물." - P47

외지인들은 이스탄불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여긴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종교적인 곳인가 세속적인 곳인가? 고대 도시인가 현대 도시인가? 물론 이스탄불은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일컫는 ‘대조적인 것들의 도시‘라는 게으르고 진부한 말을 웃음으로 물리친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의미는 없다. 모든 대도시는, 언뜻 획일적으로 보이는 도쿄조차도 대조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위대성은 이 대조적인 것들을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판가름난다. 이스탄불은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숨은 가치를 찾아냄으로써 대조적인 것들을 수용한다. 그러니 시인들이 이 도시를 사랑하는 것도 무리가아니다. 문화의 교차점은 최고의 뮤즈가 되니까. - P52

 높은 상태의 정신, 그러니까 가슴과 머리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고 한다. "사랑에 빠지면 돼요."
"누구하고요?"
"무엇이든 돌을 사랑해도 돼요. 상대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그냥사랑에 빠지세요."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수피교도들은 정말이지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우리한테는 모든 것이 사랑이에요." 그들은 이 말을 즐겨 한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이것이 신에 대한 사랑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사랑한다는 뜻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정확히 그런 뜻이었다. 루미는 이 생각을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그는 대상이 없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고귀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혹시 이건 음식이 전혀 없을 때 먹는 행위가 가장 고귀해진다는 말과 같은 걸까?  - P76

 예전에 수피교도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상대가 무엇이 됐든 내가 왜 복종해야 하지? "중요한 건 네가 복종하는 이유야." 친구가 말했다. "두려움 때문에 복종하는 건지, 아니면 사랑 때문에 복종하는 건지. 사랑 때문에 복종하는 편이 엄청나게 쉽지." 친구가 이 말을 하는 순간뭔가가 찰칵 하고 맞아 들어갔다. 이런 종류의 복종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에 굴복하는 것이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기쁨에 굴복하는 것과 같다. 이런 종류의 복종은 개인의 자율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상식적인 일이기도 하다. 옷에 불이 붙었는데 근처에 수영장이 있다면 물에 굴복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수피교도들이 말하는 복종은 이런 것 같다. 우리는 몸에 불이 붙은 사람이고, 신은 수영장이다. 이건 뇌가 없는 사람도 알 수 있는 논리 같다. 하지만 정작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옷에 불이 붙은 채로 살아가는 법을 이미터득했거나, 수영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거나, 설사 믿더라도 물이 너무 깊어서 불길이 꺼진 뒤 결국 익사하고 말 거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수피교도는 생각하지 않는 훈련을 많이 한 사람들이라서 이런 자기합리화를 살짝 피해서 그냥 물속으로 뛰어든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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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다섯 살 아들을 둔 여자 후배가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제법진지한 얼굴로 묻더군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글쎄"라고 답은 해놓고 술잔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해봤죠. 어떤 것을 가르쳐야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다행히 그 술자리가 끝나기 전에 제 자신도 납득할 만한 답이 떠올랐습니다. 행복한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자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이야기해줬습니다. - P15

자존감을 가지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은 아마 우리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아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에 기준을두고 그것을 끄집어 내기보다 기준점을 바깥에 찍죠. 명문 중학교, 특목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엄친아, 엄친딸을 따라가는 게 우리 교육입니다. 다시 말해 판단의 기준점이 ‘나‘가 아니라 엄마 친구의 아들과 딸이란 말입니다. 이건 마치 고소영에게 너는 왜 김태희처럼 생기지 않았냐고 하는 것과 같아요. 고소영은 김태희가 아니죠. 고소영의 매력은고소영일 때 있는 겁니다. 박웅현의 매력도 박웅현일 때 있는 것이지, 제 어머니 친구분의 아들을 따라 한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친구의 아들, 딸처럼 되라고 하니 우리 각자 개인의 ‘아모르 파티‘는 어쩌라는 겁니까?
이렇게 교육받은 우리는 ‘다름‘을 두려워해요. 기준점이 되는 누군가와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다같이 몰려가는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면 불안해 합니다. - P20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입니다. 그리고 모든인생마다 기회는 달라요. 왜냐하면 내가 어디에 태어날지,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각기 다른 자신의 인생이 있어요. 그러니 기회도 다르겠죠. 그러니까 아모르 파티, 자기 인생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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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소설 혹은 역사책도 그렇지만, 철학책은 우리의 삶, 사회, 그리고 시대를 낯설게 혹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도록 하는 힘이 있어요. 물론 모든 철학책이 그렇지는 않죠.(웃음) 결국 중요한 것은 낯섦과 거리감이죠. 왜, 그런 일 있지 않나요? 한두 달 여행을 갔다 오면 익숙했던 집이나 가족들이 낯설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철학책을읽는다는 것은 아주 멀리 있는 이국적인 지역을 여행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죠. 여기서 상대화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내 삶의 형식도 절대적이지 않고,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의 형식도 절대적이지 않다는감각이 생기니까요. 그러니 내 삶의 형식도 반성할 수 있고, 동시에 다른 삶의 형식도 성찰할 수 있는 거예요.
철학자는 그런 것 같아요.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것도 익숙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철학자는 대개 특정 사회나 특정시대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죠. 익숙한 삶 혹은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삶을 뒤흔드니까요. 그래서 철학은 사유를 비판하는 특징이있어요. 생각들을 진단하고, 잘못된 생각을 폭로해야 되는 거예요. 당신 생각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생각을 상대화한다고 할까요.  - P276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의 문제를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사이의 문제로 숙고하고, 나아가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반목이 아니라 유대나 연대를 통해 자본과 맞서야 해요. 이것이 제 근본적인 입장이에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구조적으로 분할해 노동계급을 무력화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를 분할하려고 하죠. 잊지 말아야 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커질수록 노동과 자본 사이의 더 근본적인 대립 관계가 은폐되죠.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적 갈등이 심해지면 노동과 자본 사이의 첨예한 대립 관계가 희석돼요. 어느 경우든 자본계급은 ‘자기들끼리 싸우네‘ 하면서 미소를 짓겠죠. - P282

 중요한 것은 2020년 전후 페미니즘에 열광하는 여성들이 MZ 세대의 탄생과 함께한다는 점이에요.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심화와 함께 자라난 세대라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벤담적 페미니스트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대통령부터 9급 공무원까지, 혹은 CEO 부터 신입사원까지, 피라미드형 위계 구조를 받아들이고, 피라미드 하부에서 최상층부까지 각각의 자리를 남녀가 동등하게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요. 당연히 피라미드를 채웠던 남성들이나 채우리라 기대했던 남성들은 이런 경향에 저항하게 되죠.
그들도 벤담적 남성으로 훈육되었으니까요.
벤담적 여성이 ‘차별‘을 이야기하고, 벤담적 남성이 ‘역차별‘을 이야기해요. 여기서 명령하는 자와 명령을 듣는 자로 구분되는 억압구조, 억압 구조를 경쟁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라는 구분으로 정당화하고 내면화하려는 경쟁 논리는 어떤 도전도 받지 않아요.  - P285

정당 코뮌주의는 권력을 잡는 순간 국가 코뮌주의가 돼요. 당연한 일이죠. 정당은 국가기구니까요. 정치적으로 어떻게 나오느냐면,
일부 소수자본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점해서 노동계급을 지배하니.
아무도 독재하지 못하게 국가가 생산수단을 독점을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땅을 노동계급한테 주겠다, 이러는데요. 그러면 국가가 최고권력자가 되는 거예요. 국가가 유일한 대지주가 되고, 대자본이되는 거예요. 그게 국가독점자본주의잖아요. 또 다른 억압이죠. 국가가 명령을 내리고, 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은 명령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정당 코뮌주의고, 국가독점자본주의 형태란 말이에요. - P312

2011년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서 김진숙민주노총 지도위원이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였어요. 그때 김선우시인을 비롯해서 여러 작가들이 현장을 찾았어요. 그건 김진숙 한 사람한테 간 것이 아니라 해고된 수많은 사람들한테 가 있었던 거예요. 해고된 노동자들은 소수이면서 다수예요. 여기서 ‘소수minority‘는들뢰즈가 말하는 ‘권력이 없는 다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수지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작은 소리로 들리는 거죠. 그게 소수의 목소리예요. 반면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은 소수예요.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언론에서는 다수의 목소리가 되어버리는 거죠. 묘한상황이에요. 소수가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되었던 다르위시, 소수가 되어버린 수많은 해고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던 김선우! 두 시인의 시에는 같지는 않지만 공명하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죠. <詩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에서 김선우 시인은 노래해요. "점거당한 심장 단호한 물질의 말이 우리를 먹어치울 때/ 시인과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들만이 아픔에 순진하게 공명한다/ 누군가 아파서 내가 아프다고 느끼는 이것은 인류의 진화가 아름다워진 숨은 이유"라고요. 바로 이 대목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고통[苦]‘이라는 싯다르타의 마음이 급작스런 눈물처럼 아롱지죠. - P338

분업 체계에 포획되지 않은 사유, 분업체계를 가로질러 전체를 사유하는 사유, 그래서 소수의 지배와 명령을 무력화하는사유! 바로 이것이 철학이에요. 제가 누누이 철학은 민주주의와 인문주의를지향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그래서 자본주의 시대가 분업의 체제고, 전문화의 체제라고 한다면 철학자로 산다는 것은 힘들어요. 철학자로 살려면 분업에 저항하는 사람, 전문적 지식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분업 체계로 자신의 지배력을 관철하려는 소수 명령권자들로부터도, 그리고 칸막이 안에서 안주하며 개인적 행복과 이익을 꿈꾸는 사람들로부터도 환영받지못해요. 어쨌든 형식적으로 말해서 분리되어 격리된 A와 B를 소통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철학의 임무라고 할 수 있어요. 소통 가능성의 조건을 만드는 거죠. 소통이 가능한 거니까 양자역학, 통계학, 문학, 역사, 정치 그런 것들이 강신주는 철학자를 통해서 소통 가능하게 되는 거죠. 철학자는 일단 그 작업을 해야 되는거 같아요. - P355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더는 방금 완성한 글 이상으로 쓸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글 쓰는 사람은 죽은 것이고 방금 출간된책은 그의 묘지명이 되고 만다. 발레리도 자신의 묘지명에 새길 만한 시를, 혹은 산문을 마지막 힘과 총기를 모아 완성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그도 죽음의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아무것도 쓸 수없을 것만 같은 느낌, 묘석에 짓눌린 채 땅에 묻혀 옴짝달싹 못 하는 답답함, 바로 그 순간 해변의 묘지, 마랭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발레리의 우울함을 깔끔하게 날려버린다. 작게는 그의 글일 수도 크게는 그의 삶일 수도 있다. 치열한 삶만큼, 절정에 이른 삶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 그러나 마랭 묘지를 세차게 가로지른 바람은 묘석들을 뽑아버리고 묘지명들을 날려버릴 만하다. "날아 흩어져라, 찬란한 나의 페이지들이여!" 돌아보면 2021년 내내 산책길에서 만난 바람들, 그리고 마지막 교정지를 보내고 만난 겨울바람도 내게는 마랭묘지의 바람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글을 써야겠다!" 잘 돌보지 못해 미안한 내몸이 너그럽게 허락한다면.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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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분 회전수를 줄이는 거예요." 포스터가 설명했다. "대용 혈액이보다 천천히 돌아가고, 따라서 폐를 통과하는 시간적인 간격이 더길어지면 태아는 산소 공급을 덜받게됩니다. 태아를 정상 이하의상태로 유지하려면 산소를 부족하게 공급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다시금 그는 두 손을 비볐다.
"하지만 뭐하러 태아를 정상 이하의 상태로 유지합니까?" 어느 순진한 학생이 물었다.
"멍청한 녀석!"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국장이 불쑥 말했다. "업실론 태아는 엡실론 유전 요소뿐 아니라 엡실론 환경까지도 갖춰야만 한다는 생각이 네 머리에는 떠오르지도 않는단 말이냐?" - P45

뜨거운 땅굴과 차가운 땅굴이 교대로 이어졌다. 차가움은 강렬한X선의 형태로 불편함을 경험하는 연상 작용으로 이루어졌다. 유리병에서 옮겨 배양할 때쯤이면 태아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끔 그렇게 훈련이 된다. 그들은 열대 지방으로 보내서 광부와 초산인조견 직조공과 철강 근로자가 되도록 미리 결정된 인력이었다. 나중에 그들의 이성은 육체의 판단에 따르도록 저절로 길이 들 터였다. "우린 그들이 열기 속에서 활력을 갖도록 습성을 유도해요." 포스터가 결론을 지었다. "위층에서 일하는 우리 동료들은 그들이 열기를 좋아하게끔 가르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한다는 것" 국장이 단호하게 힘주어말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다. 불가피한 사회적인숙명을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훈련, 모든 습성 훈련이 목표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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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견해를 같이하듯 만성적인 자책감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혹시 무슨 나쁜 행위를 저질렀다면, 잘못을 뉘우치며 능력껏 그것을 시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스스로다짐해야 옳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에 두고두고 집착해서는안 된다.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이 몸을 깨끗이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 P8

제1장
겨우 34층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잿빛 건물, 정문 입구 위에는 ‘부화-습성 훈련 런던 총본부‘라는 현판이 걸렸고, 방패꼴 바탕에는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라는 세계국世界國, World State의 표어.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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