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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기억하라

내가 1976년 가을에 전라남도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노동운동을 위해 구로공단에 취업했다가 나온 이후 서울에서는 전위냐 대중이냐를 두고 쟁론이 벌어졌고, 나는 소설가로서 대중운동 현장을 찾고 있었다. 다른 한 가지는 대하역사소설 ‘장길산‘을신문에 연재하면서 전통사회 민중의 구체적인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청소년 시절에 가출하여 남도를 편력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언젠가 호남지방을 다시 돌아보리라 작정하고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의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나는 새로운조국을 발견하게 된다. 개발독재 기간 농촌사회의 분해와 재편성을위한 새마을운동이 선전되고 있었지만 전라도는 여전히 피폐했다. 강진, 해남 등지는 조선시대의 유배지로서 제주도까지 이어지는 유배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을 뿐 아니라 동학혁명의 발자취 또한 뚜렷했다. - P5

전남대의 경우 학생회가 부활하기 전에 이미 어용교수 문제로 교내가시끄러웠다. ‘어용교수 백서‘가 발표되고, 지목된 교수들의 버티기가계속되자 학생들은 서서히 집단행동으로 뜻을 관철하려 했다. 총학생회에서 어용교수들의 연구실을 사실상 폐쇄하는 정침식(釘針式 교수실에 못을 박아 출입을 못 하게 하는 의식)을 했고, 정치외교학과 주수원 교수의 중재로 모임을 가졌으나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수들이 버티고 있는 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총학생회 부활 후 전남대 교내시위는 어용교수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시작되었다. 5월이 되자 학내시위가 무르익었다.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 도청 앞에서 시위할 계획을 세웠다. 총학생회는 ‘반민주 반민족 행위자 매장비‘를 용봉탑 앞에 세우는 등 본격적으로 민주화 투쟁에 나설 준비를 갖추었다. - P36

"상윤이 군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이대로 가만히 있을 놈들이아냐 학생들이 횃불 시위를 하고, 게다가 5·16 화형식까지 한다니 몹시 걱정이 되네. 군부가 나올 수도 있는데 무슨 대비책이라도 있나?"
대비책이 있을 수 없었다.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해 민주화의 열기를 엎어버린다면 도대체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우려는 진작부터 있었어요. 어제 서울역 시위를 끝으로 대학생들이 모든 시위를 중단한 것도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을주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우려가 있다고해서 학생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민주화라는 대세를 뒤엎을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명분을 잘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네."
두 선배는 내 말에 수긍하면서도 이를 강조했다. 신군부가 쿠데타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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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언어에는 똑같은 속담이 존재합니다.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도 느끼지 못한다는 속담이죠. 그런데 전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감히 단정합니다. 우리가 억누르려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감정들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마음에는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유배중이라면, 두고 온 집과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애쓸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서 그 사람을 떠올릴 겁니다.
복음서와 세상 모든 종교의 경전들은 신을 이해하기 위해,
민족을 나아가게 한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지구 표면을 방황하는 영혼들의 순례를 이해하기 위해 떠난 유배중에 씌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기대하는 것을 알지 못했고, 우리 역시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을 수 없고 또 잊기를 원치도 않기 때문에 책들이 씌어지고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 P299

그녀는 그를 힘껏 껴안았다. 스크린에 ‘끝‘이라는 자막이 뜬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 누군가가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생각을 한다면,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하라고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 옛적에......"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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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강, 저 호수, 저 집들, 저 성당이 보이세요? 오백 년 전에도 저 모든 것이 지금과 거의 흡사했어요. 도시가 텅 비어 있었다는것만 빼고 말이죠. 정체불명의 역병이 전 유럽을 휩쓸었죠.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가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사람들은 그 역병을 흑사병이라고 불렀죠. 그건 신이 죄악에 물든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퍼뜨린 대재앙이었어요. 일군의 사람들이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들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즉 신체적인 아픔을 자신들에게 가했어요. 채찍이나 사슬로 자신을 후려치며 저 다리, 저 길들을 밤낮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그 고통으로 신을 찬양했어요.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이 빵을 굽고, 땅을 경작하고, 가축들을 먹일 때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신체적 아픔은 이제 고통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사해주는 쾌락이었죠. 아픔이 기쁨이 되고, 삶의 의미, 쾌락이 되었던 겁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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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부모처럼 떠받드는 명조인데, 시험 삼아 과연 너를 (정말로) 구원하는지 짐은 점을 치려 한다. 자식이 화를 당하는데 어찌 아비가 구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천명을 받들어 거병하여, 하늘의 뜻을 거역한 조선국왕을 포위했는데, 과연 조선이 부모로 섬기는 명이 그 자식을 구하러 오는지 지켜보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당시 명의 군사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함은 쌍방 모두에게 분명하였다. 따라서 이 문장은 홍타이지의 군사적 자신감의 표현인 동시에 조선에 대한 조롱섞인 엄중한 경고이자, 대단원의 여운을 이어주는 일종의 카덴차cadenza라 할 수 있다.
이상 살핀 후반부 내용은 사실상 서신의 골자를 담고 있으며, 구성으로 보아도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을 이룬다. 그런데 이런 내용 전체가 『승정원일기』에 완전히 누락되었다. 『승정원일기』는 역사서가 아니라 관청의 기록이므로 사정에 따라 내용을 적지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어떤 사정이었을까? 농성중이라 일일이 옮겨 적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테다. 지금까지 살핀 점을 고려하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음이 확실하다. 대청 황제의 ‘정벌‘을 초래할 정도로 큰 죄, 곧 천명을 거스른 죄를 고스란히 인조에게 묻는 내용을 그대로는 도저히 실록에 기록할 수 없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천명은 오로지 명 황제에게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 P141

조선의 국가정체성을 동아시아 국제 질서 맥락에서 폭넓게이해하기 위해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차이를 비교해 인식할필요가 있다. 임진왜란은 16세기에 새롭게 이념화한 군부·신자 관계가 단순히 이론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도 작동함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7년에 걸친 전쟁으로 온 국토(왕조의 하드웨어)가 황폐해졌어도 정체성(왕조의 소프트웨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기존의 군부·신자 관계에 재조지은이라는 경험이 배어들면서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명도 조선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북쪽으로는 만주 일대를, 남쪽으로는 일본열도를 견제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병자호란은 기존의 국제 관계를 뿌리째 뒤흔든사건이었다. 조선이 명·청 교체를 현실로 수용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16세기에 형성된 부자 관계라는 절대 가치 때문이었다. 과거에 송을 무너트린 여진이 중원을 차지하고 제국을 세운 뒤 종족과 무관하게 누구나 천명을 받을 수 있음을 설파한 바 있는데, 그 후예인 홍타이지가 이끄는 만주 또한 똑같은 논리로 조선을 압박하였다. 그런데 조선은 배타적 화이 의식을 강조한 남송의 주자학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중화 문명국인 명과의 관계를 군신 및 부자 관계로 절대화한 나라였다. 이것이 바로 어떤 궁지에 몰리더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선의 국가정체성이었다. 또한 이 점이야말로 이길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척화를 외치다가 남한산성에 스스로 갇힌 이유였다. 금수로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느니 성안에서 척화를 외치다 교화받은 인간, 곧 (소)중화인으로 당당하게 죽겠다는 정체성이었다.
따라서 바로 이런 국가정체성을 심히 조롱하고 유린한 홍타이지의 언설을 그대로 실록 기록으로 남길 수는 없었다. 후대에 남길 실록을 ‘더럽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삼전도에서 청에게 굴복하였지만 『인조실록』을 편찬한 1653년까지, 더 나아가 『승정원일기』를 개수하던 18세기까지도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은 역사기록historiography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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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평화롭게 먹고, 자고, 일할 수 없다. 열정은 과거에 속하는 것들을 모두 파괴해버린다. 사람들이 열정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가 와해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여 위협을 통제하고, 이미먼지로 변해버린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낡아버린 것의 기술자들이다.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열정에서 찾기를 희망하며 무작정 뛰어든다. 그들은 행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자기 열정의 대상에게 돌리고, 불행이 닥치면 그를 죄인으로 삼는다. 그들은 뭔가 신비스러운 것이 그들에게 닥쳤기 때문에 행복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사건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열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그것에 맹목적으로 뛰어드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덜 파괴적인 태도일까?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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