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분 회전수를 줄이는 거예요." 포스터가 설명했다. "대용 혈액이보다 천천히 돌아가고, 따라서 폐를 통과하는 시간적인 간격이 더길어지면 태아는 산소 공급을 덜받게됩니다. 태아를 정상 이하의상태로 유지하려면 산소를 부족하게 공급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다시금 그는 두 손을 비볐다.
"하지만 뭐하러 태아를 정상 이하의 상태로 유지합니까?" 어느 순진한 학생이 물었다.
"멍청한 녀석!"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국장이 불쑥 말했다. "업실론 태아는 엡실론 유전 요소뿐 아니라 엡실론 환경까지도 갖춰야만 한다는 생각이 네 머리에는 떠오르지도 않는단 말이냐?" - P45

뜨거운 땅굴과 차가운 땅굴이 교대로 이어졌다. 차가움은 강렬한X선의 형태로 불편함을 경험하는 연상 작용으로 이루어졌다. 유리병에서 옮겨 배양할 때쯤이면 태아들은 추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끔 그렇게 훈련이 된다. 그들은 열대 지방으로 보내서 광부와 초산인조견 직조공과 철강 근로자가 되도록 미리 결정된 인력이었다. 나중에 그들의 이성은 육체의 판단에 따르도록 저절로 길이 들 터였다. "우린 그들이 열기 속에서 활력을 갖도록 습성을 유도해요." 포스터가 결론을 지었다. "위층에서 일하는 우리 동료들은 그들이 열기를 좋아하게끔 가르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한다는 것" 국장이 단호하게 힘주어말했다. "그것이야말로 행복과 미덕의 비결이다. 불가피한 사회적인숙명을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훈련, 모든 습성 훈련이 목표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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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견해를 같이하듯 만성적인 자책감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다. 혹시 무슨 나쁜 행위를 저질렀다면, 잘못을 뉘우치며 능력껏 그것을 시정하고, 다음에는 더 잘하도록 스스로다짐해야 옳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에 두고두고 집착해서는안 된다. 오물 속에서 뒹구는 것이 몸을 깨끗이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다. - P8

제1장
겨우 34층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잿빛 건물, 정문 입구 위에는 ‘부화-습성 훈련 런던 총본부‘라는 현판이 걸렸고, 방패꼴 바탕에는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라는 세계국世界國, World State의 표어.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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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교육‘, ‘일반 교육‘이있잖아요. 어느 정도 나이까지는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의무교육,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처럼 이런 제도는 근대사회에서 생긴거예요. 왜냐하면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니까요. 옛날에는 농노들을 교육하지 않았어요. 교육은 귀족들만 받았죠. 그런데 그다음에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잖아요. 징집을 해서 총을 어떻게 쏘는지 알려면 매뉴얼을 읽거나 명령을 들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문맹률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게 징집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어요. 여기에 자본주의 발달도 교육의 필요성을 부각시켰어요. 기술의 발달, 회계기법의 발달 등등 •••••• . 자본은 전문직 노동자들이 필요했으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교육의 이점을 얻는 쪽은 국가나 자본이지만 교육의 비용을 대는 쪽은 개개인들이라는 사실이에요. 달리 말해, 너희가교육 잘 받으면 너희가 출세하고 이득을 얻으니까 개개인들한테 교육비를 내라고 하는 거예요. 재미있는 거죠. ‘너희들은 이 체제의 훌륭한 나사가 되어야 돼, 너희는 이 전체 체제의 조각들을 견고하게 거대하게 만드는 나사니까 거기 딱 맞춰야 해, 그리고 잘 들어맞으면 체제에서 너희들을 받아들일 거야‘ 이런 거잖아요.
- P165

말년의 보드리야르는 불가능한 교환échange impossible‘에 대해 이야기해요. 주고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받은 것에 대해 완전히 등가적인 대가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사랑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한 교환이이루어진다‘라고요. 보드리야르의 논의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1872~1950가 쓴 《증여론Essai sur le don, 1925》의 영향을 받은 거예요. 모스가 원시부족 사회를 보면서 교환하고는 다른 ‘선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요. 답례를 받으려고 선물을 주는 건 아니죠. 물론 언젠가 선물을 받았던 사람이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에게 다시 선물을 줄 수는 있어요. 그러나 받은 선물을 대가로 주는 것이 아니예요. 선물은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거예요. 반면 자본주의는 모든 걸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요.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는 선물마저 뇌물로 만든다고 할 수 있죠. 대가를 바라는 선물, 혹은 ‘기브앤 테이크‘에 포획된 선물은 뇌물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 P198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거예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온전히 주어졌을 때, 그때 나를 좋아해줘야 기쁘고 희열이 있죠. 스토킹은 그 사람의 자유를 제거한 상태에서 나만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거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자유를 제거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죽이는 데서 정점에 이르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타인의 쾌락과 즐거움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쾌락과 즐거움만 있는 거죠.  - P205

그러니까 메를리 퐁티의 얘기처럼 최소 폭력을 선택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거나 훼손하지 않고는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최소한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개념을 가지면 우리는 지혜로워져요. ‘아!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지. 음식을 남긴 만큼 나중에 다른 것을 또 죽여야 하니까‘라고 생각하게 되죠. 나아가 이 발상을 가지면 놀라운 변화도 하나 생겨요. 죽을 때쯤 되면 죽음이 행복하게 받아들여지죠. 이제 다른 것을 파괴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최소한의 폭력만을 허락하며 살아온 사람은 고뇌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왔던 거예요. 생명체를 파괴하고 싶지 않으면, 자신이 굶어 죽어야 돼요. 이것도 일종의 생명 파괴죠. 그래서 최소한의 폭력을 실천하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거예요. 이제 세상을 떠나니 소,돼지, 물고기, 나아가 곡류나 채소등을 파괴할 리도 없으니까요.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남기지않고 먹는 이유가 그거예요. 다 먹어야 그만큼 다른 것을 먹지 않을수 있고, 그만큼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요. 거기에서 자비가 보이는 거예요. 자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내가 굶어죽어야지, 이러지는 않아요. 자비는 타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나의 고통도 최소화하려는 마음이었던 거죠. - P209

자본이 그렇게 힘을 가질 때 한쪽은 사이비 진보들 때문에 삶이 힘들어요. 생산수단 독점의 문제를 우회하는 논의는 아무리 진보적으로 보여도 무력한 논의일 뿐이죠. 사이비 진보들은 부차적인 문제를 중심적인 것으로 만들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 문제, 그리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핵심적 문제를 덮어버리게 된 거예요. 그래서 왜 이렇게 삶이 힘든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논쟁에빠져서 서로 반목하고 흩어져 있어요. 사이비 진보들의 진보팔이 때문이죠. 어쨌든 약자들이 깨알 같이 흩어져버리면 기득권 체제는 계속 유지되는 거예요.  - P232

이성복 시인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2001) 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랑에는 이미 방법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사랑이에요. 아버지가 생전에 짜장면을 좋아했다면 제사상에 짜장면을 올리면 돼요. 아버지가 짜장면을 아무리 좋아했어도 관습이 그렇지 않고 남들 보기에 민망해서 눈치를 본다면, 친척이나 어른들이 인정하는 사람이고 싶은 거죠. 혁명을 왜 하냐면, 법을 바꾸는 거예요.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방법을 바꿔버리는 거예요. 그음식을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런 게 사랑이에요. 그러니까 방법을 가진 사랑과 방법을 만들어내는 사랑이 있어요. 진보는 후자여야 하고요.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낼 만큼 사랑을 해야 돼요. ‘대책이 없네, 생각해볼게‘ 이렇게 해서는 사랑하기 힘든 거죠.  - P233

어떤 사람이 죽으면, 특히 비명횡사를 하는 경우, 왜 죽었는지를 고인이나 유족들은 알아야 해요. 그래야 관 뚜껑을 닫고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으니까요. 귀신이 돼서 구천을 떠돈다는 말은 억울함이나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줘야 해요. ‘자본을 위해서 국가가 그 법을 통과시켰고,
그 법 때문에 죽었다‘고요. 그게 가장 본질적인 원인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개인이나 누군가의 실수로 돌리고 서로 공격하기 시작한 거예요. 문제를 흐려버린 거죠. 해운법 시행 규칙 변경을 제안했던 사람들과 거기에 투표했던 국회의원들이 책임을 져야 해요. 국민의 대표들이 자본의 편을 들었어요. 그것이 핵심이에요. 그런데 해경의 잘못이라든가, 지휘권자가 잠을 잤다든가, 구할 수 있었다든가, 자꾸 누구 탓을 해요. 물론 이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지만, 이차적 원인일 뿐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책임론을 무마하려는 보수 우파의 망발이었죠. - P247

자본주의는 노동입법까지도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다른 나라에 강요를 할 수 있어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서가 아니라 ‘만국의 자본가‘가 그렇게 한 거죠. 노동자의 권익이 떨어지고 자본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신자유주의예요. 자본이 국경을 없앤 거라고요. 다국적기업이 많아지고 자본의 힘이 세지면 자본이 한 국가의 법률도 좌지우지해요. ‘법률 쇼핑‘이라고 해야 돼요. ‘너희 나라가 이런 법률 마련하면 우리가 투자할게‘ 하는 식이죠. 노동자들이나 그 국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중지를 모아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이런법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요구를 해요. 이런 법률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 나라에서 나가겠다. 투자하지 않겠다는거예요. 법률 제정이 보편적인 인간 권리를 위한 행위가 아닌 사회가 된 거예요. - P251

최악은 세상이 막연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절망하는 거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분노하고 바꿔버리는 거예요.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더럽게 똥을 싸질러 놓았는데, 아무도내 앞에 있는 똥을 치워주지 않아요. 스스로 치워야 돼요. 똥에 좌절한 사람들은 어차피 치우지 않을 거고요. 아무리 치워도 또 싸놓네, 이래버리면 답이 없잖아요. 아니면 언젠가는 누가 치워주겠지, 하는건데 아무도 치워주지 않아요.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은 때를 놓치게 만들어요.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오늘 병원에 가는 게 낫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처럼 무책임한 태도는 없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겠죠.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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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그 순간 그걸 느꼈다. 희망과 행복이 공포를 가리는 걸. 공포를 미루는 걸. 앞으로 계속 그럴 수 있을까 궁금했다. 모든 것을 터놓고 아무것도 논의하지 않는 상태로, 결국부모는 근 30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여자아이의 죽음은 끔찍한 사고였지만 두 사람의 과거에서 한순간일 뿐이고 서로를사랑하고 새롭고 더 나은 것을 쌓아 올리면서 잊고 지내는 것이었다. 안 될 것 없지 않은가? 그럼 어쩌라고? 영영 그 생각만하라고? 자살이라도 하라고? 그레이스는 심장을 죄던 공포가 가시는 걸 느꼈다. 매일 살다 보면 그런 것은 잊을 수 있었다.
미리엄은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과거의 분노는 옅어져 거의 평온했다.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늘 끔찍한 진실을 잊었다. 아니, 적어도 기억하지 않았다. 추한 것들을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이제 숀 매슈스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났다. 꾹 다문 입과 깜빡임 없는 눈이 모두가 다 잊을 수는 없었다. 그레이스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숀 매슈스의 말이 옳았다. 그레이스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면 잊고 넘길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 P288

곧, 그들은 앞으로의 일을 고민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뭐라고 말할지, 무슨 일을 할지, 알고 있는 사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때까지 그들은 불길을 함께 바라봤다. 열기와 화재를 빙빙 돌며 춤추더니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아이를.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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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고, 그냥 스마트폰 혁명이라고 보면 돼요. 스마트폰, 즉 휴대용 인터넷 단말기 안에 세계 전체의 시장이 들어온 거예요. 나아가 스마트폰에 어울리는 시장마저 만들어졌죠. 이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려고 몸소 시장에 갈 필요가없어요. 가상의 시장에서 결제를 하면 어느 사이엔가 상품이나 사람이 문앞에 도착할 테니까요. 물론 과거 전통시장의 호객 행위도 사이버화돼요.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모두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변화하죠. 그래야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테니까요. 그 자극적인 문자나 영상 사이사이에는 엄청난 광고가 붙죠. 광고의 유혹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구매하려면 다양한 상업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이미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 아닌가요? 스마트폰으로 흡수되지 못한 시장이나 자본은 반대로 도태될 거예요.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검색되지 않는 것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 P111

게임이라는 말의 어원 아세요? 파스칼의 《팡세》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나와요. 프랑스에서 근대사회가 발달하고 도시에 부르주아 귀족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파스칼이 살던 17세기에 상류층 계급의 수가 늘면서, 지금 골프 치는 것과 비슷하게, 나는 귀족입네 하면서 여우 사냥을 즐겼어요. 그런데 여우가 한계가 있잖아요. 여우를 너무 많이 잡아서 거의 전멸하는 상황까지 갔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여우 가죽 옷을 입힌 농노의 아이들을 들판에 풀어놓았어요. 그리고는 아이들을 사냥하는 거죠. 그것을 ‘게임‘이라고 한 거예요. ‘사냥감‘이라는 뜻으로요. 농노의 아이들을 출발시키고 개를 풀어서 사냥을 했어요. 그러면 아이의 피가 묻은 여우 가죽을 가지고오는 거예요. 피 흘리며 죽어간 아이를 데리고 올 수는 없잖아요. 사냥을 도와주는 농노들이 자기들과 같은 계급의 아이들을 근처 땅에 묻어주는 거죠. 그들의 가슴속에는 아마도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을거예요. - P119

앞에서 우리는 살펴봤어요. 전문가, 혹은 특정 스펙으로 취업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진보적으로 보여도 자신이 속한 체제에 대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요. 자신이 부품으로 들어가 있는 기계가 망가지면 자신도 버려진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MZ세대도 자본주의 체제에 상당히 보수적이에요. 스마트폰이 외장형 심장이 되어버렸기에,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기 힘들어요. 저항하기는커녕 그들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에따라 움직이죠. 스마트폰으로 동일한 상품에 대한 가격도 합리적으로 비교하며 가성비를 따지는 것이 그 훌륭한 예가 될 것 같네요. 불행히도 그들에게 그 상품이 필수품인지 사치품인지 고민할 정치·경제학적 감각이 없어요. 자신의 쾌락과 불쾌, 혹은 이익과 불리를 계산하는 벤담적 자아,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스마트폰에서 마침내 완성된 셈이죠. 어쩌면 제말을 반드시 들어야 할 독자들은 지금 MZ세대 아닌가 해요. 동시에 제 이야기를 듣고 불편함을 느낄 독자들도 아마 MZ 세대일 거예요. - P123

취업이 힘든 것도, 고용이 불안한 것도 모두 기성세대가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도 명예퇴직과 정리해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걸 보지 못해요. 제코가 석자니까요. 자본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방법은 일정 정도의 실업률을 유지하고 고용불안 상태를 유지하는 거예요. 그래야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계급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갖는 불만을 자본주의 체제에 돌려야 해요. 기성세대라는 인식보다는 늙은 노동자라고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불행히도 젊은 세대, 즉 젊은 노동자들은 자본을 공격하기보다 늙은 노동자들을 적대시해요. 늙은 노동자들이 사라지면 자신들이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 일반‘으로 놓고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이런 시선은 나이 든 세대의 불행이라기보다는 젊은 세대의 불행이에요. 어떤 사람들의 경험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거예요. 그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해야 할지를 그려볼 수 있잖아요. 그 배움의 기회를 날리는 거예요. 사람은 일종의 텍스트란 말이에요. 좋은 텍스트도 있고 좋지 않은 텍스트도 있어요. 모든 책이 좋은 책이 아니듯이.  - P129

 내가 봤을 때 지금의 우리나 일제강점기 경성 시내를 싸돌아다녔던 ‘모던뽀이‘들이나 다 똑같아요. 초기 자본주의 시대 경성 지식인들이 북적대는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물건 사고, 자기가 마치 진열된 상품처럼 번쩍대는 양 돌아다니고, 그리고 거기 옥상에서 이상李箱, 1910~1937 처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하고 탈주하는 놈도 있는 것처럼…………. 그때하고 지금하고 겉보기에 트렌디한 것은 좀 변했지만, 신상품을 강조했던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똑같아요. 자본주의는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체제예요. 자본주의의 전대미문성은 거기에있어요. - P130

인간적인 가치가 스타라는 시스템이나 모델 형태로만 남아 있는거예요. 모든 동네 아이들이 축구를 했던 시절이 아니라 축구를 구경하는 흐름으로 가는 거고요. 대신 자본주의는 가능성만은 줘요.
부르주아사회의 특징은 이론적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되는 사람은 없어요. 억울하면 소송을 걸 수 있지만,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해결도 힘들어요. 오히려 소송의 절차 자체가이길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해요. 가난해서 유명 로펌을 쓰지 못하는사람들한테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에 부딪히는 거죠. 옛날에는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보이기는 해요. 그런데 막상 올라가려고 하면 못 올라가요. 이게 자본주의사회예요. 모든게 가능해 보이는데, 정작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세계일주도 할 수있고, 많은 부를 축적할 수도 있고, 요트도 살 수 있어요. 돈과 시간만 있으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요. 그게 모든 문화, 정치, 생활을 지배해요. - P137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은 자유인으로 키웠으면 좋겠어요. 제가 불교를 많이 다루는 이유는 별게 아니에요. 종교의 형태지만, 중요한 것은 불교는 우리 자신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이죠. 불교는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신에게 복종하는 종교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내 자신의 욕망, 소유욕, 집요한 이기주의, 이런 것들을 이겨내려는 담론적 전통이 바로 불교예요. 물론 현실적으로 불교에서 모든 신도가 자유인, 즉 부처가 되는 것을 원하기 힘들어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면, 그들이 사찰을 찾아 부처상이나 스님을 경배할 일도 없고 당연히 시주도 없을 테니까요.(웃음) 바로 이것이 불교라는 종교가 가진 위대한 아이러니죠. 부처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자유인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는 이기적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남에게 복종하거나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이제 타인은 존중의대상, 그리고 아낌의 대상이 돼요. 결국 내가 부처가 되면 타인도 부처로 보이게 되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옛말이 떠오르네요.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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