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속의죽은 병사들은 놀랄 만큼 살아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자신들의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자신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말이다. 그렇지만 왜 그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를 꼭 들려줘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해준다 해도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 - P184

소련의 당 대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장일치의 박수, 자축의박수는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관료들과 대중매체 논평자들이 독실한 신자인 척하며 만장일치로 무책임하게 지껄여대고 있는 말들, 현실을 감추려는 수사도 성숙한 민주주의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지금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사람들을 속이는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자신감을 부추기고, 슬픔을 조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래 전부터 심리요법이 정치, 특히 논쟁을 수반하고 허심탄회함을 장려하는민주주의 정치를 대신해 왔던 것이다. 부디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은 강하다"라는 말을 우리는 끊임없이 들어 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말은 전혀 위안이되지 않는다. 미국이 강하다는 사실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나꼭 강해지는 것만이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 P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몇 고비를 넘긴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인민군가 대신 학교에서 배운 새 노래로,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를 소리높여 부를 수 있게끔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윤봉이었다.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음을 그 애한테 이해시키기란 참말이지 장대로 보름달을 따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었다. 녀석은 저를 그토록 귀애해 주던 나어린인민군병사가 왜 갑자기 떠나버렸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 노래에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던 마을 사람들이 약속이라도한 듯이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꾸어 바보 윤봉이로 통하던 당시처럼 다시 거들떠도 안 보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전연 몰랐다. 하기야 너석 입장에서 본다면 구태여 그걸 알고 이해할 필요가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축음기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마음이 내킬 때마다 그걸 틀기만 하면 되었다. 그걸 틀고만 있으면 빛나던 시절 화려한 기억이 저한테서 떠나지 않고 머무는 줄로 알았다.  - P1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두 번째 사고방식은 방금 묘사했던 사고방식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듯한 사고방식으로서,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 아니 그것도 사방팔방이 모조리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는 우리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인가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져 간다는사고방식이다. 예컨대 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버리는 셈이다. 결국 우리의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이미지는 뭔가를 느낄 수 있는능력을 우리에게서 서서히 앗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 P156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프롤로그

우선 실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아주 멋진 페르시아 융단과날카로운 칼이 있다. 융단의 크기는 1218 피트라고 하자. 즉, 넓이가216 평방피트인 융단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칼날은 면도날처럼 아주 예리한가? 그렇지 않다면 숫돌로 갈아서 날을 예리하게 벼려라. 이제 이 융단을 칼로 잘라서 2×3피트짜리 직사각형 36개로 만들려고 한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잘려나가는 섬유 조각들이 마치 분노한 융단 직공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마룻바닥 위로 떨어질 것이다. 뭐, 그렇지만 융단 직공들은 신경 쓰지 말기로 하자. 다 자르고 나서 조각들의 크기를 모두 재서 합해보니, 전체 넓이는 여전히 216 평방피트이고, 각각의 조각도 융단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일까? 작지만 멋진페르시아 깔개가 36개 생긴 것일까? 천만에! 너덜너덜 해어지고 풀려나가기 시작하여 아무 쓸모없는 조각들만 남았을 뿐이다.
같은 논리를 실외에 적용해보면, 발리 섬에서 호랑이가 왜 사라졌는지, 미국 브라이스캐니언 국립공원에서 붉은여우가 왜 사라졌는지 쉽게알 수 있다. 또한, 파나마의 바로콜로라도 섬에서 재규어와 퓨마와 조류 45종이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장소에서 왜 수많은 생물을볼 수 없는지도 설명이 된다. 생태계는 종들과 상호관계라는 실로 짠 융단과 같다. 한 부분을 잘라내 고립시키면, 실이 풀려나가면서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 P16

발리 섬과 롬복 섬은 크기가 비슷하고, 지형과 기후도 비슷하며, 서로 바로 이웃에 위치한 섬인데도 서식하는 동물의 종류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윌리스는 "이 두 섬에 서식하는 조류와 네발짐승의 종류는 영국과 일본만큼이나 큰 차이가 난다."라고 썼다. 그리고 왜 그럴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윌리스선의 비밀은 결국 후대의 생물지리학자들이 밝혀냈는데, 깊은바다가 원인이었다. 발리 섬과 롬복 섬 사이의 바다는 폭은 얼마 되지않지만 깊이가 매우 깊다. 롬복 심은 대륙붕 바로 바깥에 위치하지만, 발리 섬은 대륙붕 끝부분에 얹혀 있다. 한때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었던 발리 섬은 자바 섬, 보르네오 섬, 수마트라 섬, 말레이 반도와 같은 동물상과 식물상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롬복 섬과 그 동쪽에 있는나머지 섬들은 깊은 바다 때문에 대륙과 분리되어 있다. 윌리스는 이 사실을 직접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단서가 되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패턴은 더 많은 사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발리 섬과 롬복 섬사이의 좁은 해협은 생물지리학이 큰 관심을 끈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 P33

월리스선을 건너려고 시도하는 나비는 중요한 주제들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중요한 주제들이란, 격리와 종 분화와 확산이다. 세 가지 주제 중에서 가장 명백한 것은 격리이다. 섬은 본질적으로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격리는 종 분화를 촉진하는데, 종 분화란 한 종이 여러 종으로 갈라져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섬의 격리는 절대적인 장벽이 아니며, 어떤생물은 그 장벽을 뛰어넘는다. 그것이 바로 확산이다. 발리 섬에서 출발한 흰 나비는 어쩌면 롬복 섬에 도착하여 비슷한 나비 집단 속에서 어떤 유전적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지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섬 생물지리학이 특별한 명료성을 지닌 이유 중일부는 바로 넓은 바다를 건너 확산하기가 아주 어려운 데 있다. 많은종이 출발은 하지만 바다를 무사히 건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확산을 시도하는 생물들의 실패와 죽음은 격리를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시킴으로써 종 분화를 촉진한다. - P37

기독교 정통 교리 중에서 곤경에 빠진 것은 노아의 방주를 실제로 존재한 물리적 배로 보았을 때 생기는 모순뿐만이 아니었다. 노아의 방주가육지에 닿아 동물들이 내렸다는 산꼭대기도 문제였다. 비록 창세기에는그 정확한 위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에따르면 터키 동부에 있는 아라라트 산이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에서 내린 동물들이 터키 동부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보아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물들의 분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대홍수 뒤에 살아남은 동물들이 모두 아라라트 산에서 내렸다면, 어떻게 수많은 종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장소로 퍼져가 살고 있을까?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확산이라는 문제이다. 날지 못하는 레아가 어떻게 터키에서 남아메리카까지 갈 수 있었을까? 걸어서갔단 말인가? 그리고 추운 날씨와 언 바다와 맛있는 물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북극곰은 어떻게 북극 지방까지 갔을까? 그러려면 배고픔과 무더위 속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캥거루는 어떻게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갈 수 있었을까? 아무리 뜀박질을 말한다고 해도 얼마나 멀리 뛰어갈 수 있었겠는가?
좀 더 복잡한 차원에서 본다면, 분포 패턴의 불연속성 문제도 있다.
설사 캥거루가 아라라트 산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뛰어갔다고 하더라도, 왜 아시아에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을까? 코카투앵무가 방주에서 출발하여 남동쪽으로 날아갔다 하더라도, 어떻게 중간에 둥지를 한 군데도 틀지 않고 곧장 롬복 섬까지 날아갈 수 있었을까? 왜 이 동물들은 모두 중간에 있는 넓은 땅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을까? - P47

대양도는 이전에 대륙과 연결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연결될 가능성이전혀 없는 섬을 말한다. 대양도는 어떤 지질학적 과정(대개 화산 분화)을통해 깊은 해저에서 솟아올라 생겨난다. 이 섬은 비교적 짧은 생애를 보낸 뒤에 파도에 침식되어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화산섬들이다. 하와이 제도 역시 화산섬이고,
모리셔스 섬과 레위니옹 섬도 화산섬이다. 최근에 새로 생겨난 화산섬으로 쉬르트세이 섬이 있는데, 이 섬은 1963년에 아이슬란드 남동쪽 연안에서 솟아올랐다. 산호가 암석을 만드는 작용이 대양도 탄생에 도움을주는 경우가 있다. 산호가 만든 석회암이 수면 바로 밑에 쌓여 있다가 화산 활동이나 판의 활동을 통해 수면 위로 상승하는 것이다. 일부는 석회암, 일부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괌 섬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대양도이다.
산호가 쌓여 생기는 용암이 분출되어 생기든, 대양도는 모두 수면 아래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솟아오르는 고래처럼 솟아오른다. 따라서 대양도에는 처음에는 육상 생물이 전혀 없다. 이 점은 대양도와 대륙도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특징이다. 대양도에 사는 육상 동물과 식물은 모두 섬이 생긴 뒤에 바다를 건너 도착한 동물이나 식물에서유래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륙도인 발리 섬과 마다가스카르 섬은격리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이미 많은 육상 동식물 종이 살고 있었다. - P73

다윈은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아직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20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의 위대한 진화론 책은 아직완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을 한 학기도 다닌 적이 없고, 말레이 제도에서 딱정벌레나 채집해 파는 무명의 젊은이가 주제넘게도 그것을 설명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아주 오래된 화산섬 집단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가본 적도 없는 윌리스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현재보다 더 가까이 대륙에 연결된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많은사람들이 《비글호 항해기》를 읽었지만, 갈라파고스 제도를 다룬 장을 월리스처럼 하찮게 여긴 사람은 없었다. 월리스는 사라왁에서 쓴 논문에서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새로 생겨나는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그섬들도 처음에는 바람과 해류에 실려 옮겨온 생물들이 자리를 잡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최초의 종들은 모두 죽어 사라지고, 변형된 원형들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 ‘변형된 원형들‘은 다윈이 보고한 고유종(거북, 핀치, 앵무, 이구아나등등)이었다. 특히 핀치는 월리스의 ‘법칙‘이 성립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즉, 근연종들의 집단 전체가 동일한 공간과 시간에 존재했던 것이다. 윌리스는 다윈이 발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다윈이 감히 말하지 못했던 개념을 주장했다. 즉, 격리와 시간이 결합하면 진화의 자연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고 했다.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매그넘이 직접적으로 표방했던 취지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사진 잡지들이 할당해준 일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한 채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진작가들을 대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취지였다. 이에 덧붙여, 종전 직후에 새롭게 창설된 각종 국제 조직이나 동업 조합의 창립 선언문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이었던 매그넘의 선언문은 윤리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예전보다 확대된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의 사명을 명쾌하게밝혀 놓았다. 전쟁의 시기에서든 평화의 시기에서든, 광신적 애국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난 채 공정한 목격자의 한 명으로서 자신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기록할 것. - P59

용이 사람 머리를 으지적으지적 씹어대는 장면을 묘사한 골치우스의 동판화 『카드모스의 동료들을 집어삼키는 용』(1588)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과 총에 맞아 얼굴이 날아가 버린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의 사진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의 공포는 예술가의 숙련된 관찰과 손놀림을 보여주는 복잡한 피사체(풍경 속의 인물들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공포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신체 손상을 입은 실제 인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카메라로 기록한 것이다. 전자가 뭔가를 말해준다면, 후자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다. 창조된 공포는 전적으로 불가항력적인 것이 될 수 있다(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을 그린 티치아노)의 거대한 그림을 쳐다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 주제를 다룬 다른 그림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지만 실제의 공포를 근접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 를 할 수 있었던 사람(즉, 그런 사진이 촬영됐던 군사 병원의 외과의사)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 P67

프랑스 군인들이 그림에서 그려진 것과 정확히 똑같은 잔악행위를 스페인에서 저지르지 않았다(그러니까 그들의 희생자가정확히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며, 나무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해서 『전쟁의 참화가 지닌 품격이 손상될 일은 결코 없다. 고야의 이미지들은 일종의 종합이다. 그 이미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장의 사진이나 영상 필름은 카메라의 렌즈앞에 놓인 것을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 사진은 뭔가를 환기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사진이 손으로 만든 이미지와는 달리, 뭔가를 증명해 준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무엇을 증명하는가? 카파의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카파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어느믿을 만한 편집물에는 쓰러지는 병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이보이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의심은 전쟁 사진을 논할 때마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어떤 가설에 따르면, 이 사진은 전선 부근에서 실시된 군사훈련 모습을담고 있다고 한다). 사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전혀 융통성이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 P74

실질적으로, 잘 알려진 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히게 된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한 세대의 의식에 아로새겨지게 된 이미지들이 지닌 도덕적 진정성의핵심이다. 1972년부터 베트남 전쟁의 참사를 찍은 휜 콩 우트의사진들 중 가장 중요한 사진은 미군이 쏜 네이팜탄에 공격을 받은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이제 막 마을에서 도로로 뛰쳐나오던 어린아이를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연출되는 게 불가능한 그런사진 축에 낀다. 베트남 전쟁 이래로 인상 깊었던 대부분의 전쟁에서 찍힌 유명한 사진들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 전쟁 이래로 연출된 전쟁 사진이 거의 없어지게 됐다는 사실은 사진작가들이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적 성실성을 지니게 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설명 방식이 있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에는 텔레비전이 전쟁의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매체가 됐고, 그에 따라 레이카나 니콘 카메라를 손에 든채 상당 시간 숨어 다니며 행동했던 대담하고 고립된 사진작가들은 이제 텔레비전 스태프들과 경쟁해야만 했으며, 그들의 접근을참아내야만 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전쟁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더 이상 고독한 모험이 아니게 됐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사진이 변조된다거나 전자 장비로 조작될 가능성이 전례 없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커졌다. 그렇지만 극적인 보도 사진을 날조해 카메라에 담는 행위는 이제 헛된 기술이 되어버린 듯하다. - P90

검열은 늘 존재해 왔으나, 국가의 장군들이나 상층부들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오랫동안 오락가락했다. 언론이 전선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막은 최초의 체계적인 금지령은 제1차 세계대전당시에 나왔다. 독일과 프랑스의 최고사령관들은 엄격하게 선별된 소수의 종군 사진작가들만 전투 장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영국 참모부는 언론을 그다지 완고하게 검열하지 않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진들이 국내의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수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50여 년이 더 지나야 했고, 사상처음 전쟁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면서 검열도 완화되어야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전쟁 사진이 전쟁에 대한 규범적인 비판 자체가 되어갔다. 이렇게 되자, 주류 대중매체들은 전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선전을 더 이상 유포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들이 지지한 전투를 두고 사람들이 더 이상 욕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훨씬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 P101

미국이 자신들의 권력에 저항하는 무수한 적들에 맞서 원격으로 전쟁을 지휘하는 이 시대에는, 대중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텔레비전 뉴스 생산자들과 신문·잡지의 사진 편집자들은 매일같이 주저하면서도 대중들이 알아야 할 범위를 놓고 의견의 일치를 봐야 한다. 때때로 그들의 결정 사항은 ‘훌륭한 감식력,‘ 즉 특정 기관이 앞장서 주장할 때에는 흔히 억압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일종의 기준에 대한 판단이 되기도 한다. 2001년 9월 11일에발생한 세계무역센터 공격 직후에 찍힌 끔찍한 주검 사진들이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훌륭한 감식력의 범위에 머무르기 위해서였다. - P105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화된 아프리카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그곳의 육감적인 음악을 제외한다면 주로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잊지 못할 사진들로 존재한다. 1960년대 말 기근이 들린 비아프라 주민들의 모습에서부터 1994년 거의 1백만 명이 죽어 갔던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르완다 투치족 생존자들의 모습, 그리고 몇 년 뒤 시에라리온의반군 세력인 <통일혁명전선>이 공포 정책을 펴나가던 시기에 그들에게 사지가 잘린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이 그렇다(좀더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면, 빈곤에 찌든 채 에이즈로 죽어 가는 일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악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 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 P109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것이다. 
•••••••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를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망각한 채, 자신들보다 어두운 피부를 지닌 이국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광경을 사진에 찍어 전시하는 것도 이와 똑같은 일이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백인들처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실린 유명한 사진에 찍힌 사람, 부상을 입은채 목숨을 구걸해야만 할 운명에 처한 그 탈레반 병사에게도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 자매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자 형제인 그 병사가 살육되는 장면이 찍힌 저 세 장의 컬러 사진을 보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아직 그 사진들을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 P112

현대의 희망, 현대의 윤리적 감수성에 중심이 되는 것은비록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탈선이며, 비록 얻기어렵긴 하지만 평화는 규범이라는 확신이다. 물론, 전 역사를 통해서 전쟁이 늘 이런 식으로만 여겨진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전쟁이 표준적인 상황이었으며 평화가 예외적인 것이었다.
『일리아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절정 부분에서는 인간들이 전투 중에 어떻게 부상입고 살해되는지를 정확하게 묘사하는일이 늘 되풀이되곤했다. 전쟁은 인간이 상습적으로 행하는 일, 그것 자체가 인간에게 가한 고통이 누적된 까닭에 결코 억제되지못하는 그 무엇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말이나 그림으로 전쟁을 재현하려면 예민하고 움츠려들지 않을 초연함이 필요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전투 장면을 그릴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을 언급하면서, 예술가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의 면면을 보여줄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 P114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그리고 사진은 일종의 연금술로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때때로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훨씬 더 잘 보게 되며,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보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실물보다 좋게 보이지 않는 사진에 늘 실망을 감추지못한다). 뭔가를 미화하는 것은 카메라의 전통적인 기능으로서, 이런 기능은 보여진 것에 대한 사람들의 도덕적 반응을 하얗게 표백해 버린다. 뭔가를 최악의 상태로 보여줘 그것을 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좀더 근래에 등장한 기능이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이런 기능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뭔가를 고발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의 행동까지 변화시키려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 P125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비록 우리가 권력과 맺고 있는 실제 관계를 또 한번 신비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