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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0월

모자수는 좋아하는 만화책과 오래된 동전, 아버지의 안경처럼 특별한 물건을 보관해두는 트렁크 뚜껑 안쪽에 레슬링 선수 역도산 사진을 붙여놓았다. 이 조선인 레슬링 선수와 달리 모자수는 상대에게 너무 가까이 붙어서 몸싸움을 오래 벌이기를 좋아하지않았다. 역도산은 가라테촙으로 유명했고, 이와 비슷하게 모자수도 상대를 정확하게 겨냥해서 쳤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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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돌아가야겠어." 하루키가 말했다. "늦으면 혼날 거야."
"넌 겁쟁이구나." 모자수가 말했다. "선생님이 너한테 소리칠까봐 그렇게 신경 쓰여? 가라 선생님은 너보다도 더 겁쟁이야."
하루키가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괜찮다면 쉬는 시간에 나랑 같이 앉아도 돼." 모자수는이런 제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하루키가 그 개자식들한테 다시 한번 말을 걸려고 애쓰다가 거부당하면 도저히 참을 수없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하루키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고 곤혹스러웠다.
"정말이야?" 하루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모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처음에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결코 잊지 않았다.

2권에서 계속 -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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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신장주의자들은 여성들이 남성들과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회에서 남녀 비율에 맞추어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들이천성적으로 남성과 다르다면 그들의 주장은 옳다. 만약 여성이 남성과 동일하다면, 남성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만큼 여성의 권익을 대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성적 평등을 믿는 것은 당연하지만 성적 동등을 믿는 것은 가장 별나고 반反여권신장주의적이다.
이 모순을 인정하는 여권신장주의자들은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웃음을 산다. 문학평론가이자 독설가인 카밀 파글리아Camille Paglia는 여권신장주의는 성공할 수 없는 속임수를 시도하고있다고 보는 몇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 속임수란, 여성의 본성은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고집하면서 남성의 본성을 바꾸려는 것이다. 남자는 숨겨놓은 여성이 아니며 여자는 숨겨놓은 남성이 아니라고 파글리아는 주장한다. "깨어라,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 P400

그렇지만 동성애의 원인이 태어난 이후가 아니라 모체의 자궁 안에 있을 때 받은 불균형한 호르몬 영향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것은 또한 성 선호 심리가 출생전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지지한다. 이 사실은 동성애가 유전적으로 결정됨을 보여주는 최근의 연구 증거들과 잘 맞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게이gay 유전자‘에 대해 특정 조직의 테스토스테론 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유전자로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동성애는 선천적이기도 하고 후천적이기도 하다. - P403

1960년대 당시 동독의 의사였던 군터 되르너Gunter Dörner는 쥐를이용한 일련의 실험에서, 동성애 성향의 쥐의 뇌는 모체의 자궁 안에 있을 때 암컷의 뇌보다 더 많은 황체형성 호르몬을 분비한다는사실을 밝혀냈다. 동성애의 ‘치료‘ 법을 찾으려고 했던 것처럼 보여 그 동기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되르너는 각 발생 단계별로 수컷 쥐를 거세한 후 여성 호르몬을 주사하였다. 일찍 거세당한 수컷일수록 다른 수컷에게 더 자주 섹스를 구걸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영국, 미국, 독일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에서도 태어나기 전에 테스토스테론이 결핍되면 남성 동성애 경향이 증가한다고 확인되었다.
X 염색체가 한 개 더 있는 남성이나, 모체의 자궁 안에서 여성 호르몬에 노출된 적이 있는 남성은 여자 같은 남자이거나 남성 동성애자이기 쉽다. 여자아이 같은 남자아이들은 실제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나중에 남성 동성애자가 되는 경향이 크다. 흥미로운 일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독일처럼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임신해서 태어난 남자는 그렇지 않을 때 태어난 남자들보다 남성 동성애자가 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은 테스토스테론과 함께 동일한 물질에서 만들어진다. 아마도 코티솔이 원료 물질을다 써버려서 테스토스테론이 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 P402

반대로 연애 소설은 전적으로 여성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것 역시그다지 큰 변화 없이 허구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여자가 열망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섹스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좀 더 분방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정도이다. 작가들은 출판사가 제시하는 형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성교 행위는 이런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내용은 사랑, 서약, 가정사, 그리고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를 길들이는 이야기로채워진다. 난잡한 성교 같은 것은 거의 없으며, 성교가 있더라도 주로 여자 주인공의 감정 반응(특히 촉각적으로 그녀가 느끼는 것에 대한)에 대해서만 묘사될 뿐이지, 남자 몸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성격에 관해서만은 매우 자세히 묘사되게 마련이다.
엘리스와 시먼스는 연애 소설과 포르노가 남녀 모두에게 상대적이고 이상적인 환상을 나타낸다고 지적하였다. 캘리포니아 대학생들의 성적 환상에 대한 데이터는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남자 포르노를 배급하려는 잡지가 계속 실패하고(이러한 목적으로 제작된 포르노 잡지 《플레이걸Playgirl》의 주독자층은 남자 동성애자들이다), 남자들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파는 난잡한 성관계를 주제로 한 소설이 유행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서점에 가면 표지에 여자 사진이 크게 실려 있고 책 속에는 더많은 여자 사진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한 남성용 잡지가 있으며, 표지에 여자가 나오고 책 속에는 성관계를 발전시키는 방법이 나와있는 여성용 잡지들이 있다. 연애 소설은 여자 사진을 표지에 실어여성을 겨냥하고, 성적인 소설은 여자 사진을 표지에 담아 남자를겨냥한다. 유행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성에 의해움직이는 출판 산업은 성에 대한 여자와 남자의 차이점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 P412

이제 그 역설이 풀린다. 동물의 어느 한쪽 성이 까다로운 정도와 부모 역할에 얼마만큼 투자하는가 하는 정도는 분명히 관계가 있다. 검은뇌조는 정자 외에는 투자하는 것이 없으며, 이들은 암컷과 닮은것이면 무엇이든, 심지어 박제된 새나 모형 새와도 짝짓기를 하려고든다. 수컷 신천옹은 한 마리의 암컷에서 나온 자식을 정성껏 보살핀다. 수컷 신천옹은 암컷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고 까다로우며 최고의 짝을 고르려 노력한다. 그러므로 남성의 까다로움은 자신과 비슷한 원숭이 사촌과는 달리, 남자들이 실제로 부부를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노력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반영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일부일처제가 남성에게 남긴 유물이다. 즉, 단한 번의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한다. 사실 젊은 여자에게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끌리는 것은 부부관계가 일생 동안 지속될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포유동물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발정기에 있는 침팬지는 늙은 암컷도 젊은 암컷만큼 매력적으로 여긴다. 남성들이 20대 여성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홍적세의 남자들이 현대 남성들처럼 일생을 걸고 결혼한다는 이론에 증거를 하나 더해주는 것이다. - P415

이러한 보편성 중 가장 지속적인 것은 성 역할놀이이다. 에드워드윌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양한 여러 문화권에서, 남자들은 뭔가를 추구하고 획득하려는반면에 여자들은 보호되고, 물물교환의 대상이 되었다. 아들은 젊은 혈기로 방탕하지만 딸들은 순결을 잃을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게된다. 성의 매매가 이루어질 때 대체로 구매자는 남자들이다." 

존 투비와 리다 코스미데스는 이와 같은 보편적 형태에 대한 문화적 해석에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주장을 했다.

‘문화‘가 인간의 다양성을 설명해준다는 주장은 여자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전쟁 축제에서 남자들을 잡아 남편으로 삼거나, 부모들이 딸이 아닌 아들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수도원에 아들을 도피시켰다는 보고가 있을 때, 혹은 신체적인 매력, 경제력, 상대적인 나이 등에 대한 선호도의 문화적 분포가 한쪽으로 왜곡되어 있는만큼 다른 쪽으로도 왜곡되어 있을 때 비로소 진지하게 다룰 수있을 것이다." - P419

웨스터마크의 주장에서는 친숙한 사람들에 대한 성적 기피가 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결혼한 지 몇 주일만 지나면 자신의 결혼 상대에 대해 성적으로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이런 사실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동물의 뇌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의 하나로 유아기의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iod‘ 라는 것이 있는데, 그때 배운 어떤 것은 그 시기가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로 대체되지도 않는다.
콘라트 로렌츠 Konrad Lorenz는 병아리들이나 새끼 오리들은 맨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에 ‘각인‘ 되는데, 그 물체는 보통 그들의 어미이고 매우 드물게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로렌츠 그 자신)가 될 수도 있으며, 그 후로 병아리나 새끼 오리들은 그 물체를 쫓아다니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태어난 지 2~3시간이 지난 병아리나 2일이 지난 병아리들에게는 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병아리들은 생후 13시간에서 16시간 사이에 가장 민감하게 각인을 한다. 바로 그 민감한 기간에 병아리들은 부모의 모습을 머리에 새겨두는 것이다. - P433

미국 미시간대학의 로버트 스머츠Robert Smuts 교수가 주장하듯이, 날씬함이란 한때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었고 상대적인 빈곤의 표시였다. 오늘날에는 가난 때문에 생긴 날씬함은 제3세계에서나 볼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된 나라의 부유한 여자들은 지방분이 적은음식을 사 먹을 여유가 있으며, 운동을 하거나 몸을 날씬하게 하는데 돈을 쓰고 있다. 날씬함은 이제 예전의 풍만함처럼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가 되었다.
스머츠는 유행하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주는 것이 무엇인가에따라 남자들의 선호도가 간단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젊은 남자들은 특히 패션 산업이 만들어낸 날씬함과 부유함의 상관관계를 수없이 목격하며 성장한다. 젊은이의 무의식적 사고는 이상적인 여성의 선호도를 형성하게 되는 결정적 시기에 그러한 상관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날씬한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 P439

무엇이 성적 매력을 결정하든 간에 붉은 여왕은 작용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만약 아름다운 여자와 지배적인 남자가 그들의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가졌다면 (실제로 지배적인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들을 선택하였고, 그들은 함께 자신들의 경쟁자들의 노고에 기억하여 살아왔다). 각 세대마다 여자들은 조금씩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며 남자들은 조금씩 더 지배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쟁자들 역시 그와 같은 성공적인 부부들의 자손들이므로 그렇게 하였을 것이고, 그리하여 전반적인 기준 역시 향상되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는 새로운 창공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 더욱더 밝게 빛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배적인 남자는 그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난폭해지거나 더욱더 무자비한 책략을 짤 필요가 있었다. 다른 곳이나 다른 시대라면 아무리 예외적으로 보일 만한 것이라도 흔한 것이 되면 그에 대해 우리의 감각은 쉽게 무디어진다. 찰스 다윈이 이렇게 썼듯이 말이다.

만약 우리의 여자들이 메디치의 비너스처럼 아름다워진다면 우리는 당분간은 매혹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다양성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을 얻게 되자마자 우리는 그때 흔히 볼 수 있는 평균적인 것을 뛰어넘는 약간은 과장된 어떤 특징을 우리의 여자들에게서 보기를 원할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왜 우생학이 결코 효과가 없는가에 대한 이유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 P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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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아는 모든 조선인은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본의 영토 확장 전쟁이 무분별하다고 여겼다. 중국은 조선이 아니었고, 대만이 아니었다. 중국은 백만 명을 잃고도 계속 버틸 수 있었다. 중국은 일부 지역이 함락된다 해도 여전히 엄청나게 거대한 나라였다. 사람 수와 의지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나라였다. 조선인들이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랄까?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하지만 일본의 적이 이기면 조선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각자 살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인들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었다. 가족을 지켜라. 자기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세하게 해라 적응해라. 지극히 간단하지 않은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었다. 결국 배고픔 앞에 장사없는 법이었다. - P275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아들을 다정하게 대할 수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칭찬하면 안 되고, 그랬다가는 화를 불러올 뿐이라는것을 선자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선자가 잘한 일이있으면 항상 칭찬했다. 선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아버지는 습관처럼 선자의 정수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거렸다. 다른 부모였다면 딸을 응석받이로 키운다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불구인 아버지가 자식의 멀쩡한 이목구비와 팔다리에 감탄하는 것에는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선자가 걷고 말하고 간단한 암산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선자는 아버지의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며 의지했다. 누구도 칭찬을 바라서는 안 되고, 특히 여자는 더 그러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선자를 아주 애지중지하며 길렀다. 선자는 아버지의 기쁨이었다. 선자는 노아도 그렇게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아들들을 보내준 하나님에게 온 마음을 다해 감사했다. 남편의 형 집에서는 하루도 더 못 살겠다 싶은 날들이 있었다. 늦은밤까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감옥에 가서 남편 밥을 건네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럴 때면 선자는 단 한 번도 자기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기쁨이라는 것을, 아들들이 선자의 기쁨이라는것을 상기시켜주었다. - P284

"모자수" 이삭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노예에서 해방시켰죠…." 머리가 너무 심하게 욱신거려서 다시눈을 감아야 했다. 두 아들이 자라서 학교를 마치고 혼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간절하게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오래오래 살고 싶어진 지금에서야 죽음을 앞두고 집에 보내졌다.
"나한테 두 아들이 있어요." 이삭이 말했다. "나한테 두 아들이 있어요. 노아와 모자수가. 우리 아들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선자는 이삭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이삭의 얼굴이 낯설면서도 평온해 보였다. 선자는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말했다.
"모자수가 많이 컸어예. 늘 밝고 낯도 안 가려에 웃는 게 억수로 이쁩니더. 아주 사방을 뛰어댕겨예. 엄청 빨라예!" 선자는 양팔을 흔들며 아기가 아장아장 뛰는 흉내를 내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이삭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순간, 모자수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자신 외에도 단 한 사람 더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선자는 아이들에 대한 자랑스럽고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요셉과 경희가 두 아이를 예뻐했지만 선자는 아이가 없는 두 사람의 슬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때때로 선자는 자랑하는 것처럼 보일까 두려워서 자신의 기쁨을 두 사람에게 숨겼다. 고향에서는 건강하고 착한 두 아들을 가진 것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선자에게는 집도 돈도 없었지만 노아와 모자수가 있었다.
이삭이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제 아이들을 볼 때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 주님. 제 아이들을 보고 축복해줄 때까지는요.
주님, 저를 아직 데려가지 마시옵소서••••••."
선자도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
이삭이 다시 눈을 감았고 어깨가 고통으로 움찔거렸다.
선자가 끊어질 듯 약한 숨결을 확인하려고 오른손을 이삭의 가슴에 놓았다. - P299

"그럴 거예요. 내가 공산주의자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난 일본이 조선을 다시 넘겨받는 것에 반대해요. 소련과 중국이 조선을통치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미국이 차지하는 것도 싫고요. 왜조선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창호 씨가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서로 싸우고 있잖아요. 꼭 할머니 둘이 말다툼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상대방의 못된 점을 할머니들 귀에 대고 계속 속삭이면서 부추기고 있는 것같아요. 할머니들이 화해하고 싶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말은 무시하고 두 사람이 한때 친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누님을 지도자로 올려야겠는데요." 창호가 집을 향해 수레를 밀면서 말했다. 잠깐 걷는 길이었지만 경희와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원하게 됐다. 때로 경희 옆에 있기가 너무 버거워서 그런 모임에 나갔다. 한편으로는 날마다 경희를 볼 수 있기에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창호는 경희를 사랑했다. 이 마음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집까지 몇 걸음밖에 남지 않자 두 사람은 느릿느릿 걸으면서 그날 하루 일어난 이런저런 일을 소곤거렸다. 마음이 퍽 흡족했고 수줍음이 조금 줄었다. 김창호는 계속 사랑의 고통을 겪게 될 터였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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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가 어리석었다. 왜 한수 정도의 나이와 지위를 가진 남자에게 아내와 자식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한수가 일자무식인 시골 처녀와 혼인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참으로 얼토당토않았다. 부유한 남자는 아내와 첩을 뒀고, 때로는 본처와 첩이 같은 집에서 살기도 했다. 하지만 선자는 한수의 첩이 될 수없었다. 불구였던 아버지는 남들보다 더 가난하게 자란 어머니를 사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하숙집 손님들이 밥을 먹고 나면 세 식구가 밥상 하나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여자들보다 먼저 먹는 법도없었다. 밥을 먹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 그릇에 아버지랑 같은 양의 고기와 생선이 놓여 있는지 확인했다. 여름에는 하루 종일 고기잡이를 하고 나서 또 수박밭을 돌보았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어서였다. 겨울마다 새로 튼 솜을 구해 와서 식구들의 겉옷에 넣었고 솜이 부족하면 본인 옷에는 새 속을 넣을때가 되지 않았다고 우겼다.
"너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아버지가 있데이."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했고 선자는 어머니와 자신을 아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랑스러워했다. 부잣집 아이가 제 아버지의 그득 쌓인 쌀가마니와 금반지 더미를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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