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이 직접적으로 표방했던 취지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사진 잡지들이 할당해준 일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한 채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진작가들을 대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취지였다. 이에 덧붙여, 종전 직후에 새롭게 창설된 각종 국제 조직이나 동업 조합의 창립 선언문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이었던 매그넘의 선언문은 윤리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예전보다 확대된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의 사명을 명쾌하게밝혀 놓았다. 전쟁의 시기에서든 평화의 시기에서든, 광신적 애국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난 채 공정한 목격자의 한 명으로서 자신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기록할 것. - P59
용이 사람 머리를 으지적으지적 씹어대는 장면을 묘사한 골치우스의 동판화 『카드모스의 동료들을 집어삼키는 용』(1588)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과 총에 맞아 얼굴이 날아가 버린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의 사진을 보고 전율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의 공포는 예술가의 숙련된 관찰과 손놀림을 보여주는 복잡한 피사체(풍경 속의 인물들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공포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신체 손상을 입은 실제 인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카메라로 기록한 것이다. 전자가 뭔가를 말해준다면, 후자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다. 창조된 공포는 전적으로 불가항력적인 것이 될 수 있다(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을 그린 티치아노)의 거대한 그림을 쳐다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 주제를 다룬 다른 그림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지만 실제의 공포를 근접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 를 할 수 있었던 사람(즉, 그런 사진이 촬영됐던 군사 병원의 외과의사)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 P67
프랑스 군인들이 그림에서 그려진 것과 정확히 똑같은 잔악행위를 스페인에서 저지르지 않았다(그러니까 그들의 희생자가정확히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며, 나무 옆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해서 『전쟁의 참화가 지닌 품격이 손상될 일은 결코 없다. 고야의 이미지들은 일종의 종합이다. 그 이미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장의 사진이나 영상 필름은 카메라의 렌즈앞에 놓인 것을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 사진은 뭔가를 환기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사진이 손으로 만든 이미지와는 달리, 뭔가를 증명해 준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무엇을 증명하는가? 카파의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카파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어느믿을 만한 편집물에는 쓰러지는 병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이보이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의심은 전쟁 사진을 논할 때마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어떤 가설에 따르면, 이 사진은 전선 부근에서 실시된 군사훈련 모습을담고 있다고 한다). 사진에 관한 한, 모든 사람들은 전혀 융통성이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 P74
실질적으로, 잘 알려진 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히게 된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한 세대의 의식에 아로새겨지게 된 이미지들이 지닌 도덕적 진정성의핵심이다. 1972년부터 베트남 전쟁의 참사를 찍은 휜 콩 우트의사진들 중 가장 중요한 사진은 미군이 쏜 네이팜탄에 공격을 받은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이제 막 마을에서 도로로 뛰쳐나오던 어린아이를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연출되는 게 불가능한 그런사진 축에 낀다. 베트남 전쟁 이래로 인상 깊었던 대부분의 전쟁에서 찍힌 유명한 사진들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 전쟁 이래로 연출된 전쟁 사진이 거의 없어지게 됐다는 사실은 사진작가들이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적 성실성을 지니게 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가지 설명 방식이 있다. 베트남 전쟁의 경우에는 텔레비전이 전쟁의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매체가 됐고, 그에 따라 레이카나 니콘 카메라를 손에 든채 상당 시간 숨어 다니며 행동했던 대담하고 고립된 사진작가들은 이제 텔레비전 스태프들과 경쟁해야만 했으며, 그들의 접근을참아내야만 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전쟁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더 이상 고독한 모험이 아니게 됐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사진이 변조된다거나 전자 장비로 조작될 가능성이 전례 없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커졌다. 그렇지만 극적인 보도 사진을 날조해 카메라에 담는 행위는 이제 헛된 기술이 되어버린 듯하다. - P90
검열은 늘 존재해 왔으나, 국가의 장군들이나 상층부들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오랫동안 오락가락했다. 언론이 전선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막은 최초의 체계적인 금지령은 제1차 세계대전당시에 나왔다. 독일과 프랑스의 최고사령관들은 엄격하게 선별된 소수의 종군 사진작가들만 전투 장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영국 참모부는 언론을 그다지 완고하게 검열하지 않았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진들이 국내의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수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50여 년이 더 지나야 했고, 사상처음 전쟁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면서 검열도 완화되어야 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전쟁 사진이 전쟁에 대한 규범적인 비판 자체가 되어갔다. 이렇게 되자, 주류 대중매체들은 전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선전을 더 이상 유포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들이 지지한 전투를 두고 사람들이 더 이상 욕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훨씬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 P101
미국이 자신들의 권력에 저항하는 무수한 적들에 맞서 원격으로 전쟁을 지휘하는 이 시대에는, 대중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텔레비전 뉴스 생산자들과 신문·잡지의 사진 편집자들은 매일같이 주저하면서도 대중들이 알아야 할 범위를 놓고 의견의 일치를 봐야 한다. 때때로 그들의 결정 사항은 ‘훌륭한 감식력,‘ 즉 특정 기관이 앞장서 주장할 때에는 흔히 억압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일종의 기준에 대한 판단이 되기도 한다. 2001년 9월 11일에발생한 세계무역센터 공격 직후에 찍힌 끔찍한 주검 사진들이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훌륭한 감식력의 범위에 머무르기 위해서였다. - P105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화된 아프리카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그곳의 육감적인 음악을 제외한다면 주로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잊지 못할 사진들로 존재한다. 1960년대 말 기근이 들린 비아프라 주민들의 모습에서부터 1994년 거의 1백만 명이 죽어 갔던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은 르완다 투치족 생존자들의 모습, 그리고 몇 년 뒤 시에라리온의반군 세력인 <통일혁명전선>이 공포 정책을 펴나가던 시기에 그들에게 사지가 잘린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의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이 그렇다(좀더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면, 빈곤에 찌든 채 에이즈로 죽어 가는 일가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있다).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악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 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 P109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것이다. •••••••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를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망각한 채, 자신들보다 어두운 피부를 지닌 이국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광경을 사진에 찍어 전시하는 것도 이와 똑같은 일이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백인들처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실린 유명한 사진에 찍힌 사람, 부상을 입은채 목숨을 구걸해야만 할 운명에 처한 그 탈레반 병사에게도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 자매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자 형제인 그 병사가 살육되는 장면이 찍힌 저 세 장의 컬러 사진을 보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아직 그 사진들을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 P112
현대의 희망, 현대의 윤리적 감수성에 중심이 되는 것은비록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탈선이며, 비록 얻기어렵긴 하지만 평화는 규범이라는 확신이다. 물론, 전 역사를 통해서 전쟁이 늘 이런 식으로만 여겨진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전쟁이 표준적인 상황이었으며 평화가 예외적인 것이었다. 『일리아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절정 부분에서는 인간들이 전투 중에 어떻게 부상입고 살해되는지를 정확하게 묘사하는일이 늘 되풀이되곤했다. 전쟁은 인간이 상습적으로 행하는 일, 그것 자체가 인간에게 가한 고통이 누적된 까닭에 결코 억제되지못하는 그 무엇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말이나 그림으로 전쟁을 재현하려면 예민하고 움츠려들지 않을 초연함이 필요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전투 장면을 그릴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을 언급하면서, 예술가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의 면면을 보여줄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 P114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그리고 사진은 일종의 연금술로서,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받는다. 때때로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훨씬 더 잘 보게 되며,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된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보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주요 기능들 중 하나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실물보다 좋게 보이지 않는 사진에 늘 실망을 감추지못한다). 뭔가를 미화하는 것은 카메라의 전통적인 기능으로서, 이런 기능은 보여진 것에 대한 사람들의 도덕적 반응을 하얗게 표백해 버린다. 뭔가를 최악의 상태로 보여줘 그것을 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좀더 근래에 등장한 기능이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이런 기능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뭔가를 고발하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의 행동까지 변화시키려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 P125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비록 우리가 권력과 맺고 있는 실제 관계를 또 한번 신비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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