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 P244
이모의 나직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떠돌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을 모두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들고, 어느 정도는 흘려보냈다. 나를 휘감고 있는 단단한 팔뚝, 내 볼을 쓰다듬는 손바닥, 언제나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딱 알맞은 압력, 그것에대해서만 생각했다. 그것이 없는 삶이라니. 내생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이 사라지면 이모 김은숙 씨도 함께 사라진다니. 그 둘이 하나였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나는 나도 모르게 의미 없는 덧셈과 뺄셈을 무한히 반복하곤 했다. 나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나에게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면, 나에게 기부금이 없었다면 나에게 그 음식물 쓰레기통이 없었다면 가능하지도 않은 덧셈뺄셈에 병자처럼 집착해, 날마다 셈이 달랐다. 어떤 날은 어차피 부모도 없는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가 어떤 날은 부모가 없으니 다른 건 하나도 밑질수 없다고 발악했다. 셈이 남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날은 크게 밑지고 어떤 날은 적게 밑졌다. 그 모든 덧셈과 뺄셈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숫자가 바로 이모였다. 한 번도 변한 적 없이 내 곁에 있어서 의미를 고민할 필요가없었던, 그 존재조차 의심해본 적 없는 한 사람이었다. 그 이모가 내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내가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이다. - P260
시현은 재수 없고 싸가지 없고 인정사정없었다. 그런데 그의 부모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이런 순간의 시현이 가장 시현답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재수 없고 싸가지 없는데도 미워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알 수 없이 홀딱 반하게 되는 것이 시현의 힘이다. 이모라면 시현의 그 힘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성깔 부릴 때 쪽찢어지는 저 눈이야말로 시현의 제일 예쁜 점이라고, 저 화살 같은 눈으로 자기 갈 길을 정확하게 찾아간다고 얼토당토않게 갖다 붙이고 흐뭇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모가 소망한 대로 시현은 화살이되어 자기 길을 날아갔을 것이다. - P264
내 귓가엔 음악이 흐르고 있다. 나는 어디에도 설 수 있다. 나는 춤추고 있다. - P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