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코사 역시 포조처럼 교황청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동향이라고 할 수있는 나폴리 출신인 보니파키우스 9세의 궁에서 개인 내무비서가 되었다. 코사는 이 자리에서 교회와 관련된 관청들의 조달 사무와 과열되어있던 면죄부 판매의 감독을 지원했다. 또한 거액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성년(年, jubilee) 행사의 조직도 도왔다. 사후에 경험해야 할 끔찍한지옥불의 고통으로부터 면제해준다는 전대사(大)를 받고자 로마의주요 성당들로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엄청난 인파는 로마의 여용서할관을 가득 채우고, 선술집과 사창가의 돈줄이 되어주며, 도시의 좁은 다리마다 열을 지어 행진했다. 이들은 성당을 찾아가 기도를 올리고 촛불을밝힌 채 기적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그림이나 조각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부적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기념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애초에는 100년에 1번꼴로 성년 행사를 가질 계획이었으나 수요가 대단히 많은 데다가 그 수입이 막대하다 보니 점점 주기가 짧아져 처음에는 50년, 33년, 그리고 25년에 1번꼴로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포조가로마에 도착하기 바로 전인 1400년에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로마로 몰려온 엄청난 수의 순례자들로 인해서 교황은 불과 10년 전에 마지막 성년 행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대사를 내렸다. 교회가 더 많은수입을 거두기 위해서 동원한 다양한 방법은 어쩌면 코사의 실용적인머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로마로 순례를 옴으로써 얻을수 있는 영적 구원의 혜택 사후에 지옥에서 수천 년간 겪어야 할 고통의 면제을 누리고자 하지만, 알프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여행은 피하고 싶은 자들을 위해서 독일에 있는 특정한 성지를 방문하면 똑같은 면죄부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다만, 이 경우에는 면죄부를 얻기 위해서 로마까지의 여행에 소요되는 비용만큼을 더지불해야 했다.
코사의 재능은 면죄부 판매전략에서 보이는 명민함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볼로냐 총독으로 지명된 뒤, 그는 자신이 매우 성공적인 지도자,
군 사령관인 동시에 박력 있는 연설가임을 증명했다. 코사는 기민한 지성과 능변, 대담한 행동력, 야망, 육욕, 무한한 에너지 등의 수많은 자질들을 체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자질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그것이곧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직에 기대되는 상과 실제 현실 사이의 차이에 익숙했던 당시에도 볼로냐의 부제(副祭) 추기경으로 불린 코사는 성직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보였다. 포조의 친구 브루니도 인정했듯이 코사가 대단히 재능 있는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재능은 종교적인 사명에 적합한 것이아님이 명백했다.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