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 교수가 말했다. 미국인은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중국인은 운명을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무엇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행운을 가져다줄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카지노 도박꾼들은 베팅을 투자로, 투자를 베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은 카지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동 과학자 엘케 웨버와 크리스토퍼 시는 재무 위험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접근 방식을 비교했다. 그리고 일련의 실험을 통해 자신이 미국인 투자자들보다 훨씬 신중하다고 주장하는 중국인 투자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상으로 일련의 재무 관련 결정을 내리게 하자 그동안의 생각이 잘못되었으며 중국인들이 비슷한 재정 상태의 미국인들보다 언제나 훨씬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는 재무 결정과 관련하여 중국인 친구들이 내 관점에서는 불편할 정도로 위험을 감수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컨대 저축한 돈을 털어서 사업을 시작하거나,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이 전국을 떠도는 것처럼 말이다. 웨버와 시가 <쿠션 가설>이라고 명명한 한 가지 해석은 중국의 전통적인 대가족 체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다른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경기 호황시기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마카오 대학의 경영학 교수 히카르두 시우는 내게 <덩샤오핑이 실시한 경제 개혁은 그 자체로 일종의 도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괜찮을 뿐 아니라 유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죠>라고 설명했다. 극빈층에서 중산층이 된 사람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생각일 겁니다. 혹시라도 위험을 감수한 결과로 가진 돈의 절반을 잃더라도 괜찮아. 내게는 경험이 있으니까. 다시 가난하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몇 년 후면 날렸던 돈도 다시 회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도박에서 승리한다면? 백만장자가 되는 거야!> - P121

인민공화국은 볼이 빨간 농부들을 그린 그림과 결연한 표정의 군인들을 찍은 영화, 고매한 영웅적 행동을 노래하는 시 등으로 유명해졌다. 이러한 형식은 <혁명적 낭만주의와 조합된 혁명적 현실주의>라고 불렸으며 문화 황제 저우양周楊이 말한 <오늘의 이상이 내일의 현실이다>라는 중국 공산당의 믿음에 의해 모양을 갖추었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노골적인 사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예술가들은 오히려 <현실을 다룬> 죄로 기소되어 처벌을 받기도 했다.
1976년에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자 최초의 전위 예술가 집단이 등장했고, 그들은 그들 중 하나였던 마더성이 이전의 것들에 존재하는 <단조로운 획일성>이라고 지칭한 것에 반발해서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를 <스타스Stars>라고 명명했다. 1979년 국립 박물관에서 개최하려던 그들의 첫 번째 전시회가 무산되자 그들은 박물관 외부 담장에 작품을 걸고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예술적 자유를 요구한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면서 행진을 벌였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중국 정부는 나체로 대중 앞에 섰다는 이유로 행위 예술가들을 체포했고 실험적인 공연을 폐쇄시켰으며 비주류 예술가들의 마을을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하지만 나라가 부유해지면서 예술가들과 정부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2006년에 이르자 장샤오강 같은 중국인 화가들의 작품이 거의 1백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에 거래되었고 경제 붐과 함께 성장한 젊은 세대 예술가들은 독재와 정치 문제를 다루는 데 싫증났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소비 지향적인 풍조와 문화, 섹스를 바라보는 나름의 안목을 기르며 새로운 세대의 투기자들과 수집가들을 만났다. - P137

서양 문화를 대하는 중국인의 태도에는 동정과 질투, 분노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문명의 중심인 중화권 밖에 있는 미개인들에 대한 동정과 그럼에도 그들이 가진 부강함에 대한 질투, 그들의 중국 침략에 대한 분노이다. 중화민국 시대의 문학자 루쉰은 이렇게 썼다. <중국인은 외국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을 신처럼 우러러보거나 들짐승처럼 내려다볼 뿐이다.)1877년 청나라가 쇠약해지고 서구 열강이 발흥할 때 중국의 개혁론자들은 엔푸라는 젊은 학자 한 명을 잉글랜드에 파견해서 영국 해군력의 비밀을 조사하게 했다. 옌푸는 영국 해군의 힘이 무기가 아닌 지식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허버트 스펜서,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찰스 다윈을 비롯한 서양사상가의 책을 트렁크 한가득 들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다윈의 <자연 선택>이<자연도태>라는 훨씬 극단적인 단어로 바뀌는 등 그의 번역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엄청났다. 옌푸와 그의 동료들에게 진화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학이었다. 중국의 선구적인 개혁론자 량치차오(梁啓招)는 중국이 <가장 잘 적응한 나라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구사회를 지나치게 열광적으로 동경하는 태도에는 대가가 따랐다. 20세기 초 행동주의자들이 유럽의 개인주의 개념을 포용하고자 했을 때그들은 <가짜 외국인 놈들>이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마오쩌둥이 집권 말년미국과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 전까지, 서구 사회를 동경하는 태도는 처벌받아 마땅한 죄였다.
그럼에도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구 사회는 점점 더 가능성과 자기 창조의 땅으로 그려졌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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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적 가치관과 불평등을 비난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마르크스와 레닌의 후계자, 즉 중화 인민 공화국의 지도자들이 어떻게 신흥 부자 계급을 노골적으로 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상적인 지배 이념을 고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바야흐로 자기 창조의 시대였고 그것은 중국 공산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임무는 국가주석이자 총서기인 장쩌민에게 넘어갔다. 2002년 당의 가장 중요한 전당 대회에서 그는 심각한 수사학적 왜곡을 보여주었다. 차마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부터 <중간소득 계층의 성공을 위해 당이 헌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간 소득 계층은 어디에서나 당 기관원의 환영을 받았고 새로운 슬로건마다 그들이 언급됐다. 중국 경찰학교에 근무하는 한 저술가는 중간 소득 계층을 <문명화된 방식의 이면에 존재하는 도덕적인 집단이다. 특권을 없애고 빈곤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력이다. 사실상 전부라고 할 수 있다>라고 묘사했다.
동일한 전당대회에서 공산당은 또한 중국 헌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당>이라고 지칭하는 대신 <집권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즉 중국 지도자들이 그들의 존재 이유를 바꾼 것이다. 그렇게 지난 수십년 동안 <반혁명주의자들>이라며 정적을 거세게 비난했던 이전의 반란자들은 집권당임을 자처하면서 이제는 되레 혁명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을 정도로 현상태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그 결과 톈안먼 광장 옆 혁명사 박물관은 원래의 이름을 잃고 중국 국립박물관에 흡수되었다. 2004년에 국무원 총리 원자바오는 <실제로 통일성과 안정성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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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만리 길을 마다 않고 여기까지 온 건 천하를 널리 구경코자 함이거늘. 대체 뭘 망설이는가. 만일 돌아간 뒤에 친구들이 열하가 어떻던가 하고 물어오면뭐라 답할 텐가. 게다가 열하는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인데,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냥 놓칠 셈인가."
결국 나는 일행과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정사 이하 수행원들의 직함과 성명을 적어서 예부로 보내어 역말 편에 먼저 황제에게 알리기로 하였는데 나의 성명만은 단자 속에 넣지 않았다. 본디 특별한 임무도 없거니와, 황제의 별상황제가 수행원에게 상으로 물품을 내려주는 것이 있을까 하여 미리 피한 것이다.
사람과 말들을 점검해 보니, 사람은 모두 발이 부르트고 말은 여위고 병들어 실로 제때에 열하에 당도할 것 같지 않았다. 이에 일행이 모두 마두를 빼고 견마잡이만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였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장복이를 두고 창대만 데려가기로 했다.
변계함과 참봉 노이점, 진사 정각, 건량 판사 조학동 등이관문 밖에서 손을 잡고 서로 작별을 고하니, 여러 역관들도다투어 손을 잡으며 무사히 다녀올 것을 빌었다. 떠나고보내는 모습이 자못 처연했다. 함께 먼 이국땅까지 와서 또 다시 작별을 하게 되었으니 사람의 정이 어찌 그렇지않겠는가. 마두들이 다투어 능금과 배를 사서 바치기에각기 한 개씩을 받았다. 첨운패루 앞에 이르자 모두들 말머리에서 작별을 고하며 눈물을 떨구지 않는 이가 없다. - P150

그러고 보면, 이별의 괴로움 중에 하나는 가고 하나는남겨지는 때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때는 무엇보다 그이별의 장소가 슬픔을 부추기는 법이니, 그것은 정자도아니요, 누각도 아니요, 산도 아니요, 들판도 아니요, 오직물을 만나야만 한다. 그렇다고 꼭 큰 것으론 강과 바다거나 작은 것으론 도랑과 개천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흘러가는것이면 모두 물이 된다. - P155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슬프게 눈물지을 때이다. 장복과 나는 어버이아들의 친함이나 임금과 신하의 의로움도 아니요, 남편과 아내의 지극한 정이나절친한 벗 사귐도 아니다. 그런데도 생이별의 괴로움이 이토록 지극한 걸 보면 이별의 장소가 오직 강이나 바다, 또는 저 하수의 다리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를테면, 이국이나 타향에서라면 이별에 알맞지 않은 곳이 없는 셈이다.
아아, 슬프다. 예전 소현세자께서 심양에 계실 때 당시 신하들이 머물고 떠날 때나사신들이 오가는 무렵에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임금이 욕되면 신하된 자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것도 이 마당에선 오히려 평범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차마 어찌머물고 어찌 떠나갔으며, 차마 어찌 견디고 어찌 보냈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비통한 순간이었으리라.
아아, 슬프다. 내 비록 쥐벼룩같이 미미한 신하지만 백 년이 지난 오늘, 그저 시험삼아 한번 떠올려 보기만 해도 정신이 싸늘하고 뼈가 시려 부서질 듯한데, 하물며그 당시 자리에서 일어나 하직의 절을 올릴 즈음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당시 처지가 곤궁하고 위축된 것이 매우 심하고 의심스러워 꺼려지는 것이 너무 깊어서눈물을 참고 소리를 삼키며 얼굴엔 참담함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그 심정이야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당시 남아 있는 신하들이 떠나가는 이들을 멀리서 바라볼때 요동벌판은 끝없이 펼쳐지고 심양의 우거진 나무들은 아득한데, 사람은콩알만큼 작아지고 말은 지푸라기처럼 가늘어져 눈길이 닿는 곳에 땅의 끝, 물의 끄트머리가 하늘에 잇닿아 그 경계가 사라져 버리고, 해는 저물어 관문을 닫아걸때 그 애간장이 어떠했을꼬.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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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는 장성 밖의 요충지다. 강희제 때부터 여름이면 늘 황제가 이곳에 행차하여 더위를 피하곤 했다. 궁전들은 별반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이궁을 ‘피서산장‘이라 부른다. 황제는 이곳에서 때로는 책을 읽고 때로는숲과 시내 사이를 거닐며 유유자적 노닐었다. 겉으로는 태평하게 휴가를 즐긴듯 보이지만, 그 속내는 험준한 요새인 이곳에서 몽고의 목을 틀어막고자 함이었다. 북쪽 변방 깊숙이 자리 잡아, 명목은 피서지만 사실은 황제 자신이북쪽 오랑캐를 막고 있는 셈이다. 이는 마치 원나라 시절, 황제가 해마다 풀이돋으면 수도를 떠났다가 풀이 시들면 남으로 돌아온 것과 같다. 대체로 황제가 북쪽 가까이 머무르면서 자주 사냥을 나서면 북방 오랑캐들이 함부로 내려와서 말을 방목하지 못한다. 그래서 황제의 행차 시기를 늘 풀이 돋아나고 시드는 때로써 정하는 것이다. 피서라 이름하게 된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올봄에도 황제가 남방을 순행하고서 곧바로 이곳 열하로 왔다고 한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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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최근 들어 배역 스펙트럼이 점점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배우로서 지금 제 나이와 경험이 싫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연은 인간을 더 연민하게 됐으니까. 이연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이나 현대의 범인 못지않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애정하게되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약한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 우선 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 P24

-그게 꼭 그 아이들이 철없거나 허영심이 세거나 금융 문맹이어서가 아니라요. 제 생각에는...... 밥은 남이 안 보는 데서 혼자 먹거나 거를 수 있지만 옷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아요. 가방으로. - P40

그런 뒤 오대표는 이연에게 갑자기 이상한 걸 물었다.
-오늘 어땠어요?
정말 궁금한 듯도 하고 마땅한 작별인사가 떠오르지 않아불쑥 튀어나온 말 같기도 했다.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때면, 사랑이나 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말했다.
-좋았어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김과 박, 서를 등진 오대표의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다. 이연이 코트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썼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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