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긍정 심리학의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 이런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건강이 증진되고 더 행복한 결혼 생활, 더 성공적인 직장생활 등 온갖 종류의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가보통 그렇듯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는 모든 연구에는 그와 반대되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존재한다.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은 속기 쉽고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좋은 논증을구성하는 데 서툴다. 게다가 일부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은 유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실망감을 더 잘 처리하고 더 창의적이며 협상을 더 잘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정적인 감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심리학적, 신경학적 또는 생물학적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나쁜 감정이 어떤 목적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나쁜 감정이 어떤 이유로 인해 진화했다는 생각은 새로운 게 아니다. 진화론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19세기 과학자 찰스 다윈이 1872년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그런 설명을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 혈액이대근육으로 잘 흘러들어서 위험으로부터 더 쉽게 도망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자연적인행동에 도움이 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결론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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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21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후금이 요양과 심양을 잇달아 함락하고 요동 지역을 장악하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육상교통로가 끊긴 명과 조선의 위기의식은 매우 고조되었다. 그렇지만 후금은 여세를 몰아 대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후금 지도부안에 지속적인 팽창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권력 투쟁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갑자기 늘어난 영토와 인구를 일단 후금의 통치 질서 안으로 흡수하여 재조직하는 문제도 중요한 현안이었다. 이런 요인이 작용하여 요동 장악 후 후금의 공세는 잠시 주춤하였다. 누르하치Nurhachi(努爾哈, 1559~1626)는 명과 조선 두 나라를 동시에 적으로 삼아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외교적 방법으로 조선을 먼저 제어하는 노선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조선을 대하는 후금의 태도가 매우 고압적으로 바뀐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누르하치는 심양과 요양을 점령하자마자 "만주국 칸이 조선국 왕에게 서신을 보낸다 [滿州國汗致書朝鮮國王]"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국서를 조선에 보냈는데, 조선 왕을 가리켜 "너汝"라고 하대하였다. 핵심 내용은 요동에서 조선으로 넘어간 난민을 모두 돌려보내라는 요구였다.‘ 약 두 달 후에 국서를 다시 보냈다. 이번에는 예전과는 달리 오직 황제만 쓸 수 있는 "조詔"라는 표현을 썼으며 사신이 만포가 아닌 의주로 와서 국서를 전달하였다.
이는 앞으로 후금이 명을 대신할 것이라는 분명한 의사 표시였다. - P33

우리나라 병력이 과연 요양의 병력만 한가? (그러니 후금에) 답서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적을 결코 당해내지 못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저 한때의 사의邪議(배금론)를 두려워하여 (답서작성에 나서지 않고 있으니) 종묘사직을 어쩌려는 것인가? (이는) 또한 그저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나라의 위망은 돌아보지 않는(작태)다. 아울러 왕으로 (하여금) 기미를 고집하도록 하는 것은곧 훗날 기미를 주장한 죄를 왕에게 돌리려는 의도다. 옛날의 대신들이 과연 이 같았는가?

결국 두 역관이 의주부윤이 작성한 서신을 가지고 요동에들어갔다. 하지만 요동 정세가 어지러워 길이 막혔다는 이유로 서신을 전달하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이후 역관을 다시 보내라는 광해군의 불같은 독촉에 비변사는 넉 달 넘게 회계조차 하지 않았다. 광해군은 누차 독촉하였다.

나라를 위한 도모가 좋지 않아 적병이 (이미) 강에 다다랐으니.종묘사직의 위기가 조석에 박두하였다. 왕이 주는 옷을 입고 왕이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어찌 종묘사직의 위망을 염려하지 않는단 말인가? 비변사는 (일을) 파하고 나가버리기를 일삼으니, 이렇게 하고도 (종묘사직이) 무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비변사는 협조하지 않았고, 임금의 명은 효과를보지 못하였다.
조선을 대하는 후금의 자세는 날로 고압적으로 변했다. 결국 후금이 그동안 양국을 오가며 외교 업무를 전담했던 조선 역관 하서국河瑞國(?~1622)과 그 일행을 처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광해군의 재촉으로 파견한 박규영朴葵英과 역관 황연해黄連海는 후금에 억류되었고 정충신이 가지고 간 서신은 양구리가 찢어버리는 등 양국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되었다. - P39

・(비변사 당상들이) 서로 돌아보며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사대한지 200년 동안 이처럼 치욕스러운 경멸을 당하고 명예를 더럽힘이 심한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라고 하였습니다. 성상의의도하신 바는 본래 백성에게 은택을 베푸는 것이었고, 신들이쟁론한 바는 단지 의리를 좇는 것이었습니다. 천조에 죄를짓느니 차라리 성상께 죄를 짓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강력하게 변론하며 진언하지 못하여(결국)군신 상하가 모두 (명 황제의) 크나큰 질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명의 장수가 조선이 명의 파병 요구에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핑계만 대는 태도를 크게 질타한 직후 비변사에서 그 대책을 아뢴 내용이다. 자기들은 즉각 파병을 외쳤는데 국왕 광해군이 갖가자 핑계를 대며 파병을 회피하다가 이제 요동 방면 명 장수의 호된 질책을 받았으니, 200년 사대의 역사상 이런 치욕이 어디 있느냐는항변이었다. 특히 밑줄 부분이 압권이다. 파병하라는 천자의 칙서를 거부하여 천자에게 죄를 짓느니, 차라리 파병을 반대하는 전하의 뜻에 반하여 파병함으로써 전하에게 죄를 짓는 편이 낫다는 의미다. 신하로서 국왕의 명을 따르는 게 순리지만, 국왕의 뜻과 천자인 황제의 뜻이 충돌한다면 당연히 황제의 뜻을 따르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이런 의식으로 무장한 신료들이었기에, 광해군이 감군어사앞에서 끝내 뜻을 굽히지 않자 이제 왕의 정통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조선 국왕보다 명 황제의 명을 더 중하게 여기는 신료(배신臣)들의 눈에, 감군어사의 목전에서 황제의 칙서를 노골적으로 거부한 광해군은 더 이상 조선의 국왕일 수 없었다. 조선 국왕은 양반신료들의 지지와 명 황제와의 군신 관계를 정통성의 두 축으로 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의 행위는 일종의 ‘도박‘에 가까웠다.
그래야 할 만큼 광해군도 절실했다.  - P54

칙서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부했을 뿐 아니라 황제의 은총과 사대 정성을 기리는 존호까지 일관되게 거부한 광해군은 이제명의 번국인 조선의 왕일 수 없었다. 번국의 사대 도리를 정正과 의義개념으로 인식하는 신료들의 눈에, 칙서를 거부하고 후금과 대화를 모색하는 광해군의 태도는 사邪이자 불의不義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광해군의 권위는 결정적으로 추락했으며, 레임덕 현상이 나타났다. 광해군은 신료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었으며 승정원마저 그를 외면했다. 그 어떤 붕당과 소규모 정치 그룹도 광해군을 지지하지 않았다. 신료들은 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집무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일부 고위 대신은 아예 등청하지 않는 방식으로불만을 표출했다. 그 결과 광해군 재위 마지막 10개월 동안 조선의 행정은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 광해군과 신료들은 다시는 화합할수 없을 정도로 어긋나버렸다. 정변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은 이렇게 조성되고 있었다. - P58

대외관과 국내외 정세는 불가분의 관계다. 정세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래야 한다. 그러나 조선 신료들의 대명관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성격이었다. 많은 학자가 조선과 명의 관계를 중국적 질서하에서 이루어진 책봉·조공 관계의 전형적 예로 보지만, 나는 조명 관계를 중국적 질서에서 이루어진 예외적이고 특이한 관계로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번국(조선)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황제국(명)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황제국이 완전히 멸망해사라졌음에도 기존의 사대 의리를 영원히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유교 정치이론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책봉·조공 관계를 군신 관계로만 보지 않고 부자 관계로 이해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까지 한 예는 동아시아 역사상 조명 관계가 유일하다. 즉명을 대국이 아닌 상국, 더 나아가 군부로 보는 순간 이미 조명 관계는 춘추전국시대의 사대자소事大字小 관계에서 이탈한 셈이다. 더 나아가 한당 이래 중국적 책봉. 조공관계의 실제와도 다른, 몹시 변형된 관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례가 역사상 전무후무하다면, 그것은 희소하고 특수한 예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명과 조선의 책봉·조공관계는 이런 시각에서 접근해야, 이미 명이 망해 사라진 후에도 계속 숭명배청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조선 후기 정치·지성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62

최근에는 호란의 주요 원인을 조선보다 후금 쪽에서 찾는 움직임이 대세이다. 김종원에 따르면, 정묘호란은 후금 내부의정치·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 그는 정치·군사적 요인으로 팔기 내부의 알력, 연정 체제의 권력을 홍타이지로 집중하려는 의도, 영원성 패배 이후 저하된 후금군의 사기 진작용 군사 작전, 배후의 모문룡 제거, 모문룡을 지원하는조선을 확실히 제압할 필요 등을 두루 꼽았다. 이 밖에도 요동 지역한인의 반란과 도주로 인한 내부 소요 및 식량과 생필품 부족 같은후금의 사회·경제적 형편도 중시하였다. 김종원의 연구는 정묘호란의 원인에 관한 가장 종합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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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돈 까밀로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필로티의 목덜미에 오른손을 얹고 치로의 목덜미에 왼손을 얹은 다음 두 사람의머리통을 세게 박치기시켰다. 늙은 뼈라 불꽃이 튀진 않았지만 ‘빽!‘ 하는 그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빼뽀네가 걸음을 옮기면서 ‘아멘‘ 하고 화답했다.
이 사건도 다른 모든 얘기처럼 끝이 났다.
세월이 흘러 토레타 농장과 부르치아타 농장을 갈라놓았던철조망은, 지금도 그 유명한 구멍을 간직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은 한 어린 사내아이가 그 구멍을 지나다니며 놀고 있다고 한다.
필로티 영감과 부르치아타 영감은 마침내 친해져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았다. 아니, 무덤 파는 사람조차도 그렇게 다정하게 묻혀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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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살펴볼 감정 성인 집단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렁이 로리처럼 대한다. 나는 이들을 감정 수양형 성인이라고 부른다. 감정 수양은 오늘날 ‘감정 관리‘ ‘감정 지능‘ 또는 ‘감정 조절‘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 통제형 성인보다는 감정을 덜 의심하는데, 이 성인들이 보기에 나쁜 감정은 뿌리뽑거나 억누를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나쁜 감정을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감정을 어떻게 단련해야 할까? 감정 수양형 성인은감정이란 우리를 무너뜨리는 비이성적인 힘이라는 사고를 거부한다. 그들은 적절히 개입하면 감정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그중한 가지 개입 방식은 낸시 셔먼이 말하는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성공을 위한 옷차림‘이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인데, 일반인도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옷을 갖춰 입으면 타인에게도, 스스로도 전문가처럼 느낀다는것이다. 긍정 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감사 연습도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감사하다고 느끼는 모든 일의 목록을 작성하거나 매일 몇 분씩 시간을 내서 감사한 일을 세어 보라. 긍정 심리학연구에 따르면 이런 습관은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통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또 아이가 형제자매를 괴롭혔을 때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하려면 아이가 억지로라도 사과하게 만들고 자기가 한 일로 인해 동생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지적하라. (대개는 마지못해) 말이 먼저 나오고 감정은 나중에 나타난다.
또 다른 유형은 내가 ‘공간 만들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간만들기는 당신과 당신의 감정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룰 때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수단으로,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면 열까지 세거나 심호흡하거나 실제로 보내지 않을 비방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전략이다. 이처럼 공간을 만들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 준다. 또한 내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예컨대 내가 꼴 보기 싫은 동료의 말에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기회를 제공한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는 감정을 단련해서 더 나은 감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전략은 그 훈련의 일부다.
감정 통제형 성인과 마찬가지로 감정 수양형 성인도 철학계에서 역사가 깊다. 예컨대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감정지능을 이야기하기 훨씬 전부터 감정 단련법에 대해 많은 조언을했다. - P72

 공자에 따르면 예를 제대로 준수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는 인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인은 ‘선한‘ 또는 ‘인간적‘을 뜻한다. 인자가 되는 것이 바로 유교에서 수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바다. 인자가 된 사람은 무위無為, 즉 일종의 자연스러운 행위의세계로 나아갈 것이며, 예가 요구하는 바를 성심껏 자발적으로 행한다.
인자가 되려면 올바른 감정을 느껴야 하며 여기엔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오직 선한 사람(인자)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다.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경멸한다는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공자는 경멸받아 마땅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말재간을 뜻하는 영이 그런 것 중 하나다. 말재간을 부리는 사람은 의례를 잘 따르는 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겉치레를 하는 자다. 공자는 말재간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사람이 언변이 진실하고 진지해 보인다면, 그는 군자일까? 아니면 그저 군자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일까?" 말재간을 부리는사람은 가식에는 능하지만, 예에 수반돼야 하는 적절한 감정이 없다. 공자에 따르면 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인에 반하는 걸 미워하게 된다. 인자는 증오를 완전히 삼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을 증오하도록 자신을 단련할 뿐이다. - P7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성품의 탁월성은 감정을 조절하고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는 성품의 탁월성 중하나를 온화함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강한 분노와 지나치게 약한 분노의 극단 사이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분노를 ‘자신 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가해진 명백한 모욕‘에 대한 반응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남이나를 모욕하거나 무례하게 대할 때 가장 쉽게 분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무감각하다.‘ 그리고 ‘비굴하다.‘라고 표현한다. 98 즉 분노를 너무 적게느끼는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맞설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술집 구석에서 어떤 남자가 당신의 어머니를 욕하는데 당신이 가만히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이 어리석거나 나약하다고 말할 것이다. 분노는 학대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며, 온화함이라는 탁월성을 지닌 사람은 분노를 적절하게 느낄 것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올바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일반적으로 ‘실천적 지혜‘로 번역되는 프로네시스phronesis가 있다.
실천적 지혜가 있으면 다양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게 뭔지 알고적절한 때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적절한 때에 올바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때에 올바른 방식으로 감정을 느낀다. - P79

아! 살았다! 이제 다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세상으로••• 악당이나 고통이 없는 이 인생극, 아이스크림과 탄산수가 인간이라는 짐승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제물일 만큼 세련된 이 공동체••• 모든 것의 잔혹한 무해함, 나는 이것들을 견딜 수 없다. 온갖 죄와 고통이 있는세속적인 바깥세상의 광야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으리. 그곳에는높이와 깊이가 있고 끔찍함과 무한함의 광채가 있으며, 이 밋밋함과 모든 평범함의 전형보다 천 배는 많은 희망과 도움이 있다. 

감정 수양형 성인에 대한 내 반응은 셔토쿼 호수에 대한 제임스의 반응과 좀 비슷하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는 질서 정연한 감정생활에는 뭔가 빠진 게 있다. 그건 너무 건전하고 너무 깔끔하다. 그들은 감정을 단련해서 감정이 항상 적절한기준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분노가 과도하거나 잘못된 시기에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분노를 느끼는 건 괜찮다고 말한다. 이처럼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길들일 수 있다고 해도 꼭 그래야만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야생의 감정을 선호해야 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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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통제형 성인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는 게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면 감정도 그에 따라 움직이고 더는 이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주관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믿음을 바로잡으면, 감정도 바로잡을 수 있다. 간디의 말처럼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밧줄을 뱀으로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토아학파와 간디는 왜 그렇게 확신했을까?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소설 『벗겨진 베일」에서 바로 이 질문을 탐구한다. 주인공 래티머가 병에 걸린다. 그는 병에 걸린 후 갑자기 예지력이 생겨서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미래를 본다. 그는 자기 인생의 행로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끔찍한 미래를 보지만 그렇게 보이는 미래보다 실제 미래가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그는 변덕을 부리고 억울해하며 모든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결국 그는 단순히 사람들을 피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자신을 고립시킬수록 더 평온해진다. 친구와 가족보다 별자리와 먼 산에 더 큰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래티머는 행복하지도 평화롭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지도 못한다. 그는 동떨어지고 고립됐으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우주의 진리를 알면 내면의 평화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더는 실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한다면?
감정 통제형 성인은 우리 주변의 살아 숨 쉬는 인간 세계에대한 집착을 줄이는 편이 낫다고 한다. 우리는 인간계에 신경을 덜 써야 하고 그렇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조지 오웰이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것을 선택한다. 그들은 더는 평범한 인간들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나쁜 감정을 피하려고 껍데기 속의 거북이처럼 살아가는 게 가치가 있을까?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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