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교육‘, ‘일반 교육‘이있잖아요. 어느 정도 나이까지는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의무교육,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처럼 이런 제도는 근대사회에서 생긴거예요. 왜냐하면 노동자가 많이 필요하니까요. 옛날에는 농노들을 교육하지 않았어요. 교육은 귀족들만 받았죠. 그런데 그다음에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잖아요. 징집을 해서 총을 어떻게 쏘는지 알려면 매뉴얼을 읽거나 명령을 들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문맹률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게 징집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어요. 여기에 자본주의 발달도 교육의 필요성을 부각시켰어요. 기술의 발달, 회계기법의 발달 등등 •••••• . 자본은 전문직 노동자들이 필요했으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교육의 이점을 얻는 쪽은 국가나 자본이지만 교육의 비용을 대는 쪽은 개개인들이라는 사실이에요. 달리 말해, 너희가교육 잘 받으면 너희가 출세하고 이득을 얻으니까 개개인들한테 교육비를 내라고 하는 거예요. 재미있는 거죠. ‘너희들은 이 체제의 훌륭한 나사가 되어야 돼, 너희는 이 전체 체제의 조각들을 견고하게 거대하게 만드는 나사니까 거기 딱 맞춰야 해, 그리고 잘 들어맞으면 체제에서 너희들을 받아들일 거야‘ 이런 거잖아요. - P165
말년의 보드리야르는 불가능한 교환échange impossible‘에 대해 이야기해요. 주고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받은 것에 대해 완전히 등가적인 대가는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사랑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한 교환이이루어진다‘라고요. 보드리야르의 논의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1872~1950가 쓴 《증여론Essai sur le don, 1925》의 영향을 받은 거예요. 모스가 원시부족 사회를 보면서 교환하고는 다른 ‘선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요. 답례를 받으려고 선물을 주는 건 아니죠. 물론 언젠가 선물을 받았던 사람이 자신에게 선물을 준 사람에게 다시 선물을 줄 수는 있어요. 그러나 받은 선물을 대가로 주는 것이 아니예요. 선물은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거예요. 반면 자본주의는 모든 걸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요.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는 선물마저 뇌물로 만든다고 할 수 있죠. 대가를 바라는 선물, 혹은 ‘기브앤 테이크‘에 포획된 선물은 뇌물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 P198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사랑하는거예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온전히 주어졌을 때, 그때 나를 좋아해줘야 기쁘고 희열이 있죠. 스토킹은 그 사람의 자유를 제거한 상태에서 나만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거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자유를 제거하는 방법은 그 사람을 죽이는 데서 정점에 이르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타인의 쾌락과 즐거움은 중요하지 않고, 나의 쾌락과 즐거움만 있는 거죠. - P205
그러니까 메를리 퐁티의 얘기처럼 최소 폭력을 선택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거나 훼손하지 않고는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최소한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개념을 가지면 우리는 지혜로워져요. ‘아!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지. 음식을 남긴 만큼 나중에 다른 것을 또 죽여야 하니까‘라고 생각하게 되죠. 나아가 이 발상을 가지면 놀라운 변화도 하나 생겨요. 죽을 때쯤 되면 죽음이 행복하게 받아들여지죠. 이제 다른 것을 파괴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최소한의 폭력만을 허락하며 살아온 사람은 고뇌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왔던 거예요. 생명체를 파괴하고 싶지 않으면, 자신이 굶어 죽어야 돼요. 이것도 일종의 생명 파괴죠. 그래서 최소한의 폭력을 실천하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거예요. 이제 세상을 떠나니 소,돼지, 물고기, 나아가 곡류나 채소등을 파괴할 리도 없으니까요.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남기지않고 먹는 이유가 그거예요. 다 먹어야 그만큼 다른 것을 먹지 않을수 있고, 그만큼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요. 거기에서 자비가 보이는 거예요. 자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내가 굶어죽어야지, 이러지는 않아요. 자비는 타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나의 고통도 최소화하려는 마음이었던 거죠. - P209
자본이 그렇게 힘을 가질 때 한쪽은 사이비 진보들 때문에 삶이 힘들어요. 생산수단 독점의 문제를 우회하는 논의는 아무리 진보적으로 보여도 무력한 논의일 뿐이죠. 사이비 진보들은 부차적인 문제를 중심적인 것으로 만들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젠더 문제, 그리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핵심적 문제를 덮어버리게 된 거예요. 그래서 왜 이렇게 삶이 힘든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논쟁에빠져서 서로 반목하고 흩어져 있어요. 사이비 진보들의 진보팔이 때문이죠. 어쨌든 약자들이 깨알 같이 흩어져버리면 기득권 체제는 계속 유지되는 거예요. - P232
이성복 시인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2001) 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랑에는 이미 방법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사랑이에요. 아버지가 생전에 짜장면을 좋아했다면 제사상에 짜장면을 올리면 돼요. 아버지가 짜장면을 아무리 좋아했어도 관습이 그렇지 않고 남들 보기에 민망해서 눈치를 본다면, 친척이나 어른들이 인정하는 사람이고 싶은 거죠. 혁명을 왜 하냐면, 법을 바꾸는 거예요.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 방법을 바꿔버리는 거예요. 그음식을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런 게 사랑이에요. 그러니까 방법을 가진 사랑과 방법을 만들어내는 사랑이 있어요. 진보는 후자여야 하고요.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낼 만큼 사랑을 해야 돼요. ‘대책이 없네, 생각해볼게‘ 이렇게 해서는 사랑하기 힘든 거죠. - P233
어떤 사람이 죽으면, 특히 비명횡사를 하는 경우, 왜 죽었는지를 고인이나 유족들은 알아야 해요. 그래야 관 뚜껑을 닫고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으니까요. 귀신이 돼서 구천을 떠돈다는 말은 억울함이나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줘야 해요. ‘자본을 위해서 국가가 그 법을 통과시켰고, 그 법 때문에 죽었다‘고요. 그게 가장 본질적인 원인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개인이나 누군가의 실수로 돌리고 서로 공격하기 시작한 거예요. 문제를 흐려버린 거죠. 해운법 시행 규칙 변경을 제안했던 사람들과 거기에 투표했던 국회의원들이 책임을 져야 해요. 국민의 대표들이 자본의 편을 들었어요. 그것이 핵심이에요. 그런데 해경의 잘못이라든가, 지휘권자가 잠을 잤다든가, 구할 수 있었다든가, 자꾸 누구 탓을 해요. 물론 이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지만, 이차적 원인일 뿐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해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책임론을 무마하려는 보수 우파의 망발이었죠. - P247
자본주의는 노동입법까지도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다른 나라에 강요를 할 수 있어요.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서가 아니라 ‘만국의 자본가‘가 그렇게 한 거죠. 노동자의 권익이 떨어지고 자본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신자유주의예요. 자본이 국경을 없앤 거라고요. 다국적기업이 많아지고 자본의 힘이 세지면 자본이 한 국가의 법률도 좌지우지해요. ‘법률 쇼핑‘이라고 해야 돼요. ‘너희 나라가 이런 법률 마련하면 우리가 투자할게‘ 하는 식이죠. 노동자들이나 그 국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중지를 모아서 우리 사회를 위해서 이런법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요구를 해요. 이런 법률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 나라에서 나가겠다. 투자하지 않겠다는거예요. 법률 제정이 보편적인 인간 권리를 위한 행위가 아닌 사회가 된 거예요. - P251
최악은 세상이 막연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절망하는 거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분노하고 바꿔버리는 거예요. 내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더럽게 똥을 싸질러 놓았는데, 아무도내 앞에 있는 똥을 치워주지 않아요. 스스로 치워야 돼요. 똥에 좌절한 사람들은 어차피 치우지 않을 거고요. 아무리 치워도 또 싸놓네, 이래버리면 답이 없잖아요. 아니면 언젠가는 누가 치워주겠지, 하는건데 아무도 치워주지 않아요.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생각은 때를 놓치게 만들어요.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오늘 병원에 가는 게 낫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처럼 무책임한 태도는 없을 거예요.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겠죠.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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