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살펴볼 감정 성인 집단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렁이 로리처럼 대한다. 나는 이들을 감정 수양형 성인이라고 부른다. 감정 수양은 오늘날 ‘감정 관리‘ ‘감정 지능‘ 또는 ‘감정 조절‘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 통제형 성인보다는 감정을 덜 의심하는데, 이 성인들이 보기에 나쁜 감정은 뿌리뽑거나 억누를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나쁜 감정을 수양하거나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감정을 어떻게 단련해야 할까? 감정 수양형 성인은감정이란 우리를 무너뜨리는 비이성적인 힘이라는 사고를 거부한다. 그들은 적절히 개입하면 감정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그중한 가지 개입 방식은 낸시 셔먼이 말하는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성공을 위한 옷차림‘이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인데, 일반인도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옷을 갖춰 입으면 타인에게도, 스스로도 전문가처럼 느낀다는것이다. 긍정 심리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감사 연습도 외면을 내면으로 전략이다. 감사하다고 느끼는 모든 일의 목록을 작성하거나 매일 몇 분씩 시간을 내서 감사한 일을 세어 보라. 긍정 심리학연구에 따르면 이런 습관은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며 이를 통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또 아이가 형제자매를 괴롭혔을 때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하려면 아이가 억지로라도 사과하게 만들고 자기가 한 일로 인해 동생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지적하라. (대개는 마지못해) 말이 먼저 나오고 감정은 나중에 나타난다.
또 다른 유형은 내가 ‘공간 만들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간만들기는 당신과 당신의 감정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룰 때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수단으로,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면 열까지 세거나 심호흡하거나 실제로 보내지 않을 비방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전략이다. 이처럼 공간을 만들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아 준다. 또한 내 감정이 상황에 적절한지, 예컨대 내가 꼴 보기 싫은 동료의 말에 과민 반응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기회를 제공한다. 감정 수양형 성인은 나쁜 감정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열쇠는 감정을 단련해서 더 나은 감정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전략은 그 훈련의 일부다.
감정 통제형 성인과 마찬가지로 감정 수양형 성인도 철학계에서 역사가 깊다. 예컨대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감정지능을 이야기하기 훨씬 전부터 감정 단련법에 대해 많은 조언을했다. - P72

 공자에 따르면 예를 제대로 준수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는 인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인은 ‘선한‘ 또는 ‘인간적‘을 뜻한다. 인자가 되는 것이 바로 유교에서 수양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바다. 인자가 된 사람은 무위無為, 즉 일종의 자연스러운 행위의세계로 나아갈 것이며, 예가 요구하는 바를 성심껏 자발적으로 행한다.
인자가 되려면 올바른 감정을 느껴야 하며 여기엔 부정적인 감정도 포함된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오직 선한 사람(인자)만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다.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경멸한다는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공자는 경멸받아 마땅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말재간을 뜻하는 영이 그런 것 중 하나다. 말재간을 부리는 사람은 의례를 잘 따르는 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겉치레를 하는 자다. 공자는 말재간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떤사람이 언변이 진실하고 진지해 보인다면, 그는 군자일까? 아니면 그저 군자의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일까?" 말재간을 부리는사람은 가식에는 능하지만, 예에 수반돼야 하는 적절한 감정이 없다. 공자에 따르면 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인에 반하는 걸 미워하게 된다. 인자는 증오를 완전히 삼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을 증오하도록 자신을 단련할 뿐이다. - P7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성품의 탁월성은 감정을 조절하고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는 성품의 탁월성 중하나를 온화함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강한 분노와 지나치게 약한 분노의 극단 사이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분노를 ‘자신 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가해진 명백한 모욕‘에 대한 반응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남이나를 모욕하거나 무례하게 대할 때 가장 쉽게 분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다.‘ ‘무감각하다.‘ 그리고 ‘비굴하다.‘라고 표현한다. 98 즉 분노를 너무 적게느끼는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맞설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술집 구석에서 어떤 남자가 당신의 어머니를 욕하는데 당신이 가만히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이 어리석거나 나약하다고 말할 것이다. 분노는 학대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며, 온화함이라는 탁월성을 지닌 사람은 분노를 적절하게 느낄 것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올바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일반적으로 ‘실천적 지혜‘로 번역되는 프로네시스phronesis가 있다.
실천적 지혜가 있으면 다양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게 뭔지 알고적절한 때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적절한 때에 올바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때에 올바른 방식으로 감정을 느낀다. - P79

아! 살았다! 이제 다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세상으로••• 악당이나 고통이 없는 이 인생극, 아이스크림과 탄산수가 인간이라는 짐승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제물일 만큼 세련된 이 공동체••• 모든 것의 잔혹한 무해함, 나는 이것들을 견딜 수 없다. 온갖 죄와 고통이 있는세속적인 바깥세상의 광야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으리. 그곳에는높이와 깊이가 있고 끔찍함과 무한함의 광채가 있으며, 이 밋밋함과 모든 평범함의 전형보다 천 배는 많은 희망과 도움이 있다. 

감정 수양형 성인에 대한 내 반응은 셔토쿼 호수에 대한 제임스의 반응과 좀 비슷하다.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는 질서 정연한 감정생활에는 뭔가 빠진 게 있다. 그건 너무 건전하고 너무 깔끔하다. 그들은 감정을 단련해서 감정이 항상 적절한기준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분노가 과도하거나 잘못된 시기에 그릇된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분노를 느끼는 건 괜찮다고 말한다. 이처럼 감정 수양형 성인은 감정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길들일 수 있다고 해도 꼭 그래야만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야생의 감정을 선호해야 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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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통제형 성인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는 게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면 감정도 그에 따라 움직이고 더는 이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주관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믿음을 바로잡으면, 감정도 바로잡을 수 있다. 간디의 말처럼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밧줄을 뱀으로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토아학파와 간디는 왜 그렇게 확신했을까?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소설 『벗겨진 베일」에서 바로 이 질문을 탐구한다. 주인공 래티머가 병에 걸린다. 그는 병에 걸린 후 갑자기 예지력이 생겨서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미래를 본다. 그는 자기 인생의 행로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환상 속에서 자신의 끔찍한 미래를 보지만 그렇게 보이는 미래보다 실제 미래가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그는 변덕을 부리고 억울해하며 모든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결국 그는 단순히 사람들을 피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자신을 고립시킬수록 더 평온해진다. 친구와 가족보다 별자리와 먼 산에 더 큰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래티머는 행복하지도 평화롭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지도 못한다. 그는 동떨어지고 고립됐으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우주의 진리를 알면 내면의 평화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더는 실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한다면?
감정 통제형 성인은 우리 주변의 살아 숨 쉬는 인간 세계에대한 집착을 줄이는 편이 낫다고 한다. 우리는 인간계에 신경을 덜 써야 하고 그렇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조지 오웰이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것을 선택한다. 그들은 더는 평범한 인간들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나쁜 감정을 피하려고 껍데기 속의 거북이처럼 살아가는 게 가치가 있을까?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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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돈 까밀로와 뻬뽀네의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및 토막

젊은 시절 나는 신문기자였다. 그래서 기삿거리를 찾아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애를 만났다. 그 애를 알고나서부터 ‘내가 만약 멕시코의 황제가 된다면?‘, ‘내가 만약 사라진다면? 그녀가 어떻게 나올까 공상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고 나서 마감 때가 되면 얼렁뚱땅 꾸며낸 기사로 지면을 채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지어낸 이야기가 사람들이 좋아해 인기가 무척 높아졌다. 진짜 기사보다 훨씬 그럴 듯했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 P7

"언제 불에 탔는데??
"여섯 달 전, 어느 날 밤 헛간에서 불이 나 집과 함께 과수원의 나무들까지 모두 타버렸어. 두 시간 후에는 벽만 남았어. 저기 보이지?"
나는 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벽이 붉게노을 진 하늘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럼 너는?"
내가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도 다른 것들처럼 다 타버렸어. 재만 남은 거야."
나는 전봇대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며 물었다.
"내가 널 괴롭힌 건 아니니?"
"아니야... 괴롭히지 않았어."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어떠니?"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난 너를 기다렸어.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여태껏 널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이제 가도 될까?" - P29

이해하시겠는가?
여자 얘기라면, 술집 여기저기에서 카드를 치거나 노래를 부를 때 나도 항상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소녀가 있었다.
파브리콘으로 가는 길을 따라 서 있는 세 번째 전봇대에서매일 저녁 나를 기다리고 서 있던 한 소녀가∙∙∙.
새삼스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글쎄,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어쩌면 시퍼런 강물 위로 심장을두근거리게 하는 붉고 커다란 해가 저무는 뽀 강 유역 마을에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짧은 연애 이야기에 한번 결정하면 결코 뒤로 물러설줄 모르는 고집 센 뽀 강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딱히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뽀 강 위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잠시라도 맞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뽀 강 유역에는 산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두루두루 좋은 특별한 바람이 분다. 그곳에서는 개까지도 영혼을 가지고있다. - P30

돈 까밀로는 한숨을 지었다. 그는 머리 숙여 절하고 제단에서 물러났다. 성호경을 그으려고 제단 쪽으로 다시 돌아서니 빼뽀네의 등짝이 보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한창 기도에 몰두해 있었다.
"정 그러시다면…."
돈 까밀로는 두 손을 모은 채 예수님을 바라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손은 축복하라고 있는 것이지만 발은 아닙니다."
"그건 그렇구나."
제단 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돈 까밀로, 부탁이다. 딱 한 번만 차라."
예수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돈 까밀로는 번개처럼 날아가 빼뽀네의 등짝을 걷어찼다. 빼뽀네는 제단 앞으로 발랑 나자빠졌다. 그런데 그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몸을 일으키며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10분째 이걸 기다리고 있었소. 나도 이제야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소이다."
빼뽀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그렇다."
돈 까밀로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마음도 맑게 갠 하늘처럼 후련하고 시원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분도 속으로는 흡족해 하셨을 것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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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년 1~3월에 후금이 요동遼東지역을 장악함으로써, 명과 조선의 육상교통로가 끊어졌다. 이에 따라 명과 후금 사이에서 한쪽을 분명히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조선을 옥죄었다. 눈치를 보거나 절충안으로 상황을 타개할 여지가 거의 사라지면서 논쟁은 극단적 대립을 거쳐 파경으로 치달았다. 이를테면, 광해군은 명 황제의 추가 징병 칙서를 공개적으로 거절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신료들은 그런 광해군의 왕명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수시로 파업을일삼았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조선이 취할 행보를 놓고 벌어진 이때의 논쟁 양상과 그 성격은 약 5년 후 정묘호란 이후로 명과 청 사이에서 조선의 처신을 두고 격렬하게 벌어진 척화斥和 대 주화主和로 논쟁의 예고편이자 판박이였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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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1627) 때 조선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후금(1616~1636)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 여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일이었다. 그러나 홍타이지 Hong Taiji(皇太極, 1592~1643)가 대청大淸을 천명한 뒤 새롭게 요구한 군신 관계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패륜 그 자체였다. 위기에 처한 아버지(명)를 돕기 위해 자식(조선)이 바로 달려가기는커녕 아버지를 죽이려는 원수(청)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린 것이 삼전도 항복 (1637)의 핵심 본질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조선의 엘리트들은 삼전도 항복을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로 치부할 수 없었다. 국가의 수치 차원을 넘어,
소중화小中華라는 조선왕조의 레종데트르raison d‘étre (존재 이유)를 스스로 파기한 데 따른 이념적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조국이니 민족이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조선왕조의 존망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적잖이 존재하였다. 대표적인 예가바로 중세적 ‘보편 문명‘, 곧 중화였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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