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의 이질감 때문에 생긴 불행한 소외감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낀 것은 오라치오 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던 바로 그 길에서였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자랐고, 이들의 행동은 내게도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거친 언어는 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6년 동안 매일같이 이들이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왔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훌륭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해야 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기껏해야 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서 내 주장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을 때만 그런 모습을 잠깐 내비칠 뿐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내 친구들은 물론 내 남자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함께 릴라의 결혼 피로연에 가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피로연이야말로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전혀 다른 데도 내게 필요한 유일한 사람인 릴라가 이제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행사였다. 그녀가 없으면 나와 자동차로 이 길을 달리고 있는 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나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나처럼 고향에서 벗어난 알폰소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왜 니노에게 "나와 함께 있어줘. 함께 피로연에 가자 내 기사가 실린 잡지는 언제 출판이 되는지 알려줘. 우리끼리 이야기하자. 파스콸레의 운전과 그의 천박함에서, 카르멜라와 엔초와 안토니오의 거친 말투에서 우리를지켜줄 우리만의 은신처를 만들자"라고 말하지 못한 걸까. - P426

다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잘못이기도 했다. 나는 니노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 당연시했다. 정작 나 자신은 내 어머니와는 달라야 한다는 집착에 시달렸으면서 말이다. - P433

릴라 앞에는 와인 병이 놓여 있었는데 눈빛만으로 병을 산산조각내어 와인을 사방으로 튀게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하지만 릴라는 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더 먼 곳에 있는 마르첼로의 구두를 향해 있었다.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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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돌로는 수렴 진화(收렴進化, 다른 계통에서 비슷한 적응 형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흥미를 가진 다윈주의자였다. 그는 기초 확률론의 관점에서 보아도, 수렴을 통해 완전히 유사한 현상은 절대 일어날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물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계통이 다른 생물이 공통된 생활 양식에 적응하면서 외형적인 유사성을 나타낼 수는 있다. 그러나 생명체는 복잡하고 독립적인 수많은부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전부가 완전히 동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 두 번 진화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진화는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불가역)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선조의 징후는 반드시 보존되며, 수렴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항상 표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가장 경탄스럽게 생각하는 수렴의 예를 하나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어룡이다.육생 선조에서 파생한 이 바다 파충류는 어류에 흡사하게 수렴해서, 고도로 효율적인 유체 역학적 설계의 등지느러미와 꼬리를 적재적소에 진화시켰다. 이 구조들이 주목할 만한 까닭은, 그것들이 원래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선조인육생 파충류는 등에 아무런 혹도 없었고, 꼬리에는 지느러미로 발달할 수 있는 돌기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룡은 전체설계나 복잡한 세부 구조의 측면에서 물고기와는 다르다. (예를들어 어룡의척주가 아래쪽 꼬리지느러미 속으로 뻗어 있는 데 비해, 꼬리 척추를 갖는 어류의 척주는 위쪽 꼬리지느러미 속으로 뻗어 있다.) 어룡은 폐를 가지고 있어서 수면에서 호흡하고, 지느러미가 아니라 변형된 발뼈를 골격으로 하는 지느러미 모양의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파충류에 속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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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린 시절 꿈꿔왔던 부의 의미가 다시 한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세상에 둘도 없는 신발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힘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체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 P330

나는 창문에서 릴라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그녀 모습이 망가져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편지에 쓴 아름다운 문장들과 금이 가고 구겨진 구리 냄비를 생각했다. 그녀와 나의 내면에서 파열음이 날 때마다 항상 그 이미지를 떠올렸다. 나는 그 어떤 형태의 틀도 릴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지않아 그녀가 모든 것을 또다시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 릴라가 그렇게 하길 바랐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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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는 릴라처럼 내면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아이였다. 이것은 축복이자 고통이었다. 이들은 만족하는 일이 없고 쉽게 포기하는 법이없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도나토 아저씨는 이들과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매 순간을 밝게 살았다.
그날밤 이후, 니노의 아버지는 가벼운 입맞춤만을 남겨놓고 나를어둠으로 밀쳐낸 그의 아들에 대한 믿음직스러운 대안이자 내 편지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릴라의 대안이 되었다. 나는 나중에야 이러한사실을 깨닫고 놀랍다고 생각했다. 릴라와 니노는 서로를 잘 알지못하고 친하게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비슷한 점이 아주 많은 것같았다. 둘 다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으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언제나 명확했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틀렸다면?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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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판다의 엄지

영웅이 생애의 정점에서 자신의 야망을 접는 일은 좀처럼 없다. 승리는 끝없이 새로운 승리를 부르고, 그러다가 파멸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않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더 이상 정복할 새로운 세계가 없다는 사실을 한탄했고, 지나친 영토 확장을 시도했던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에 갇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1859년)을 집필한 후에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자연 선택설을 선전하거나, 자신의 이론을 인류의 진화에까지 확장시키는 작업을하지 않았다. (그는 1871년이 되어서야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을 발간했다. 「종의 기원』 이후 처음 발간된 그의 저서는 영국과 외국의 난초류 곤충류에 의해서 수정하는여러 고안에 대하여(On the Various Contrivances by Which British and Foreign Orchids Are Ferrilized by Insects)」(1862)였고 이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P21

 그렇지만 이상적인 설계는 진화를 논하기 위한 논거로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상적인 설계는 전능한 조물주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명한 신이라면 결코 택하지 않았을 기묘한 배치라든가 별스러운 해결방법이야말로 진화를 입증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다. 현명한 신이라면결코 택하지 않았을 경로, 역사에 속박되어 어쩔 수 없이 진행된 자연의과정을 추적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다윈만큼 잘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발터 마이어(Ernst WalterMayr, 1904~2005년)는 다윈이 진화론을 옹호하면서 끊임없이 최소한의 의미를 가지는 생명체의 여러 부분이나 지리 분포에 관심이 많았음을 잘보여 주고 있다. 내가 자이언트판다(Ailuropoda melanoleuca)와 그 엄지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점이다. - P24

나는 판다의 뛰어난 재주에 몹시 감탄했다. 그리고 달리는 기능으로적응한 계통의 후손이 어떻게 앞발을 그처럼 잘 쓸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2개의 앞발로 대나무의 줄기를 쥐고, 유연하게 보이는 엄지와 나머지 발가락들 사이로 줄기를 통과시켜서 잎을 훑어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무척 당황했다. 일찍이 나는 다른 손가락과 마주볼 수 있는 능란한 엄지야말로 인류의 번영을 이끈 특징의 하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장류의 선조에게 나타난 이 중요한 유연성을한층 향상시키면서 계속 유지시킨 반면, 대부분의 다른 포유류들은 발가락을 특수화시키는 과정에서 그것을 희생시켰다. 식육목에 속하는동물은 달리고, 찌르고, 할퀴어 댄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심리적으로나를 조종할 수는 있어도, 혼자서 타자기를 치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일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 판다의 엄지 이외의 발가락의 수를 세어 보았다. 나는 그 결과에 또 한번 놀랐다. 나머지 손가락은 4개가 아니라 5개였다.
그렇다면 ‘엄지‘는 독립적으로 진화한 여섯 번째 발가락인가? 
••••••
판다의 엄지는 그것을 보강하는 뼈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민함의 근원이 되는 근육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근육들은 요골종자골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다윈의 난초류의 꽃의 각 부분과 마찬가지로, 이것들은 이미 알려진 일부 구조가 새로운 기능으로 바뀐 것이다. - P25

그런데 판다의 뒷발에도 앞발만큼은 아니지만 앞발의 요골종자골에 상응하는 것으로 경골종자골이라는 뼈가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골종자골은 새로운 ‘발가락‘을 지탱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 크기가 커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다. 데이비스는 "이 2개의 뼈가 함께 성장하게 된 것은, 한쪽만 성장하는 경우에대한 자연 선택의 반응으로, 단순한 유형의 유전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손가락처럼 여러 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신체의 부분은 각각에 대응한 유전자의 작용으로 하나씩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엄지를 위한 유전자라든가, 당신의 발의 엄지를 만들기 위한 유전자, 가운뎃손가락을 위한 유전자는 없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부분은 그 전부가 보조를 맞추어 발육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요소에 변화를 일으키는 선택은 그밖의 다른 요소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킨다. 손의 엄지를 크게 바꾸면서 발의 엄지를 변형시키지 않는 것은 양쪽을 함께 성장하게 만드는 것보다 유전적으로 복잡하다. (전자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협조가 깨지고 손의 엄지에만 특전이 주어지므로, 연관된 여러 다른 구조가 커지지 않도록 억눌러야만 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단 하나의 유전자가해당 손가락과 발가락의 발생을 조절하는 영역에서 그 성장 속도를 증대시키면 된다.) - P28

어떤 기관이 원래 무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관이 현재 그 목적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그 목적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같은 원리로 만약 어떤 사람이 무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한 기계를 만들 필요가 있을 때, 낡은 바퀴나 스프링, 활차 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작은 변화만을 가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 이런 부품들을 조립해서 완성된 그 기계는전체로서 그 목적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 전체에 걸쳐, 모든 생물의 거의 모든 부분은 조금씩 변화하는 조건에 맞추어 여러 목적에 이용되면서, 먼 옛날 저마다 독특하고 진기한 형태를 가진 무수한 종류의 생물 기계 속에서 훌륭하게 기능해 왔다.
- 다윈 - P32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윈은 정반대의 일을 했다. 그는 기이한 것이나 불완전한 것을 찾았다. 갈매기는 경이로운 설계의 예라고 생각할 수있을 것이다. 이미 진화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날개의 공학적 설계는 형태를 빚어내는 자연 선택의 뛰어난 힘을 반영하는 것으로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완전함으로는 진화를 입증할 수 없다. 왜냐하면완전한 것은 굳이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명체의 설계상의 완전함은 그 완전무결한 공학적 설계에서 신(神)이라는 조형자의 존재를 찾아온 창조론자들이 옛날부터 즐겨 주장한 논거인 것이다. 공기역학의 경이로움을 보여 주는 새의 날개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 그대로 (신이) 창조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다윈은 만약 생물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의 생물에 선조의 여러 단계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미를 갖지 않는 과거의 흔적들, 즉 무용한 것, 기묘한 것, 특이한것, 불균형한 것들이 역사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징후인 것이다. 그것들은 세계가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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