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제프리가 슬라우를 떠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것 같다. 물론 그는 자신이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절대 고백하지 않을 테지만, 죽음과 특정 장소 사이의 관계는 원래 복잡하다. 때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 닥쳤을 때(예를 들어 자식을잃었을 때), 사람들은 그 장소에서 즉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장소를 바꾸면, 자신을 짓누르는 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조금가벼워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하지만 꼭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남은 것이라고는 그 장소밖에없기 때문에. 그럴 때는 그곳을 떠나는 것이 배신처럼 느껴진다. 내가 보기에는 제프리가 그런 경우인 것 같다. 그는 슬라우를 사랑하지않지만, 아내를 사랑했다. 여기서,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는 버크셔의 이 마을에서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 이곳에 계속 머무른다.
- P425

그럼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계속 씨앗을 심으면 될 것같다. 사실 중요한 건 씨앗을 심는 것이지 수확이 아니다. 많은 철학자가 지적했듯이, 행복은 부산물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말했듯이, 행복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깨에 내려앉는 나비와 같다.
그렇다면 어떤 장소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는 대신 캐나다의 저술가 로버트슨 데이비스의 충고를 가슴에새기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에 관한 걱정을 그만두고 자신의 불행에서 뽑아낼 수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편이 더 낫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저분하고 낡은 슬라우가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 이젠 더 이상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리는 버크셔의 마을이 아니라 누가 뽑아주기를 기다리는 불행의 보물 창고다.
- P440

카페인과 니코틴을 충분히 섭취한 엠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대화에 합류한다. "인도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요?" 내가 묻는다.
"자동차 경적 소리, 인력거, 머리에 단지를 이고 가는 여자들,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들, 사원의 종소리가 좋아요. 인도식 발음도 좋아요.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죠. 전부 다 좋으니까."
그녀가 열거한 것들이 대부분 소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인도는 귀를 위한 연회장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인도가 점점 부유해지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번영의 소리보다 더 끔찍하게 단조로운 건 없는 법이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단조로운 소리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야외 시장에서 행상인들이 가락을 붙여 외쳐대는 소리나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려먹는 공장에서 재봉틀이 리듬에 맞춰 탁탁 돌아가는 소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현대적인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획휙 지나가는 단조로운 소리 역시 제3세계의 도로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 즉 경적 소리와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빚어내는 교향곡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 P479

그날 저녁 나는 테라스로 나간다. 공기는 부드럽고 서늘하다. 나는 판자촌을 바라본다. 사실 테라스에 서면 필연적으로 그곳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이들 몇이 쓰레기 더미를 헤집으며 몇 푼이라도 받고 팔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인도에서 몇 년을 지내다 보면그런 광경을 보고도 무덤덤할 만큼 단련이 된다. 하지만 마음의 갑옷이 아무리 두껍고 단단해지더라도 항상 그 갑옷을 뚫고 들어오는것이 있게 마련이다.
- P487

몇 년 전, 행복 연구가인 로버트 비스워스 디너가 캘커타의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빈민 중의 빈민인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행복 점수를 기록했다(물론인터뷰 대상자들이 스스로 점수를 매겼다), 그러고는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의 노숙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같은 작업을 했다.
그 결과 캘커타의 빈민들이 캘리포니아의 빈민들보다 상당히 행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의 노숙자들이 음식과 숙소를구하기가 더 쉽고, 보건 서비스도 더 잘 받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비스워스 디너는 이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은 캘커타의 노숙자들이 비록 물질적인 부라는 측면에서는 가진 게 거의 없을지라도 가족, 친구 등과 사회적으로 강한 유대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인도에는 진정한 의미의 노숙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살 집이 없는지는 몰라도 가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또한 캘커타의 빈민들이 미국의 빈민들보다 행복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전생에 자신이 쌓은 업이나 운명이나 신들 때문에 지금 자신이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가난이 자기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개인적인 실패, 성격적인 결함의 탓으로 돌린다.
- P490

 "욕망은 슬픔의 근원이지만, 행동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의욕을 주는 욕망이 없을 때, 어떻게 하면 행동의 마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바로 이거다. 힌두교, 아니 대부분의 동양 종교는 모든 몸부림이,
심지어 행복을 위한 몸부림조차도 자멸을 불러올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순간 이미 실패한 것이 되어 게임이끝나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비처럼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역시 실패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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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에서는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로 일정 수준의 유전적 기획이 가능해졌다 해도 자녀는 수정란에서 태아 단계를 거쳐 세상에 나와 점차 하나의 고유한 인격을 형성하며부모 앞에 나타난다. 출산과 동시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점차 한사람의 개인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고, 여러 가지 경험을 축적하고체화하면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부모를 만나는 것이다. 부모 또한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한다. 성숙일 수도 퇴보일 수도 있지만,
부모 역시 서서히 자녀와 만나가는 것임은 틀림없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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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짐을 꾸리려고 내 방으로 돌아가서 루바의 슬픔을 생각해본다.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이미 진부한 얘기다. 그동안 이런 슬픈 얘기는 이미 많이 썼다. 지정학적인 풍경이 바뀌고, 사람이 자기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힘이 밀어닥쳐서 모든 걸 잃어버렸다는 이야기. 루바는 특권적인 지위, 좋은 승용차, 시골 별장을 잃었다. 그래서 불행하다. 끝. 그럴듯한 얘기지만, 루바의 불행에 대해 행복학자들은 뭐라고 할까? 그들은 눈에 뻔히 보이는 금전적인 어려움 외에 그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다른 이유들을 지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들과 친하게 어울리던 분위기를 잃어버린 것, 또는 자식들을 거의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 이런 인간관계는 우리의 행복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며, 돈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하지만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긍정적인 심리학의 황금률인 쾌락 적응에 따르면, 그 어떤 비극이나 엄청난 행운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다 적응하며 살아가게 돼 있다. 원래 자신의 상태, 또는 그 근처로 되돌아가게 돼 있는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것은 15년 전이다. 루바는 왜 적응하지 못했을까?
결국 문화가 문제인 것 같다. 문화는 우리가 헤엄치는 바다와 같다. 몰도바에서 그런 것처럼 바다의 물을 다 빼버리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없다. 자기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쾌락적응도 작동하지 않는다. 루바는 러시아의 그림자라고 할 만한 땅에서 살고 있다. 이 땅은 러시아이기도 하고 러시아가 아니기도 하다. 원래 몰도바의 핏줄을 타고난 사람들도 자기 나름의 그림자 나라에서 살고 있다. 루마니아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점에서. - P348

몰도바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그중 한 권의 저자인 찰스 킹은 이나라를 가리켜 ‘조약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허구의 나라라고. 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 물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나라에 가서 거리를 걷고, 마마리가를 먹고, 형편없는 포도주를 마시고, 불행한 국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다. 나중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서 여권을 펼쳐 보며 ‘몰도바 공화국‘이라는 스탬프에 감탄할(이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중요하지 않다. 몰도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존재는 행복의 선행조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인종, 민족, 언어, 요리 중 무엇에 관해서든 하여튼 정체감이 확고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 정체감을 되새기며 살지는 않더라도 정체감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은행 계좌에 들어있는 돈처럼. 그래서 우리가 힘들 때 거기에 기댈 수 있다. 그런데 몰도바에서는 상황이 더 나빠질 수가 없다. 물론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면 그렇다는 말이지만. - P349

몰도바인들이 느끼는 불행의 씨앗은 그들의 문화 속에 뿌려져 있다. 신뢰와 우정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문화. 비열함과 속임수에 보상을 주는 문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친절이 들어설 공간, 성 아우구스티누스가(빌 클린턴이 등장하기 오래전에) "희망의 행복"이라고 불렀던 것을 위한 공간을 전혀 만들어주지 않는 문화, 고대 인도의 문헌인 《마하바라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희망은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 의지할 수 있는 닻이다. 희망이 무너지면 엄청난 슬픔이 그 뒤를 따르는데, 그 슬픔은 죽음과 거의 맞먹는다." - P351

태국인들의 미소는 서구인의 미소보다 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아니 어쩌면 의미가 덜하다고 할 수도 있다. 태국인들의 미소는 가면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많은 가면들이다. 태국인들의 미소는행복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분노, 회의, 불안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심지어 슬픔의 표현일 수도 있다. 태국인들은 장례식에서도 웃는다.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으스스한 광경이다.
태국인들을 보면 미소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 그러니까 적어도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웃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미소는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제스처의 성격이 더 강하다. - P361

벤담에게 행복은 수학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행복계산법‘을 섬세하게 다듬는 데 오랜 세월을 쏟았다. ‘행복 계산법‘ 이라는 말은 정말이지 모든 경계심을 없애버리는 훌륭한 표현이다. 사실 나는 계산법과 행복을 함께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행복 계산법은 사실 간단하다. 자신의 삶에서 즐거운 부분을 모두 더한 뒤 불쾌한 부분을 빼면 된다. 이 계산 결과가 우리의 전체적인 행복도다. 벤담은 이 계산법을 나라 전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정부가 취하는 모든 조치, 통과시키는 모든 법률을 최대 행복‘이라는 프리즘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들어, 가난한 사람에게 준 10달러는 부자에게 준 10달러보다 더 가치가 높다는 식이었다. 가난한 사람이 10달러에서 얻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 P402

벤담의 이론은 흥미롭지만 결함이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각각의 기쁨을 질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연약한 할머니가 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도와주면서 느끼는 기쁨과 사디스트가 그 할머니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면서 얻는 기쁨을 똑같은 가치로 취급한 것이다. 벤담에게 기쁨은 단지 기쁨일 따름이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공리주의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대다수 사람들의 행복뿐이라는 점도 문제다.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에 관심을 보일 뿐, 소수의 불행에는 관심이 없다. 운 좋게 행복한 다수에 속한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불행한 소수에 속한 사람이라면 괜찮지가 않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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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으려는 욕심은 있을 수 있지만, 상처받지 않은 삶은 불가능하다. 완전한 삶을 갈망할 수는 있어도, 완전한 삶을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삶엔 상처가 있고, 아쉬움이 있고,
한계가 있고,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도 있다. 완전하지 않은 자기 삶을 드러내는 순간, 남들로부터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쑥덕공론거리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때로 아니 종종 자신의 실제 삶을 외면한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좌절과 슬픔에 빠질수 있음도 각오해야 한다. 삶을 그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는 사람은 판타지라는 안경을 쓴다. 판타지에 의존하는 한 우리의 삶은 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김원영은 자신의 삶을 판타지에 의존해 들여다보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오롯이 대면하는 순간을 겪고난 이후의 사람에게서 보이는, 감히 위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김원영의 책을 덮고 나니 아도르노가 생각났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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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 미즈키는 원숭이에게서 되찾아온 ‘오자와 미즈키‘라는 낡은 이름표와 ‘안도(오자와) 미즈키‘라는 이름이 새겨진 은팔찌를 갈색 서류봉투에 넣어 테이프로 밀봉하고 벽장 안의 종이박스에 넣었다.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손 안에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 그 이름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일이 잘 풀릴수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바로그녀의 이름이고 그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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