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소설 혹은 역사책도 그렇지만, 철학책은 우리의 삶, 사회, 그리고 시대를 낯설게 혹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도록 하는 힘이 있어요. 물론 모든 철학책이 그렇지는 않죠.(웃음) 결국 중요한 것은 낯섦과 거리감이죠. 왜, 그런 일 있지 않나요? 한두 달 여행을 갔다 오면 익숙했던 집이나 가족들이 낯설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철학책을읽는다는 것은 아주 멀리 있는 이국적인 지역을 여행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죠. 여기서 상대화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내 삶의 형식도 절대적이지 않고,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의 형식도 절대적이지 않다는감각이 생기니까요. 그러니 내 삶의 형식도 반성할 수 있고, 동시에 다른 삶의 형식도 성찰할 수 있는 거예요. 철학자는 그런 것 같아요.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것도 익숙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철학자는 대개 특정 사회나 특정시대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죠. 익숙한 삶 혹은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삶을 뒤흔드니까요. 그래서 철학은 사유를 비판하는 특징이있어요. 생각들을 진단하고, 잘못된 생각을 폭로해야 되는 거예요. 당신 생각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생각을 상대화한다고 할까요. - P276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의 문제를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사이의 문제로 숙고하고, 나아가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반목이 아니라 유대나 연대를 통해 자본과 맞서야 해요. 이것이 제 근본적인 입장이에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구조적으로 분할해 노동계급을 무력화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를 분할하려고 하죠. 잊지 말아야 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커질수록 노동과 자본 사이의 더 근본적인 대립 관계가 은폐되죠.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적 갈등이 심해지면 노동과 자본 사이의 첨예한 대립 관계가 희석돼요. 어느 경우든 자본계급은 ‘자기들끼리 싸우네‘ 하면서 미소를 짓겠죠. - P282
중요한 것은 2020년 전후 페미니즘에 열광하는 여성들이 MZ 세대의 탄생과 함께한다는 점이에요.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심화와 함께 자라난 세대라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벤담적 페미니스트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대통령부터 9급 공무원까지, 혹은 CEO 부터 신입사원까지, 피라미드형 위계 구조를 받아들이고, 피라미드 하부에서 최상층부까지 각각의 자리를 남녀가 동등하게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요. 당연히 피라미드를 채웠던 남성들이나 채우리라 기대했던 남성들은 이런 경향에 저항하게 되죠. 그들도 벤담적 남성으로 훈육되었으니까요. 벤담적 여성이 ‘차별‘을 이야기하고, 벤담적 남성이 ‘역차별‘을 이야기해요. 여기서 명령하는 자와 명령을 듣는 자로 구분되는 억압구조, 억압 구조를 경쟁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라는 구분으로 정당화하고 내면화하려는 경쟁 논리는 어떤 도전도 받지 않아요. - P285
정당 코뮌주의는 권력을 잡는 순간 국가 코뮌주의가 돼요. 당연한 일이죠. 정당은 국가기구니까요. 정치적으로 어떻게 나오느냐면, 일부 소수자본계급이 생산수단을 독점해서 노동계급을 지배하니. 아무도 독재하지 못하게 국가가 생산수단을 독점을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땅을 노동계급한테 주겠다, 이러는데요. 그러면 국가가 최고권력자가 되는 거예요. 국가가 유일한 대지주가 되고, 대자본이되는 거예요. 그게 국가독점자본주의잖아요. 또 다른 억압이죠. 국가가 명령을 내리고, 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은 명령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정당 코뮌주의고, 국가독점자본주의 형태란 말이에요. - P312
2011년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서 김진숙민주노총 지도위원이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였어요. 그때 김선우시인을 비롯해서 여러 작가들이 현장을 찾았어요. 그건 김진숙 한 사람한테 간 것이 아니라 해고된 수많은 사람들한테 가 있었던 거예요. 해고된 노동자들은 소수이면서 다수예요. 여기서 ‘소수minority‘는들뢰즈가 말하는 ‘권력이 없는 다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수지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작은 소리로 들리는 거죠. 그게 소수의 목소리예요. 반면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은 소수예요.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가 언론에서는 다수의 목소리가 되어버리는 거죠. 묘한상황이에요. 소수가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의 목소리가 되었던 다르위시, 소수가 되어버린 수많은 해고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던 김선우! 두 시인의 시에는 같지는 않지만 공명하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죠. <詩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에서 김선우 시인은 노래해요. "점거당한 심장 단호한 물질의 말이 우리를 먹어치울 때/ 시인과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들만이 아픔에 순진하게 공명한다/ 누군가 아파서 내가 아프다고 느끼는 이것은 인류의 진화가 아름다워진 숨은 이유"라고요. 바로 이 대목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고통[苦]‘이라는 싯다르타의 마음이 급작스런 눈물처럼 아롱지죠. - P338
분업 체계에 포획되지 않은 사유, 분업체계를 가로질러 전체를 사유하는 사유, 그래서 소수의 지배와 명령을 무력화하는사유! 바로 이것이 철학이에요. 제가 누누이 철학은 민주주의와 인문주의를지향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그래서 자본주의 시대가 분업의 체제고, 전문화의 체제라고 한다면 철학자로 산다는 것은 힘들어요. 철학자로 살려면 분업에 저항하는 사람, 전문적 지식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분업 체계로 자신의 지배력을 관철하려는 소수 명령권자들로부터도, 그리고 칸막이 안에서 안주하며 개인적 행복과 이익을 꿈꾸는 사람들로부터도 환영받지못해요. 어쨌든 형식적으로 말해서 분리되어 격리된 A와 B를 소통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철학의 임무라고 할 수 있어요. 소통 가능성의 조건을 만드는 거죠. 소통이 가능한 거니까 양자역학, 통계학, 문학, 역사, 정치 그런 것들이 강신주는 철학자를 통해서 소통 가능하게 되는 거죠. 철학자는 일단 그 작업을 해야 되는거 같아요. - P355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더는 방금 완성한 글 이상으로 쓸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글 쓰는 사람은 죽은 것이고 방금 출간된책은 그의 묘지명이 되고 만다. 발레리도 자신의 묘지명에 새길 만한 시를, 혹은 산문을 마지막 힘과 총기를 모아 완성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그도 죽음의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아무것도 쓸 수없을 것만 같은 느낌, 묘석에 짓눌린 채 땅에 묻혀 옴짝달싹 못 하는 답답함, 바로 그 순간 해변의 묘지, 마랭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발레리의 우울함을 깔끔하게 날려버린다. 작게는 그의 글일 수도 크게는 그의 삶일 수도 있다. 치열한 삶만큼, 절정에 이른 삶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 그러나 마랭 묘지를 세차게 가로지른 바람은 묘석들을 뽑아버리고 묘지명들을 날려버릴 만하다. "날아 흩어져라, 찬란한 나의 페이지들이여!" 돌아보면 2021년 내내 산책길에서 만난 바람들, 그리고 마지막 교정지를 보내고 만난 겨울바람도 내게는 마랭묘지의 바람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글을 써야겠다!" 잘 돌보지 못해 미안한 내몸이 너그럽게 허락한다면.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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