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선 실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아주 멋진 페르시아 융단과날카로운 칼이 있다. 융단의 크기는 1218 피트라고 하자. 즉, 넓이가216 평방피트인 융단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칼날은 면도날처럼 아주 예리한가? 그렇지 않다면 숫돌로 갈아서 날을 예리하게 벼려라. 이제 이 융단을 칼로 잘라서 2×3피트짜리 직사각형 36개로 만들려고 한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잘려나가는 섬유 조각들이 마치 분노한 융단 직공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마룻바닥 위로 떨어질 것이다. 뭐, 그렇지만 융단 직공들은 신경 쓰지 말기로 하자. 다 자르고 나서 조각들의 크기를 모두 재서 합해보니, 전체 넓이는 여전히 216 평방피트이고, 각각의 조각도 융단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일까? 작지만 멋진페르시아 깔개가 36개 생긴 것일까? 천만에! 너덜너덜 해어지고 풀려나가기 시작하여 아무 쓸모없는 조각들만 남았을 뿐이다.
같은 논리를 실외에 적용해보면, 발리 섬에서 호랑이가 왜 사라졌는지, 미국 브라이스캐니언 국립공원에서 붉은여우가 왜 사라졌는지 쉽게알 수 있다. 또한, 파나마의 바로콜로라도 섬에서 재규어와 퓨마와 조류 45종이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장소에서 왜 수많은 생물을볼 수 없는지도 설명이 된다. 생태계는 종들과 상호관계라는 실로 짠 융단과 같다. 한 부분을 잘라내 고립시키면, 실이 풀려나가면서 해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 P16

발리 섬과 롬복 섬은 크기가 비슷하고, 지형과 기후도 비슷하며, 서로 바로 이웃에 위치한 섬인데도 서식하는 동물의 종류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윌리스는 "이 두 섬에 서식하는 조류와 네발짐승의 종류는 영국과 일본만큼이나 큰 차이가 난다."라고 썼다. 그리고 왜 그럴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윌리스선의 비밀은 결국 후대의 생물지리학자들이 밝혀냈는데, 깊은바다가 원인이었다. 발리 섬과 롬복 섬 사이의 바다는 폭은 얼마 되지않지만 깊이가 매우 깊다. 롬복 심은 대륙붕 바로 바깥에 위치하지만, 발리 섬은 대륙붕 끝부분에 얹혀 있다. 한때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었던 발리 섬은 자바 섬, 보르네오 섬, 수마트라 섬, 말레이 반도와 같은 동물상과 식물상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롬복 섬과 그 동쪽에 있는나머지 섬들은 깊은 바다 때문에 대륙과 분리되어 있다. 윌리스는 이 사실을 직접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단서가 되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패턴은 더 많은 사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발리 섬과 롬복 섬사이의 좁은 해협은 생물지리학이 큰 관심을 끈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 P33

월리스선을 건너려고 시도하는 나비는 중요한 주제들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중요한 주제들이란, 격리와 종 분화와 확산이다. 세 가지 주제 중에서 가장 명백한 것은 격리이다. 섬은 본질적으로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격리는 종 분화를 촉진하는데, 종 분화란 한 종이 여러 종으로 갈라져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섬의 격리는 절대적인 장벽이 아니며, 어떤생물은 그 장벽을 뛰어넘는다. 그것이 바로 확산이다. 발리 섬에서 출발한 흰 나비는 어쩌면 롬복 섬에 도착하여 비슷한 나비 집단 속에서 어떤 유전적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지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섬 생물지리학이 특별한 명료성을 지닌 이유 중일부는 바로 넓은 바다를 건너 확산하기가 아주 어려운 데 있다. 많은종이 출발은 하지만 바다를 무사히 건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확산을 시도하는 생물들의 실패와 죽음은 격리를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시킴으로써 종 분화를 촉진한다. - P37

기독교 정통 교리 중에서 곤경에 빠진 것은 노아의 방주를 실제로 존재한 물리적 배로 보았을 때 생기는 모순뿐만이 아니었다. 노아의 방주가육지에 닿아 동물들이 내렸다는 산꼭대기도 문제였다. 비록 창세기에는그 정확한 위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기독교의 전통적인 견해에따르면 터키 동부에 있는 아라라트 산이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에서 내린 동물들이 터키 동부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보아서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물들의 분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대홍수 뒤에 살아남은 동물들이 모두 아라라트 산에서 내렸다면, 어떻게 수많은 종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장소로 퍼져가 살고 있을까?
가장 단순한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확산이라는 문제이다. 날지 못하는 레아가 어떻게 터키에서 남아메리카까지 갈 수 있었을까? 걸어서갔단 말인가? 그리고 추운 날씨와 언 바다와 맛있는 물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북극곰은 어떻게 북극 지방까지 갔을까? 그러려면 배고픔과 무더위 속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긴 여행을 해야 한다. 캥거루는 어떻게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갈 수 있었을까? 아무리 뜀박질을 말한다고 해도 얼마나 멀리 뛰어갈 수 있었겠는가?
좀 더 복잡한 차원에서 본다면, 분포 패턴의 불연속성 문제도 있다.
설사 캥거루가 아라라트 산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뛰어갔다고 하더라도, 왜 아시아에는 한 마리도 남지 않았을까? 코카투앵무가 방주에서 출발하여 남동쪽으로 날아갔다 하더라도, 어떻게 중간에 둥지를 한 군데도 틀지 않고 곧장 롬복 섬까지 날아갈 수 있었을까? 왜 이 동물들은 모두 중간에 있는 넓은 땅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을까? - P47

대양도는 이전에 대륙과 연결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연결될 가능성이전혀 없는 섬을 말한다. 대양도는 어떤 지질학적 과정(대개 화산 분화)을통해 깊은 해저에서 솟아올라 생겨난다. 이 섬은 비교적 짧은 생애를 보낸 뒤에 파도에 침식되어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화산섬들이다. 하와이 제도 역시 화산섬이고,
모리셔스 섬과 레위니옹 섬도 화산섬이다. 최근에 새로 생겨난 화산섬으로 쉬르트세이 섬이 있는데, 이 섬은 1963년에 아이슬란드 남동쪽 연안에서 솟아올랐다. 산호가 암석을 만드는 작용이 대양도 탄생에 도움을주는 경우가 있다. 산호가 만든 석회암이 수면 바로 밑에 쌓여 있다가 화산 활동이나 판의 활동을 통해 수면 위로 상승하는 것이다. 일부는 석회암, 일부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괌 섬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대양도이다.
산호가 쌓여 생기는 용암이 분출되어 생기든, 대양도는 모두 수면 아래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솟아오르는 고래처럼 솟아오른다. 따라서 대양도에는 처음에는 육상 생물이 전혀 없다. 이 점은 대양도와 대륙도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특징이다. 대양도에 사는 육상 동물과 식물은 모두 섬이 생긴 뒤에 바다를 건너 도착한 동물이나 식물에서유래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륙도인 발리 섬과 마다가스카르 섬은격리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이미 많은 육상 동식물 종이 살고 있었다. - P73

다윈은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아직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20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의 위대한 진화론 책은 아직완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을 한 학기도 다닌 적이 없고, 말레이 제도에서 딱정벌레나 채집해 파는 무명의 젊은이가 주제넘게도 그것을 설명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아주 오래된 화산섬 집단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가본 적도 없는 윌리스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현재보다 더 가까이 대륙에 연결된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많은사람들이 《비글호 항해기》를 읽었지만, 갈라파고스 제도를 다룬 장을 월리스처럼 하찮게 여긴 사람은 없었다. 월리스는 사라왁에서 쓴 논문에서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새로 생겨나는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그섬들도 처음에는 바람과 해류에 실려 옮겨온 생물들이 자리를 잡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에 최초의 종들은 모두 죽어 사라지고, 변형된 원형들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 ‘변형된 원형들‘은 다윈이 보고한 고유종(거북, 핀치, 앵무, 이구아나등등)이었다. 특히 핀치는 월리스의 ‘법칙‘이 성립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즉, 근연종들의 집단 전체가 동일한 공간과 시간에 존재했던 것이다. 윌리스는 다윈이 발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다윈이 감히 말하지 못했던 개념을 주장했다. 즉, 격리와 시간이 결합하면 진화의 자연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고 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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